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8

십팔나한진
  자신 앞에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던 유현이 그곳에 손을 담갔다. 아직 굳지 않은 피가 시냇가를 물들였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망설이지 않고 시냇물에 뛰어들었다.
  풍덩!
  수심이 깊은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현의 몸이 전부 물에 잠겼다.
  하지만 유현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물속에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방해하는 화린을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의아했다.
  '결국 그 녀석도 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소리인가?'
  유현은 피식 웃었다.
  아마 자신을 막은 게 은월이었다면 그대로 반 죽여 놨을 게 뻔했다.
  그런데 화린이 막으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유현이 그렇게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화린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 뒤를 따라 은월의 기척도 느껴졌는데 사도문의 소현이란 소년을 데리고 왔는지 그의 기가 느껴졌다.
  "언니 어디 있지?"
  화린이 두리번거리며 유현을 찾는다.
  이미 시냇물에 피는 모두 쓸려 나갔기 때문에 물은 깨끗했다.
  그런 상태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는 유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은월이 화린 옆으로 오며 말했다.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 아직 피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어."
  은월의 말에 화린이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소현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 자식아! 이거 안 놔?"
  아직 아혈은 제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은월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떠들어대는 소현을 스윽 한 번 바라보았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소현 때문에 귀가 다 멍멍할 정도였다.
  당연히 짜증이 생긴 은월은 짜증을 풀기 위해 소현을 그대로 시냇물에 던져버렸다.
  "으악!"
  갑작스러운 은월의 행동에 소현이 소리를 질렀다.
  풍덩!
  '저 개 자식!'
  물속에 빠진 소현이 속으로 은월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물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혈도도 어느 정도 풀린 상태였다.
  은월이 내공으로 혈도를 제압하고 있었기에 풀지 못한 것이지 그의 손에서 떠남과 동시에 혈도를 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현은 완벽하게 혈도를 풀어 그대로 물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헉!'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유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유현은 자신의 앞에서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소현은 아까 혈교 고수들을 학살하던 유현의 모습을 떠올림과 동시에 손에 강기를 불어 넣었다.
  수강이 생성됨과 동시에 유현을 향해 휘둘러졌다.
  턱!
  유현이 손으로 소현의 수강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유현은 소현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물속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압을 받지 않은 유현의 주먹은 무서웠다.
  '커억!'
  소현의 입에서 공기방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소현을 바라본 유현이 싱긋 웃으며 힘이 빠져 떠오르는 그의 뒤를 따라 유유히 수면 위로 올라갔다.
  "크억! 쿨럭! 쿨럭!"
  수면 위로 올라온 소현이 계속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소현을 지나며 유현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지면을 밟으며 일어섰다.
  엎드려 있는 소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현은 기침을 하는 소현에게 한 번 웃어준 다음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린을 바라보았다.
  "언니."
  화린의 부름에 유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어."
  물속에서 나온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상당히 당황한 듯 보이는 화린을 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화린이었다.
  갑작스럽게 물에서 나온 유현을 보며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유현이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몸에 있는 물기를 모조리 말려버렸다.
  그런 유현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은월과 화린.
  물론 소현은 뒤집히는 속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물기를 날려버린 유현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이제 뒤집어진 속을 다 정리한 듯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는 소현을 향해 유현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자신을 경계하는 소현을 보며 말했다.
  "아직 독기는 살아있나보군."
  유현의 말에 분한 표정을 짓는 소현.
  그런 소현을 보며 피식 웃은 유현이 말했다.
  "지금 당장 사도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면 나와 같이 다니지 않을래?"
  "무슨 헛소리야!"
  유현의 말에 소현이 소리쳤다.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일단 넌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두 개나 봤다. 첫 번째, 내가 혈교 잡것들을 처리했다는 것! 두 번재, 내가 도를 봅는 것을 봤다는 것!"
  그 말과 함께 화린과 은월, 소현은 생각난 듯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도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다시 눈을 휘둥그레 뜬 화린이 물었다.
  "그 거대하고 무식한 도는 어디 갔어?"
  "어딘가."
  유현이 나른한 듯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소현이 말했다.
  "사...술?"
  "사술 아니거든?"
  소현의 말에 유현이 대꾸했다.
  소현이 더욱더 자신을 경계하자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혈교인이 아냐. 정확하게 말하면 마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태연하게 말하는 게 이상해!"
  버럭 소리 지르는 소현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난 천마교의 무공을 익혔다."
  그 말에 소현이 멍하니 유현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젠장! 마교 역시 사파랑 적대관계잖아!"
  그렇게 말한 소현이 더욱더 유현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런 소현의 행동은 유현에게 있어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흐음~ 그럼 여기서 나한테 죽을래?"
  태연하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굳어버리는 소현.
  좀 전까지 자신과 같이 다니지 않겠냐고 온화하게(?) 물어보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거부하면 죽이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운을 뿌리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런 유현을 보며 소름이 쫙 돋았다.
  혈교 50명의 무사를 혼자서 처리한 사람.
  게다가 그중 다섯은 검강을 사용하는 화경의 고수들이 아니었는가?
  나머지 역시 모두 검기를 사용하는 절정고수들.
  그런 그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순식간에 처리한 사람을 자신이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크윽."
  유현의 협박에 반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소현을 보고 유현이 섬뜩 웃으며 말했다.
  "나 따라다닐래? 아니면 내 손에 죽을래?"
  "따라... 다닐게."
  소현의 대답에 유현이 만족한 듯 웃었다.
  유현이 소현을 데리고 다닐 생각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소현이 마음에 든 이유도 있지만 혈교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자신은 강하다.
  특히 다수의 싸움에서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내는 것이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드래곤이 유현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혈교와 부딪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현이 그렇게 악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며 마음에 들기까지 했으니 강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혈교와의 일전에서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세력이 필요했다.
  물론 천마교가 있지만 그곳에서는 자신이 죽은 존재.
  나중에는 모르나 현재로서는 천마교의 힘을 사용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거대문파의 도움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마침 소현이 나타났으며 자신의 마음에 들음과 동시에 어느 정도 조건이 맞으니 같이 다닐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소현과 어느 정도 친해지면 나중에 혈교와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현과 같이 다닐 생각을 한 것은 일종의 동지의식(?) 때문이었다.
  소현을 보고 있으니 전생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남자였음에도 여자같이 생긴 얼굴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
  유현은 그 괴로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따진다면 서러웠다고까지 할 수 있는 전생.
  그렇게 소현도 같이 다니는 것이 확정이 되자 유현이 말했다.
  "일단 너무 억울하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히죽 웃으며 능글맞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소현이 소리쳤다.
  "어떻게 안 억울해!"
  "네가 내가 도를 꺼내는 것만 안 봤어도 놔주려고 했다."
  "크악! 그럼 도를 사용하지 말던가!"
  "흐음. 검과 권각,도를 적절하게 사용해줘야 흔적이 잘 안 남거든?"
  "그럼 내 눈 앞에서 도를 보인 이유는 뭐야!"
  "아, 혈교랑 원한 관계에 있거든? 그것을 안 지는 얼마 안 됐어, 그래서 첫 만남인 덕분에 눈이 뒤집어져서 그랬어."
  자신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하는 유현을 보며 소현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 소현의 반응에 킬킬 웃던 유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손."
  유현의 말에 소현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그래, 너."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소현이 물었다.
  "왜?"
  "내놓으라면 내놔!"
  그 말에 찔끔한 소현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소현의 오른손을 잡은 유현이 품에서 팔지 하나를 꺼냈다.
  신비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그 팔찌를 소현의 팔목에 넣었다. 팔찌는 흘러내릴 정도로 구멍이 컸다. 하지만 유현이 손을 놓자마자 팔찌가 스르르 작아지더니 소현의 팔에 딱 맞게 되었다.
  지켜보던 소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것은 소현뿐만이 아닌 화린과 은월도 마찬가지였다.
  소현이 놀란 듯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볼 때 소현을 굳게 만드는 한마디가 있었다.
  "만약에 네가 도망칠 때를 대비한 거다. 나한테서 일정 이상 떨어지면 그 팔찌에서 전류가 흐를 거야. 물론 전류를 참고 간다고 해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추적이 가능하니깐 도망치고 싶으면 한번 도망가 봐. 대신 걸리면 나한테 죽도록 맞는다."
  "..."
  유현의 말에 소현이 침묵했다.
  그렇게 잠시 후,
  "그런 것도 있어? 와~ 신기하다."
  화린이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그렇게 소리친 소현이 팔찌를 벗으려고 했다. 하지만 팔찌는 소현의 팔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는 팔찌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아아, 안 떨어질 걸?"
  그렇게 나른하게말한 유현이 한 가지 해결책을 주었다.
  "혹시 아냐? 현경쯤 되면 풀 수 있을지?"
  그 말에 소현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지금 유현이 소현에게 준 팔찌는 에랴나니스가 만든 금제 팔찌로 드래곤들은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법 아티팩트였다. 특히 헤츨링을 키우는 드래곤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드래곤들 사이에서는 이게 보통 헤츨링 가출 방지를 위해 쓰인다.
  헤츨링들이 신고식처럼 치르는 것이 있으니 가출하다가 걸려서 부모 드래곤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헤츨링도 있었다.
  에이라나 역시 가출하다가 얻어터진 적은 많았다.
  가출을 여러 번 하는 헤츨링들에게 채우는 것이 바로 이 팔찌였던 것이다.
  매일 가출하는 헤츨링 찾으러 다니는 것도 귀찮은 부모들.
  그렇기에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고 또 만약 어디 갈 일이 생긴다면 위치를 추적하게 쉽게 만든 것이 바로 이 팔찌였던 셈이다.
  에이라나도 이것을 찬 경험이 있었다.
  에이라나가 몬스터 잡는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에랴나니스가 자신의 영역 안이지만 그래도 에이라나를 찾는 게 상당히 힘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차던 추억의(?) 팔찌를 소현에게 채운 유현이었다.
  "크윽! 당장 풀어줘!"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싫다."
  "크악! 내가 당신 하인이야! 왜 이딴 걸 달고 난리야! 안 도망가! 안 도망간다고!"
  "아, 거 시끄럽네."
  소현이 바락바락 소리치자 짜증이 난 유현이 기운을 살짝 뿌렸다. 유현의 기운에 소현은 물론이고 화린과 방관하던 은월도 굳었다.
  "도망 안 갈 것 같으면 풀어줄 테니 시끄럽게 이 놀리지 마라."
  유현의 섬뜩한 협박에 반박할 마음이 싹 사라진 소현이었다.
  "흐음. 이들은 분명 혈교인들이 분명하오."
  한 스님이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을 보며 말했다.
  "상당히 패도적인 기운에 당한 듯 한데, 시체에 차가운 냉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빙공을 익힌 자가 분명합니다."
  그 옆에 있는 스님 역시 시체들을 살피며 말했다.
  "아미타불, 혈교인들이 상당한 실력자들이오. 특히 이들 중 다섯 혈교의 오광노괴들이 있었소. 한 명이 처리했다고 하면 분명 그는 현경의 고수일 것이오."
  "북해빙궁의 사람일까요?"
  한 젊은 스님이 늙은 스님에게 물었다.
  젊은 스님의 말에 스님들을 이끄는 듯 보이는 늙은 스님이 말했다.
  "아미타불,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게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또 다시 한 스님이 말했다.
  "저기 있는 다른 시체들은 사파의 사도문의 무사들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도문?"
  사파으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인 사도문의 무사들.
  총 삼십 구 정도의 시체는 모두 사도문의 무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도문과 혈교가 부딪친 것일까요?"
  한 중년 스님의 말에 늙은 스님이 말했다.
  "...그런 것 같소."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기는 늙은 스님.
  "일단 근처 마을로 가보는 게 좋겠소."
  "네."
  그 말과 함께 총 30명 정도의 스님들이 경공술을 이용해 마을 쪽으로 향했다.
  "크윽. 풀어줘."
  "다시 한 번 칭얼거리면 맞는다."
  소현의 말에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자 입 꾹 다무는 소현이 보며 유현이 만두를 하나 집어먹었다.
  대충 일을 처리하고 마을로 들어온, 이제는 넷으로 늘어버린 유현 일행.
  특히 얼굴을 전혀 가리지 않은 은월과 소현, 그리고 가면을 쓴 유현과 두건을 쓴 화린의 이상한 조합 때문에 더욱 눈에 띄게 되었다.
  소현이 눈이 번쩍 뜨일 미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만두를 먹던 유현이 말했다.
  "너 몇 살이냐?"
  "17살."
  소현의 대답에 얼굴을 찌푸린 유현이 말했다.
  "그럼 날 제외하고는 다 17살인가?"
  유현의 말에 화린이 반갑다는 듯 말했다.
  "헤~ 그러네? 난 화린이라고 해, 유화린! 나이는 너와 같은 17살!"
  "아까 말했다시피 은월, 나이는 17살."
  화린과 은월의 소개에 소현이 잠시 주춤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내 이름은 소현, 너희와 같은 17살이야. 잠시 동안 너희와 같이 다닐 것 같다, 강제로."
  끝에 '강제로'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소현이었지만 그것을 무시하는 유현이었다.
  "누가 잠시 동안이라고 했나? 장기간이다."
  그 말에 소현의 얼굴이 굳었다.
  "크윽! 당신 변태지? 왜 멀쩡한 남아를 끌고 다닐 생각을 해!"
  소현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너랑 나랑 같이 다니면 뭐로 보일 것 같냐? 당연히 언니, 동생으로 보인다."
  "크아악!"
  날카로운 지적에 머리를 쥐어뜯는 소현이었다.
  그런 소현을 보며 화린이 유현을 나무랐다.
  "언니, 그만 좀 놀려."
  화린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아니 전에는 몰랐는데, 이거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데?"
  무연, 안영이 왜 자신의 외모를 가지고 놀렸는지 알겠다.
  물론 진담도 많았지만 놀리는 것도 참 많았다.
  그런데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겠다.
  엄청 재미있다.
  유현이 낄낄거리며 말하자 소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런 소현을 바라보며 유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놀리면 별로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소현을 놀리는 것을 멈추고 막 식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흐응?"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전생에 그렇게 죄가 많았나? 나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소림인가?"
  유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한 무리의 승려들이 객점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봉을 쥐고 있는 무승들이었는데 그들을 보며 소현이 긴장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말했다.
  "저런 땡중들은 신경 쓰지 마."
  유현의 말에 소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이 다시 만두를 먹으려고 할 때였다.
  "아미타불."
  승려들이 유현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그런 승려들을 보며 슬쩍 얼굴을 지푸렸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젓가락을 내리며 물었다.
  "하남 승산의 소림사의 무승들이 감숙에는 무슨 일이지?"
  유현의 말에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승려가 말했다.
  "아미타불, 잠시 볼일이 있어 감숙지방에 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승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아미타불, 여시주 일행이 무림인들 같은데, 잠시 물어볼게 있소이다."
  승려의 말에 유현은 대충 질문이 뭔지를 예상했다.
  '흠? 혈교인들의 사체를 발견했나?'
  조금 골치 아파질 거라 생각에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어볼 게 뭐지?"
  반말을 하는 유현의 행동에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중년의 승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유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 이 근처에서 빙기를 사용하는 무림인을 보지 못하셨소?"
  그 말에 유현이 말했다.
  "못 봤는데?"
  "아, 그러셨소? 실례했..."
  유현의 말에 정중하게 인사하고 물러서려던 승려가 멈칫했다. 그리고 화린을 바라본다.
  정확하게는 화린의 옷차림.
  승려의 눈을 쫓은 유현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너 당장 옷 바꿔 입어."
  "엑? 싫어!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옷이란 말이야!"
  "닥치고 바꿔!"
  유현의 눈이 사납게 변하자 찔끔한 화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와 함께 중년의 승려가 말했다.
  "여시주께서는 이 한겨울에 그런 복장을 하고 춥지 않으십니까?"
  "네에? 에에. 그러니깐... 그렇게 춥지는 않은데요?"
  승려의 말에 화린이 어색하게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여시주께서는 방금 전 빙기의 내공을 가진 자를 보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저기 있는 여시주는 빙의 내공을 가진 게 아닙니까?"
  그 말에 유현이 말했다.
  "뭐, 저 녀석이 빙의 내공을 가지고 있긴 하지."
  중년의 승려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 유현의 말에 중년인이 화린을 바라본다.
  스님의 시선에 찔끔하는 화린.
  깊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긴장이 되었다.
  그런 화린을 보며 중년의 스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빙의 내공을 익힌 흔적이 있다. 그리고 한겨울에 저런 차림을 하고 다닐 정도라면 빙의 기운이 상당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는 행동으로 보아 전혀 고수 같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년의 스님이 물었다.
  "여시주, 여시주께선 혹시 아까 전에 혈교인들과 부딪치지 않으셨습니까?"
  "네?"
  갑작스러운 말에 화린이 당황해했다.
  그와 동시에,
  -모른다고 해라.
  유현이 전음을 보내왔다.
  입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무입전음.
  유현의 말에 화린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 적 없는데요?"
  화린의 말에 중년의 승려가 그녀를 쳐다보고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말했다.
  "그렇소? 실례를 했군. 아미타불."
  중년인이 불호를 외치며 무승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유현이 중얼거렸다.
  "흠. 소림사가 냄새를 맡았군. 쳇, 조심해야겠는걸?"
  유현의 말에 소현이 기회라며 따졌다.
  "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저런 것들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따돌릴 수 있어. 오늘은 편안하게 쉬었다가 내일 출발하지 뭐."
  유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난 먼저 씻으련다."
  그렇게 말한 유현이 점소이에게 말해서 목욕물을 시켰다.
  오랜만에 목욕이나 할 생각인 유현이었다.
  촤악!
  나무욕조에 담긴 물이 넘치며 밖으로 쏟아졌다.
  유현이 물이 꽉 차 있는 나무욕조로 들어갔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소림이라."
  유현이 입을 물에 담그며 중얼거렸다.
  객점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기에 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이는 유현뿐이었다.
  유현은 편안하게 누워 살짝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일단 소림이 움직였다는 것은 내가 아까 처리한 그것들이 혈교에서 꽤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기에 개방의 정보통에 걸렸다는 말이다. 그들 역시 아주 뛰어난 고수들. 한 명 한 명이 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어. 그리고 그 중년인은 화경의 고수.'
  아마 그들은 소림사가 자랑하는 백팔나한의 인원들일 것이다.
  백팔나한들이 펼치는 백팔나한진은 무섭다.
  천마교도 백팔나한진 덕분에 고생한 예가 많았다.
  그리고 백팔나한들은 열여덟 조가 되어 십팔나한진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마 근처에 있는 마을에 무승들이 더 있을 것이다.
  상대가 50명 정도였으니 그들을 잡기 위해 가까운 대문파에서 각각 30명 정도씩 고수들을 보냈다고 하면,
  "적어도 100명은 이 근처에 와 있겠군."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100명이라는 숫자의 정파고수들은 달갑지 않은 유현이었다.
  한숨을 푹 쉰 유현이 세수를 하려다 문득 아직도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나 원 참. 무게감이 없으니 쓰고 있는지 안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가면을 벗었다. 그와 동시에 유현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깊은 흑요석을 보는 듯한 흑안에 흑단 같은 흑발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은발에 은안의 유현도 아름다웠지만 역시 흑발에 흑안의 유현도 아름다웠다.
  은발일 때에는 뭔가 성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흑발이 되니 요염한 분위기랄까?
  가면을 근처에 내려놓고 잠수했다.
  잠시 후 다시 얼굴을 탕 위로 내민 유현이 중얼거렸다.
  "하아. 젠장, 빨리 1000살 더 먹어 남자가 되든지 해야지."
  아직 남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현.
  그는 웜금 드래곤이 되자마자 당장 남자로 돌아가 생활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환생한 지 어언 500년.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지낸 지 40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기에 여자의 몸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남자로 꼭 돌아가겠다는 이상한 오기 덕분에 아직 남자에 대한 미련을 벌지ㅣ 못했다.
  처음에는 절규하며 남자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오기였다.
  한숨을 푹 쉰 유현이 머리를 감으려다가 한 기척을 느꼈다.
  바로 화린이었는데 목욕하러 들어오는 듯 욕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유현이 재빨리 은빛 가면을 다시 얼굴에 썼다.
  가면을 쓴 유현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화린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피해 다니는 자신의 꼴이 꽤 우스웠던 것이다.
  가면을 쓴 유현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흐음. 그냥 말해볼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면?
  그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리고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한다면?
  믿기나 할까?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는 유현이었다.
  '어떻게 될까?'
  피식 웃은 유현.
  그와 동시에 욕탕 문이 열리면서 화린이 들어왔다.
  화린은 가자기 유현이 들어가 있는 나무욕조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언니!"
  덥석!
  그와 함께 유현의 어깨를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화린은 초롱초롱한 빛을 뿌리며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얼마 가지 못해 실망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목욕까지 가면 쓰고 하는거야?"
  불만스럽다는 듯 툴툴거리는 화린을 보며 유현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너 내 얼굴 보려고 일부러 그렇게 달려왔냐?"
  유현의 주먹이 제법 매웠는지 화린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끙끙거렸다.
  객점에 여러 번 들렸던 유현 일행이었지만 한 번도 목욕한 적 없는 유현이었다.
  그 이유가 마법 하나면 더러운 것이 처리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서 목욕을 한 것이었다.
  화린은 유현이 목욕을 할 때까지 기다린 듯했다.
  그렇게 자신의 얼굴이 보고 싶을까?
  "쯧, 쓸데없는 데 목숨 걸지 말고 무공 수련이나 열심히 해."
  그 말에 화린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이익! 언니는 몰라! 언니 얼굴이 어떤지 궁금해 미치겠단 말이야! 나 말고 은월도 마찬가지야! 얼마 후면 소현이도 궁금해할 걸?"
  그 말에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얼굴이 그렇게 궁금하냐?"
  유현의 말에 화린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는다. 그리고 가면에 손을 가져간다.
  그런 유현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화린.
  '드디어!'
  한 달이 넘도록 궁금해 했던 유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화린.
  하지만.
  "아. 싫다."
  다시 능청스럽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화린이 휘청거렸다.
  그 말에 화린이 소리쳤다.
  "잇! 치사해!"
  "엇! 너 지금 누구한테 달려드는 거야?"
  열 받은 화린이 당장 유현에게 달려들었고 유현은 재빨리 피해냈다.
  풍덩!
  옷을 입은 채로 화린이 탕에 빠져버렸다.
  "푸하~"
  화린이 물속에서 나왔다.
  그런 화린의 얼굴에 발바닥을 작렬시키는 유현.
  "억!"
  "무슨 짓이냐? 죽고 싶어?"
  다시 물에 빠져버린 화린.
  "후에."
  다시 물 위로 얼굴을 내민 화린이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보는 유현을 보고 찔끔했다.
  덥석!
  화린의 머리를 잡은 유현.
  "좀 맞고 싶지?"
  "어, 언니 미안. 내가 욱 하는 바람에."
  찔끔하며 말하는 화린을 바라보던 유현이 한숨을 푹 쉬며 잡았던 머리를 놔 주며 말했다.
  "들어올 거면 옷은 좀 벗고 들어와."
  "어? 응."
  유현의 말에 화린이 탕 밖으로 나가더니 대충 옷을 유현의 옷 옆에 던져 놓고 탕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화린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유현.
  그런 유현의 눈이 화린의 얼굴로 향했다.
  자신과 쌍둥이같이 똑같은 얼굴.
  하지만 눈초리는 자신이 호랑이의 그것이었다면 화린은 순한 사슴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화린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현이 입까지 물에 담갔다.
  그러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화린의 시선을 느끼며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유현의 물음에 화린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어머니랑 분위기가 비슷해."
  "...? 너희 어머니?"
  "응. 차갑고 냉정하며 한편으로는 따뜻한 면이."
  "... 요 몇 년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군."
  유현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초대 장로들에게도 들었으며, 키라이스트에게도 실컷 들었던 소리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도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유현은 스스로가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유현의 말에 화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거 말이야."
  피식 웃은 유현의 말에 화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보기에는 언니는 따뜻한 사람인데?"
  "헛소리야."
  화린의 말에 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유현을 바라보는 화린.
  잠시 후 화린이 입을 열었다.
  "언니는 언니를 너무 몰라."
  그 말에 유현이 부정하며 대답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야."
  그렇게 말한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
  "다 씻었다."
  갑자기 유현이 일어나자 의아한 표정을 짓던 화린은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뿐이 남지 않은 탕 안에 몸을 쭉 폈다.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대충 털어내며 방으로 들어온 유현이 창밖을 보니 그곳에서 소현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간단한 기본 동작부터 시작해 몇 개의 초식을 사용해 나가고 있었다.
  17살의 나이에 화경 초입에 들어선 천재.
  아마 소현은 30년 정도만 더 있으면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가 될지도 몰랐다. 물론 휘안을 뛰어넘기는 힘들어 보였다.
  휘안의 내공은 어마어마하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내공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리샨 대륙에서 수련을 쌓았기에 내공이 맑았다. 휘안은 현 중원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이라 불릴 만큼 강한 존재였던 것이다.
  유현이 느긋하게 그것을 구경하다가 새로운 인물이 소현에게 다가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기척.
  유현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소현 또래의 소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은월이었다.
  유현이 피식 웃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몸을 움직이고 있던 소현이 제자리에 멈칫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은월을 바라보았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소현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런 소현의 물음에 은월 또한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다."
  그렇게 말한 은월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대로 소현에게 달려들었다.
  은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소현이 깜짝 놀라 은월의 공격을 막았다.
  쾅!
  소현의 장과 은월의 권이 부딪쳤다.
  소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와 함게 조법을 사용했다. 소현은 손으로 펼칠 수 있는 권, 장, 조, 지 이 모든 것에 능통했다. 손이 아주 무섭게 단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걸음걸이로 보아 발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손 전체와 발 전체가 강철만큼 단단하다. 좋은 무기가 될 수 도 있지만 단점도 많았다.
  그것과 상관없이 소현의 조법을 피한 은월이 이번에는 각법을 사용했다.
  소현도 각법으로 대응했다.
  쾅!
  내공이 실려 있는 듯 큰 소리가 났다.
  보통 말려야 되겠지만 유현은 그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되는 치열한 공방.
  잠시 후 둘은 서로 거리를 벌렸다.
  한참 동안 서로를 경계하던 두 사람.
  잠시 후 먼저 싸움을 걸었던 은월이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자세를 풀었다.
  은월을 노려보며 소현 역시 자세를 풀었다.
  상대가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문제를 일으킬 생각도 없었다. 그 괴물 같은 여자가 이것 때문에 뭐라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잠시 후 지그시 소현을 바라보던 은월이 입을 열었다.
  "이상해."
  "뭐가 말이냐?"
  은월의 말에 소현이 날카롭게 물었다.
  "너를 보고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건 화린도 마찬가지고. 그 이유가 뭘까?"
  그 말에 소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냐?"
  "흐음. 이상해, 이상해."
  "젠장! 갑자기 공격해 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야!"
  버럭 소리치는 소현을 보며 은월이 말했다.
  "...화가 났다면 미안하군."
  은월의 사과에 소현은 뭐라 하지도 못하고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
  잠시 후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현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유현은 자신과 시선이 마주친 소현을 향해 싱긋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그런 유현의 행동에 소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혀져 객점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유현은 소현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늦은 시각.
  소현, 은월, 화린이 모두 잠든 시간에 유현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점소이 몇몇이 계속 술을 마시는 유현 때문에 자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현이 시킨 술들이 하나같이 비싼 술들이었다. 그렇기에 늦은 시간까지 유현이 술 마시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무림인이 아닌가?
  그렇게 술을 마시던 유현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유현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현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은아와 흑아를 한 번 쓰다듬을 뿐이었다.
  잠시 후 나른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객점 밖으로 나온 유현이 주위를 스윽 둘러본다.
  그와 함께 싱긋 웃으며 지풍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픽픽픽픽픽!
  갑작스러운 유현의 공격에 숨어 있던 자들이 당황했다.
  그와 함께 3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이들이 유현 앞에 나타났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비웃으며 말했다.
  "요즘 중들은 몰래 숨어 남을 감시하나 보지?"
  유현의 도발.
  하지만 상대들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 한 노승이 앞으로 나오더니 유현에게 불호를 외치며 말했다.
  "아미타불. 여시주 기분이 나쁘셨다면 미안하게 됐소이다. 하지만 워낙 중요한 문제이다 보니 실례를 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오."
  그런 노승을 자세히 바라보던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소림사에서 손에 꼽히는 현노대사가 여기까지 왜 행차했지?"
  좀 비꼬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것보다 현노대사가 더 의아해 한 것은,
  "여시주께서는 저를 아시는지요?"
  "어."
  "으음. 제 기억에는 여시주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약간 혼란스럽다는 듯 말하는 현노대사.
  현노대사는 소림에서도 손에 꼽히게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현노대사는 속세와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소림사 안에 틀어박혀 불경만 읽고 무공만 수련했던 것이다.
  그런 현노대사는 외부인을 만날 일이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만난 인물을 거의 기억하는 편이었다. 그것도 저렇게 가면을 쓰고 고수에다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기억이 없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현노대사를 보며 유현이 입을 열었다.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 안 날 걸? 뭐, 머리 그렇게 굴리지 말고 용건만 말해! 용건만!"
  유현의 무례한 말투에 주위에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현노대사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불호를 외칠 뿐.
  잠시 불호를 외치던 현노대사가 물었다.
  "아미타불, 여시주께 궁금한 게 있어 이렇게 밤에 실례를 저질렀소."
  "궁금한 거?"
  "그렇소, 아주 중요한 일이오. 여시주의 일행 중에 빙의 내공을 가진 소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소."
  "흠. 화린을 말하는 건가? 화린에게 용건이 있나?"
  유현의 말에 현노대사가 다시 불호를 외치며 말했다.
  "아미타불. 사실 아까 전에 마을 밖에서 한 무리의 시체를 발견했소."
  그 말에 유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그것을 알지 못한 현노대사가 계속 입을 열었다.
  "그들은 혈교의 인물로 아주 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소. 그런 그들이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소. 빙의 내공을 사용하는 자에게 말이오."
  "그래서?"
  "아미타불, 그렇기에 주위에 빙의 내공을 가진 사람이 없나 하고 찾던 차에 그 화린이라는 소저를 찾았소. 근처를 뒤져보니 빙의 내공을 가진 이는 그 소저밖에 없는 듯했소이다."
  "이미 멀리 도망갔을 수도 있지 않나?"
  유현의 말에 현노대사가 다시 말했다.
  "아미타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 이 마을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되오."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리는 유현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현노대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 혈교인들의 시체 중에서는 혈교의 유명한 노괴들인 오광노괴들도 있었소. 상당한 마인들로 모두가 화경의 경지에 접어든 노괴들이지요. 그런 노괴들을 혼자서 처리했으니 지쳐 마을 안에서 쉬고 있을 거라 생각되오."
  그 말에 유현이 입을 열었다.
  "화린은 그렇게 무공이 고강하지 못해."
  그 말에 현노대사가 말했다.
  "그것은 모르는 일이오."
  유현이 삐딱하게 서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지금은 세상이 어지럽소. 언제 마교나 혈교가 발호할지 모르는 상황. 그렇기에 한 사람의 실력자가 더욱 급하오. 그런 상태에서 현경의 경지로 추정되는 정파의 영웅이 나왔으니 무림맹으로 모셔가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소?"
  그 말에 유현이 웃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유현의 웃음에 모두가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화린이 정파인? 미안하지만 화린은 정파 위선자들이 아니야, 중도를 걷는 인물이지. 우리 일행에는 중도의 인물 둘! 마도의 인물 하나! 사파의 인물 한 명이 있지. 그런 우리 일행이 정파의 본거지인 무림맹에 간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 말에 현노대사의 얼굴이 굳었다. 주위의 승려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현노대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시주께서는... 마도의 인물이시오?"
  "아마도?"
  그 말에 현노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교의?"
  "그럴 걸? 하지만 천마교에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교주와 교주의 직속호위 부대 천마대 정도?"
  그 말에 주위에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을 종합해보면 상대는 천마교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아, 그리고. 혈교무사들을 모두 세상 하직시킨 건 나야."
  그 대답을 끝으로 유현이 싱긋 웃으며 자신을 향해 기세를 피어 올리는 소림사 무승들을 향해 마주 기세를 피어 올렸다. 그와 함께 무시무시한 냉기가 유현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유현의 기운을 느끼며 주위 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유현이 히죽 웃는다.
  "자~ 난 쓸데없이 피를 볼 생각이 없으니 이만 물러나 주실까?"
  "..."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피를 볼 생각인가?"
  그 말에 현노대사가 확인 차 되물었다.
  "천마교의 인물이 맞으시오?"
  그 말에 유현이 말했다.
  "천마교의 무공을 익히기는 했지."
  그 말에 현노대사가 물었다.
  "하지만, 그대의 내공은."
  "흐음. 천마교의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내공에 마기가 섞여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 정말 마도인이 맞으시오?"
  "그래."
  그렇게 말한 유현이 은아를 뽑았다.
  그와 함께.
  휘리리릭!
  콰당!
  "아얏!"
  "..."
  갑자기 객점 2층에서 세 인영이 뛰어내리더니 두 명은 안전하게 착지했으며 한 명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잠시 후.
  "넌 그냥 잠이나 잘 것이지 왜 깼냐?"
  유현이 부스스한 머리의 화린을 보며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유현의 말에 방금 엉덩방아를 찧은 화린이 말했다.
  "아무리 내가 둔하다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태평하게 잠만 잘 수는 없잖아?"
  "하아. 너 진..."
  한숨을 쉬던 유현이 굳어버렸다.
  "이 바보!"
  버럭 소리친 유현이 화린에게 다가가 재빨리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유현은 품에서 얼른 가면을 하나 꺼내 화린에게 씌워주었다. 하지만 이미 화린의 얼굴은 상당수 사람들이 본 상태였다.
  넘어져 있어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유현에게 따지다가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그 얼굴을 본 이는 은월, 소현, 현노대사, 유현.
  물론 은월과 소현은 별로 문제될 게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노대사는 달랐다.
  현노대사는 화린의 얼굴. 즉 유현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현노대사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여시주."
  현노대사가 굳은 목소리로 화린을 불렀다.
  "네?"
  현노대사의 부름에 당황하는 화린.
  그런 화린을 보며 현노대사가 말했다.
  "시주의 그 얼굴."
  하지만 현노대사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유현 때문에.
  "헉!"
  갑작스럽게 유현이 달려들자 깜짝 놀라는 현노대사.
  "현노대사, 보면 안 될 걸 봐버렸어."
  그 말과 함께 현노대사를 향해 은아를 내지르는 유현.
  챙!
  현노대사는 봉으로 은아를 막아버렸다.
  그와 함께 소림의 무승들이 유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은월에 의해 저지되었다.
  은월의 무시무시한 기운에 역시 움찔하는 이들.
  "십팔나한진을 펼쳐라!"
  조금 전에 제일 처음 유현 일행과 만났던 중년인이 소리쳤다.
  그 말과 함께 26명의 무승들이 진을 짜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유현은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을 소현은 굳은 표정을, 은월과 화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현이 말했다.
  "백팔나한진이 아닌 십팔나한진으로 될까?"
  말과 동시에 은아의 검신에서 흘러나오는 은빛 검강.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은빛 검강이 그대로 현노대사를 향해 내질러졌다.
  무시무시한 기운.
  하지만 현노대사 또한 소림사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다. 그 또한 현경의 경지에 있었던 것이다.
  쾅!
  유현의 은빛 냉기의 강기과 현노대사의 봉에서 일어난 금빛 강기가 충돌했다.
  "크윽! 여시주께서는 저 여시주의 정체를 아시고?"
  현노대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 현노대사를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알지."
  그와 함께 유현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마을에 때 아닌 폭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현과 현노대사의 공방을 보며 모두가 경악했다.
  현노대사는 현경의 고수로 소림에서 최고수들 중 한 사람이었다.
  현노대사의 무공 실력은 삼마이제삼왕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현노대사를 어린애 다루듯 밀어붙이는 저 여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현노대사는 지금 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방금 본 화린의 얼굴, 그녀의 얼굴은 바로 몇 년 전 소림사에 들렀던 한 사람, 바로 천마교의 소교주 하유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었다고 알려진 천마교의 소교주 하유현.
  그런 유현과 똑같이 생긴 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도 여인으로.
  하유현이 죽은 이유는 그의 태생이 고아라는 것에 있었다. 그와 함께 그에 불만을 가진 장로들이 천마교의 소교주를 죽였던 것이다.
  현노대사는 화린에게 하유현에 대해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신경을 다른 데 썼다가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쾅!
  유현의 검을 막아낸 현노대사는 신음성을 흘리며 유현의 공격을 피해 다닐 뿐이었다.
  "젠장!"
  소현이 숨을 헉헉거렸다.
  현노대사와 유현이 충돌함과 동시에 십팔나한진으 ㄹ펼친 나한들이 자신들에게 달려들었다.
  백팔나한들은 중원무림에서 그 이름을 무섭게 떨치는 무력단체였다.
  그들이 펼치는 백팔나한진들은 천마교에서도 조심할 만큼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십팔나한진 또한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화경 초입인 소현이 대적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현뿐만 아니라 은월도 마찬가지였다. 화린은 그저 두 명의 무승을 상대하는 것에도 벅차 보였다.
  얼마 후면 뻗을 것처럼 보이는 세 사람을 힐끔 쳐다본 유현이 현노대사를 바라보았다. 현노대사는 백보신권을 사용하며 유현과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홀드."
  멈칫!
  유현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림과 동시에 현노대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짐나 잠시 후 그것을 내공으로 풀어버린 현노대사가 소리쳤다.
  "무슨 사술이오!"
  "사술 따위가 아니다만?"
  그렇게 말한 유현이 현노대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막을 준비를 하는 현노대사.
  "그리스."
  "헉!"
  서걱!
  갑자기 자신의 발밑이 미끄러워짐을 느낀 현노대사가 휘청거렸다. 그와 함게 유현의 검이 현노대사의 목을 베어버렸다.
  툭.
  현노대사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그것을 보고 모든 무승이 굳어버렸다.
  소림의 기둥 중 한 사람인 현노대사가 저렇게 쉽게 죽어버리다니.
  처음에는 밀리는 듯 보였으나 잠시 후 호각을 이루는 것을 보고 새파란 어린 여자에게 현노대사가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과는 현노대사의 패배와 동시에 죽음이었다.
  유현이 히죽 웃으며 탄지강을 쐈다.
  그 탄지강이 노리는 것은 화린을 위협하는 무승들!
  퍽! 퍽!
  두 번의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져버린 무승 두 명이 쓰러졌다.
  털썩!
  잠시 후 나한들을 지휘하던 중년의 승려가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감히."
  "뭐가 감히라는 거지? 잘못하면 내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나보고 그에게 패하란 말인가?"
  유현이 그를 보며 비웃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중년인이 고함을 질렀다.
  "나한들은 당장 저 계집을 잡아들여라!"
  그와 함께 분노한 나한들이 유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십육 명으로 펼치는 나한진을 맞서면서도 유현을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이 흑아를 뽑아들었다.
  이검류.
  중원무림에서 이검류를 사용하는 무사는 거의 없다. 이검류로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식을 만들면 되겠지만 그것은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오른팔, 왼팔을 모두 잘 다룰 수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검류나 이도류의 초식을 만들다 보면 간단한 환검도 두 개의 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너무 난해하게 변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검류는 별 실용성이 없었다.
  하지만 천마도검법에 나오는 이검류는 달랐다.
  틀이 거의 잡혀져 있지 않은 이검류가 완벽하게 틀이 잡혀져 있는 것이었다.
  유현이 검은색 검신을 가진 마기를 풍기는 흑아를 뽑음과 동시에 소림사 무승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쾅!
  유현이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탄검강, 은빛 검강이 무승들을 덮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현의 검강을 나한들은 침착하게 피했다. 그와 함께 중년인도 나한들 무리에 합류했다.
  중년인의 무공은 화경급의 고수.
  하지만 그가 맞서는 유현은 인간이 아니었다.
  현경의 경지에 이른 드래곤!
  마법을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유현은 인간이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쾅!
  유현이 다시 날린 탄검강이 이번에는 몇몇의 나한들에게 적중했다.
  그와 함께 튕겨져 나가는 나한들!
  하지만 그와 함께 여러 명의 나한들의 봉이 유현을 향해 휘둘러졌다.
  "베리어!"
  쾅! 쾅! 쾅! 쾅!
  내공이 실린 듯한 공격.
  베리어와 나한들의 기가 서려 있는 봉들이 격돌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마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리어라 부서지지 않았다.
  나한들은 유현의 베리어를 보며 당황했다.
  검막도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생겨난 방어막.
  검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강도를 가진 방어막에 튕겨져 나가는 나한들이었다.
  하지만 방어했다고 해서 파회된다면 천마교인들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나한진이 아니었다.
  다시 들어오는 공격이 유현을 위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현이 중얼거렸다.
  "프리징 아이스 소드."
  7서클 마법인 프리징 아이스 소드가 걸리는 흑아와 은아.
  그와 함께 지금까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어마어마한 한기를 뿌리기 시작하는 흑아와 은아였다.
  마법과 검강의 조화.
  마검사의 상징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휘몰아치는 냉기에 소림사 인물들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혈천빙검무!"
  그와 함께 빙의 기운이 담긴 혈천검무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몰아치는 냉기!
  유현의 칼춤에 맞은 한 나한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려져 갔다.
  그와 함께 튄 피는 그대로 얼음알갱이가 되어버렸다.
  그 나한의 죽음을 시작으로 하나의 지옥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으나 그 피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얼음이 되어 굳어버렸다.
  천마가 만든 천마도검법의 무서운 점을 하나 더 뽑으라면 그것은 마법과 함께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같이 사용하는 마법의 속성에 따라 천마도검법의 속성도 변했다.
  만약 유현이 화염계 마법과 함께 천마도검법을 사용했었다면 피가 튐과 동시에 그 피가 그대로 타버려 없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빙계마법처럼 시체가 얼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체가 완전히 불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지옥도를 펼치는 동안 붉은빛 얼음알갱이들이 수도 없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현의 검에 당한 자들은 모두 얼어버렸다.
  화린은 그 잔인한 장면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정작 그 지옥도를 만드는 이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마지막에 결국 중년인 승려만 남았다.
  그 중년인은 공포에 질려 있었는데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유현의 검에 목이 베여 죽어버렸다.
    남궁세가의 방문객
  "아버지."
  한 아름다운 여인이 검은 무복을 입은 자에게 말했다.
  "후. 월린아, 화린이가 가출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행방을 찾을 수 없구나."
  그의 이름은 바로 유강월.
  현경의 경지에 든 은거고수였다.
  유강월의 말에 유월린이 말했다.
  "어머니가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예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지만 어딘가 걱정이 서린 월린의 목소리에 한숨을 푹 쉰 유강월이 입을 열었다.
  "제발 아무 탈 없어야 할 텐데."
  유강월의 말에 월린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화린이 무공의 경지는 낮아도 내공은 저보다 훨씬 많잖아요?"
  "후. 아무 일 없다면 다행이지. 하지만 화린이는..."
  근심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월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애는 왜 가출 같은 걸 해서 속을 썩이는 거야?'
  한숨을 푹 쉬는 월린이었다.
  소현과 은월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화린도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고 유현 옆에서 조용히 식사를 했다. 노숙을 하고 있는 것 치고는 상당히 화려한 식단이었다. 아마 유현이 요리를 못했다면 말린 육포를 씹고 있을지 모를 일행이었다.
  소현이 말했다.
  "소림 나한들을 29명이나 죽이고 현노대사까지 죽였어, 무림이 발칵 뒤집힐 거야."
  소현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정파 잡것들이 수십, 수백이 몰려오든 상관없어. 남궁휘안만 아니면 모두가 어렵지 않게 처리 가능하니깐."
  유현의 말에 소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휘안이라면, 안휘 남궁세가의 남궁휘안?"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휘안이 사는 곳인 남궁세가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 말에 소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당신은 마도인이 아니었나?"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아."
  유현의 말에 소현이 혼란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정파의 기둥인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그와는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야. 남궁휘안이 몇 년간 행방불명 됐었지? 그 시기 동안 녀석과 같이 지냈다."
  그 말에 소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3년 동안? 흠.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행방불명되었던 남궁휘안이 돌아왔다는 말이 있었군. 그럼 혹시 그와 같이 있는 두 사람에 대해서도 아나?"
  "응?"
  "한 명은 백금발의 색목인이고, 한 명은 짙은 남색 머리카락을 가진 중원인처럼 보이는 인물이라고 하더군."
  "흐음. 키라이스트와 안영을 말하는 건가?"
  그 말에 소현이 물었다.
  "알고 있어?"
  "잘 알지. 안영은 머리가 엄청 좋아, 참모 정도? 그리고 키라이스트는."
  유현이 키라이스트를 생각했다.
  키라이스트는 자신에게 있어,
  "흐음, 그냥 친한 동생이다."
  만약 키라이스트가 앞에 있었다면 빌어먹을 놈이라고 말했을 유현이었다.
  유현의 말에 소현이 물었다.
  "남궁휘안의 무공실력은 어느 정도지? 보아하니 용봉지회의 인물들을 추격하는 혈교인들을 혼자서 처리했다고 하던데?"
  그 말에 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뭐, 알려진다고 해서 문제 있는 것도 아니지, 그 녀석의 무공실력, 순수한 무공으로 본다면 나와 호각이지."
  그 말에 소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의아한 듯 물었다.
  "순수한?"
  "그래, 예를 들어 내가 사용하는 마법들은 녀석도 사용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마법들에 비하면 위력이 다소 떨어져. 그리고 내공량도 내가 그 녀석보다는 두 배나 많지."
  "당신, 정말 괴물이군."
  유현의 말에 소현이 질렸다는 듯 말했다.
  현경으로 추측되는 인물의 내공량의 두 배라니?
  그게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소현이 모르는 게 있었으니, 바로 휘안의 내공량은 보통의 현경이 가지고 있는 내공량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것을 안다면 까무러칠지도.
  잠시 생각하던 소현이 말했다.
  "흠. 그럼 삼마이제삼왕을 기준으로 해서는 어느 정도지?"
  소현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중 세 명 정도가 달려들어야 무공으로는 휘안 녀석과 호각을 이룰 걸? 마법을 사용한다면 네 명으로도 힘들지도?"
  그 말에 소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삼마이제삼왕 중 넷이 달려들어야 간신히 이길 수 있다고?"
  "그래."
  "거짓말!"
  소현이 소리쳤다.
  삼마이제삼왕이 어떤 사람들 중인데?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인물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 중 넷이 달려들어야 간신히 이길 수 있다?
  그럼 그는 완전 천하제일인이 아닌가?
  아니, 그것보다 그렇다면 그런 그보다 훨씬 강하다는 유현은 뭐란 말인가?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못 믿기면 가서 확인해봐."
  유현의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저 말이 사실이라면 혼자서 중원 무림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물이 바로 남궁휘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그보다 더한 괴물이라는 유현도 말이다.
  "부인, 좀 알아낸 게 있소?"
  유강월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월화에게 물었다. 하지만 월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렇소?"
  월화의 말에 유강월의 얼굴에 드리운 걱정이 더해진다. 월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화린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소."
  "그래야 되겠군요."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이가 있었으니,
  "아버지, 어머니."
  바로 월린이었다.
  월린이 자신들을 부르자 의아한 표정을 지은 부부가 눈을 크게 떴다. 월린이 자신의 검인 한빙을 허리에 차고 외출복을 입고 간단한 짐을 챙겨 자신들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화린은 제가 찾겠어요, 두 분은 바깥세상에 나가시는 것을 꺼려하시잖아요?"
  월린의 말에 유강월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월린아, 넌."
  "전 화린이처럼 어린애가 아니에요, 아버지."
  월린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는 유강월.
  월화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그것보다 월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도 27년 산속에서 살았어요. 저도 한번 세상구경을 하고 싶어요."
  월린의 말에 유강월과 월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바깥세상이 싫어 산속으로 들어왔다고 하나 자신들의 딸들은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참 호기심 많을 때였다. 화린과 월린 모두 말이다.
  유강월이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하지만 석 달이다. 석 달 안에 찾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서겠다."
  유강월의 말에 월린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말한 월린이 경공술을 이용했다. 짐을 챙겨 나왔던 이유가 곧바로 출발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화린과 똑같은 옷을 입은 월린.
  누가 자매 아니랄까 봐 서로가 똑같은 옷을 입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월린을 바라보던 월화가 입을 열었다.
  "정말 월린과 화린은 아주 반대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죠, 여보?"
  그 말에 유강월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오."
  대답하는 유강월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런 유강월을 잠시 바라보던 월화가 잠시 후 침울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정말 버려야 했을까요?"
  그 말에 유강월이 슬픈 얼굴로 말했다.
  "후. 부인,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하지만 그런 유강월의 말에도 월화는 멈추지 않았다.
  "꼭, 꼭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요? 숲 속으로 데려왔었다면! 지금쯤 월린과 화린에게 좋은 오라버니가 되어줬을 거예요."
  울먹이며 말하는 월화를 보며 강월이 살며시 안아주었다.
  자신이라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자신의 핏줄을 버렸는데.
  지금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강월이었다.
  만약 아이가 살아 있다면... 정말 빌고 싶을 정도로 아직도 미안했다.
  '그놈의 운명이란 것이 뭐기에.'
  강월이 속으로 운명을 욕했다.
  중원 무림이 발칵 뒤집혔다.
  혈교 정예 무사 50명 사망!
  공동파 정예 무사 50명 사망!
  소림사 백팔나한들 중 29명 사망!
  그리고 혈교에서는 화경의 고수들인 오광노괴를 잃었으며 종남파 역시 하나의 화경의 고수를 잃었다. 그리고 소림사에서는 백팔나한들 중 열 명의 화경 고수인 해각승려와 소림사의 기둥 중 한 사람인 현노대사를 잃었다. 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타격이었다.
  현노대사는 현경의 고수다. 그런 정파인물이 한 명 죽었다는 것은 정파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었다. 화경의 고수들이라면 어느 정도 타격은 있겠으나 발칵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금도 혈안이 되어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려 했지만, 그 문제를 일으킨 인물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을 본 이들도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사파의 사황성과 마도의 천마신교가 원흉으로 가장 크게 떠오르고 있었는데, 천마교와 사황성에서는 정파 쓰레기들과 혈교 미친 것들이 자신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심지어 빙공의 흔적이 발견되어 북해빙궁의 소행이 아니냐는 말도 나돌고 있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른 장본인인 유현은 태연할 뿐이었다.
  한 인물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검에서 은은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이의 이름은 남궁휘안.
  남궁세가의 소가주이며 현 무림에서 하유현을 제외한 최강자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것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휘안의 근처에서 유한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한이 이 집에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밥만 축내고 있었다. 물론 3년 만에 돌아온 소가주의 손님이고 소가주와 아주 친해보였기에 그렇게 말하는 이는 없지만 겉이 그렇다는 것이지 속은 잘 몰랐다.
  안영은 서류 처리 같은 것을 도와줬기에 모두가 환영하는 얼굴이었지만, 유한은 영.
  그리고 유한은 자신의 나이를 20살이라고 속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유한은 휘안의 동생들과 친해져갔다.
  휘안을 구경하던 유한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장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장신의 청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남궁성휘였다.
  휘안과 휘연이 어머니를 닮았다면 성휘는 아버지를 닮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 매우 남자답게 생겼다. 휘안은 엄청난 동안이기(환골탈태를 했기 때문)에 성휘와 동갑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성휘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휘안이 은은하게 흘리던 기세를 거두었다. 유한 또한 멀뚱멀뚱 성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형, 여기 있었어?"
  성휘가 휘안에게 다가갔다. 그런 성휘를 보며 휘안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휘안의 물음에 성휘가 말했다.
  "며칠 후면 형의 귀환 잔치가 열리잖아?"
  그 말에 휘안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 말라니깐."
  그런 휘안을 보며 성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돌아왔는데 흐지부지하게 끝낼 수는 없잖아?"
  "그럼 하려면 돌아왔을 때 바로 하든가? 한 달이나 지났는데 무슨 지금에 와서 잔치를 한다고."
  휘안의 말에 유한이 끼어들었다.
  "뭐,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좋게 생각하자고."
  유한의 말에 휘안이 말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흐음. 형, 아무리 봐도 누나 닮아가는 것 같아."
  유한의 말에 휘안이 히죽 웃었다.
  "그래? 흐음. 에이라나 닮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유한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중원 무림에 남아나는 게 있을까?"
  "없을 것 같군."
  유현이 없는 틈을 타서 신나게 뒷담을 까는 휘안과 유한.
  아마 지금 유현은 의아해 하며 귀를 후비고 있을 것이다.
  "남궁세가 소가주 귀환 잔치?"
  흑발의 남자답게 잘생긴 사내가 고개를 갸웃한다.
  "휘안이 돌아온 지는 벌써 한 달이 넘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그의 앞에 시립해 있던 복면인이 말했다.
  "정파인들은 괜히 성대하게 치른다고들 하면서 이런 것에 엄청 공을 들이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휘안이와는 상당히 친했었지. 그 녀석은 내가 처음 사귄 정파인이었어,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지."
  멍하니 중얼거리는 남자.
  그런 남자를 보며 그의 앞에 시립해 있는 복면인은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후후후. 유현이와도 아주 친했던 녀석이지."
  그렇게 말하던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언뜻 슬픔도 보이는가 싶더니 남자의 슬픔은 잠시 후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무연에게서 폭사되는 무시무시한 살기와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
  앞에 부복해 있던 복면인이 움찔했다. 그가 아무리 소마대의 대장이라고 하나 이제는 현경의 경지에 오른 그의 마기를 태연하게 버텨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뿌리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출 준비를 해라."
  "예?"
  "오랜만에 휘안이나 만나러 갈 생각이다."
  "조, 존명!"
  남자의 말에 고개를 숙인 복면인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무연이 혼자 남은 공간에서 뇌까렸다.
  "3년 동안 많은 게 변했어. 그 녀석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휘안을 생각한 남자, 현 천마교의 소교주인 무연이 피식 웃었다.
  외출 준비를 끝낸 무연이 안휘성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신강과 안휘성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하지만 무연은 현경의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경공술을 사용한다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무연이 그렇게 외출 준비를 하고 막 소마전을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소교주, 교주께서 돌아오셨다고 하네."
  어디서 나타났는지 무연의 뒤에서 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에 있는 이는 한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무연은 그런 소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살혈 장로님이시군요."
  천마교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고 알려진 살혈.
  오대장로들 중 한 사람으로서 유현을 처치하는 일에 협력한 살가인 장로의 부재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장로 직위를 맡았는데, 어린 손녀가 다 자랄 때까지 임시장로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이였다.
  살혈 장로는 교주도 하지 못한 반로환동을 한 인물이었는데 바로 우연치 않게 먹게 된 동삼 때문이었다.
  15년 전 그것을 먹은 뒤로 저렇게 어린애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는데, 살혈은 이 모습보다는 차라리 노인의 모습이 낫다며 투덜거릴 때가 많았다.
  그는 특히 유현을 아끼던 인물로 역시 혈사만큼이나 잘 따르던 이가 바로 살혈이었다.
  그런 살혈을 보자 다시 유현 생각이 난 무연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고요?"
  "그렇다네."
  "어디에 계시죠?"
  "천마전에 계신다네. 그런데 어디 나갈 생각인가?"
  "...3년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친우를 좀 만날까 하구요."
  그 말에 살혈이 말했다.
  "흐음. 교주께 인사는 하고 가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무연이 살혈장로와 함께 천마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교주님, 소교주님과 살혈장로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시비의 말에 혈사가 말했다.
  "무연아, 오랜만이군. 살혈 자네도 오랜만이야."
  태상에 앉아 있는 혈사의 말에 무연이 말했다.
  "...안색이 좋아지셨습니다?"
  그 말에 혈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그럴 일이 있다."
  그렇게 말한 혈사가 잠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3년 만에 이룩한 현경의 경지.
  유현을 죽인 장로들에게 복수한다고 혹독한 수련을 해서 얻은 결과였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던 혈사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과연 이 사실을 아들에게 말해야 할까?
  그렇지만 잠시 후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말한다 해도 믿을 만하고 침착한 이에게 말해야지, 자신의 아들에게 말했다가는 당장 중원으로 뛰쳐나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혈사가 무연의 차림을 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갈 생각이냐?"
  "안휘성에 친구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만나볼 생각입니다."
  "흐음. 안휘성이라."
  슬쩍 얼굴을 찌푸린 혈사가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볼일이 끝난다면 바로 돌아오거라."
  "네."
  혈사의 조금은 강압적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혈교 때문이라고 생각한 무연은 그냥 넘어갔다.
  무연이 나가는 것을 본 혈사가 살혈을 불렀다.
  "흐음. 역시 그 동삼은 자네가 먹지 말고 내가 먹어야 했어. 나도 젊어지고 싶어."
  혈사의 장난스러운 말에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살혈이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나를 놀리시는 겁니까? 교주?"
  "왜? 어린아이로 변하면서 외모가 귀여워져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이고, 수명도 늘어나지 않았는가?"
  그 말에 살혈이 손사래를 쳤다.
  "계집들에게 장난감 취급받는 것은 사양하고 싶소, 그리고 수명이 백년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겨우 10~20년 늘어난 걸 가지고 뭐 하겠소?"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살혈을 보고 껄껄 웃는 혈사였다.
  그런 혈사를 보며 살혈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렇게 유쾌하게 웃는 모습의 교주는... 3년 전 유현의 죽음 이후로 처음이었다.
  한참을 유쾌하게 웃던 혈사가 웃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절대자의 눈으로 말했다.
  "살혈."
  "말씀하시오, 교주."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살혈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런 살혈을 보며 혈사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그 말에 살혈이 자신의 가슴을 쳐 보이며 말했다.
  "교주께서 천마교 내에서 날 못 믿는다면 누굴 믿겠소?"
  그 말에 혈사가 빙긋 웃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살혈. 그는 혈사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살혈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 있소이까?"
  그 말에 혈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주 큰 일이 있었지, 그것도 아주 기쁜 일."
  "흐음. 아주 궁금하구려. 3년 동안 우울해 하시던 교주께서 그렇게 유쾌하게 웃다니."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살혈이 말했다.
  "혹 유현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했소?"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진 살혈은 다음에 들린 혈사의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호~ 그건 어떻게 알았지?"
  "..."
  살혈이 침묵했다.
  "정말 유현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 말에 혈사가 빙긋 웃으며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정말이라네."
  그렇게 말한 혈사가 품에서 야광주 하나를 꺼냈다.
  바로 통신구슬이었다.
  "흠. 유현과 연락할 테니 기다려 보게."
  그렇게 말한 혈사가 야광주에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야광주가 더 밝은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우웅.
  진동하는 야광주를 보며 살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혈사 아저씨?
  작은 크기의 영상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 영상에서 말이 나오자 살혈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건 바로 유현이었던 것이다.
  우웅.
  "으응?"
  유현은 품속에서 진동하는 통신구슬을 의아한 표정으로 꺼냈다.
  밝은 빛을 뿌리고 있는 통신구슬.
  혈사가 연락했다는 증거였다.
  갑작스럽게 유현이 품속에서 야광주를 꺼내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야광주가 보통의 야광주보다 더 밝은 빛을 띠자 모두가 놀랐다.
  잠시 의아해 하던 유현이 말했다.
  "잠깐만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한 유현이 몸을 날렸다.
  갑작스럽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유현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세 사람은 유현의 말대로 휴식을 취했다.
  일행과 꽤 거리를 벌린 유현이 자신의 통신구슬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가면을 벗었다.
  "혈사 아저씨?"
  그리고 의아한 듯 통신구슬을 보며 말했다.
  "유, 유현?"
  살혈이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엑! 살혈 아저씨?
  살혈의 외침에 유현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후후. 이리 가까이 와보게, 살혈장로."
  그 말에 살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혈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 살혈을 보며 유현이 못마땅한이 약간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혈사 아저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유현의 말에 혈사가 빙긋 웃었다.
  "너도 알겠지만 살혈은 믿을 만한 사람이지 않느냐?"
  그 말에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비밀은 지킬 테니 걱정마라."
  살혈이 말했다.
  그 말에 한숨을 푹 쉰 유현이 이전과는 다르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그런 유현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 살혈.
  "그래."
  이전에는 자신에게 빙긋 웃어주곤 했는데 이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대하니 좀 어색했다. 하긴 유현은 천마교의 오대 장로 집안에 원한이 깊을 것이었다.
  욕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랄까?
  쓴웃음을 짓던 살혈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교주, 이런 건 어디서 나셨소?"
  "흐음. 유현이가 줬다네. 3년 만에 여자가 되어 돌아오질 않나, 참 어이가 없었다네."
  "여자...?"
  살혈이 다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입 좀 다물어요!
  유현이 버럭 소리쳤지만 혈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흐음. 무연이 유현에게 음양전환공을 익혀야 된다고 그토록 주장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겠군."
  -천마교 쓸어버립니다!
  유현이 으르렁거리자 혈사가 말했다.
  "미안하다, 화 풀어라."
  혈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유현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도저히 풀 생각을 안 하고 있었지만, 혈사가 살혈에게 유현에게 일어난 일ㄹ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환생이라... 게다가 다른 세상이라."
  놀랍다는 듯 중얼거리는 살혈을 보며 혈사가 말했다.
  "나도 정말 놀랐었다네."
  -휘안, 안영도 같이 있었어요. 셋이서 대륙 한번 쓸어버리고 왔죠.
  유현의 말에 혈사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현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천마대제와 오대장로들의 이야기도 해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에 천마교에 돌아가면 해주기로 하고 말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혈사가 말했다.
  "음. 아무튼 내 행동을 봐서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당분간 교내에서 비밀로 해주게."
  혈사가 살혈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살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로 하려는 유현과 혈사의 움직임이 보였다.
  -후. 아무튼 할 말 더 이상 없으면 통신 끊을게요.
  그렇게 말한 유현이 통신을 끊었다.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소."
  살혈이 조금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혈사가 빙긋 웃었다.
  "그렇지?"
  두 노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응?"
  무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문득 유현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천마전 안에서.
  하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의 머리를 검 손잡이로 한 대 쥐어 박은 무연이 경공술을 이용해 사라졌다.
  "흐음. 남궁세가의 소가주 귀환 축하 잔치?"
  한 여성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녀는 여성이라 불리기에는 가슴이 절벽이었다.
  옷도 남자 옷.
  그렇다면 그는 남자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주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그가 싱긋 웃는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예?"
  그 말에 그의 앞에 시립해 있던 혈의 무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색기를 뿌리는 얼굴로 말했다.
  "후후후. 좋아, 정파 최고의 귀재가 3년 만에 돌아왔다라? 재미있겠는 걸?"
  그렇게 말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천대 다섯만 준비해라."
  "소교주님!"
  "후후. 나도 중원에 한번 가보고 싶군."
  그 말만을 남기고 그는 차갑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혈의 무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따랐다.
  남궁세가에 무림을 이끌어갈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월광검 남궁휘안, 두 번째는 흑마룡 사무연, 마지막으로는 혈천룡 혈시현.
  그들의 충돌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남궁세가에서 여기저기 초대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오대세가부터 시작해 구파일방과 그밖에 친분이 있는 세가나 대중소문파들 등.
  많은 곳에 초대장을 보냈다.
  그리고 최고의 신랑감, 최고의 귀재로 꼽히는 남궁휘안은 팽가려와 용봉지회 사람들에 의해 화경에 이른 듯하다며 소문이 쫙 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휘안의 명호도 바뀌었다.
  월광검에서 월광룡으로.
  혈교나 마교에는 인물이 있지만 정파에는 인물이 없다고 떠들어 대던 이들에게 딱 좋은 이야기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사실 월광룡이나 흑마룡, 혈천용 이 셋은 전부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휘안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돌입하고 있었다.
  유한은 그런 휘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갸웃했다.
  "안영, 지금쯤 서류 처리할 때 아닌가?"
  바로 안영이었다.
  유한의 물음에 안영이 싱긋 웃었다.
  "넘겨버렸죠."
  "누군지 몰라도 불쌍하네."
  "후후."
  유한의 말에 안영이 웃었다.
  그러다가 유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나는 언제쯤 찾아올까?"
  "흠. 늦어도 한 달 안에 오겠죠."
  사실 바로 올 수 있었지만 화린, 소현, 은월이라는 짐(?)들이 생겨 이동속도가 느린 유현이었다.
  그렇기에 신강에서 뒤늦게 출발한 무연보다 더 늦을 수밖에.
  유현을 생각하는 듯한 유한의 표정을 보며 안영이 말했다.
  "만나봤자 아직 욕만 더 들을 것인데 그렇게 만나고 싶습니까?"
  "에? 좋아하는 사람이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말에 안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소교주님은 유한 님을 이성으로 생각 안 하십니다."
  "됐어, 누나의 수명은 만년이야, 내 수명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지. 같이 지내다 보면 언젠가 날 이성으로 생각할 날이 오겠지."
  그 말에 안영이 쓸쓸하게 웃었다.
  "이럴 때면 유한 님이 참 부럽습니다."
  "후후후."
  안영의 말에 유한이 웃음지었다.
  그때 한 사람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미안하지만 에이라나는 평생 널 동생 이상으로는 생각 안할 걸?"
  휘안이 뭔가 속이 비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 휘안을 보며 유한이 비웃으며 말했다.
  "모르잖아?"
  휘안의 눈이 차가워진다. 유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유현이 이성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나오면 늘 있는 일.
  하지만 둘이 어마어마한 기운을 뿌려대니 안영은 그 둘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자자~ 두 분 다 진정하시죠."
  둘을 말린 안영이 말했다.
  "소교주님이 누굴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동족으로 사랑하게 될지, 아니면 평생 독신으로 살지 누가 알겠습니까?"
  안영의 말에 둘 다 화를 가라앉혔다.
  "후후, 혹시 아십니까? 소교주님을 어릴 때부터 봐왔던 제가 소교주님의 인연이 될지?"
  "꿈 깨!"
  "헛소리!"
  안영의 말에 버럭 소리치는 휘안과 유한이었다.
  초대장을 돌리고 이주일 뒤에 잔치가 열리게 되어 있었다.
  무연은 초상비를 사용하며 엄청난 속도로 신강에서 안휘에 도착했다.
  그러다가 바로 남궁휘안을 만나러 가지 않고 근처 객점에 머물렀다. 남궁세가에는 사왕 중 한 사람인 검왕이 있었기에 몰래 들어가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근처 객점에 들어간 무연은 방을 잡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시켰다. 죽엽청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문을 마치고 무연은 먼저 나온 소면을 먹으며 술을 한 잔 따랐다. 그러다가 문득 객점으로 들어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이였다.
  외모로 따진다면 절대 유현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객점 안의 모든 이들이 그를 보며 멍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슴이 납작한 절벽이라는 점에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남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무연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싱긋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보다 무연은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현경?'
  상대가 바로 현경의 경지에 든 괴물이라는 점이었다.
  무연이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면서.
  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가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를 호위하고 있는 이들의 기척은 모두 다섯.
  그리고 이 사이함은,
  '혈교!'
  무연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오른다.
  그 살기에 흠칫한 그였지만 잠시 후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자신 앞에 앉는 그를 향해 무연이 냉소 지으며 말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혈교 잡것들이 오는가? 그것도 내 눈앞에?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지?"
  조용하게 말한 무연이 그대로 술잔에 있는 술을 한 번에 마셔버렸다.
  그런 무연을 향해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흠. 역시 알고 계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혈천교의 소교주 혈시현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다시 술을 들이키려던 무연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사무연이다. 알다시피 천마교의 소교주지."
  중원 무림 단일 최강의 단체들의 작은 주인들이 만났다.
  그와 함께 소마대의 다섯 호위와 혈천대의 다섯 호위도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신경전을 벌이든 말든 무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술을 마셨으며, 시현 역시 빙긋 웃으며 죽엽청을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당장 칼부림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던 무연이 두 눈에 진득한 살기를 담으며 말했다.
  "자, 그럼 내 눈앞에 나타났으니 죽어줘야겠지?"
  그렇게 말한 무연이 서서히 기세를 피어 올리기 시작했다.
  객점 안에는 무림인이라 불릴 이가 없었기에 그 기세를 알아차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무연을 향해 시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전 당신과 싸울 의사가 없어요. 당신과 싸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아프거든요? 그리고 죽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무연이 그 말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계속해서 기세를 피어 올릴 뿐.
  그런 그를 보며 시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본교에 그 정도의 원한을 품을 이유가 천마교에 있나요? 오대장로들의 배신? 흠. 그 정도로는 약한데, 그렇다면."
  잠시 망설이던 시현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전 소교주 하유현의 죽음?"
  콰가가가강!
  그와 함께 언제 출수 되었는지 무연의 손에 검이 들려 있었고 순간 엄청난 폭음을 일으키며 객점이 초토화되었다.
  시현은 빠르게 호신강기를 펼쳐 큰 타격은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현이 몸을 탁탁 털며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연을 바라보았다.
  "그 더러운 입으로 유현이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으르렁거리는 무연을 보며 시현이 말했다.
  "그를 죽였던 것은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본교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닥쳐!"
  시현의 말에 고함을 지른 무연이 검을 내지른다. 무연의 검에 무시무시한 검은빛 마기가 생성되었다.
  무연의 검강을 보며 시현 또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검을 발검했다.
  핏빛 검강과 검은빛 검강의 격돌!
  쾅!
  엄청난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쾅! 쾅! 쾅!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여러 번의 폭음.
  무연은 공격을, 시현을 방어를 하고 있었다.
  콰앙!
  한 번의 폭음이 더 있고 서로가 거리를 벌렸다.
  시현이 무연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과 싸울 의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연은 듣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하유현 소교주를 죽이자고 한 것은 장로들과 교주의 뜻이지 결코 제 뜻이 아닙니다."
  "웃기지도 않는군."
  무연이 피식 웃자 시현이 말했다.
  "당신이 파천성을 타고 났다고 하면, 저 역시 혈천성을 타고난 인물. 쉽게는 안 져드립니다."
  시현의 말에 무연이 멈칫했다.
  "젠장!"
  그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파천성과 혈천성.
  둘 다 삼대 마성으로 그 별의 기운을 탄 이들은 엄청난 기운을 타고 태어난다. 보통 백년에 한 번씩 태어나는 아이들로서 그들이 탄생할 때면 천살성, 좌성성, 자미성, 파마성, 천중성, 파멸성도 함께 태어난다고 한다.
  천살성은 파천성, 혈천성과 마찬가지로 마성이었으며 좌성성, 자미성, 파마성은 마성과 상극의 기운을 가진 성성이었다. 그리고 천중성과 파멸성은 중립적인 성좌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천중성은 탄생한 적이 있었어도 파멸성은 탄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파멸성의 기운을 타고 난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천마대제였다. 천마대제는 천살성과 파멸성을 함께 타고 난 괴물 중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파천성과 혈천성은 서로 싸워봤자 득보다는 실이 더 큰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싸울 수 없었다.
  그것이 운명이었던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성좌를 밝힌 이상 싸우고 싶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자각이 안 된 상태라면 몰라도 말이다. 물론 둘 다 목숨 걸고 싸우면 되겠지만 경지가 서로 비슷하며, 한쪽은 싸울 마음이 없어 보이기에 싸워봤자 힘만 빠질 것이다.
  무연이 자신에게 살기를 피우던 기세를 거두어들이자 시현 역시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아까 유현을 그렇게 만든 게 네놈의 뜻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건 지금부터 말씀드리지요, 따라오세요."
  시현이 경공술을 사용하자 잠시 망설이던 무연도 경공술을 이용해 그 뒤를 따라갔다.
  "..."
  무연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다시는 너와 부딪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군."
  그런 무연을 보며 시현이 쓸쓸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시현의 말에 따르면 혈교에서 유현을 거두어들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실패했으며 그의 동시에 유현을 죽을 계획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혈교의 2할을 차지하는 소교주 파는 그것을 반대했다. 죽여도 마교와 척을 질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묵살되었으며 곧바로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있는 천마교의 오대장로들을 이용해 유현을 죽여 버렸다.
  그 이유가... 오로지... 오로지...
  '유현이... 파멸성이기 때문에?'
  으드드드득!
  이가 갈린다. 그렇다면... 유현이 버렸던 이유도.
  '겨우 그까짓 별자리 하나 때문인가?'
  유현이 버려졌던 이유가... 겨우 별자리 하나 때문이라니.
  유현이 죽은 이유가... 겨우 별자리 하나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는 무연이었다.
  그리고 별자리 때문에 유현을 노린 시현이 무연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유현이 파멸성이란 것을 알아낸 이가 시현 자신이었던 것이다.
  무연이 속으로 별자리를 욕하고 있을 때 뒤에서 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현의 말을 무연은 무시했다.
  "소교주는 괜찮습니까?"
  "그래."
  옆에 있는 무사의 말에 시현이 빙긋 웃었다.
  "내가 그를 본 게 10살 때였나?"
  "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군. 17년이나 지났는데 말이야."
  17년 전, 수도에 갔었던 시현은 우연치 않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시현은 그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무공이 약했던 시현은 그에게서 하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가공적인 기운.
  세상을 모두 파멸시켜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기운을 아이에게서 느낀 것이다.
  파멸성에 가장 민감한 성좌가 두 개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혈천성과 좌성성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단번에 그가 파멸성인 것을 알아낸 시현이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아직 무공이 약했던 시현이었기에 순수하게 풍겨지는 파멸성의 기운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아직 어렸던 시현은 천진난만하게 그 아이가 파멸성인 것을 말했으며, 그와 동시에 교에서는 그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곧바로 죽여 우환거리를 처리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파멸성은 너무도 매력적인 힘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가려던 혈교는 그만 절망해야 했다.
  바로 천마교에서 아이를 데려간 것!
  그리고 천마교 교주가 아이를 제자로 삼은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시현은 다른 것으로 충격을 먹었으니 바로 아이가 여아가 아니라 남아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시현은 자신의 교의 한 사술로 저주를 건다면 그 아이가 여아가 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저주를 걸 생각으로 아이를 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아이는 유현이었다.
  이렇게 보면 무연이나 시현이나 두 놈 다 똑같은 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유현을 빼돌릴 계획을 짜던 시현은 유현이 마교의 소교주가 된 것에 절망을 느껴야 했으며, 교에서 유현을 처리하자는 움직임이 보이자 빠르게 대응하여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혈교에서 자신의 힘은 고작 2할.
  그 힘으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결국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게 된 이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 시현은 그대로 교주와 장로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시현도 참 대단한 이였다.
  10년을 넘게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이를. 그것도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교주와 장로들을 모두 처리할 생각인 시현이었다.
  그리고... 무연은 또 다시 생긴 연적에 의해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사연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말이다.
  다시 만나자는 말에 왠지 짜증이 이는 무연이었다. 그러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뭐 하는가, 유현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데.
  "아, 진짜! 누가 내 욕하나?"
  "흐음. 그 성격이면 욕할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뭐야? 죽을래?"
  ... 유현은 환생하여 쌩쌩한 얼굴로 중원 땅을 밟고 있었다.
  한참 서류를 처리하던 남궁세가의 총관 현석은 무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휘성 한 객점에서 무림인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말에 남궁세가의 총관인 현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사소한 일이야 늘 있지 않는가?"
  하지만 이 일은 현석이 말하는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두 무림인 다 검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검강?"
  무사의 말에 현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강을 사용했다는 말은 화경의 고수들이라는 소리다. 화경의 고수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 무림을 뒤져봐도 200명이 조금 넘는 정도?
  그런 고수가 안휘성에서 격돌했다.
  "흐음. 조금 심각한 문제군."
  말과는 달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현석은 다음에 들린 무사의 말에 굳어버렸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한 검강의 색깔이 검은빛과 핏빛이라고 했습니다."
  "검은색과 핏빛?"
  검은색과 핏빛.
  그 색의 검강을 사용했다는 소리는 곧 마교와 혈교의 인물들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물론 마교와 혈교가 아니라도 그런 색의 검강을 사용하는 이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것은 정말 드문 경우였다.
  그 말에 굳어 있던 현석이 말했다.
  "당장 조사단을 파견하게. 마교와 혈교의 고수들의 격돌일지도 모르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외친 무사가 밖으로 나갔다.
  "소가주의 귀환 축하 파티인데 무슨 일 없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현석은 다시 서류를 처리해 나갔다.
  며칠이나 조사를 했지만 그 충돌이 마교 고수와 혈교 고수의 충돌이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사건은 조용히 묻혀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드디어 남궁세가에서 소가주 귀환 잔치가 열렸다.
  최고의 신랑감인 휘안을 보기 위해 수많은 문파와 세가에서 초대에 응했다. 매우 호화롭게 진행되는 파티는 3일 동안 이어지는데 마지막 날에는 작은 규모의 비무 대회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잔치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은 남궁세가였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휘안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냥 적당히 할 것이지. 이건 너무 돈을 많이 들였잖아요?"
  가주인 남궁태는 자신에게 따져오는 휘안을 보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휘안아, 너의 귀환 잔치인데 싱겁게 하면 안 되잖니?"
  "돼요!"
  빽 소리치는 휘안을 보며 피식 웃은 남궁태가 말했다.
  "뭐, 일단 시작된 잔치니 그냥 즐기자꾸나. 그리고 이번 잔치로 네 신붓감도 봐야 할 것이고."
  남궁태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휘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 결혼 안 할 겁니다."
  그 말에 남궁태가 굳었다.
  "무슨 말이냐?"
  "결혼 따위 안 한다고요, 다음 가주 자리는 성휘의 아들에게 물려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남궁태가 휘안의 말에 어이가 없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휘안은 아무 대답 없을 뿐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 그것도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이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됩니다."
  그 말에 남궁태는 어이가 없었다.
  남궁태가 다시 소리쳤다.
  "그딴 시덥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라!"
  은연중 기세를 피어 올린 남궁태는 기세로 휘안은 눌릴 생각이었다.
  "전 시덥지 않은 소리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휘안이 냉소했다. 남궁태의 무시무시한 기세에도 휘안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런 휘안을 보고 남궁태는 내심 놀랐다. 자신의 아들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자신의 기세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다니.
  놀라는 남궁태를 무시하고 휘안이 계속 말했다.
  "전 결혼할 생각 따위 없습니다, 그것은 저 자신에게 한 맹세이니 아버지는 뭐라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한 휘안이 더는 볼것도 없다는 듯 남궁태의 집무실에서 나와 버렸다.
  그런 휘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궁태였다.
  휘안의 말처럼 아마도 그가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있더라도... 그것은 아마 자신의 앞에서 유현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일 것이다. 아니면 유현이 자신을 사랑하거나.
  하지만 유현이 자신을 사랑할 확률은 희박했다.
  그리고 유현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 중원이 아닌 리샨 대륙에서일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죽고 난 뒤 먼 훗날의 이야기.
  휘안이 피식 웃는다.
  자신이 유현을 처음 만났을 때 유현을 보고 첫눈에 반했을 때가 생각난 것이다.
  유현과 처음 만났을 때는 혼자 느긋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 무림맹으로 향했을 때였을 것이다.
  산속에서 노숙을 하는데 유현을 만났다.
  그 당시 휘안은 막 화경의 경지에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휘안의 나이 21살 때 유현을 만났다.
  그날 밤에 선녀가 강림한 줄 알았던 휘안.
  모닥불을 피우고 토끼를 구워 먹고 있는데 자신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온 유현이 휘안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현을 보고 소저라고 말했다가 바로 칼부림이 일어났었다.
  그때 유현의 경지가 화경의 끝 단계를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화경에 막 발을 들였던 휘안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나게 깨진 휘안은 그가 사용하는 무공이 천마교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유현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무림맹에 가는 것도 잊고 한동안 유현과 같이 다니던 휘안은 자신이 유현의 매력이 매료되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유현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현에게 이상한 감정이 생긴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정도로 휘안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로서 지낼 뿐이었다.
  그러다가 무연을 만나고, 유현이 천마교의 소교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현과 헤어지고 난 뒤에도 가끔씩 연락을 하며 만났었다.
  물론 그때 늘 무연이 유현의 옆에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유현이 죽었다는 소리를 접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수련한답시고 남궁세가를 뛰쳐나간 휘안이었다. 세상을 둘러보고 강해져서 돌아오겠다고 가주에게 허락을 맡은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유현의 죽음을 슬퍼하며 무연을 만나기 위해 나간 여행이었다.
  그 뒤로 알다시피 더운 여름날 더위를 날릴 겸 물에 들어갔다가 우연치 않게 차원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현을 다시 만났다.
  여자가 된 유현을.
  하지만... 그런 유현은 자신과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신과 사는 세상이 달라졌으며 자신과 종족이 달라졌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내가 너 때문에 결혼도 못하게 생겼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걷던 휘안이 속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아, 진짜 피곤하네."
  유한이 툴툴거렸다.
  오늘 하루 동안 잔치에서 가장 고생한 건 유한이었다.
  알다시피 유한은 아름답다. 그리고 귀여운 외모를 가졌다.
  귀여운 동생 분위기?
  그리고 중원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백금발에 녹안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휘안과도 아주 가깝게 지냈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늘 휘안 옆에 딱 붙어 있었기에 많은 후기지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여자들에게 더더욱 인기가 많았던 유한이 침대에 엎어지고 툴툴거리자 휘안이 말했다.
  "이틀만 참아, 그럼 다 갈 거야."
  "이틀 뒤에도 안 가고 뻐길 것 같은 사람 많은데?"
  "..."
  유한의 말에 휘안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인 건 때문에 오늘도 자신의 아버지 남궁태와 충돌을 일으켰던 휘안.
  그런 휘안은 자신의 근처에 몰려와서 막 교태를 부리는 여성들 때문에 더더욱 그 시간이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기,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휘안이 골 때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안영이 들어왔다.
  "이야~ 오늘 고생들 하셨습니다."
  능글맞게 웃는 안영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넌 왜 참여 안 했냐?"
  "만약에 제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큰일 나잖아요?"
  그 말에 얼굴을 구기는 휘안과 유한.
  '저 자식. 저거 빌미로 귀찮은 일 안 말려들려고 저러는 거다!'
  안영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틀만 참으십시오, 귀찮은 일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이런 큰 행사 같은 걸 싫어하는 휘안과 유한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약올리는 안영.
  그런 안영을 보며 휘안과 유한은 이를 갈 뿐이었다.
  "남궁공자님, 비무 대회에 참여하실 거죠?"
  한 여인이 남궁휘안에게 물었다.
  그런 여인을 보며 휘안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어머, 절 기억 못하세요? 저 제갈소히잖아요?"
  "아아, 소히 소저셨군요."
  휘안이 자신의 옆에 붙어서 애교를 떠는 제갈세가의 여식을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제갈소히의 애교도 얼마 가지 못했다.
  "야 소히 이 계집애야! 우리 오라버니에게서 떨어져!"
  바로 휘안의 여동생인 휘연이 달려와 소히를 휘안에게서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소히 역시 20살의 휘연이와 동갑이었다.
  "휘연이 너 분위기 좋았는데 무슨 짓이야!"
  소히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소히의 눈빛에서 휘연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ㄷ에 한숨을 푹 쉰 휘안이 옆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유한을 보며 말했다.
  "넌 그래도 귀여움만 받아 이런 난감한 상황은 안 와서 좋겠다."
  그 말에 유한이 말했다.
  "고생해."
  유한의 말에 한숨을 푹 쉬던 휘안의 눈이 번뜩였다.
  그것은 유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감에 잡힌 것은 두 사람!
  바로 무연과 혈시현이었다.
  두 사람의 감각에 잡힌 두 사람은 지금 붙어 있는 상태였다.
  "왜 따라 오지?"
  "흐음. 같은 이를 사랑했던 사람들끼리 사랑했던 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서요."
  "아무리 네가 유현을 죽인 것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나 또, 혈천성이라고 하나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눈에 살기를 띠며 말하는 무연의 태도에 시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좀 봐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시현이 무연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두 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귀공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가짜 신분들을 만들어 남궁세가에 와 있는 상태였다. 둘은 혹시 몰라 인면피구까지 쓰고 있었다.
  자신에게 술을 따르는 시현을 노려보던 무연이 술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상대가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고 둘은 동시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들을 바라보던 남궁휘안과 눈이 딱 마주쳤다.
  두 사람을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남궁휘안이 히죽 웃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남궁휘안을 보며 시현이 말했다.
  "남궁공자도 현경의 경지에 들었나보군요."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는 시현을 보며 무연이 말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놀랍군. 그런데 저 색목인이 바로 휘안이 데려왔다는 그 녀석인가?"
  무연의 시선이 향한 곳은 휘안 옆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한에게로 향했다.
  무연의 말에 시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색목인 하면 그밖에 더 있겠습니까? 흐음. 그것보다 무공을 모르는 것일까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런 것 같군."
  유한에게 느낄 수 있는 기운은 그저 평범한 사람의 기운이었다. 고룡들도 알아보기 힘든 유한의 힘이다. 인간들이 알아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흐음. 현경이 그랜드소드마스터급의 경지지?"
  "그래, 그런데 리샨 그랜드소드마스터들보다 중원 현경들이 더 강하지."
  "그건 인정해. 그런데 그런 경지에 든 인물이 많아?"
  "별로 없을 걸?"
  "그런데 휘안 형은 특이한 경우라고 하지만, 저 두 사람은 벌써 저런 경지에 든 거야?"
  "그래."
  "흐응. 뭐 하는 사람이지?"
  "나야 모르지."
  이미 두 사람의 경지를 알아차린 휘안과 유한이었다.
  "비무 대회에 참가할 거야?"
  유한의 말에 휘안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참여하지."
  결국 휘안도 비무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
  역시 약속대로 비무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총 참가 인원은 100명이었다.
  뛰어난 후기지수들은 다 참여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당연 이 비무 대회의 주인공은 휘안이었다.
  비무 대회에서 누구든 5승을 하면 무조건 본선에 진출하기로 되어 있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휘안, 무연, 시현은 파죽지세로 승리를 이끌며 본선에 올라왔다. 그 외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본선에 올라왔다.
  총 본선에 올라온 이는 8명.
  가장 먼저 비무를 하게 된 이는 무연이었다.
  무연의 상대는 종남파의 대제자 조고성이라는 뛰어난 후기지수였다.
  "본인은 종남파의 대제자 조고성이라고 하오."
  그런 조고성을 보며 무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연가장의 연무강이다."
  무연의 태도에 조고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연가장은 제법 큰 가문이기는 해도 종남파에 비하면 별 것 아닌 작은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가문의 이가 자신에게 반말을 사용하다니.
  "예의를 모르시오?"
  "네까짓 놈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지."
  조고성의 말에 무연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런 무연의 태도에 조고성이 속으로 그를 반병신 만들 것을 다짐하며 검을 잡았다.
  하지만 무연은 검조차도 뽑지 않고 있었다.
  "시작!"
  심판의 말과 동시에 조고성이 무연에게 달려들었다.
  무연은 몸을 간단히 비트는 동작으로 조고성의 공격을 살짝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발검하여 조고성을 쪼개버릴 듯 검을 내려찍었다.
  그것을 보고 기겁한 조고성이 그의 검을 막았다.
  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밀려 나가는 조고성.
  하지만 무연은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는 듯 조고성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조고성의 장외 됨과 동시에 무연의 승리로 돌아갔다.
  많은 이들이 종남파의 대제자를 가지고 노는 듯한 무연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연의 당당한 태도를 보며 시현은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물론 시현 역시 상대를 너무도 쉽게 이겨버렸지만 말이다.
  천마교의 소교주와 혈천교의 소교주가 정파 후기지수들을 농락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휘안도 승리를 하며 결승전에 올랐다.
  준결승전에서 시현과 무연이 붙게 되었는데 시현이 기권함과 동시에 무연과 휘안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비무가 시작되기 전 휘안이 포권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휘안이라고 하오."
  그런 휘안을 바라보던 무연이 말했다.
  "오랜만이군, 휘안."
  "...?"
  무연의 뜬금없는 말에 휘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3년만인가?"
  그와 함께 무연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인면피구를 벗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놀라 무연을 쳐다보았다.
  시현 역시 설마하니 저렇게 대놓고 무연이 얼굴을 드러낼 줄은 몰랐기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내 정식 소개를 해볼까?"
  무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사무연, 대 천마교의 소교주다."
  그 말에 모두가 침묵과 동시에 경악했다.
  휘안 역시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시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설마하니 정체까지 밝힐 줄이야.'
  모든 이들이 검을 뽑았다.
  천마교의 소교주라면 정파에게 있어 최대의 적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무연은 그런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잔챙이들이 날뛰어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때 남궁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마교의 소교주가 왜 우리 남궁세가의 행사를 방해하는가!"
  그런 남궁태를 보며 무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난 남궁세가의 행사를 방해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저 남궁휘안을 만나러 온 것일 뿐."
  그렇게 말한 무연이 남궁휘안을 향해 검을 들이밀며 말했다.
  "검을 뽑아라."
  무연을 잠시 바라보던 휘안이 검을 뽑았다.
  지금 휘안이 들고 있는 검은 월아가 아닌 그냥 평범한 철검이었다.
  휘안이 검을 뽑아 자신에게 겨누자 무연은 슬쩍 웃어보였다.
  3년 전 자신과 비슷한 무공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휘안.
  과연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까?
  많은 이들이 자신을 향해 적대하며 검을 들이밀고 있든 말든 무연은 그대로 보법을 이용해 휘안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무연을 보며 휘안도 그대로 오른쪽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무연이 돌격해오는 방향하고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슥!
  휘안의 검이 무연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을 보고 무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휘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리샨 대륙전쟁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천마신공이다. 그리고 수도 없이 비무했던 무공이기도 했다.
  변화를 주지 않는 교과서 같은 천마신공이라면 눈 감고도 막을 수 있었다.
  "그냥 무공서에 나와 있는 대로 무공을 펼치면 무연, 당신은 날 이길 수 없어."
  잠시 후 휘안의 검이 여러 개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휘안의 환검을 보고 무연이 그대로 회전했다.
  채재재쟁!
  수십 번의 쇠 부딪치는 소리.
  휘안은 그대로 무연에게 파고들어 망설이지 않고 발을 휘둘렀다.
  퍼억!
  휘안의 발은 그대로 무연의 팔에 박혔지만 무연은 팔에서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철저하게 실전에 찌들어 있는 움직임.
  살기만 없고 위력만 약할 뿐이지 하나하나가 목숨이 간당간당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들뿐이었다.
  무연이 검으로 휘안을 떨쳐내며 말했다.
  "정파의 무공이라기에는 너무 날카롭군."
  무연의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전쟁터에서 몇 년 뒹굴어봐. 그렇게 되지."
  "전쟁터?"
  휘안의 말에 무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휘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휘안과 무연의 비무가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둘은 나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모두가 긴장한 채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파의 최고 귀재라 불리는 이와 마교의 최고 귀재라 불리는 둘이 만났다.
  모두가 무림에 큰 파문을 이끌 비무를 구경했다. 시현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휘안과 무연의 대화는 소리가 너무 작았기에 두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였다.
  몇 마디를 나눈 두 사람이 다시 격돌했다.
  휘안은 빠른 초식과 변화 초식을, 무연은 하나하나 패도적인 기세의 초식을.
  너무도 상극의 싸움이었다.
  휘안과 무연의 검은 끝도 없이 격돌했다.
  그렇게 수십 합을 겨뤘을까?
  다시 한 번 격돌하는 휘안과 무연의 검.
  그와 함께!
  깡!
  휘안과 무연의 검이 격돌함과 동시에 그대로 둘 다 두 동강이 나버렸다. 검에 내공 하나 넣지 않고 엄청난 힘으로 수십 합을 겨뤘으니 부러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검이 부러짐과 동시에 휘안과 무연이 행동을 멈추었다.
  이 경우 만약에 무연이 아니라 유현이었다면 휘안의 필패였다. 그 이유가 유현의 경우에는 천마권각법도 완벽하게 구사하는 경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승부는 무승부나 다름없었다.
  "무승부로군."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무연도 따라 웃으며 아쉬워했다.
  "흠. 안타깝군. 비무라 강기를 사용할 수도 없으니"
  무연의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도발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 해도 당신은 날 이기기 힘들 걸?"
  휘안의 도발에 무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글쎄, 과연 어떨까?"
  하지만 무연은 그렇게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만은 없었다. 이곳은 적지였던 것이다.
  주위를 스윽 둘러본 무연이 말했다.
  "가야겠군."
  "뭐, 언제든지 오라고. 환영이니깐."
  휘안이 히죽 웃으며 인사하자 무연 역시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렇담 다음에는 네가 본교로 와보는 것이 어떤가?"
  무연의 말에 휘안이 짐짓 과장된 동작을 보이며 말했다.
  "무슨 일을 당하려고 마교에 가겠어?"
  휘안의 행동에 웃음 짓던 무연의 얼굴이 무표정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정말 대단한 경공술이었다. 그와 함께 정파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무연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경에 이른 무연이 그들의 손에 잡혀줄 리 만무했다.
  둘의 비무를 지켜보던 시현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무연이 사라졌으니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휘안과 한번 붙어보고 싶었지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무림드래곤 (그녀의 정체)
    종남파의 괴팍한 노인들
  남궁세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말든 유현 일행은 느긋하게 안휘성을 향해 갈 뿐이었다. 그러하여 이제는 섬서 지방의 종남파가 있는 종남산 근처를 지나게 된 유현 일행.
  무슨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데, 사실 가는 길에 문제가 없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유현이 아닐 것이었다.
  쾅!
  한 객점. 어떤 이가 안에서부터 객점 밖으로 날아갔다. 그의 몸은 완전 곤죽이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가 날아온 곳에는 한 예쁘장한 소녀(?)가 서 있었다.
  “하아. 역시 사부에게 말해야겠어. 이런 옷은 이제 안 입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정정하겠다. 소년이었다.
  소년이 자신의 옷을 보고 툴툴거리는 것을 보고서 은빛 가면을 쓴 여인이 말했다.
  “죽지 않을 정도만 밟은 거 맞지?”
  여인의 말에 소년이 말했다.
  “조절하면서 패버렸으니 죽지는 않겠지.”
  “좋아. 여긴 종남산이 있어, 시끄러워지면 골치 아파진다고.”
  그렇게 말한 여인, 하유현이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죽지 않았다면 됐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태평한 대화에 방금 밖으로 날아간 이와 같은 패거리로 보이는 이가 한쪽 구석에서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네, 네놈들!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그리고 너희들이 곤죽을 만들어 놓은 저 사람은 종남파 제자라고!”
  버럭 외치는 남자의 말에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소현, 저 녀석 무공실력이 어느 정도였지?”
  “일류 정도?”
  “흠 나쁘지는 않군. 쳇, 귀찮아지겠군.”
  소현의 말에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유현.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녀는 그대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은월에게 남은 패거리들을 모두 처리하라고 말했음은 당연하다.
  유현 일행이 종남파의 제자라고 했던 이를 마구 밟았던 시각은 얼추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그리고 예상한 것처럼 종남파 사람들이 들이 닥친 것은 저녁 식사시간 때였고 말이다.
  쾅!
  “감히 대 종남파의 제자를 폭행한 겁 없는 놈이 누구냐!”
  객점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며 열 명 정도 되는, 종남파 도복을 입은 무림인들이 들어왔다. 소리를 친 중년인은 그중에서도 검기를 사용하는 수준의 고수였다.
  그가 눈을 부라리며 주위를 바라보고 있다, 점심 무렵에 유현 일행에게 찝쩍거리다 얻어터진 종남파의 제자가 그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더니만 제 아비에게 일러바치듯 호들갑스레 손가락질을 했다.
  “저, 저 녀석들입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파락호들에게 곤경에 처한 저들을 도와줬는데 도리어 비겁한 수로 저희를 공격한 놈들입니다!”
  되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을 보며 은월이 유현에게 물었다.
  “저 자식 목 비틀어놔도 되?”
  “흠, 된다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일이 더 꼬이니 일단 보류하자.”
  은월의 말에 유현이 놈들을 비꼬며 대답했다.
  유현 일행에게 폭행당한 남자의 말이 끝나자 방금 객점으로 들어온 중년인이 유현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엄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들인가? 감히 대 종남파 제자를 폭행한 이들이?”
  소현이 대답했다.
  “우리가 저 자식을 폭행한 건 맞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 말에 중년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무스하며 소현이 입을 열었다.
  “저 자식이 한 말중에 옳은 말은 하나도 없군요.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자면 저 자식이 파락호들과 어울려 먼저 우리에게 찝쩍거렸다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
  그 말에 남자가 악을 쓰며 말했다.
  “아닙니다! 모두 거짓입니다!”
  그런 제자 때문에 중년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제자의 말을 믿어야 하나? 아님 생전 처음 보는 이의 말을 믿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년인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되도록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잘 생각해봐.”
  얼굴을 아름다운 은빛 가면으로 가린 유현의 말에 그녀를 보던 중년인이 말했다.
  “일단 당신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같이 가야 할 것이오.”
  조금 누그러진 중년인의 밀. 유현들은 꿀릴게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처음에 이들을 끌고 왔던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일단 얻어터진 것이 화가나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술술 내뱉었는데 일이 커진 것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자를 비웃으며 일행은 종남파 사람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말이 있다.
  ‘조사하면 다 나와.’
  이내 유현 일행에겐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이 판명 났으며, 거짓말을 한 그 제자는 그길로 종남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느라 이틀 동안을 유현 일행은 종남파에 지내야 했다.
  수틀리면 다 초토화시키고 가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사실 더 이상 문제 일으키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면이 많았다.
  감숙에서는 종남파 제자 50명과 소림사 제자 30명을 시체로 만들어 놨다. 혈교 무사 50명도 같이 말이다. 그중 화경의 고수가 일곱이요, 현경의 고수가 하나다.
  그것만으로도 온 무림이 발칵 뒤집힌 상태인데 다시 한 번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현 일행은 이틀이 걸려 오해가 모두 풀린 후에야 종남파를 떠나게 되었고, 가는 길에 자신들에게 사과를 하러 온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소. 우리 쪽에서 뭔가 잘못 알고 그대들에게 실례를 저질렀군요.”
  처음 그들을 종남파로 데려온 중년인이 정말 미안하다는 듯 말하자 화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흰 괜찮아요, 감옥 같은 데를 간 것도 아닌데요.”
  화린의 말에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소저.”
  중년인은 작으나마 성의의 표시라며 은자 두 냥까지 주었다. 그리고 종남파의 정문까지 직접 안내해주겠다며 유현 일행과 동행했다. 그렇게 그들이 종남파 정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유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저 두 사람은 뭐지?”
  이곳에 온 후 자신과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은 유현이 말을 걸어오자 중년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어려 보이는 외모로 대뜸 반말을 하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태연한 유현을 보며 중년인이 좀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얼마 전부터 종남파 대문을 청소하게 된 노인들이오.”
  노인 두 명은 각각 육십은 되어 보였는데 서로에게 뭐라 뭐라 떠들며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현이 보기에는 그들은 보통 노인이 아니었다.
  “종남파의 수준이 이제 중원의 무림 단일 최강이라는 천마교를 뛰어넘은 것인가? 현경의 고수가 고작 대문 비질이나 하고 있다니.”
  유현이 이죽거렸다. 두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현경의 그것이었던 것이다.
  유현의 말에 중년인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저 여인이 뭐라고 한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있는 중년인보다 먼저 반응을 보인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비질을 하던 두 노인이었다.
  두 노인은 유현의 말을 들었는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 역시 팔짱을 떡하니 끼고 오만한 눈으로 그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한 노인의 얼굴에 장난기가 서렸다. 그와 함께 한 노인에게 귓속말로 다fms 노인에게 뭐라 뭐라 말하자 이번에는 말을 듣던 노인이 성을 냈다.
  한참 티격태격하던 두 노인은 이내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유현을 보며 장난기어린 미소를 날렸던 노인이 먼저 유현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오면서 곱게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제야 숨겨두었던 기세를 풀며 다가오는 노인을 보며 모두가 경악했다.
  유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상 저 두 노인은 얼마 전 붙었던 현노 대사보다 더 강한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천천히 다가오던 노인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유현에게 달려들었고, 유현 역시 엄청난 속도로 발검을 했다.
  쾅!
  노인의 빗자루와 유현의 은아가 부딪쳤다.
  은백색의 아름다운 검신을 가진 은아를 보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짓는 노인. 하지만 잠시 후 자신의 옆구리를 가격해오는 유현의 주먹을 눈치 채고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노인장, 그렇게 할 짓이 없습니까? 왜 막 종남파를 떠나려던 사람을 핍박하시오?”
  보기 드문 유현의 존대였다. 그 존대를 들으며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할 짓 없는 노인에게 즐거움을 한번 선사해봐라, 후배야.”
  그렇게 외친 노인의 검이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종남파의 절기 중 하나인 천성쾌검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남파의 장문인 또한 이 검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검법을 본 중년인이 경악했다.
  물론 유현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쾅!
  유현의 검에 패도적인 기세가 서리더니 그대로 천성쾌검을 파회해 버렸다. 그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노인.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어 무시무시한 냉기가 노인을 덮쳐 들어왔다.
  쩌저저저저정!
  주위를 모조리 얼려버리는 유현의 검강. 노인은 간신히 호신강기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헐, 이 추운 겨울날 노인네를 얼려 죽일 작정인가?”
  “그 정도로 죽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유현이 마주 이죽거렸다. 그렇게 유현과 노인은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고 알았다.
  ‘혈사 아저씨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야.’
  설마 정파에 저런 괴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유현이었다. 그렇기에 유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노인장 나이가 어떻게 되오?”
  “응? 내 나이가... 흐음, 몇 살이었지?”
  유현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던 노인이 잠시 뒤 생각났는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한 150살은 넘지 않을까?”
  “역시.”
  저 정도라면 혈사의 거의 두 배쯤 되는 나이다. 아무래도 종남파의 은거기인 같은데 저런 이는 무림사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되었다.
  그렇다면 마교에 은거하고 있는 노괴물들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보다 강한 괴물이 더 있는 거 아냐?’
  유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노인장 나이가 천마교 교주보다 두 배는 많군요.”
  “흥. 현 천마교 교주라면 사혈사를 말하는 건가? 그놈도 괴물이었지, 태상교주도 살아 있으려나? 에잉~ 태상교주 하니까 그 전대 교주인 그 재수 없는 노인네 얼굴 떠오르네.”
  천마교의 태상교주는 유현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다는 말도 들은 적 있고, 나이가 100살은 된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혈사와 30살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전대 교주도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 아마 저들과 비슷한 연배의 인물일 것이다.
  잠시 툴툴거리던 노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디서 툭 튀어나온 괴물인고?”
  그 말에 유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른 세상에서.”
  그렇게 말한 유현이 다시 한 번 검에 기운을 불어 넣었다.
  “껄껄껄! 그거 참 유쾌한 후배로구나.”
  물론 유현의 나이는 이미 500살이 넘어가지만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이곳에서 유현의 나이를 따지자면 그 노인보다 후배가 맞긴 맞았다.
  유현이 다시 검을 쥐고 노인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화경의 고수로 보이는 이들이 종남파 안에서 우르르 달려오는 것을 본 유현은 검을 내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검을 검집에 꽂았다.
  그런 유현의 행동과는 달리 노인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에잉! 멍청한 후배들 때문에 나의 즐거운 시간이 줄어드는구만!”
  무림인들은 늙을수록 괴팍해지는 것일까? 왜 못 싸워서 난리란 말인가? 노인을 보며 그런 생각에 잠기는 유현이었다.
  우르르 달려 나온 이들은 장문인부터 시작해 장로들까지였다.
  현 종남파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총출동한 것이었다. 그들 중 장문인이 노인을 보더니 기겁하며 말했다.
  “사백조부 두 분 아니십니까!”
  현 종남파의 최고의 연배를 자랑하는 무자령과 성무진.
  그들이 바로 현 장문인의 사백조부들로, 현 150살이 넘어가는 노괴들이었다. 이들은 종남파 최고수들이며 또한 현재 무림에 남아 있는 전전대 인물들 중 하나였다.
  얼마 남지 않은 전전대 인물들. 그들의 무력은 정말 가공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중 유현과 붙은 이가 바로 무자령이었다.
  무자령, 그는 천성쾌검의 달인으로 천성선이라 불리는 이였다. 또한 성무진은 무자령의 사형으로, 무극검 달인으로 역시 무극선이라 불리는 노인이었다.
  종남파의 남아 있는 최고수들이 갑자기 산에서 내려왔으니 종남파 이들이 기겁할 만했다.
  장문인과 장로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백조분 두 분을 뵙습니다.”
  하지만 천성선 무자령에게 되돌아온 말투는 싸늘했다.
  “에잉, 난 다시 종남산 꼭대기에 틀어박힐 거다.”
  성무진에게 다가간 무자령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사형, 흥도 깨졌는데 올라갑시다.”
  “난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에잉! 저 바보 같은 것들이 기세를 풍기며 달려와 흥을 깨 버렸는데 싸울 맛이 나겠습니까?”
  “흐음. 그것도 그렇군, 괘씸한 것들이야.”
  두 노인의 대화를 들으며 역시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장문인과 장로들. 그러나 실상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갑자기 문파 대문 앞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깜짝 놀라 달려온 죄밖에 없었다.
  다시 산으로 틀어박히겠다는 두 노인의 말에 기겁한 장문인이 말했다.
  “사백조부님들,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노여움을 풀어 주십시오, 오랜만에 이렇게 산에서 내려오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셔야지요! 부족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상을 차리겠습니다!”
  장문인의 말에 무자령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흐음. 그것도 나쁘지 않군.”
  그 말에 장문인의 얼굴이 밝게 변했다.
  “그러나 이미 흥이 깨졌다 하지 않았느냐! 우린 산으로 올라간다. 다시는 보는 일 없으면 좋겠군, 장문인.”
  “허억! 사백조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문인은 빌어야 했다. 이유도 모른채. 그런 장문인을 보면 무자령이 사악하게 웃었다.
  ‘사악한 노인네구만.’
  물론 그 사악한 미소를 본 것은 유현이 전부였다. 그러나 다음에 들린 말은 유현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험! 장문인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그래, 저 아이가 종남파에 남아 있는 동안 우리도 종남파에 남아 있을까 생각 중이네. 저 아이 무공 실력이 대단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거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현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거절합니다. 빨린 안휘성으로 가야 할 것 같거든요.”
  그 말에 장문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일행은 빨리 안휘성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문인은 눈물을 머금고 유현 일행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어허~ 사형! 그 땡중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헛소리로 들고 넘겼는데 그 중놈 말대로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이제는 까마득한 후배가 우리의 간절한(?) 부탁마저 거절하는 군요. 인생 참 서럽습니다.”
  “흐음. 그러게 말일세. 우리도 죽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으이.”
  그 말에 기겁하는 장문인과 장로들. 그들은 우르르 유현들에게 몰려가서 말했다.
  “제발! 소저! 한 번만 도와주시오!”
  “이렇게 부탁들입니다! 사백조 분들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만 종남파에 남아 있어 주십시오!”
  그 말에 유현이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되는데?”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는 유현을 보며 장문인이 부탁했다.
  “소저, 제발 부탁드립니다! 사백조부 두 분이 화가 나신다면 종남파에 어떤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릅니다!”
  뭔가 악몽이 떠올랐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장문인. 그런 장문인을 보며 유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 그거 재미있을 것 같은데? 멀리서 구경할까?”
  “으윽! 소저,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유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유현이 넘어오지 않자 나머지 일행에게 부탁하는 장문인이었다.
  “소저! 소협!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은월은 들은 척도 안했으며 소현과 화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에잉~ 우린 간다.”
  잠시 후 무자령의 한마디에 장문인이 소리쳤다.
  “이분들이 종남파에 잠시 머물겠답니다!”
  “뭐, 뭐얏!”
  장문인의 말에 유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외치려고 했다.
  “언니, 이번 한 번만 도와주자, 응?”
  “너희는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냐? 남궁세가에 빨리 가야 한다니까!”
  “우. 저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수도 없잖아?”
  소현 역시 그렇게 말하자 유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그렇지. 저렇게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하는 유현.
  “대신 너희는 오늘 짜릿한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게, 으흐흐흐흐”
  음침하게 웃는 유현을 보며 온몸에 돋아난 소름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화린과 소현이었다. 그들은 속으로나마 이 일에 끼어든 것을 후회했다. 측은지심에 괜히 마음이 흔들리는 바람에 자신들이 세상 하직하게 될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 번 종남파에 붙잡혀버린 유현 일행.
  그렇게 붙잡힌 그날 밤, 소현과 화린은 유현이 예고한 대로 그녀에게 붙잡혀 신나게 얻어터졌다. 그리고 그 영광의(?) 증표로 소현은 양쪽 눈에 시퍼런 멍을 하나씩 달았다. 완전히 점박이 강아지의 얼굴이었다. 화린은 여자라는 이유 덕분에 한쪽에만 멍을 하나 달았다.
  아무튼 그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 다시는 저 인간 하자는 일에 토 달지 않는다!’
  반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너무 절실히 깨달아버린 것이다. 아무튼 은월은 시퍼런 눈을 해서 온 화린과 소현을 보며 웃음을 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유현 일행은 종남파에 딱 사흘을 더 머물기로 했다.
  종남파의 괴 노인들도 그런 유현 일행을 막지 않았다.
  그들이 유현 일행을 종남파에 머물게 한 것은 약관의 나이고 자신들과 맞먹는 무공을 펼친 유현에 대한 궁금증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유현에 대한 소문은 퍼져나가지 않았다. 그저 종남파에 일어난 폭음은 종남파의 천성선과 무극선이 심심해서 비무를 했다고만 알려진 것이 전부다.
  물론 이것은 유현이 천성선과 무극선에게 이 사실을 은폐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유현이 청성선과 무극선에게 그 사실을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했을 때, 청성선과 무극선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왜 그러지? 우리와 비슷한 무공 실력을 가진 것이 알려진다면 넌 천하에 이름이 드높아질 것인데?”
  무극선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은 제 정체가 안 알려질수록 유리한 일이거든요.”
  “흐음... 그런 내 장문인에게 말해둘 테니 걱정 말게.”
  “고맙습니다.”
  아무튼 그런 사정으로 유현의 이름이나 얼굴이 팔리는 껄끄러운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현을 보며 소현이 물었었다.
  “다른 인간들은 다 자신의 명성을 얻어 유명해 지기를 바라는데... 당신은 안 그렇군.”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했지만 명성 얻을 시간이 없거든? 빨리 복수해야지.”
  그 말에 소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복수?”
  “그래, 천마교를 배신하고 혈교로 붙어버린 오대장로들.”
  이미 유현이 천마교의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소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배신자 처단인가?”
  “아니, 개인적인 일이다.”
  그 말에 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마교의 무공을 익혔다 하나 난 천마교 사람은 아니야. 그곳에서 난 죽은 존재거든.”
  씁쓸하게 웃는 유현을 보며 소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죽은 존재?”
  “그래.”
  “흠... 죽은 존재? 흠... 잠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소현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당신 이름이 유현이라고 했지?”
  “그건 왜?”
  “성이 하 씨?”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하... 유현?”
  “내 이름이 하유현이 맞기는 하지.”
  그 말에 소현이 굳어버렸다. 그러자 유현이 소현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
  “정신차려. 이름만 같지 그 녀석은 남자고, 난 여자야.”
  동일인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유현의 말에 소현이 물었다.
  “여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너처럼?”
  “크윽! 그 소리가 왜 나와!”
  유현의 말에 소현이 버럭 소리쳤다. 소현은 아직도 여자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낄낄거린 유현이 말했다.
  “의심되면 확인해볼래?”
  은근한 유현의 소곤거림에 소현의 얼굴이 벌겋게 변한다.
  “무, 무슨 여자가!”
  “거봐, 너도 날 여자로 인정하고 있잖아?”
  유현의 말에 소현은 아무 말도 못했다. 유현은 피식 웃은 다음 말했다.
  “그것보다 그 멍 말이야. 잘 안 가라앉네?”
  그 말에 소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크윽! 내공을 실어서 때려서 가라앉지도 않아!”
  “큭! 귀여운데?”
  “으윽! 말 다했어?”
  “하하하하하!”
  소현의 말에 유현이 유쾌하게 웃었다. 꼭 키라이스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가 바로 소현이었다.
  ‘흐음... 그 녀석은 어디 있으려나? 휘안이랑 붙어 있으려나?’
  잠시 키라이스트를 생각한 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뭐, 마황자씩이나 되니까 아무 일 없겠지.’
  키라이스트는 자신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 * *
  아침식사 시간.
  “호~ 그 멍은 뭐냐?”
  무극선이 소현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소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떤 난폭한 여자가 절 패더군요.”
  “아직 정신 덜 차렸지?”
  유현의 말에 소현은 냉큼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소현을 한번 슥 노려본 유현이 자리에 앉았다.
  화린 역시 유현에게 얻어 터졌지만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화린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복면을 쓰고 다녔지만 그것보다는 가면이 너 낫겠다는 화린의 말에 유현이 가면 하나를 줬던 것이다.
  물론 화린에게 건넨 가면은 평범한 가면이었다. 유현이 쓰고 있는 가면은 에랴나니스가 유희 때 사용했던 것으로, 가면 자체가 통째로 오리하르콘이었다. 그러니까 오리하르콘으로 온몸을 감싸다시피 한 유현이었다.
  아무튼 화린도 가면에 익숙해졌기에 별로 불평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다가 문득 천성선이 물었다.
  “자네의 무공 경지는 어느 정도 되는가?”
  “뭐, 선배들이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 말에 무극선이 말했다.
  “최소 현경이란 소리군.”
  그 말에 이들과 같이 식사를 하던 장문인이 놀란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본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현경의 경지라니...라는 표정이다.
  “혹시... 반로환동의 고수이십니까?”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 환골탈태?”
  "내 모습은 원래 모습 그대로야. 결코 반로환동이나 환골탈태를 한 것이 아니야."
  그 말에 장문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극선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나이에 그 정도 무공 경지를 이룩한 것인가? 대단하군.”
  그런 무극선의 말에 유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별로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런 유현을 보며 빙긋 웃은 무극선이 말했다.
  “그런데......”
  잠시 뜸을 들이는 무극선을 보며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는 마교의 교주와 무슨 관계에 있는가?”
  그 말에 모든 사람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물론 장문인은 혹시 저 여자가 마교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유현 일행은, 특히 소현은 그것이 들통이 난다면 종남파 전체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었다.
  태연한 것은 유현과 이야기를 꺼낸 무극선... 그리고 천성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현이 말했다.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천성선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자네가 몰라서 그런가보군. 우리 정도 나이가 되면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고 늙은이들끼리 가끔 만난다네. 당연히 천마교의 태상교주와 그 전의 교주도 여러 번 만났지.”
  그 말에 유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결국 우리도 천마신공을 몇 번 접해본 적이 있는데... 자네의 무공의 느낌은 천마신공과 비슷했어.”
  그 말에 장문인도 슬슬 유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런 장문인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덤빌거야?”
  유현의 말에 장문인이 기세를 피어 올렸다.
  “떽! 감히 우리가 식사를 하는데 어디서 기세를 피우느냐!”
  그 말에 장문인이 당황하며 기세를 거두었다. 유현이 피식 웃으며 무극선에게 말했다.
  “제가 천마신공을 익히긴 했습니다만... 천마교에서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존재를 아는 이라고 해봤자 혈사 아저씨와 살혈 아저씨가 다입니다.”
  그 말에 장문인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교의 교주 광마와 천마교의 장로 혈겁을 아저씨라 칭하는 이가 있을 줄이야!
  무극선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혈사라면 천마교의 현 교주를 말할 것이고... 살혈이라면 살가의 장로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 두 사람에게 아저씨라 칭하다니... 넌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그 말에 유현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세계의 존재입니다.”
  “다른 세계의 존재라...”
  유현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다가 잠시 후 무극선이 물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기는 하다만... 넌 마도의 인물이 아닌게냐?”
  “글쎄요? 일단 천마신공을 익히긴 했지만... 제 내공이 마기를 띄기보다는 빙기를 띄고, 이 세계에서 볼일이 끝난다 하더라도 천마교에 가서 교주 노릇을 할 생각은 없으니 마도의 인물이라 보기는 힘들겠군요, 중도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 말에 무극선이 히죽 웃는다.
  “중도의 인물이라... 그것도 좋지.”
  그렇게 중얼거린 무극선이 다시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목표가 뭐지?”
  그 말에 유현이 날카롭게 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살후, 참우강, 귀모가, 한천, 산후. 이 다섯 놈의 목을 따버리는 것이 제 목적입니다.”
  그 말에 장문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으며, 무극선은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다들 천마교의 장로들의 성이 아닌가? 너와 천마교는 적인가?”
  무극선의 말에 종남파 장문인이 말했다.
  “그들은 천마교의 배신자들입니다.”
  그 말헤 이번에는 천성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배신자? 그들은 천마교 장로들의 집안 사람이 아닌가?”
  “장로들이었죠.”
  “그런데 왜 배신자란 말인가?”
  “3년 전... 그들은 천마교의 소교주가 출신이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힘을 숭배하는 천마교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유현보다 한발 앞선 장문인의 말과 함께 유현의 몸에서 소름끼치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 살기는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본능적으로 전투태세를 취하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자신이 흥분한 것을 깨달은 유현이 살기를 억누르며 말했다.
  “하하하. 제 앞에서 타인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좀 흥분한 모양입니다.”
  유현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성선이 조심스레 물었다.
  “남궁세가로 간다고 한 것 같은데...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뭔가?”
  “친구를 좀 만나려고요.”
  “친구?”
  “네.”
  그 말에 무극선이 묻는다.
  “네 친구의 이름이 어떻게 되냐?”
  “남궁휘안”
  “흠... 장문인, 누군지 아냐?”
  그 말에 장문인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낭궁세가의 소가주입니다. 3년 동안 행방불명되었었는데, 얼마 전 다시 돌아온 아이입니다.”
  그 말에 천성선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행방불명이라.......”
  잠시 생각하던 천성선이 웃으며 말했다.
  “볼일이 있다고 하니 오래 잡을 수는 없겠군.”
  그렇게 말한 무극선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 아이를 만나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바쁘다니 참 안타까워.”
  그 말에 천성선이 말했다.
  “사형, 바쁜 사람을 잡는 건 도리가 아니지요. 대신 다음에 다시 보면 될 것 아닙니까?”
  “헐헐헐, 그렇군. 몇 년에 한번 씩 늙은이들 모임만 가셔서 별로였는데... 다음번에는 나들이나 나가볼까?”
  “그것도 좋지요.”
  그렇게 웃는 무극선과 천성선을 바라보던 유현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사백조부님들!”
  그 말에 장문인이 기겁하며 말했다. 저런 마교 출신의 고수가 나왔는데 그것은 은폐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떽! 장문인! 만약에 저 아이를 마교의 사람이라고 만약에라도 알린다면 종남파에 어떤 일이 생길지 잘 생각해보야 할 것이야!”
  그 말에 장문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종남파가 발칵 뒤집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 하오나 마교인입니다. 사백조부님들 나이가 된다면 정, 사, 마는 그렇게 상관없을지 모르나 저희들은 다릅니다!”
  그 말에 두 노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장문인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장문인을 힐끔 바라 본 유현이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어. 난 정파에 해 끼칠 생각 없거든. 물론 내 앞길을 막는다면 그대로 아작을 내고 갈 테지만... 어쨌든 그게 정파든 사파든, 천마교든 상관없어. 어디까지나 내 궁극적인 목적은 혈교이니까.”
  그 말에 무극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거봐라, 자신에게 해가 안 된다면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지 않느냐? 나쁜 짓을 할 아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너희들이 저 아이를 핍박하지만 않는다면 되는 일이 아니더냐?”
  결국 장문인은 유현이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것은 눈물을 머금고 은폐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부드럽게 말하고 있지만 말을 안 듣는다면 가만 안 둔다는 두 노인의 기세가 절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현 일행은 종남파에 머무는 동안 거의 없는 듯 행동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종남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남궁세가 도착
  종남파를 나서 안휘로 갈 때까지 유현 일행은 아무 문제없는 순조로운 여행을 계속했다. 물론 이것은 유현 일행의 기준으로 순조로운 여행이지, 일반인에게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 할 수도 있으리라.
  그 일례로 산적들과 엄청 많이 만난 유현 일행이었다. 물론 유현 일행과 마주한 산적 일행은 살아남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유현 일행은 안휘성으로 향했고,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 강행군을 펼치지는 않았기에 그렇게 거의 이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남궁세가가 위치한 황산에 도착했다.
  “남궁세가로 바로 가지.”
  “정말 남궁휘안과 친분 있는 거 맞지?”
  소현의 말에 유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번만 더 그 질문하면 나한테 죽는다.”
  도대체 몇 번째인지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 유현이었다. 하지만 소현도 소현 나름대로 저 난폭하고, 그것도 모자라 천마신공을 익힌 여자가 정말 정파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휘안과 친분이 있을지 의아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튼 유현의 말에 소현은 입을 다물었고, 그런 그를 힐끔 본 유현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화린과 무뚝뚝하게 서 있는 은월을 데리고 남궁세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궁세가로 향하던 유현이 갑자기 우뚝 제자리에 섰다. 유현이 걸음을 멈추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현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린, 은월, 소현도 유현이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한 무리가 있었다. 뭐라 할까, 참 특이한 조합이었다. 한명의 미남자와 두 명의 미녀. 특히 그중 한 미녀는 백금발에 녹안을 가진 색목인이었다.
  네 사람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들도 유현 일행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 중 색목인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자의 시선은 정확하게 유현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굳어진 채 놀란 듯 유현을 바라보던 색목인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유현 일행 쪽으로 달려왔다.
  “누나!”
  색목인, 유한이 활짝 웃으며 유현에게 달려들었다.
  퍽!
  “우욱!”
  기쁜 나머지 자신을 안으려는 듯 달려든 유한의 얼굴에 주먹을 작렬시키는 유현이었다. 얼굴을 감싸 쥐는 유한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어디서 안겨들어와?”
  “으아! 이전에는 이래도 뭐라 하지 않았잖아!”
  “네가 한 일 생각 안 나냐? 너 같으면 그런 짓을 한 녀석을 품에 안기게 그냥 놔 둘 것 같으냐?”
  유현의 말에 유한이 침묵했다.
  그런 유한을 바라보며 소현이 소곤소곤 묻는다.
  “이 녀석은 뭐야?”
  그 말에 유한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유현에게 묻는다.
  “뭐야? 이 계집애는?”
  빠직!
  유한의 말에 소현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생겼다.
  “이 계집애가 누구 보고 계집애라는 거야!”
  빠직!
  소현의 말에 이번에는 유현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솟았다.
  “야! 너 아까 내가 누나라고 부르는거 못 들었어?”
  “크악! 이 그 얼굴에 누가 너를 남자라고 믿겠냐!”
  “그럼 너는 여자 옷을 입고 있잖아. 그렇게 나 여자라고 광고를 하면서 너야말로 누가 남자로 믿어?!”
  “이 자식! 한번 붙어 볼래?”
  “덤벼!”
  서로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두 사람. 하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은 한 존재에 의해 저지되었다.
  퍼억!
  바로 다시 두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유현이었다. 두 사람이 얼굴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자 유현이 말했다.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있어.”
  고작 서로의 여자 같은 외모 때문에 소리를 박박 지르는 두 녀석의 행동에 짜증이 치미는 유현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은 정말로 여자가 되었는데! 복 터진(?) 두 녀석이 싸우는 꼴을 참을 수 없는 유현이었다.
  “왜 때려!”
  “으윽... 누나 너무해.”
  그 말에 유현이 빙긋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섬뜩했다.
  “이 김에 진짜로 확 여자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입 닥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어떻게?”
  “혹시 아냐? 물건 잘라버릴지?”
  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두 사람... 저 인간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바로 입을 다무는 두 사람을 보며 코웃음을 친 유현과, 그런 유현을 향해 악마라고 중얼거리는 화린. 그리고 슬그머니 유현 근처에서 떨어지는 은월.
  물론 그런 그들의 반응에도 유현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 무언가를 자르는 시늉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묘한 대치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유한과 같이 있던 여인과 남자가 다가왔다. 그들을 보며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냐?”
  그 말에 유한이 말했다.
  “에... 이 사람들은......”
  하지만 유한보다 그들이 빨랐다.
  “저는 남궁세가의 둘째 남궁성휘라고 합니다.”
  “남궁세가의 여식 남궁휘연이라고 해요.”
  그 말에 유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휘안이 동생이라고?”
  그 말에 휘연과 성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오라버니를 아세요?”
  휘연이 눈을 크게 뜨며 묻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
  “누나랑 휘안 형, 그리고 나랑 안영은 3년 동안 계속 같이 있었어.”
  그 말에 휘연과 성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렇다면 형이 3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아시겠군요?!”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한에게 말했다.
  “이 녀석 왜 이런 반응을 보이냐?”
  그 말에 유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휘안 형이... 지난 3년 동안 자신이 뭘 했는지 아무 말도 안했거든.”
  “아... 하긴, 녀석이 그런 걸 떠들고 다닐 성격도 아니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을 보며 휘연이 말했다.
  “유한도 그렇고 안영 소협도 그렇고, 다들 오라버니가 3년 동안 뭘 했는지 그냥 웃기만 하며 안 가르쳐줘요, 가르쳐 주세요.”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휘안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데 내가 왜 떠벌려?”
  그 말에 휘연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보다, 유한이라니?”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유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이야, 하유한. 중원에 있는 동안 이 이름을 사용하려고.”
  그 말에 유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비꼬듯 말했다.
  “왠지 내 이름과 거의 비슷해 보이는 이유가 뭘까?”
  “하하... 어차피 친한 동생, 누나 사이 아니야?”
  “누구 마음대로?”
  유한의 말에 유현이 으르렁거린다. 그런 유현의 반응에 움찔 하는 유한, 그런 유한을 바라보던 유현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휘연과 성휘를 보며 말했다.
  “휘안은 지금 남궁세가에 있냐?”
  “에? 아, 네.”
  당당한 태도의 유현을 보며 왠지 주눅이 드는 것을 느끼는 휘연과 성휘였다. 그런 그들에거 유현이 말했다.
  “바쁜 일 아니라면 남궁세가에 좀 갔으면 하는데......”
  “아, 네.”
  보통 때라면 유명한 후지기수나 어른이 아니라면 신경도 안쓸 테지만, 상대는 휘안의 친구라고 한다. 휘안과 늘 붙어 있는 유한도 인정한 사실이기에 유현과 휘안을 빨리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한 성휘와 휘연이었다.
  우현을 안내해주려던 두 사람은 다음에 들린 유현의 말에 잠시 멍해져야만 했다.
  “휘안이 뭘 했는지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말해 줄 수 있지, 휘안은 참 멋있었다.”
  혼잣말인 듯 소곤거리며 스쳐지나간 유현의 말. 그리고 잠시 후 성휘와 휘연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흐음... 질투가 나는 걸?”
  멀어지는 유현의 등을 보며 유한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잠시 후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죗값을 치러야지... 지금은 질투도 별 필요도 없는 감정이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유한은 이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미치도록 괴로운 일이구나......”
  차갑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전에 인간 키라이스트의 시절과는 다르다. 마황자가 되어 유현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을 때부터 차가워진 유현.
  방법이 틀렸던 것일까?
  “후회해봤자......”
  후회 따위는 안 할 거라 생각했었다.
  “젠장! 후회되잖아!”
  이제는 저 멀리 떨어진 유현들을 보며 유한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한의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 하나.
  “야! 빨리 안 오고 왜 멍청하게 서 있어! 빨랑 안 튀어와?”
  버럭 소리를 치는 유현. 그런 유형을 고개 들어 바라보는 유한은 어느새 괴로운 표정을 지은 상태였다.
  “가, 갈게!”
  유한은 득달같이 달려서 유현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유현의 뒤에서 유현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후회해도 소용없지......’
  다만... 용서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용서라는 단어는 지금 그에게 있어 너무 과분한 단어다.
  그러니까 일단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곁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은가. 기쁘지 않은가. 그거면 충분한다. 욕심내봤자 다시 이전과 같은 일을 되풀이 할 뿐인 것이다. 유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휘안이 움찔했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떴다. 흑요석 같은 그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휘안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왔나?”
  휘안의 감각에 어마어마한 양의 기가 감지되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빙기였다. 물론 그 빙기는 그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기운이기도 했다.
  “에이라나, 좀 늦었어.”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궁세가 안으로 들어온 유현의 감각에 뭔가가 잡혔다. 그 감각은 뒤쪽에서 느껴졌다.
  “언제 남의 뒤에 서는 취미가 생겼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보고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긴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트리고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휘안이 웃으며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유현의 말에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 휘안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울론 유한은 아니었지만.
  휘연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오라버니, 언제 그곳으로 가셨어요?”
  “방금 전에.”
  휘연의 물음에 대답한 휘안이 유현을 보며 말했다.
  “늦었어.”
  “아, 짐짝들이 세 개나 있어서.”
  “물건 취급하지 마!”
  “물건 취급하지 마라!”
  “크악! 당신이 끌고 온 거잖아!”
  유현의 말에 냉큼 반박하는 화린, 은월, 그리고 소현. 하지만 유현은 그런 그들을 무시했다.
  휘안이 유현에게 다가와 리샨어로 말했다.
  “무연이... 왔다갔다.”
  “무연 형이?”
  휘안의 말에 유현이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그런 유현을 보며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때문에 왔어?”
  “그냥... 아무 이유 없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유현이 쓰게 웃었다.
  “그래?”
  휘안의 말에 유현은 살짝 웃었다.
  “그거 다행이네.”
  유현의 말에 휘안이 피식 웃었다. 그들은 리샨어로 말하던 것을 중단하고 다시 중원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에 오는 것은 처음인가?”
  “어.”
  휘안과 친분이 있는 유현이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남궁세가에 들어온 적은 없는 유현이었다. 유현의 말에 휘안이 말했다.
  “남궁세가에 온 것을 환영한다.”
  휘안의 말에 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신세 좀 져볼까?”
  그렇게 말한 유현히 휘안을 따라 걷기 시작하며 화린, 은월, 소현을 돌아보았다. 짧은 여행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왠지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유현이었다.
    말괄량이 공주
  “우와! 저거봐요, 언니!”
  “어머~ 이 장신구 예쁘다!”
  “그렇죠? 이것도 예쁘지 않아요?”
  “우와! 정말이네!”
  유현이 얼굴을 구긴다.
  "야! 뭘 그리 오랫동안 물건을 사? 빨리 좀 사!"
  유현이 짜증을 부리며 말하자 화린이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언니는 여자면서 여자의 즐거움을 너무 몰라!”
  “죽고잡냐?”
  유현이 버럭 소리를 치자 화린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유현이 뭐 때문에 소리를 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유현이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애초에 왜 날 데려오고 난리야?”
  유현의 말에 화린이 말했다.
  “언니도 여자잖아?”
  “내가 이런 거 안 좋아하는 거 알 텐데?”
  “그래도 남자들이랑 같이 오는 것보단 여자랑 같이 오는 게 편해.”
  그렇게 말하는 화린을 노려보던 유현이 말했다.
  “나는 사내놈이나 마찬가지야.”
  “성격이 그렇다는 거지, 성별은 여자잖아?”
  화린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하는 유현이었다. 아무튼 한숨을 푹 쉰 유현이 말했다.
  “어쨌든 빨리 골라라. 기다리게 하지 말고.”
  “에이~ 그러지 말고 언니 것도 몇 개 고르자.”
  그렇게 말한 화린이 유현을 억지로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화린과 휘연의 수다. 유현은 짜증이 일었다. 몸은 여자지만 영혼은 남자인지라 이 따위 장신구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유현은 왜 이 두 사람을 따라 왔을까를 심각하게 후회했다.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화린과 희연이 마을에 장신구를 산다고 유현을 끌고 나온 것이다.
  500년 동안 장신구라고는 에랴나니스가 강제로 달게 하는 것 빼고는 몸에 걸쳐본 적이 없었던 유현이기에 스스로는 장신구점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그녀였다. 전생에는 더더욱 가 본적 없었고.
  아무튼 아침부터 어찌나 재잘대면서 조르던지, 할 수 없이 따라온 유현이었다. 유현이 가지 않는다고 계속 버티면 아예 그 자리에서 뻗대며 울어버릴 기세의 화린이었디 때문이다.
  가게 안으로 자신을 끌고 들어온 유현은 아예 포기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한구석에 있는 가게 의자에 앉아 그녀들의 속이 다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로 한 것이다.
  화린이 장신구 하나를 보며 감탄했다.
  “와, 이거 정말 예쁘다.”
  그 말에 휘연이 고개를 돌렸다.
  “아, 이거?”
  휘연이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화린이 묻는다.
  “어? 이거 알아?”
  “응, 이전부터 가지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살 엄두를 못내겠어.”
  “얼만데?”
  “금자 스무냥.”
  “헉!”
  장신구 치고는 너무 비싸다. 금자 스무냥이면 농경지도 살만한 금액인 것이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이 가게는 안휘에서도 아주 유명한 곳으로 천하상단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남궁세가 라고 하나 조그마한 장신구 하나 때문에 스무 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장신구는 금으로 만들고 금강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유명한 장인이 세공을 맡아 했는지 정밀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화린은 하염없이 감탄했다.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도둑이 들만도 했지만 경비가 워낙 철저하기 때문에 도둑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삼엄한 경비를 뚫을 정도 된다면 한가락 하는 고수기 때문에 굳이 도둑질을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화린이 한쪽에서 눈을 감고 있는 유현을 깨우며 말했다.
  “언니, 이거 예쁘지?”
  화린이 어깨를 잡아 흔들자 유현이 슬쩍 눈을 떴다. 그리고 힐끔 장신구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니, 별로.”
  유현의 말에 화린이 말했다.
  “엑? 이게 안 예뻐?”
  “너 내 가면이 예쁘냐? 저게 예쁘냐?”
  “...언니 가면.”
  그렇게 말한 유현이 다시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무심한 목소리로 묻는다.
  “갖고 싶냐?”
  유현의 퉁명스러운 말에 화린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저거 갖고 싶냐고.”
  유현의 말에 화린은 안타까운 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에... 가지고 싶긴 하지만... 너무 비싸고... 나한테 어울릴지도 의문이고......”
  “이봐, 저거줘.”
  유현은 그런 화린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종업원에게 말했다.
  “헛!”
  “유, 유현소저. 돈 있어요?”
  “언니! 금자 스무 냥이야! 못 들었어?”
  유현의 말에 종업원 휘연, 화린이 기겁하며 말했다. 하지만 유현은 신경 쓰지 않고 품을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던졌다.
  툭!
  뭔가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금덩이들을 보며 입을 쫙 벌렸다.
  휘연과 화린 역시 그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 이게 뭐야?”
  화린이 몹시 경악하며 묻자 유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금.”
  “아니, 금인 건 아는데! 저런 금덩어리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냐고!”
  “내 주머니에서.”
  그 말에 화린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휘연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금덩어리들을 장난감 다루는 듯한 유현의 태도라니.
  아무튼 유현의 행동에 종업원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손님.”
  그때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유현을 부른다.
  “왜?”
  “여기 장신구 값을 뺀 나머지 금...”
  종업원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셈이 틀린다면 손목이 달아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금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마어마한 집안의 사람일 것이 분명 했다. 뭐 사실 유현의 집안이 어마어마하기는 하다. 드래곤 집안이니 말이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부자다. 레어에 황금 덩어리를 쌓아두고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드래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중원에 오기 전 에랴나니스가 돈이 필요할지 모른다며 강제로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유현의 아공간에 강제로 집어넣기도 해서 황금이라면 넘쳐나는 유현이었다.
  아무튼 종업원에게 주머니를 건네 받은 유현은 품속에 아무렇게나 황금을 넣으며 종업원이 건넨 장신구를 집어 화린에게 던져 줬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품에 안은 화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에, 이걸 왜 나한테?”
  “너 주려고 산거다.”
  화린의 말에 유현이 시튼둥하게 대답했다.
  “에?”
  “너 주려고 산거라고.”
  화린의 어벙한 반응에 유현은 확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 이렇게 비싼 걸 받아도 될지......”
  당황해 하는 화린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그냥 받아라, 네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산거니까.”
  퉁명스러운 유현의 말에 화린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장신구와 유현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고, 고마워......”
  화린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가서 한번 달아봐.”
  “응, 헤헤헤......”
  유현의 말에 화린이 베시시 웃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휘연이 그런 화린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화린이는 좋겠네?”
  “응? 응, 헤헤......”
  “그렇게 좋니?”
  “저도 여자라구요, 이런 예쁜 머리 장식을 좋아하죠.”
  “하긴......”
  화린의 말에 휘연이 웃으며 말했다. 휘연 역시 화린이 부러운 듯했다.
  “그것보다, 언니는 이런데 관심 없어?”
  화린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그러자 유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데도 쓸모없는 그딴 머리 장식에 관심 없어.”
  “이상해.”
  “이상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마라.”
  유현의 말에 화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난 언니 얼굴도 한번도 못 봤구나.”
  그렇게 말한 화린이 뒤돌아서서 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궁금해!”
  “궁금해 하지 마라.”
  화린의 말에 유현이 딱 잘라 말했다.
  “으윽! 그러지 말고 보여주라?”
  “맞을래?”
  그 말에 움찔하는 화린, 아무튼 그렇게 화린이 다시 앞을 돌아보려고 할 때였다.
  툭!
  “아앗!”
  누군가 화린에게 부딪혀왔다. 그 충격에 화린과 부딪친 아이는 물론이고, 화린까지 넘어지고 말았다.
  털썩!
  물론 화린은 엉덩방아를 찧는 것으로 끝났다. 화린에게 부딪힌 아이는 그녀보다 좀 더 작아 보이는 아이였다.
  “괜찮니?”
  화린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일어나며 아이에게 묻는다.
  탁탁탁!
  하지만 아이는 그런 화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니, 달려가려고 했다.
  덥석!
  유현에게 붙잡히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콩알만 한 놈이 어디서 대낮부터 도둑질이야?”
  유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화린과 부딪힌 아이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올렸다.
  유현의 키는 여자치고 큰 키였다. 그렇기에 유현이 아이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 올리자 아이는 그대로 잡혀 올라가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했다.
  “이거 놔!”
  아이는 유현에게 뒷덜미를 잡히자 당황하며 몸부림 쳤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몸부림에 그 아이를 놓칠 정도로 유현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유현은 아이의 외침을 무시하고 아이의 발목을 잡아챈 채 거꾸로 탈탈 털기 시작했다.
  “아악! 하지마!”
  유현이 아이를 털자 온갖 물건이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이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만 유현은 그런 아이의 말을 들어줄 만큼 착하지 못했다.
  아이의 품에서는 방금 전 유현이 화린에게 사준 머리 장식도 떨어졌다.
  “어어, 저건 내 거 아니야?”
  화린이 당황하며 소리치자 그런 화린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는 유현이었다.
  “아야!”
  “넌 어째 사줘도 도둑맞을 뻔하냐?”
  그렇게 말한 유현이 하도 털려 정신이 해롱해롱한 아이를 눈앞에 가져다대다시피 보며 말했다.
  “이거 여자잖아?”
  그것도 상당히 귀티 나는 여자아이였다. 옷은 평범한 옷이었는데 얼굴에는 감추지 못하는 품위가 배어 있는 것이, 여느 평민 아이의 얼굴은 아니었다.
  유현의 꿀밤의 위력이 상당했었는지 화린은 여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사이에 휘연이 떨어진 화린의 머리 장식을 챙기며 말했다.
  “그 여자애는 어떻게 할 거에요?”
  “흠? 관에 넘길까?”
  유현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차린 듯 아이가 소리쳤다.
  “이익!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
  “난 바로!”
  막 호기롭게 외치려던 아이가 멈칫한다. 그리고 뜸을 들이며 끙끙대기 시작했다. 유현이 비웃으며 말했다.
  “별 것도 없잖아? 이런 허풍쟁이는 그냥 강물에 던져버려서 정신 좀 차리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말에 휘연이 말했다.
  “좀 심하지 않아요?”
  “나도 떠돌이 고아생활 몇 년을 했지만 소매치기는 안 했어.”
  그 때도 유현은 자존심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소매치기 따위는 하지 않았었다.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었지만 특유의 전투 감각 덕분에 혼자 힘으로 살아갔다.
  아무튼 유현의 말에 휘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유현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진한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살기를 느낀 유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이건?”
  그와 함께 유현의 주위를 포위하는 한 무리. 그런 그들의 등장에 유현은 자신에게 잡힌 소녀와 자신을 포위한 무리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뭐냐? 너흰?”
  의아해하며 묻는 유현이었지만, 상대들에게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유현은 그들의 복장을 보고 머리를 굴렸다.
  황색 도복을 입고 황색 두건을 쓰고 있는 이들. 그리고 도복에 수 놓아져 있는 황룔과 그들이 차고 있는 검집에 새겨진 황룡. 이것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금의위인가?”
  그 말에 유현을 포위하는 이들이 경계 자세를 취한다.
  “흠... 난 황실에 아무런 짓도 안 했는데 왜 공격을 받는 것일까나?”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유현을 보며 이들을 이끄는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의 무례한 손으로 잡고 계신 분이 누군지나 아시오?”
  “응? 이 꼬맹이? 소매치기.”
  그 말에 그가 잠시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공주마마!”
  “힉! 내, 내가 뭘!”
  그와 함께 유현의 손에 잡혀 있던 아이가 기겁하며 말했다.
  “이번 여행만큼은 조용하게 하겠다고 하셨으면서 몰래 도망간 것도 모자라 소매치기까지  하십니까?”
  “난 모르는 일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유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이 꼬맹이가 이 나라의 공주라고?”
  유현의 말에 금의위 수장이 잠시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 강압적으로 말했다.
  “아셨으면 공주님을 놔주시오!”
  “그러지 뭐.”
  유현은 공주를 잡고 있던 손을 놨다. 하지만 공주는 지금 유현에게 잡혀 땅바닥과 발바닥이 닿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 유현이 손을 놓자마자 중력의 법칙에 의해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공주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쿵!
  “꺅!”
  살짝 비명을 지른 공주가 엉덩이를 문지르며 울먹거렸다.
  “히잉... 아파......”
  공주가 울먹거리자 금의위 수장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짓이오!”
  “니가 놔 달라면서! 새끼야!”
  그의 말에 오히려 유현이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자신은 놔달라고 해서 놔줬을 뿐이다. 그런데 오히려 소리를 치니 안 그래도 여자들의 수다로 머리가 아프던 차에 짜증이 이는 유현이었다.
  유현의 박력 있는 외침에 움찔하는 금의위 수장. 그런 그를 향해 코웃음을 친 유현이 두 여자들에게 말했다.
  “가자.”
  “어, 응.”
  “같이 가요.”
  유현이 화린과 휘연을 데리고 사라지자 금의위 역시 소매치기 공주를 데리고 빨리 자리를 떴다.
  “저... 황실의 공주님을 그렇게 대해도 괜찮아요?”
  “흥! 어차피 무림과 황실은 불가침관계야.”
  “그렇지만... 이 나라의 공주님인데.......”
  “상관없어.”
  휘연의 말에 유현이 딱 잘라 말했다.
  사실 그렇다. 유현은 이 나라의 황제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위인이다. 어차피 다른 세계의 존재이니 이 나라의 황제가 죽든,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하든 유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유현의 말에 그런 사실을 모르는 화린이 말했다.
  “역시 언니는 막나간다니까.”
  퍽!
  “끄악!”
  화린의 말에 유현이 그대로 주먹을 들어 화린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화린은 엄살을 부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꼭 매를 벌어요.”
  그런 화린을 보며 혀를 차는 유현이었다.
  ***
  “히잉... 그 머리 장식 꼭 가지고 싶었는데.”
  여화 공주가 투정을 부리며 말했다. 조금 전 화린에게 소매치기를 시도한 공주의 이름이 바로 여화였다.
  그런 그녀의 말에 그를 호위하는 제 오단 금의위 수장 한가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화 공주마마, 황태자 전하께서 여화 공주마마의 여행을 허락하신 것은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고 하셨기에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계속 말썽을 부리시면 다시 황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조금 엄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는 가건의 태도에 여화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건 절대 안 돼!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다니! 절대 사절이야!”
  여화의 말에 한숨을 푹 쉰 가건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말썽 피우지 마시라고요.”
  사실 여화가 마음먹고 도망간다고 하면 오단 금의위 무사들도 잡기 힘들었다.
  여화는 어릴 때부터 무공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경공에 관심이 많아 제대로 익혔기에 상당한 경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먹고 도망간다면 금의위 무사들도 이를 악물고 고생을 해야 잡을 수 있었다.
  아무튼 평소에 지루한 것을 싫어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화에게 황궁은 너무도 지루한 곳이었다.
  무겁고 진중하며 변화가 없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그녀는 역동적이고 활기찬 바깥을 좋아했다.
  장차 황제가 될 황태자의 유일한 혈육인 여화 공주였다. 그런 여화 공주가 해 달라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 되도록 모두 들어주는 황태자였다.
  그럼에도 그런 그녀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는 황태자 역시 반대했다. 아직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여동생이 저 험한 세상을 여행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무림은 아주 어지러운 상태였다. 얼마 가지 않아 무림 세력들끼리 부딪쳐 난리가 날지도 모르는 상황임이 속속 보고되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황실과 무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무림인들은 귀신같은 무공으로 산적을 막아주는가 하면 세력 다툼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죽거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황실에서 그 도가 넘지 않는 이상 그러한 것을 묵인해주는 이유는 저렇게 무림 세력끼리 부딪쳐야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림인은 허술한 상대가 아니다. 현 무림 4대 세력 중 한 세력만이라도 황실에 칼을 겨눈다면 황실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정도였다.
  황실 사람들 중 태반이 무림인들을 천하게 여기고 비웃고 있지만 만약 무림인들이 작정을 하고 나선다면 그들의 손에 의해 이 나라가 멸망할 수 있을 정도였다.
  황태자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무공을 익혔다. 그리고 여러 무림인들과의 비무도 해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황실 사람들이 최고라 자부하는 황실 무학은 무림의 무학에 비하면 달과 반딧불과 같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말이다.
  긴 무림 역사 동안 무림에서 나라를 직접 공격한 예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황실 사람들은 무림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서로를 견제하며 서로의 힘을 좀먹어야 황실이 위태롭지 않기 때문에 세력 싸움에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외면하는 황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황태자는 여화 공주의 여행을 적극 반대 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가출할 것이라는 여화 공주의 협박에 결국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황태자는 금의위의 십단 중 한 개의 단을 여화 공주에게 붙여주었다. 그것이 바로 금의위 오단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금의위 오단은 이 말괄량이 공주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여화 공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무튼 그것보다 방금 그 여자 말이야.”
  “예? 그 여자라고 하시면......”
  “그 은빛 가면을 쓴 여자 있잖아.”
  “아, 그 무림인 말입니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건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유현의 유례없는 무례한 행동 때문이었다.
  아무리 황실과 무림인 서로 상호 불가침 관계라지만... 한 나라의 공주를 그런 직으로 다루다니. 충직한 그로서는 그런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가건이 얼굴을 찌푸리자 잠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화 공주가 말했다.
  “나, 그 여자랑 같이 여행하고 싶어졌어.”
  “네?”
  여화 공주의 말에 가건이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공주마마, 그것은 절대 안 됩니다! 어디에 속한지 알지도 못하는 그런 이를... 그리고 너무 무례하옵니다!”
  당연하게도 절대 반대하는 가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 알겠습니다’하고 가건의 말을 듣는다면 황실에서도 이름난 말괄량이 공주 여화가 아니었다.
  “시끄러워! 내가 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줄 알아! 안 그러면 또 도망가버린다?”
  “공주마마!”
  “그 대신! 그 여자와 같이 여행하면 이번 여행 내내 조용히 있을게, 응?”
  그 말에 가건은 귀가 솔깃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 말괄량이 공주가 방금 보았던 여자와 여행을 한다면 가만히 있겠다는 소리를 한 것이다.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응! 당연하지!”
  그 말과 함께 가건이 소리쳤다.
  “방금 그 소저들을 찾아! 어서!”
  “예!”
  가건의 말과 함께 제 오단 금의위 무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말썽 안 부리는 여화 공주와의 여행을 꿈꾸는 것은 똑같았기 때문에 유현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실 여화 공주가 유현과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화 공주가 보기에는 유현이 어마어마한 고수라는 점이었다.
  여화 공주는 무공에 대해 감이 상당히 좋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느껴지는 위화감 같은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경공술을 사용하기도 전에 자신을 잡아버린 그 반응속도! 그것은 지금 자신을 호위 하는 금의위 제 오단의 수장인 가건으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마주했을 때 느껴졌던 무시무시한 위화감... 그 차갑고도 흉포한 기운은 순간 여화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였다.
  아무튼 그런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진 그녀와 같이 다니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실력이 이유가 아니었다. 그렇다. 여화 공주는 너무도 심심했던 것이다. 친구를 만들려고 해도 자신의 신분을 알면 어려워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는 여화 공주였다. 그런데 그 여인은 달랐다.
  자신이 공주라는 것을 알았어도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쌀?맞게 대하는 것 같았다. 여화 공주에게는 그것이 신기한 한편 편안하기까지 했다.
  오라버니와 똑같이 자신을 대해주는 이는 오라버니 봅인을 제외하곤 그녀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금의위 무사들은 그들이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사실 남궁세가의 사람은 휘연 뿐이지만, 휘연과 같이 다니는 이들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남궁세가의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도 남궁세가 안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말이다.
  금의위 무사들은 모여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남궁세가라면 황실에서도 소문난 가문이 아닙니까?”
  “그들의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긴 하지......”
  “그런 그들이라면 아무리 저희가 동행해달라고 해도 동행해 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가건은 고민했다. 남궁세가는 천하에서 오대세가라 불리는 가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강제적으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껄끄러운 면이 많았다. 처음에는 황실의 이름을 빌거나 무력을 써서라도 강제로 동행할 생각을 했던 가건이었지만 그 마음은 싹 사라졌다.
  물론 남궁세가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강제로 동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었지만......
  아무튼 이는 앞으로 남은 여행에서 여화 공주가 조용할지 조용하지 않을지가 걸린 중요한 문제였다. 그녀가 조용하면 금의위 오단 무사들은 행복할 것이고, 조용하지 않으면 금의위 오단 무사들은 불행할 것이다.
  아무튼 모두가 머리를 모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무사가 말했다.
  “호위의뢰를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호위의뢰?”
  “예, 돈이 좀 들겠지만 그것쯤이야 호위할 사람이 늘었다며 황태자 전하께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원래 여화 공주의 호위단의 규모는 이것보다 훨씬 컸다. 애초에는 금의위 오단 전체가 따라오려고 했는데 여화 공주가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오단 중에서도 최고수들을 뽑아 여화 공주에게 붙여준 상태였다.
  실제로 가건은 화경에 근접한 고수이며, 나머지 30명 역시 검기를 사용하는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당한 전력의 호위를 붙이면서도 황태자는 불안해했었다. 무림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그런 황태자의 불안함도 상쇄시키고, 여화 공주를 얌전하게 만들기도 할 겸 모두를 위해서 호위무사 수의 증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같이 잡을 생각을 했다.
  그렇게 호위의뢰를 하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기는 했지만 호위의뢰를 유현이 받아 줄지 안 받아 줄지는 의문이었다.
    말괄량이 공주 호위의뢰
  남궁세가가 발칵 뒤집혔다. 바로 황족이 남궁세가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황족이 남궁세가에 방문할 일이라도 있소?”
  남궁가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금의위 오단 수장 가건에게 물었다. 남궁가주 남궁현의 물음에 가건이 대답했다.
  “남궁세가에 여화 공주마마의 호위의뢰를 하기 위해 왔소.”
  “호위의뢰?”
  남궁현이 가건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 남궁현을 보며 가건이 말했다.
  “그렇소, 호위의뢰. 지금 황태자 전하의 동생인 여화 공주마마를 호위하는 무사들은 모두 30명...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소, 사실 이 모두가 금의위 무사들이지만 무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오, 여화 공주마마께서는 무림에 관심이 있기에 무림의 대 문파 같은 곳도 들리고 싶어 하오.”
  그 말에 남궁현이 곤란 하다는 듯 말했다.
  “무림은 황궁의 일에 개입하지 않소.”
  “개입이 아니오. 의뢰요. 의뢰비는 충분히 드리겠소.”
  그 말에 고민하기 시작하는 남궁현이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거절하기도 곤란한 것이다.
  “그리고... 황태자 전하께 부탁해 이번에 열리는 황실 비무대회에 초대장을 드릴수도.......”
  “황실 비무대회의 초대장이라.”
  그 말에 남궁현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면 황실 비무대회가 열린다. 물론 남궁세가에서도 총 다섯 명이 나간다. 남궁성휘와 장로들의 아들인 남궁 씨를 가진 둘과 남궁세가 일대제자들.
  하지만 휘안은 나가지 못 했다. 휘안이 돌아오기 전에 접수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일단 나가기만 한다면 유력한 우승후보인 휘안이 나가지 못한다는 것에 세가 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기회가 온 것이다.
  황태자의 초대장. 이것만 있으면 최대 예선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고민하는 남궁현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알겠소.”
  그렇게 여화 공주의 호위 의뢰를 맡게 된 남궁세가였다.
  “흐음... 중대 발표가 있습니다.”
  안영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는 유현들을 보며 말했다.
  “여화 공주가 남궁세가에 호위 의뢰를 했다는군요.”
  그러자 화린의 검술을 봐주던 유현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그 꼬맹이가?”
  “응? 유현 님 여화 공주를 아십니까?”
  “아아, 화린의 머리장식을 소매치기하려고 했던 녀석이야.”
  “소매치기?”
  유현의 말에 휘안이 좀 어이없다는 투로 묻는다. 그런 휘안을 보며 화린이 덧붙여 말했다.
  “그 공주가 언니가 제게 사준 머리장식을 소매치기 하려다가 언니에게 붙잡혔었어요, 좀 안면이 있다고 봐야죠. 참 활발한 공주에요.”
  “그건 활발한 것이 아니라 왈가닥인 거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투덜거리는 유현의 말에 화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얼굴을 찌푸리는 유현을 보며 안영이 말했다.
  “그런데 유현 님.”
  “왜?”
  “호위를 요청한 측에서 꼭 은빛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도 같이 가게 해달라고 한 것 같습니다만.......”
  “닥치고 기각.”
  “그럴 줄 알았습니다.”
  유현의 말에 안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안영을 보며 휘안이 물었다.
  “왜 꼭 유현은 데려가려 하는 거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휘안의 말에 안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흐음... 호위라.......”
  유한이 중얼거린다.
  “누나, 한번 맡아 보는 게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 유한의 말에 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싫다고 했잖아? 그리고 귀찮아.”
  “그렇지만 얼마 후면 황실 비무대회가 열려.”
  “그게 뭐?”
  “공주라면 그 비무대회 관람에 의무적으로 참여할 거 아냐?”
  “그렇겠지.”
  “거기 나갈 생각 없어?”
  “나가고 싶어도 이미 접수가 다 끝났어.”
  유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안영이 말했다.
  “에... 이번 호위 임무에 참여한다면 황태자가 직접 황실 비무대회 초대장을 써준다고 하는군요.”
  “.......”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 말은 결국... 접수하지 못한 휘안 님은 꼭 가야 할 것이고, 잘하면 다른 사람들도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황태자는 여화 공주를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니 말입니다, 여화 공주가 잘 부탁하면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아버지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도 없고... 귀찮게 되었군.”
  사실 황실 비무대회에 나가는 것이 꺼려지는 휘안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이런 곳으로 나가 명성을 얻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보통 사람들의 심리이다. 하지만 휘안은 그렇지 않았다.
  명성이라면 어느 대륙 전체에 퍼질 정도로 받아 보았다. 칭송 역시 수도 없이 받아보았다. 리샨 대륙에서는 휘안이 영웅이며 전설이었던 것이다.
  이미 그런 것은 다 가져보았던 휘안에게는 명성이고 뭐고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런 휘안을 보며 소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나 저 여자나... 참 욕심 없다.”
  그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꼬맹아.”
  “누구 보고 꼬맹이란 거야!”
  휘안의 말에 소현이 발끈했다. 그런 소현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아아... 정정하지, 애송이.”
  “뭣? 이 인간이 진짜!”
  “애송이를 애송이라 불렀을 뿐이다.”
  “크윽.......”
  휘안을 죽어라 노려보는 소현. 그런 소현을 마주 보던 휘안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욕심이 있지. 하지만 명성이나 명예 이딴 것에 대한 집착은 없어.”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미 얻어 봤는데... 얻고 나니 별 필요가 없더라고.”
  “하긴... 누나, 형, 안영 이 셋 모두 다 대륙전쟁에서의 영웅이지?”
  유한의 그 말에 모두가 멍해졌다. 방금 유한의 입에서 나온 ‘대륙전쟁’이란 말 때문이었다. 보통 전쟁도 아닌 대륙전쟁이라면., 엄청 큰 전쟁이란 소리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그들을 보며 안영이 말했다.
  “그래도 휘안 님은 나가야죠.”
  “하아... 그래야겠지?”
  “휘안이 나간다면 나도 나가볼까?”
  “앗! 우리도 나가 볼래!”
  “된다면 다 나가 보자.”
  결국 그런 이유로 유현들 전부는 여화 공주 호위에 합류해 버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