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11

격돌!
  “이익! 젠장!”
  아름다운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비추는 호숫가 앞에서 한 사내의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검을 들고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눈앞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향해 자신이 아는 욕이란 욕은 모두 해대고 있었다.
  “소용없습니다. 천마대제께서 친 결계를 소교주님이 깰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그런 무연을 보며 안영이 한숨을 푹 쉬며 말하자 무연이 으르렁거렸다.
  “너 지금 그게 할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그렇게 말하며 섬뜩한 마기를 머금고 있는 검을 꽉 쥐며 안영을 노려보는 무연. 그런 무연의 기세에 몇몇 장로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움찔했다. 하지만 안영은 태연할 뿐이었다.
  “후, 이런 것으로도 뚫지 못하는 것을 아무리 검강을 입혔다고 하나 어떻게 검으로 뚫을 수 있겠습니까? 익스플로젼 볼케이노!”
  바로 이때 안영의 손에서 무시무시한 파란 불꼬치 터져 나왔다.
  쾅!
  화르르르륵!
  그리고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엄청난 불꽃이 결계를 때렸다.
  하지만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잠시 후 안영의 마법을 그대로 흡수해버렸다.
  무려 8클래스 마법이 간단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안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검강을 머금었다고 하나 뭔가를 파괴하는 점에서는 8클래스 마법보다 위력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안영이었다.
  즉, 8클래스 마법부터는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드래곤들도 직접 맞는 것을 꺼려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안영의 마법을 보고 일순 침묵이 감돌았고, 그렇게 침묵에 잠긴 이들을 보며 안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것으로도 꿈쩍도 안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안영을 보며 무연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응? 돌아오셨나요?”
  뒤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마나의 파동에 안영이 말했다.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살짝 얼굴이 굳었다.
  다른 이들 역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기운에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안영은 다른 이들 만큼 그렇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 기운은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안영이 호수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안영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대제를 뵙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안영의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이내 눈이 부릅떠지며 호수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은발에 은안을 휘날리는... 천마교를 한바탕 소란으로 이끈 하유현과, 그의 동생이라 칭하는 백금발에 녹안을 가진 하유한 그리고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휘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는 한 아름다운 미남자가 있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에 검붉은 눈동자가 빛나는 존재.
  모두가 본능적으로 이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안영이 말한... 천마대체가 그라는 것 역시 알아차린 그들이었다.
“흐음,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와 보는군.”
  이윽고 천마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그렇게 기지개를 켜던 천마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빙긋 웃어주는 천마를 보며 유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계나 풀어줘.”
  그 말에 천마가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함께 호수를 가로막던 결계가 사라졌다.
  지금 그들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천마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성좌를 주인들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오는 네 사람.
  ‘파천성의 내 무공을 익힌 저 녀석인 것 같고 천중성은 중도의 무공을 익힌 저 녀석. 그리고 파마???은?’
  그는 이내 흥미로운 표정으로 화린을 바라보았다.
  ‘응? 호오?’
  “저건 뭐지?”
  순간 천마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손가락으로 화린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천마의 가리킴에 화린이 움찔했고, 은월과 소현이 화린을 자신들의 뒤에 숨기며 천마를 쳐다보았다.
  이때 그런 그들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는 천마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내 동생.”
  “호오? 동생? 넌 중원에 산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리샨 대륙의 드래곤이 아닌가? 저건 아무리 봐도 인간인데? 그렇다면 네 전생의 친동생이라는 말인가?”
  “그래.”
  “호오? 재미있군, 한 집안에 성좌의 주인이 두 명이나 태어나다니.”
  “뭐? 그게 무슨 소리지?”
  천마의 말에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아까 말했던 성좌의 주인 중 한 사람이 화린?
  “저기 있는 여자애가 파마성의 주인이다.”
  그리고 천마의 대답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은월이나 소현은 성좌의 주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니 말이다.
  그런데 화린이까지 성좌의 주인이라니...
“파마성은 성장이 느리다. 그렇기에 아직 검기를 겨우 사용할 정도의 능력밖에 되지 않는 거야.”
  이때 유현을 보며 천마가 말을 잇자 유현이 물었다.
  “파천성은 무연 형이고... 그렇다면 천살성은 은월이고 천중성이 소현인가?”
  그에 천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은월은 천살성일 기질이 다분했으니 말이다.
  “으음, 은월이란 녀석이 저기 여자애같이 생긴 남자애인가?”
  그 말에 유현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천살성이 소현이야?”
  설마하니 소현이 천살성일 줄이야... 상당히 의외였다.
  그렇다면 은월은 성좌의 성좌인 천중성이 된다. 그리고 소현은 한번 폭주하면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전설의 살인귀 천살성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천살성과 파멸성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파멸성이 그러고도 마성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성이고 마고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파괴시키는 파멸성의 성향 때문이었다. 즉, 파멸성은 성의 편도 마의 편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기에 중립이라 불리는 파멸성이었다.
  “흐음, 그런 녀석으론 보이지 않는데?”
  이윽고 유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확실해, 저 녀석은 천살성이 맞아.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300년 전 무림맹 맹주가 있었는데 엄청 착한 녀석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미쳐버려 무림맹의 무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거야. 결국 무림맹주는 무림맹 무사들의 손에 죽어버렸지. 그런데 그 무림맹주가 천살성이었던 거야, 이제 이해가 되나?”
  천마의 말에 유현이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이렇듯 유현과 천마가 성좌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들은 지상에 안착했다.
  “유현아!”
  그와 함께 사무연이 유현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누굽니까?”
  무연이 유현의 머리 위에 손을 떡하니 올리고 있는 사내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무연을 보며 사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글쎄? 나는 누굴까?”
  그렇게 말한 천마가 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런 천마의 손길에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천마의 손을 쳤다.
  “어디서 어린애 취급이야?”
  유현의 말에 천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너보다 나이를 먹어도 두 배는 더 먹었다고, 나에게 있어 넌 어린애일 뿐이야. 갓 성룡이 된 녀석을 누가 어른으로 취급하지?”
  그 말에 유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 일족이 아니야.”
  “그래, 난 드래곤 일족이 아니지. 하지만 넌 나의 전인이잖아? 나의 무공을 익힌.”
  그 말에 유현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천마가 한다고 하면 자신은 막을 힘이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 순간 유현의 눈이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드래곤 아이가 발동했다.
  “이크크크.”
  그런 유현을 보며 천마가 유현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유현의 기운쯤이야 가볍게 눌러버리면 되겠지만 왠지 이 드래곤 일족의 전인이 마음에 드는 천마였다.
  그렇게 유현이 천마를 향해 살기를 불태우고 있을 때, 무연 역시 천마에게 상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흐음, 이 녀석까지는 봐주겠는데 네놈은 영 못 봐주겠군.”
  그에 천마가 생긋 웃으며 무연을 바라보며 말하자 수간 유현과 휘안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천마는 무연을 죽일 생각인 것이다.
  “이런 소교주님, 그분은 당신의 머나먼 조상이십니다.”
  하지만 그때 안영이 나서서 무연을 진정시켰다.
  “호오? 넌 아까 날 보고 천마라고 불렀던 이가 아니냐?”
  그러자 천마가 안영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다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리샨의 존재군. 하지만... 그 얼굴은 마뇌와 꼭 닮았어. 어떻게 된 거지?”
  그런 천마의 말에 유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녀석은 마뇌야, 중원에서 죽었다가 리샨에서 우연히 마주쳤지.”
  “호오? 그래? 정말 흥미롭군.”
  그 말에 천마가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천마를 보며 무연이 말했다.
  “당신이 정말 천마가 맞습니까?”
  그 말에 천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내가 천마라 불리던 사람이지.”
  1,000년 전의 사람이 눈앞에 있다고 한다면 모두가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연은 천마의 등장부터 계속해서 공명하는 소마검을 보며 그가 정말 천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천마검과 가까워지면 가법게 공명하는 소마검이 이렇게나 강력하게 진동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유현이 가지고 있던 천마도에도 소마검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천마검과 공명보다 강력한 공명을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연이 혼란스러워하건 말건 천마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초대 장로들의 유품에 있었다.
  “장로들인가?”
  이윽고 천마가 나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 천마를 보며 살혈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정말 당신이 천마대제이십니까?”
  “넌 살가의 아이로군.”
  그러자 천마가 살혈을 보며 말했고, 그런 천마를 잠시 바라보던 살혈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천한 살가의 후예가 위대하신 천마교의 시조 천마대제를 뵙습니다.”
  그 말에 살예린은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자신의 할아버지를 따라 절을 했다.
  그런 살혈을 보며 다른 장로들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살가가 먼저 눈앞의 청년을 천마로 인정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살혈은 유현과 안영의 반응을 보고 그가 천마라는 것은 인정한 것이었는데, 그만큼 그가 유현과 안영에게 보내는 신뢰감은 대단했다.
  그렇게 살혈을 보며 장로들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자 그런 그들을 보며 천마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뭐, 됐다. 1,000년 전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하면 다들 미친 취급할 테니 안 믿어도 된다. 하지만 초대 장로들의 물건은 넘겨줘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에 오대장로의 표정이 굳었다.
  확인해본 바, 그것들은 분명 초대 장로들의 유품이 맞았다.
  그런데 그것을 덜컥 내놓으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살혈은 서슴없이 마천검 살강의 유품을 천마아게 넘겼다.
  그러자 예상을 못 했었는지 천마가 그런 살혈을 보며 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이것이 진짜 초대 장로들의 유품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그런 걸 이렇게 쉽게 내주다니 좀 당황스러운 천마였다.
  그런 천마를 보며 살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전 당신의 뒤에 있는 유현과 안영을 믿습니다.”
  그 말에 천마가 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그 역시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날 믿어준 것만은 사실이지. 사실 이런 반응은 예상도 못 했거든.”
  그러고는 살혈이 건넨 마천검을 쥐었다.
  그 순간 검면에 새겨진 ‘마천검’이라는 글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살강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마천검은 기쁜 듯 검명을 토해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마천검이 슬프게... 그리고 기쁘게 울어댔다.
  그런 마천검을 멍하니 바라보는 장로들.
  천마 역시 씁쓸한 표정으로 마천검을 보며 말했다.
  “...살강, 정말 고마웠다. 이제... 쉬어라.”
  그러고는 마천검을 호수 앞에 꽂았다.
  그러자 마천검이라는 글자에서 빛나던 빛이 마천검 전체를 감싸더니 잠시 후 파직 하고 자신의 검면을 스스로 파괴했다.
  일행은 그저 그 신비한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살강, 이제 편안하게 쉬어라.’
  마천검을 보며 천마가 씁씁한 표정으로 속으로 마천검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 장면을 보며 다른 장로들 역시 천마에게 조상들의 유품을 넘겼다. 유품들은 마천검과 같은 식으로 파괴가 되었다. 무기 스스로가 자신을 파괴한 것이었는데, 그 신비한 장면에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천마는 자신을 따르던 오대장로들의 유품을 보며 씁쓸해하게 웃다가 그 씁쓸함을 털어버리며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천마의 시선에 소현이 움찔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천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천살의 아이야, 넌 네가 천살성이란 것을 알고 있느냐?”
  그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천살성이란 말에 굳어버렸다.
  “제가... 천살성이란 말입니까?”
  소현이 멍한 표정으로 천마에게 물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천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느낌이 틀릴 일은 없다, 나 역시 천살성을 타고 났으니 말이다. 넌 천살성이 맞다.”
  그 말에 소현이 굳어버렸고 모두들 경계 어린 시선으로 그런 소현을 바라보았다. 단지 화린만이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천중의 아이야, 넌 천중성이란 걸 알고 있느냐?”
  “네.”
  그리고 이어진 천마의 물음에 은월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 그래? 그렇다면... 파마의 아이야, 넌 네가 파마성이란 것을 알고 있느냐?”
  그에 이번에는 화린을 바라보며 천마가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화린에게 향했다.
  “에? 파, 파마성이라고요?”
  화린이 어리바라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런 화린을 향해 천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몰랐다는 말이군.”
  “자, 이제 헛소리 그만 하고 들어가.”
  이때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런, 난 천마인데... 네가 익힌 무공을 만든 사람이라고.”
  “그래서 뭐? 난 천마 당신의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천마교의 사람은 아니야, 하물며 중원의 존재도 아니지. 여기선 난 이방인일 뿐!”
  “리샨 대륙의 신들과도 내가 잘 아는 사이인데 말이지.”
  “그곳에선 당신이 이방인이야. 그래서 중원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사람은 순리를 따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그것이 삶을 초월한 이든 아니든 말이야.”
  “흐음, 그건 그렇군.”
  그 말에 천마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날 그렇게 막 대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어.”
  그렇게 중얼거린 천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다음에 보지. 다음에 볼 때는 네가 리샨으로 돌아갈 때겠지? 그때가 되면 이곳으로 찾아와라, 다시 리샨으로 보내주마.”
  천마는 다시 오대장로들의 후손을 보며 말했다.
  “마천검! 마천도! 마천창! 마천장의 후예들이여! 그대들의 조상은 자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내 잘못된 판단을 깨닫게 해주었던 이들이었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받아라! 자신이 판단하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의지를 꺾지 말도록!”
  그런 후 천마가 이번에는 무연을 보며 말했다.
  “나의 피를 타고난 천마교의 소교주여, 너 역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하도록 해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성을 잃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하여라.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천마가 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를 잡지 마라. 너와 그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너와 그는 이미 사는 세계가 다르다. 과거의 이름으로 저 아이를 얽매지 마라.”
  그 말에 무연이 굳어버렸다. 그런 무연을 바라보던 천마가 유현을 보며 말했다.
  “만나서 즐거웠다.”
  천마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난 썩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어, 그럼 다음에 다시 보자.”
  유현의 말에 천마는 피식 웃으며 호수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현과 유한을 보며 말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길. 그리고 나도 언제 리샨으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
  그렇게 말한 천마가 호수 안으로 사라졌다. 청월이 큰일 날 소리를 했다면 천마는 위험한 소리를 한 것이다.
  다음 날, 소현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부터 장로 일행이 슬그머니 소현을 피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마각 내에 호위무사들에게 소문이 퍼졌는지 소현을 경계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버렸다.
  천마각 내의 호위무사들은 전무 소마대의 일원이었다. 바로 그 소마대원들이 소마각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마대들만 안다면 소문 따위 퍼질 리 없겠지만 그래도 소현은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자신이 천살성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근처 사람들이 떠날까 두려워진 것이다.
  ‘사부님도... 내가 천살성이란 것을 알까?’
  천마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그렇기에 거짓일 리 없다.
  “여기서 그런 암울한 얼굴로 뭐 하냐?”
  그때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소현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은발에 은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화린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 바로 유현이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소현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 아무거도 아니야.”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힘이 쭉 빠져서는. 너 혹시 어제 천마가 말한 말 때문에 그러냐?”
  그 말에 소현이 찔리는 듯 버럭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긴 무슨, 지가 천살성이란 걸 알아서 나 고뇌하고 있수다, 이렇게 얼굴에 쓰여 있구만.”
  소현이 입술을 꽉 깨물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봐, 난 오래전 파멸성이란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버려져야 했으며 또 죽어야 했어.”
  그 말에 소현은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넌 행복한 거잖아? 왜 그딴 거 때문에 힘들어하냐?”
  “천살성은 살인귀잖아! 내가 폭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친한 이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소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유현은 소현 옆으로 다가가 갑자기 한 팔로 소현의 목을 조르고 남은 한 손으로는 소현의 머리칼을 흩트리며 말했다.
  “이놈아!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강해지면 되잖아? 천산성에 먹히지 않을 만큼!”
  “크윽! 무슨 짓이야!”
  단정한 소현의 머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소현은 유현의 품에서 빠져 나오려고 바동거렸다. 그런 소현을 보고 피식 웃은 유현이 소현을 놔주며 말했다.
  “그리고, 천살성이 깨어나 맛이 간다 해도 내가 한 대 패서 돌려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유현의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유현이 말을 이었다.
  “네가 천살성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넌 너일 뿐이야.”
  그러고는 소현에에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걸어갔다.
  그런 유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현이 무의식적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내게 부모님이 있다면 내가 유현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지 않을까?’
  순간 소현은 그 생각을 깨닫고 흠칫했다. 그리고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소현은 실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며 무공을 수련을 하러 갔다.
  소현을 알지 못했다. 유현의 대화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불안감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커다란 회의실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회의 내용이 상당히 심각한 것인 듯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결국 소교주가 반기를 들었소! 그가 끌고 나간 세력은 본교의 사할이오.”
  “크윽! 그 단시간에 세력을 두 배로 늘리다니, 대단하군.”
  “혈사인 행방불명의 손실이 너무 크오. 빨리 그를 찾으시오!”
  이들은 바로 혈천교의 교주와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유현의 손에 소멸하여 이제는 사라진 사인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혈사인은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단신으로 혈천교를 난장판으로 만들 만큼 무시무시한 괴물을 지금 무림에서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들이 알기론 없다. 그런 혈사인이 죽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소, 소교주님께서 오셨습니다.”
  회의실 문지기가 달려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들에게 반기를 든 소교주가 찾아오다니!
  정확하게 말하면 반기가 아니라 교주를 몰아내고 자신이 교주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하는, 교주의 권자에 도전 형식이었다.
  아무튼 지금 현재 혈천교의 열 명의 장로 중 교주파는 일곱, 나머지 두 명의 장로는 소교주 시현의 편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인 살후는 유현의 손에 죽은 지 옛날이다.
  이윽고 시현이 여유 있는 얼굴로 웃으며 들어왔다.
  “이야, 이거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었나 보죠? 공기가 무겁군요?”
  시현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장로들이 이를 갈며 인사했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시현이 말했다.
  “하하, 그렇게 억지로 인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대꾸한 시현은 혈마를 보며 말했다.
  “아, 그렇고 아버지 최근에 사인을 찾고 있다고 하던데, 제가 생각하기에 사인의 행방은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시현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신들이 그렇게 찾아다니는 사인의 행방을 예상하고 있는 듯한 소교주의 행동 때문이었다.
  “사인은 이미 자신의 영혼을 찾았더군요. 그래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 안 사람들이 굳어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인 시현은 다른 이들보다 더욱 굳어 있는, 마교의 장로였던 이들을 보며 말했다.
  “참 장로님, 귀 장로님, 한 장로님, 산 장로님 조심하십시오. 진짜 파멸성의 망령이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당신들을 죽이려하고 있으니까요. 크크큭.”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한 시현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전 제 세력과 천마교의 손을 잡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뭐얏!”
  “그런 말도 안 되는!”
  “혈천교를 무너뜨릴 생각이시오? 소교주!”
  “천마교는 우리를 완전하게 적대하고 있소이다!”
  시현의 폭탄발언에 모두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시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혈천교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교주의 권자에 도전에 외부 세력과 손을 잡지 말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리고 천마교가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장로님, 귀 장로님, 한 장로님, 산 장로님이 속해 있는 교주파지 제가 이끄는 소교주파는 아닙니다, 혹시 압니까? 천마교와 손잡아 손쉽게 당신들을 밀어낼 수 있을지?”
  “크윽!”
  그런 시현을 보며 침음을 흘린 교주파들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시현은 다시 한 번 하하하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크아아아악! 혈시현! 네놈이 감히 나를 죽이려는 것이냐!”
  시현이 나가자마자 혈마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교, 교주님 진정을!”
  그런 교주를 보며 문지기가 다가가 교주를 말리려 했다.
  퍽!
  하지만 교주의 일격에 문지기의 얼굴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크윽! 혈시현! 가만두지 않겠다!”
  혈마의 눈이 핏빛으로 번뜩였다.
  무림이 다시 술렁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대 세력 중 하나인 혈천교 내의 알력다툼!
  무려 사할이라는 어마어마한 전력의 소교주파와 육할이라고 하나 큰 위기에 놓인 교주파의 싸움!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혈천교는 그 존재 자체가 무림에 있어 무조건적인 적대관계에 놓이는 단체다.
  일단 그런 혈천교가 등장함으로써 정파와 사파는 암묵적으로 동맹관계를 맺었다. 천마교 역시 정파와 사파의 기 싸움에서 잠시 손을 뗀 상태였다. 혈천교는 천마교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어마어머한 무위를 가진 단체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천마교와 정사동맹 모두가 원하는 것은 천마교와 정사동맹이 먼저 혈천교와 부딪쳐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속셈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두 세력 전부 먼저 혈천교와 싸워 전력을 낭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렇다 할 싸움은 없으나 암묵적으로 두 세력이 혈천교를 견제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자 정사동맹 측에서 무림 역사상 그 유례를 몇 번 찾아보기 힘든, 정사마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무림에 대해 의논할 것을 천마교에 제시했다. 물론 천마교 역시 혈천교를 처리할 좋은 기회이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수를 일찍이 쓰지 못한 이유는 혈천교가 너무 강해, 이러한 사정을 알면 죽기 살기로 한쪽 세력에 달려들어 혈전을 일으킬 수 있엇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혈천교는 무림맹이나 사황성보다야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사동맹을 맺은 그들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천마교는 더더욱 그랬고 말이다.
  결국 혈천교는 정사마가 회합을 가지는 것을 손가락 빨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정사마 회합은 황실에서 이루어졌다. 황실에서 이루어졌다. 황실 역시 혈천교가 눈에 가시 같은 세력이기 때문에 흔쾌히 무림인들에게 회합 장소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리고 황태자까지 참석했다.
  회합에는 현 무림에서 최고수라고 알려져 있는 삼마이제삼왕 중 혈마를 제외한 모든 고수가 모였다.
  검마, 권왕, 창왕은 사파의 고수들이었으며 검제, 검왕, 도제는 정파의 인물이었다. 당연하게도 광마는 마교의 인물이었다. 물론 광마는 이 회합에서 삼마이제삼왕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노괴를 두 명이나 대동했다. 바로 혈겁과 현천도제였다.
  황태자 주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야, 이거 무림 최고수라 불리는 분들을 만나 영광입니다.”
  그 말에 검제가 말했다.
  “이전에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 다시 만나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황태자 전하.”
  그 말에 주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를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그건 그렇고... 천마교 분들에 물어본 게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황태자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교의 은발에 은안을 가진 은빛 가면의 소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소저는 이번 회합에 오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특히 검마, 검왕, 검제, 도제, 권왕은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계에서 환생하여 다시 돌아온 천마교의 전 소교주 하유현이 여기서 언급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들이었다.
  주후소의 말에 광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현이는 왜 찾으십니까?”
  “하하하! 제가 그 소저에게 관심이 많거든요, 강한 무공에 신비한 힘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허허? 그렇습니까? 하긴 무림이 유현이 때문에 난리도 아니지요, 유현은 지금 볼일이 있어 얼마 전 교를 잠시 떠났습니다. 당연히 회합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주후소가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시작하십시오, 저는 인사차 들렀으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갔다. 그런 후 회의장에는 잠시 침묵이 이어졌지만 이내 현 혈교에 대한 안건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내가기 시작했다.
  광마 혈사의 말대로 지금 유현은 천마교 내에 없었다. 아니, 유현은 이제 유현이 아니었다. 그는... 에이라나는 이제 하유현이라는 이름을 묻었다.
  천마를 만나고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혈천교도 안력 다툼으로 혼란스러웠기에 에이라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은 중원을 떠나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얽매는 과거의 이름은 묻기로 결심했던 에이라나였다.
  이제 중원에서 남은 일만 끝낸다면 더 이상 중원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중원의 이름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에이라나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그 이상한 이름은 중원인들이 발음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무연은 예쁜 이름이라고 했다. 휘안에게 들은바 여자 같은 이름이라서 좋다 말해서 에이라나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그가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하유현이라는 이름을 묻었다는 사실을 안다만 당장 노발대발할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에이라나는 지금 숲길을 걷고 있었는데, 에이라나가 향하고 있는 곳은 혈천교였다.
  시현은 혈마를 향해 칼을 뽑음과 동시에 천마교와접촉을 시도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에이라나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당연히 천마교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노발대발 난리도 아니었다.
  혈시현은 교주를 몰아내는 일에 에이라나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천마교에서 에이라나가 가지고 있는 신분은 없지만 그 무력만큼은 교주를 압도한다는 것은 천마교 수뇌부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에 당연히 반대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에이라나의 반응은 달랐다.
  ‘재미있겠는데?’
  마침내 에이라나는 간다고 결정했지만 무연이 그런 에이라나를 막아섰다.
  ‘어딜 간다는 거냐? 함정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휘안 너도 말려봐!’
  그 말에 휘안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에이라나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나도 데려가라.’
  그 말에 천마교 사람들이 휘청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무연은 드물게 유한에게도 도음을 청했다. 하지만 유한의 반은은 더 가관이었다.
  ‘누나는 강해, 혼자서 혈천교인지 뭔지를 쓸어버리고도 남을 걸? 뭐, 정 위험하면 나도 힘을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한 유한은 방긋 웃기까지 했다.
  에이라나의 혈교행은 그렇게 경정되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소현, 은월, 화린도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소현, 넌 은월과 화린을 데리고 사도문으로 돌아가. 곧 혈교와 전쟁을 벌일 것이 분명해.’
  에이라나의 말에 당연하게도 소현, 은월, 화린은 거절했다.
  에이라나는 그런 그들을 마법으로 재운 다운 사도문으로 워프를 사용해 사도문주에게 넘겨버렸다. 사도문은 전생 하유현 시절에 가본 적이 있어서 좌표를 계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현들을 넘겨버린 에이라나가 모두가 말리는 가운데 혈교로 향했고, 마지막으로 그런 에이라나의 앞을 막아선 건 무연이었다. 그리고 어딜 가느냐며, 갈 수 없다고 외치는 무연을 말린 것은 혈사였다.
  에이라나는 쓰게 웃으며 천마교를 나와 혈시현을 만났다. 놀랍게도 혈시현은 단신으로 와 있었다.
  “배짱 좋은데? 단신으로 천마교 근처를 얼쩡거리다니.”
  그 말에 혈시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를 대동하면 꼬리만 잡힐 뿐입니다. 혼자 오는 것이 속 편하죠.”
  그 말에 에이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에이라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혈시현을 보며 말했다.
  “뭐냐?”
  “하하하, 아니요. 그냥... 정말로 환생이 있다는 것에 놀라서 말입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픽 웃으며 말했다.
  “가능성은 있지.”
  시현은 이어 에이라나와 동행한 휘안과 유한을 보며 말했다.
  “두 분은...”
  “왜? 이 녀석들은 따라오면 안 되냐?”
  그 말에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현경의 고수인 휘안 씨는 상관없지만... 그 뒤에 있는 유현 씨의 동생 분은...”
  시현은 유한을 위험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 말에 에이라나와 휘안이 피식 웃었다.
  저 녀석이 위험? 진짜 위험해지면 최소 드래곤 일족에서는 에이션트급 드래곤이, 마계에서는 후작급 마족이, 천계에서는 열 개의 날개를 가진 10익 천사, 즉 천족 전투단 단장급의 천족 정도는 와야 할 것이다.
  장담컨대 그 세 존재 중 하나만 중원 무림에 떨어져서 중원 무림의 모든 무인들이 그들에게 달려든다 해도 그들은 무림의 모든 무인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은 힘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중 하나만 중원에 와도 대 혼란이 일어난다는 소리였다. 그런 존재가 바로 유한이었다.
  “저 녀석은 나보다 강하니까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그 말에 시현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네 사람은 혈천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현의 말대로라면 혈교는 서장 북부, 즉 신강 지역 남쪽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렇기에 경공술로 달려도 꽤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서야 혈교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저, 그러니까... 에이라나 씨?”
  “왜?”
  시현이 에이라나를 어색하게 불렀다. 그러자 에이라나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녀는 시현에게도 자신을 에이라나라고 부르라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머리를 긁적거리던 시현이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만약 제가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말에 에이라나가 픽 하고 웃었다.
  “당연히 함정은 다 파괴하고 네놈을 잡아 족쳐야겠지.”
  그 말에 삐질 식은땀을 흘린 시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감당하기 힘든 함정이라면?”
  갑자기 진지해진 시현. 그런 시현을 힐끔 바라보던 에이라나는 역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함정을 파놓지 않았어. 만약 함정을 파놨다고 해도 우리가 거기에 걸릴 위인들도 아니지. 아무튼 넌 뭔가를 꾸미는 눈이 아닌 진짜 우리에게 부탁하는 눈을 하고 있으니까. 뭐 좀 잡다한 마은도 있긴 하지만 넘어가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는 더는 말할 거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에이라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현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고 에이라나의 뒤를 따랐다. 에이라나가 자신을 믿어줬다는 것이 기분 좋은 시현이었다.
  한참을 걷던 에이라나 일행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에이라나가 먼저 눈을 빛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마중을 나왔나 본데?”
  그 말에 시현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혈도단입니다, 단원 전제가 도를 다루죠. 혈천교 무력단체 중 수위를 다투는 이들입니다.”
  그런 시현을 보며 에이라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자는 귀시환.”
  순간 에이라나의 입 끝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저 멀리서 귀사환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뭐야? 살후보다 강한데? 이 자식, 다섯 중 제일 강하다더니 현경의 경지에 이르렀나?”
  그 말에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귀시환은 혈교에 와서 비술로 현경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훗, 조잡한 방법으로 오른 경지 따위.”
  시현의 말에 에이라나가 귀시환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느껴지는 기운이 현경의 고수 치고는 많이 탁했다. 잠시 냉소하던 에이라나가 말했다.
  “너희는 나서지 마라.”
  그 말에 시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에이라나 씨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나 홀로 혈도단을 상대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그리고 저쪽에는 현경의 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런 시현을 무시하며 은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은아에 무시무시한 빙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에이라나가 은아를 쥔 왼손의 반대손인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흑아를 뽑아 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의 손은 맨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손에 무시무시한 빙기가 서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블리자드?”
  그에 휘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블라자드는 8서클 고위 빙계 마법이며 실버 드래곤들이 즐겨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에이라나의 은발과 백은빛 검신을 가진 은아. 그리고 손에 서려 잇는 은빛 기운의 조화에 적들마더 감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들은 죽을 것이 분명했다.
  에이라나가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겨대기 시작하자 혈도단이 조금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블리자드!”
  순간 에이라나가 소리쳤다.
  그와 함께 한 여름에 무시무시한 얼음폭풍이 불었다. 그 얼음폭풍은 주위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며 그대로 혈도단을 덮쳤다. 동시에 에이라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탄검강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가강!
  엄청난 폭음이 숲을 덮쳤으며, 잠시 후 혈도단의 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시현이 알고 있는 혈도단의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칼에는 잔뜩 살얼음이 끼어 있었으며 움직임이 둔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덜덜 떨고 있었따. 수 역시 아까 느꼈던 것보다 확실히 적었다.
  “크윽! 소교주!”
  이때 그들과 같이 모습을 드러낸 귀시환이 시현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시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멍한 표정으로 한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시에 귀시환은 자신을 덮치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신을 덮친 이를 향했다.
  그는 보았다. 자신을 향해 화사하게 웃고 있는 한 여인을!
  그녀는 꿈에서도 보기 싫은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반갑다.”
  그 순간 살짝 감았던 에이라나의 눈이 떠졌다. 하지만 그 눈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눈! 드래곤 아이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와 함께 에이라나의 몸 근처에서 정체불멸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하리만치 파괴적인 기운!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에이라나의 가공할 기운에 혈도단 모두가 두려운 눈으로 에이라나를 바라보자, 그런 혈도단을 바라보던 에이라나가 손을 들어 올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헬 파이어.”
  이번에는 엄청난 열기를 가진 구체가 에이라나의 손에 생성되었다. 에이라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구체를 혈도단을 향해 던졌다.
  “피, 피해라!”
  귀사환은 역시 기겁하며 혈도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헬파이어는 미처 피하지 못한 40명에 이르는 혈도단 무사들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흔적도 나지 않고 그대로 불타 사라져버렸다. 그에 나머지 혈도단원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충격에 빠지 있는 혈도단을 에이라나가 베어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닥치는 대로 혈도단을 베어버리는 에이라나의 기세에 혈도단도 허겁지겁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에이라나의 무력을 봤던 혈도단들은 움직임 자체가 굳어 있었다.
  에이라나는 자신을 목을 노리고 휘두르는 혈도단 무사의 도를 잡아끌어 그대로 등을 노리던 이의 눈을 찌르게 했다.
  “끄아아아아악!”
  에이라나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무사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죽어버렸다. 그리고 동료를 제 손으로 해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사의 목을 날려버린 에이라나가 다시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무사의 허리를 양단시켰다.
  그렇게 에이라나는 차근차근 혈도단의 무사들을 차례차례 죽여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학살’을 일으킨다면 몸에 피가 묻을 법도 한데 에이라나는 그런 것조차 업싱 처음의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혈천교에서 상위를 다투는 무력단체 하나를 상대하면서도 저런 여유를 가지고 있다니! 귀시환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후, 후퇴하라!”
  이윽고 귀시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혈도단이 빨리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니 후퇴하려고 했다.
  “월 오브 파이어.”
  그러나 그런 그들의 앞으로 순산 하나의 불꽃 장벽이 생겨났다.
  그것을 본 혈도단원들이 움질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후퇴하게? 그건 안 돼, 너희는 내 손에 죽어야 해. 원망하려면 네놈들의 우두머리인 귀시환을 원망해라.”
  에이라나가 냉소하며 말했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에이라나는 그대로 혈도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아악!”
  이윽고 숲에 혈도단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에이라나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혈도단을 베어 넘길 뿐이었다.
  결국 남은 것은 귀시환밖에 없었다.
  에이라나는 그런 귀시환을 향해 화사하게 웃어주었다. 그러자 귀시환은 두려움에 찬 얼굴로 도를 뽑아 들었다.
  에이라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겨우 저 정도 장면을 가지고 그런 얼굴을 한 거냐? 웃기지도 않는군.”
  하지만 말과 달리 에이라나가 만들어낸 장면은 겨우 저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지옥도, 누구 하나 곱게 죽은 자가 없었다. 시체 하나하나가 에이라나가 얼마나 그들을 잔인하게 죽였는지 보여주고 있는 지옥도 그 자체. 아직 죽지 않고 고통을 맛보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천마신공이 죽음의 전주곡이라 불리며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마공 중 하나라지만 정도가 심했다.
  “아, 아무리 적이지만! 이런 짓을 하다니!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인가!”
  귀시환이 에이라나를 보며 소리쳤다. 그런 귀시환을 보며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렇다면 세상을 피로 정화하겠다고 지껄이는 미친 단체에 교를 배신하고 들어간 네놈들은 뭐지?”
  하지만 귀시환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끝나자마자 에이라나를 향해 도강을 머금은 도를 휘둘렀다.
  “엡솔루트 실드.”
  하지만 그런 귀시환의 공격에도 에이라나는 꿈쩍도 하지 않앗다. 에이라나에게는 마법이라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있는 이상 이 정도의 공격 따위는 두려울 게 없었다.
  쾅!
  9클래스 실드마법과 귀시환의 도강이 부딪쳤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충격을 먹은 것은 귀시환이었다.
  “크억!”
  귀시환은 엡솔루트 실드에서 느껴지는 반발에 순간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런 귀시환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는 에이라나.
  퍼억!
  경쾌한 타격소리와 함께 귀시환의 코뼈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는 귀시환의 가슴을 햐앻 에이라나는 발을 휘둘렀다.
  퍼억!
  “커억!”
  에이라나의 공격에 귀시환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날아가 버렸다.
  에이라나는 호신강기를 뚫을 정도의 내공만 주입한 채 귀시환에게 한방에 죽을 정도의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귀시환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에이라나는 이어 그런 귀시환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현경의 고수라서 이 정도의 공격에 정신을 잃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귀시환에게 있어 더더욱 끔찍한 일이었다.
  “크억!”
  팔은 완전 박살이 나고 비틀려버려 이제는 도를 휘두를 수도 없게 되었다. 다리 역시 완전 비틀려 있었다. 다시 말해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병신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귀시환은 살아 있었다.
  에이라나는 무심한 얼굴로 귀시환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푸욱!
  하지만 그녀가 귀사환에게 손을 대려는 순간 먼저 귀시환의 심장에 검을 꽂는 이가 있었다.
  그에 에이라나의 눈이 사나워졌다. 감히 자신의 사냥감을 건드리다니! 감히! 누가 자신의 복수를 방해한단 말인가!
  그 순간 에이라나의 번뜩이는 눈이 검을 쥐고 있는 이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일순 당황했다.
  그곳에는 한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원의 것이 아닌 백금발에 녹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년.
  에이라나가 기억하는 소년은 항상 자신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짓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 감정 없는 무심한 눈.
  자신이 알고 있던 유한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에 에이라나는 움찔하며 유한에게서 떨어졌다.
  유한은 그런 에이라나를 무시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귀시환의 몸에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귀시환의 시체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유한이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
  강력한 기운이 서려 있는 유한의 말에 에이라나가 다시 한 번 움찔한다.
  “흥분하지 마. 이건 누나의 일이기도 하지만 누나의 일이 아니기도 해, 전생의 일로 이렇게 흥분해봤자 누나만 힘들어.”
  무감정한 어조로에이라나를 빤히 바라보며 유한이 말했다.
  “유한.”
  자신을 부르는 에이라나를 보며 유한이 다시 말했다.
  “하유현이라는 이름을 묻기로 했잖아? 이제 누나는 에이라나야, 인간의 일에 불필요한 힘을 쓸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이 순간부터 나도 하유한이 아니야, 키라이스트도 아니야, 난 레이텐티에스! 마계의 고귀한 마황의 계승자! 마황자 레이텐티에스 루틴 오퍼테크니스야.”
  레이텐티에스는 유한이라는 이름을 버렸으며 또 키라이스트라는 이름 역시 버렸다. 그 둘 다 레이텐티에스가 마황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생활할 때의 이름. 에이라나에게 있어서는 더 없이 친근한 이름들이기에 버리지 못했던 이름들. 그 이름들을 버린 것이다. 그런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에이라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전생의 일 따위로 그렇게 나약해진다면 누나가 쓸어버리기 전에 내가 쓸어버리겠어.”
  레이텐티에스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전생의 일만 관련되면 나약해지는 에이라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레이텐티에스였다. 이전에 있었던 살후의 일만 해도 그저 씁쓸한 마음으로 넘어갔다. 하지반 하유현이라는 이름을 묻고도 복수라는 명목으로 다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에이라나를 보며 레이텐티에스도 이제 참을 수 없었다.
  레이텐티에스의 강압적인 말에 에이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런 두 사람의 대치에 시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휘안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봐, 그만 해.”
  휘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엇을?”
  “네가 하려는 짓 말이야.”
  “어째서?”
  휘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너나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에이라나의 일이지.”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소리쳤다.
  “형은 어떨지 몰라도 난 화가 나! 왜 계속 과거의 일에 얽매이는 건데! 내가 얼마나 불안한 줄 알아? 누나는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계속해서 마음이 심란해지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답이 뻔한데! 누나는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도 못 잡고 저러고 있어! 누가가 계속 저렇게 한다면 난 중원을 쓸어버리고 누나를 데리고 리샨으로 돌아갈 거야!”
  그 말에 휘안은 반박하지 못했다. 레이텐티에스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니, 자신도 계속해서 흔들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불안할 때가 많았다.
  아무튼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한숨을 쉬는 휘안. 그리고 묵묵히 그의 말을 듣는 에이라나.
  그런 에이라나에게 한 소리 더 퍼부어 주려던 레이텐티에스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퍼억!
  바로 자신의 안면을 강타하는 에이라나의 발 때문이었다.
  “억!”
  에이라나의 공격에 충격받은 레이텐티에스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에이라나는 은아의 검집으로 레이텐티에스의 머리를 가격했다.
  퍽!
  경쾌한 소리와 함께 레이텐티에스가 쓰러졌다.
  “어디서 건방을 떨어?”
  그리고 들려오는 에이라나의 차가운 목소리. 레이텐티에스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에이라나를 보았다.
  “뭐? 중원을 쓸어버려? 내가 할 일을 네가 한다고? 죽고 싶냐? 왜 남의 일에 참견하고 지랄이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넌 신경 꺼!”
  험악한 기세에 레이텐티에스가 움찔했다. 에이라나는 차갑게 고개를 돌려 혈도단의 시체들을 넘으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휘안과 레이텐티에스를 향해 말했다.
  “난 나야, 드래곤 에이라나나 인간 하유현이나 모두 나라고. 하유현이라는 이름을 묻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아닌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하유현의 일은 드래곤 에이라나의 일이 된다는 소리야.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에 흥분한다고 뭐가 이상하지? 그런 걸로 나는 약해지지 않아.”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의 말을 하나하나 부정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네가 인간 키라이스트, 하유한으로 불리기 싫다면 레이텐티에스로 불러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런 에이라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휘안과 레이텐티에스였다. 시현 역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휘안과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말했다.
  “가죠.”
  그 말에 멈칫한 휘안과 레이텐티에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현을 따라갔다. 에이라나의 강한 의지를 봐서 그런 것일까?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은 남아 있지 않다.
  일주일이 지났다.
  혈도단과 만난 이후 혈교의 무력단체와 부딪친 적은 한 번도 없었따. 자잘한 무사들은 만난 적 있었지만 말이다.
  혈교의 본관 근처로 온 네 사람은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찢어진다. 휘안 넌 당장 무림맹으로 워프해. 혈사 아저씨의 말로는 정사마 연합으로 혈교를 친다고 하니까 말이야. 네가 길 안내를 해줘.”
  에이라나가 방금 전 통신구슬로 혈사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일행에게 말했다. 그리고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시현을 보며 말했다.
  “넌 당장 너희 교로 돌아가 너를 따르는 세력을 이끌고 혈교를 빠져나가라. 반목하는 세력이 뛰쳐나간다고 의아하겠지만 아직 정사마 연합이 쳐들어오는 것을 모르는 녀석들에게는 좋은 일이지. 약간 제제는 있겠지만 그렇게 큰 제제는 없을 거야.”
  그 말에 시현이 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보고 교를 버리란 말입니까?”
  “그럼 우리와 싸울 생각인가? 그럴 생각이라면 당장 네놈을 베어주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살짝 검을 뽑으며 냉소하며 말하자 잠시 굳어 있던 시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말을 따르기로 하죠.”
  시현의 말에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이제 빨리 빨리 움직여.”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흰 뭐 하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랑 레이텐티에스는 혈교 주위를 맴돌며 혈교로 소식을 전하러 가는 것들을 처리할 생각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시현은 혈교로 향했으며 휘안은 좌표를 설정하고 워프를 감행했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말했다.
  “잠깐 흩어진다, 며칠 후 정사마 연합이 올 때 거기서 만나기로 하지.”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에이라나가 막 경공술을 사용하려는 때였다. 그런 에이라나를 레이텐티에스가 불렀다.
  “누나.”
  레이텐티에스의 부름에 에이라나가 멈칫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레이텐티에스를 바라보자 그가 물었다.
  “중원의 일이 끝난 다음 돌아가서 뭐 할 거야?”
  “글쎄? 수면기에 들어갈까 생각 중.”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는 바로 경공술을 사용했다. 그러자 남겨진 레이텐티에스가 중얼거렸다.
  “그것도 좋을지 모르겠네.”
  잠시 뒤 레이텐티에스가 나타난 곳은 혈교 무사들이 스무 명 정도 모인 곳이었다.
  레이텐티에스는 그들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순진하게 웃으며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있던 그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중원 무림이 한바탕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사마 회합도 모자라 중원 역사상 한 번밖에 없었던 정사마 동맹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혈천교의 말살!
  당연하게도 혈천교의 첩자들은 이 사실을 교에 알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혈천교에 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가다가 에이라나와 레이텐티에스의 손에 의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혈천교 영역 주위에 에이라나와 레이텐티에스가 대단위 결계를 쳐놓은 상태라 그들이 혈천교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에이라나와 레이텐티에스의 감각에 잡혔다.
  물리적, 마법적 결계가 아니가 그저 알람결계 같은 것이었지만 크기가 크기인지라 어마어마한 마나를 잡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마나석의 도움으로 결계는 유지되고 있었다.
  사실 마나석이 없다고 해도 에이라나의 드래곤 하트나 단전의 기운 중 하나만 사용해도 결계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레이텐티에스도 있으니 그에게 결계를 떠맡기면 되겠지만, 에이라나는 레이텐티에스와 번갈아가며 결계를 치는 중이었다.
  사람이 아니어도 수많은 동물과 벌레가 이동하는 통에 엄청난 정보가 두 사람의 머리에 들어왔지만 이런 것에 머리가 과부화가 걸린다면 드래곤이나 마황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에 의해 혈교는 정사마의 연합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완전히 바깥과 안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즉, 혈천교의 첩자들이나 정보통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려는 무력단체, 혹은 안으로 들어오려는 무력단체까지 철저하게 붕괴시키고 있는 에이라나와 레이텐티에스 때문이었다.
  “얼마 전부터 본교로 들어오는 정보들이 모두 끊겨버렸소.”
  혈천교의 교주 혈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혈마의 심기는 불편 그 자체였다. 소교주가 반기를 든 것도 모자라 얼마 전 혈도단이 의문의 존재에게 전멸을 당했고 그것도 모자라 혈천교의 장로이자 혈도단의 수장인 쉬시환도 죽임을 당했다.
  그에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간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일이냐, 광혈?”
  혈마가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자 광혈이란 자가 시립하며 말했다.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막 소교주께서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이끌고 교를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혈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녀석이? 이유가 뭐지?”
  혈마의 표정에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광혈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막는다면 뚫을 기세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둬라.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혈마가 마법이란 것을 알았다면 이런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 혈마는 그저 시현이 세력을 이끌고 교를 뛰쳐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른 곳에서 혈교로 쳐들어온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혈교의 근처에는 대단위 살진이 펼쳐져 있는 상태였고, 시현이 이끌고 있는 혈교의 사할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드러난 상태와 살아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혈교의 무시무시한 점은 그들의 사이한 수법과 무공이 아니라 강시에 있다. 그러나 소교주는 이끄는 강시가 없었다. 따로 강시 제조술사도 없는 형편. 사할이란 타격이 크긴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회복이 가능할 겉으로 드러난 세력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천마교와 비등할 정도의 힘을 가진 무시무시한 곳이 혈교였다. 물론 천마교 역시 안으로 수많은 힘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힘이지 혈교처럼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힘은 아니었다. 물론 천마교와 혈천교가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공멸하겠지만 말이다.
  천마교는 1,000년을 이어온 무력단체다. 몇 백 년이라고 하지만 혈천교보다 훨씬 역사가 깊은 곳이다. 그들의 저력은 혈천교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예로 장로들이 빠져나갔다고 하지만 그들의 힘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천마교는 겉으로 드러난 힘보다 안으로 있는 힘이 더욱 크다. 물론 그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일부분을 사용할 수는 있다. 그것만 사용해도 지금 겉으로 드러난 천마교와 맞먹을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혈천교 역시 속으로 숨기고 있는 것이 많지만 천마교에 비해 달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천마교가 혈천교에 이를 갈면서도 혈천교를 어쩌지 못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고 또 그들과 싸우다가 정파와 사파에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파와 사파 측에도 숨어 있는 은거인들이 많기에 정파 무림과 사파 무림이 위험에 처한다면 그런 그들이 나타나 정파과 사파를 지킨다. 천마교에서 정파와 사파를 삼키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천마교보다 숨기고 있는 것이 더욱 많은 것은 정파와 사파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혈마는 사할이라는 힘을 잃었어도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혈마는 그 문제를 간단하게 넘긴 것을 곧 후회해야 했다.
  중원 무림에서는 혈천교를 멸하기 위해 정사마가 연합하여 무사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는 이들은 모두 에이라나와 레이텐티에스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혈마가 혈천교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이 이끄는 혈천교가 멸망의 문턱에 가 있을 때라는 것을 혈마는 알지 못했다.
  사현이 미리 이끌고 나간 혈천교의 세력은 다시 혈천교를 일으켜 세울 하나의 희망인 것이었다.
  “교주께서 그리 큰 제재를 가하지 않는군요.”
  시현이 자신의 옆에 사내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교의 사할이라고 하나 드러난 힘의 사할이지 진짜 사할이 아니니 마음만 먹는다면 회복 가능한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것을 아시면서 교를 나가는 것입니까? 이대로는 소교주께서 교주의 자리에 앉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 말에 시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혈검, 만약 나나 나를 따르는 세력이 교에 남아 있었다면 우린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예?”
  갑작스러운 시현의 말에 혈검이라 불린 사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내를 보며 시현이 말했다.
  “지금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 세 세력은 연합을 하여 본교를 치기 위해 무사를 모으고 있을 거야.”
  “그런 보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시현의 말에 혈검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못 들었지 지금 본교는 밖에서 안으로 고립당한 상태야. 본교의 영역을 나가거나 들어오는 이는 무조건 그들에게 죽어나가고 있을걸?”
  “무슨 소립니까? 그들이라뇨? 그들이 누굽니까?”
  “그들이 누구냐고 하면... 저기 있는 자들이지.”
  그 말에 혈검이 흠칫하며 시현이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은발의 여인과 백금발의 소년이 있었다. 그들이 뿜어대는 기운에 시현을 따르는 세력 전부가 흠칫하며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게 해주시죠. 저희는 교를 빠져나가는 길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시현이 말했다.
  “흐음... 좋아, 지나가.”
  그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간다.”
  시현이 자신을 이끄는 이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았던 존재... 에이라나의 얼굴은 너무도 잘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혈천교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무시무시한 존재! 혈사인!
  “혈사인!”
  “저자는 혈사인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교주께서 혈사인은 죽었다고...”
  모두가 경악한 눈으로 에이라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시현이 정정을 해주었다.
  “이 사람은 혈사인이 아니야.”
  그 말에 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뭐 그렇게 혼란스러워 할 필요 없어. 그보다 두 분 정말 대답하시군요. 설마하니 정말로 본교의 첩자들마저 본교로 못 들어오다니 말입니다.”
  “꽤 귀찮은 일이지.”
  그 말에 시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갈 곳은 있냐?”
  “네, 서장으로 좀 더 들어가면 본교의 비밀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을 제압하여 사용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시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왜 저희를 가만히 두시는 겁니까?”
  시현의 말에 에이라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저와 장로들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전 그 정로들이 의탁한 혈천교의 소교주입니다. 그런 저를 가만히 두는 것을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난 내 복수에 관심이 있는 거지 무림일 에는 관심이 없거든? 너희가 피로 세상을 정화하든 말든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만 안 간다면 난 상관없어. 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이계의 사람이니 말이야. 이 세상의 일에 관심 없어.”
  그에 피식 웃으며 말한 에이라나가 옆에 있는 레이텐티에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도 저번에 봐서 알겠지만, 이 녀석이 과거의 일로 내가 계속 흥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리고 계속 이 세상의 일에 신경 쓰고 깊이 빠져드는 것은 나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도 실례지. 그분들은 진심으로 날 사랑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야. 겨우 과거의 일 때문에 내가 계속 흔들린다면 난 그분들을 뵐 면목이 없어.”
  레이텐티에스는 에이라나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현 역시 멍한 얼굴을 하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에이라나 씨의 부모님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지도?”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에게 몇 마디를 하더니 그대로 경공술을 이용해 사라졌다. 레이텐티에스도 힐끔 시현을 보고는 뒤따라 사라졌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시현은 하늘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사무연, 전 이미 포기했다고 하지만... 당신은 과연 에이라나 씨를 보낼 수 있을까요? 그녀는 이제 중원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 곳의 일이 끝나면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 그녀가 떠나갈 때 당신은 그녀를 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야 한답니다. 과연 그때 당신은 에이라나 씨를 웃으며 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하군요. 에이라나 씨는... 더 이상 당신의 동생이 아닙니다. 헤어질 때 그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길 바랍니다.’
  자신과 같이 에이라나를 사랑했던 무연을 생각하며 시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따르는 혈천교의 무리들을 이끌고 혈천교의 비밀지역으로 향했다.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에서는 한창 혈천교를 치기 위해 무사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그중 천마교는 이미 무사를 모아 청해 무림맹 분타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고, 무림맹과 사황성은 자신들에게 가입되어 있는문파나 세가에게 무사들을 보내달라고 요청 중이었다. 그렇기에 무사들이 모이는 것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사황성과 무림맹 천마교는 서로 합의를 보고 청해 무림맹 분타에 세 집단의 무사들을 모으기로 한 상대였기에 사황성, 무림맹의 무인들이 모두 청해 무림맹 분타로 모이고 있었다.
  관에서는 당연히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청해에 병사나 황궁고수들을 배치한 상태였다. 하지만 혈천교라는 단체를 치러 가는무사들이기 때문에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이것에는 검제와 검마의 일 처리 능력이 단단히 한몫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청해 무림맹 분타에는 수많은 무림 고수들과 다음 대무림을 이끌어갈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었다.그리고 그곳에 소현, 은월, 화린도 있었다.
  후아, 언니 괞찮을까?“
  화린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은월이 말했다.
  “유현은 강하니까 괞찮을 거야.”
  은월이 시쿤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넌 걱정도 안 되냐?”
  그런 은월을 보며 소현이 말했다.화린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상당히 해로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소현은 지금 정파, 사파의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는곳에 있었다. 구파일방의 유명 제자들을 시작해 거대세가들의 자제들 그리고 사파의 다섯 기둥이라 불리는, 소현이 속해 있는 사도련 말고도 남은 네 개의 문파의 제자들도 모여 있었다.
  사파의 다섯 기둥을 오사문이라고 불렀는데 지금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자제들과 오사문의 제자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그중 소현도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정파, 사파의 다른 거대문파들이나 중소문파들의 후기지수가 모였으니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안영이 봤다면 같이 싸울 사람들끼리 왜 신경전을 벌이나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때 남궁휘연이 조심스럽게 소현들에게로 다가갔다.
  “저... 화린아.”
  그리고 자신과 많이 친한 화린을 불렀다. 화린과 휘연은 같이 남궁세가에서 생활할 때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휘연의 부름에 화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왜? 휘연 언니?”
  두 사람의 친근감 있는 대화에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 사파 사람이었니?”
  “에? 아닌데?”
  휘연의 말에 화린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새를 저으며 말했다.그제야 휘연의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그런 휘연을 보며 소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은월이랑 화린이는 사파가 아니라 중도의 사람이다. 나랑은 그저 친할 뿐 사파 사람은 아니야.”
  그에 모두의 시선이 화린과 은월에게로 향하자 화린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은월은 그것을 모두 무시해주었다.
  “설마 했더니 신경전이냐?”
  예상은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는 투의 말투.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한다. 그러자 그곳에는 지금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월광룡 남궁휘안. 리샨 대륙의 전쟁 영웅이자 9클래스마법을 구사하며 무공의 경지 역시 현경인 인간 같지도 않은 존재. 그가 나타나자 모든 정파 사람들이 휘안에게 다가갔다.
  그런 그들에게 인사해준 휘안이 소현과 화린, 은월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오라버니.”
  화린의 옆에 있던 휘연은 그런 휘안에게 웃어주었다. 휘안 역시 휘연에게 빙긋 웃어주엇다. 그리고 소현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휘안의 여유로운 말투에 소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휘안 오빠, 언니는요?”
  그 말에 휘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에이라나라면 지금 레이텐티에스랑 혈교의 영역 주위를 돌면서 신나게 싸우고 있을걸?”
  그 말에 소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이, 뭐? 그게 누구야?“
  “하유현의 본명은 에이라나, 하유한의 본명은 레이텐티에스. 좀 길지?”
  휘안의 말에 소현이 얼굴을 구겼다.
  “아무튼, 당신이 여기 있다면 두 사람도 여기 있어야지, 왜 당신만 온 거야?”
  “강제로 보내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그 녀석을 힘으로 당할 수도 없고.”
  휘안의 말에 소현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그렇다고 그런 곳에 친구를 두고 와? 당신 정말!”
  그런 소현을 보며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은 나보다 강해. 그런데 뭐가 걱정이냐?”
  휘안은 에이라나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휘안의 말에 소현은 물론 은월과 화린까지 반발하려 했다. 하지만 휘안이 먼저 말했다.
  “난 녀석을 믿거든?”
  그 말에 멈칫하는 세 사람. 휘안은 씨익 웃었다.
  “너희가 그 녀석이랑 오래 있었냐? 내가 그 녀석이랑 오래 있었냐? 난 녀석의 능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 무모한 일이었다면 내가 말렸을 거다. 하지만 그 녀석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야. 위험할지 몰라도 무모하지는 않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 너희도 녀석을 한번 믿어봐, 나처럼 말이야.”
  그 말에 소현은 분한 표정을 지었고 은월은 복잡한 표정을, 화린은 그래도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에게 빙긋 웃어준 휘안이 서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믿는다, 에이라나.“
  청해 지방 무림맹 분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드디어 ‘그들’이 도착했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며 절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들! 천마교의 최정예 무인들이 도착한 것이다.
  교주 광마 사혈사를 비롯해 혈겁 살천 장로와 현천도제 귀비환, 이렇게 세 명의 현경의 고수들이 와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공식적인 숫자이고, 사혈사를 호위하고 있는 천마대의 단장 역시 현경의 고수이며 소교주인 무연 역시 현경의 고수였다.
  천마교를 마중 나간 것은 무림맹과 사황성의 수뇌부들이었다.
  무림맹주 검제와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화검 그리고 휘안과 그의 사촌인 모용한 그리고 화산일검이라 불리는 화산파의 대제자 위사연이 정파 측에서 마중을 나왔다.
  사파 측에서는 검마와 권왕 그리고 악권수조와 그의 제자인 소현 그리고 검마의 제자인 아세강이 마중을 나온 상태였다.
  혈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바쁘지들 않은지? 무림맹과 사황성은 본교와 다르게 무사들이 모이는 속도가 느리지 않소? 비상시에는 정말 도움 안 될 정도로 말이오.”
  혈사의 말은 처음에는 걱정한다는 투로 시작했으나 끝은 시비조로 끝났다. 그 말에 검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걱정을 해주다니 정말 고맙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소. 3일 정도만 있으면 본성은 무사집결이 끝나니 말이오. 그대들이야말로 귀교의 배신자들을 잡으러 가는데 무사들이 좀 빈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려.”
  “배신자 따위들이야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하오. 내가 보기에는 무림맹이나 사황성에서 오히려 본교의 배신자들에게 엄청한 타격을 입지 않았으면 하오.”
  그 말에 모용한과 위사연, 아세강이 광마를 노려보았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데 어디서 어린애들이 끼어드는고? 버리장머리가 없구나.”
  그런 그들을 보며 현천도제가 기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세 사람이 움찔했다. 그것을 보고 한숨을 쉰 휘안이 손을 슬쩍 휘둘러 자신의 기세로 현천도제의 기세를 밀어냈다.
  현천도제가 휘안을 바라보았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힘을 숨기고 있었나?”
  그 말에 휘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더 이상 힘을 숨기기도 귀찮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현천도제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린놈이 건방지구나.”
  현천도제의 말에 휘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무림 선배라고 하나 마교 분에게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놈!”
  휘안은 천마교에 머무르는 동안 무연을 제외하고는 천마교인들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현천도제와도 이야기 한 번 안 해본 사이였다. 하지만 천마교의 사람들은 어렴풋이 느껴지는 휘안의 기운을 보며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절대로 무연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휘안이었다. 에이라나와 친구라고 하나 휘안은 천마교 내에서도 경계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그 순간 현천도제가 휘안을 보며 기세를 뿌리기 시작했다.그러자 검제 모용태현과 매화검 장한이 현천도제를 제제하려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휘안은 빙긋 웃으며 그 두 사람을 제제했다.
  “마교는 강자존을 따르죠? 그럼 이 기회에 보여드리지요.”
  순간 휘안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휘안을 바라보았다.
  수만의 대군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빼들고 돌격하던 영웅의 모습. 이미 한 대륙에 전설이 되어버린 한 검사의 모습.
  갑자기 돌변해버린 휘안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듯한 기세로 현천도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천도제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겨우 어린 아이의 기세에 밀렸다는 것에 창피함을 느끼고 자신도 기세를 뿌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자 검제와 광마가 둘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야~ 두 분이 싸우면 참 재미있는 구경이겠습니다. 장로님, 그만 하시죠. 본전도 못 찻을 것이 빤하니 말입니다.”
  천마교 측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모두의 시선으로 그곳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한 미남자가 싱긋 웃고 있었다. 천마교 측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사내, 절대로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내. 바로 악안영이었다.
  악안영의 말에 현천도제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냐! 내가 이 남궁가의 아이에게 질 거란 소리냐?”
  으르렁거리는 현천도제를 보며 안영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연하죠, 장로님이 휘안 공자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천마교 측에서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과 안영에 대한 걱정, 정파나 사파 측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휘안이 현천도제보다 강하다면 정파야 좋지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현천도제가 안영을 보며 살기를 피어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살기에도 안영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휘안이 안영을 보며 말했다.
  “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냐?”
  그 말에 안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최소한 정로님에게 죽지 않을 능력이 있으니 이러는 것 아닙니까? 아무튼 휘안 님도 귀찮아져서 더는 힘을 숨기지 않은데 제가 숨길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빙긋 웃은 안영을 보며 살혈이 말했다.
  “그만 하게, 비환.”
  그에 비환이 으르렁거리며 마랬다.
  “말리지 말게 살혈, 내 오늘 저 오만하고 건방진 놈들을 훈계할 것이야. 감히 무림 대선배를 무엇으로 보고.”
  이를 으드득 가는 비환을 보며 이번에 나선 것은 살혈이었다.
  “그만 하게, 비환.”
  “하지만 교주!”
  그런 살혈의 말에 비환이 반발했다.
  “안영만 해도 자네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네.”
  살혈의 말에 안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과대평가이십니다.”
  빙긋 미소 지은 살혈이 이번에는 휘안을 보며 말했다.
  “그런 안영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강하다고 하는 아이라면, 확실히 만만치 않게 강할 것이 분명하네.”
  이번에도 역시 안영이 말했다.
  “이런, 과소평가군요.”
  그 말에 혈사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혈사를 보며 안영이 말했다.
  “지금 현존하는 무림최고수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주위 사람이 움찔한다. 당연하게도 이 근처에 모인 이들은 현 무림에서 최강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 앞에서 무림최고수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을 하다니, 모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 안영의 말에 혈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 유현이겠지?”
  혈사는 에이라나를 일부러 유현이라 불렀다. 살혈도 마찬가지였다. 혈사는 자신이 지어준 이름을 버린 것이 아니라면 그 이름으로 부르게 해달라고 에이라나에게 말했고, 에이라나는 그것을 승낙한 것이다.
  그 말에 모두가 움찔했고 에이라나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그으이 정체를 모르는 이들은 그가 누군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태연한 것은 질문을 한 안영과 에이라나의 힘을 너무도 잘 아는 혈사, 살혈, 휘안뿐이었다.
  “에이라나가 그렇게 강했나?”
  무연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안영에게 말했다. 자신을 쓰러뜨렸다고는 하지만, 현경의 고수라고는 하지만 에이라나가 정말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드는 무연이었다.
  자신도 현경의 경지라지만 현천도제에게는 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경험의 차이와 연륜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강한 힘이 있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하면 자신보다 약한 힘을 가진 상대에게 당할 수도 있다.
  그 예로 매일 피를 보고 사는 삼류 무사들에게 일류세가의 자제들이 당하는 경우가 있다.
  무림에서 잔뼈 굵은 삼류 무사들은 무공 수위가 낮다고 하지만 늘 죽음과 직면하고 산다. 보통 무인들보다 더욱. 그렇기에 자신들 보다 강한 상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나이가 교주와 거의 비슷한 귀비환은 오랜 세월 수많은 적을 베이온 무인이다. 그만큼 수많은 전투를 해왔고 수많은 경험을 해온 천마교의 장로였다.
  자신도 한 수 접어주는 그런 귀장로보다 휘안이 강하다는 것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고 혈사의 말처럼 에이라나가 정말 무림 최고수라는 것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 후 과반수의 고수들이 살혈의 말에 동의했다. 바로 에이라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안영이 말했다.
  “교주님 에이라나 님과 비무를 한 적이 있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 한 번, 완패였지. 십여 할 정도 겨루고 패했으니 말이야.”
  그 말에 주위는 침묵했다. 설마하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 하지만 다음에 들린 안영의 말에 검제를 제외한 모든 이가 경악했다. 심지어 혈사와 살혈까지도.
  “휘안 공자님도 그 정도의 무공실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쉽게 말해 괴물?”
  “죽을래?”
  안영의 말에 휘안이 도끼눈을 뜨고 안영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안영의 말에 다시 경악하는 주위 사람들.
  “믿을 수 없군.”
  검마가 휘안을 보며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저번에 보았던 전 마교 소교주의 환생인 그 여인이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었다. 비무대회 때 보여주었던 그 무시무시한 기운은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은 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공포가 엄습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남궁가의 어린아이도 그 여인만큼 강하다?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런 검마의 말에 검제가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렇지도 않네. 나 역시 내 손자에게 멋지게 깨졌으니 말이네.”
  그 말에 검마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검완 그 친구도 이 녀석에게 쓰러졌어.”
  모두의 시선이 휘안에게 쏠린다. 휘안이 으쓱하며 말했다.
  “말했잖습니까? 귀찮은 것은 싫다고.”
  그 말에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든 말든 상관 없다는 듯 안영이 그런 그들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믿는 말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아무튼 언제까지 손님을 밖에 있게 할 생각들이십니까?”
  그렇게 화려한 폭풍을 몰고 온 휘안과 안영이었다.
  “정말 대단해! 설마하니 그렇게 강할 줄이야!”
  모용한이 감탄하며 말했다. 위사연 역시 감탄하며 말했다.
  “남궁형이 강한 줄은 알고 있었찌만, 벌써 그 나이에 그런 경지를 이룩하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
  그 말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은 편이지, 아무튼 당분간은 비밀로 해줬으면 해.”
  그 말에 모용한과 위사연이 걱정 말라고 했다.
  “쳇.”
  그런 휘안을 보며 소현이 뚱한 표정을 짓자 그런 소현의 반응에 모용한이 말했다.
  “사파에는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나?”
  그 말에 소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는 모용한. 얼굴을 구긴 소현이 말했다.
  “에이라나가 강하다고 말했는데 역시 사실이었다 보네? 휘안 당신과 에이라나가 싸우면 누가 이기지?”
  그 말에 위사연과 모용한이 멈칫했다. 마교의 소교주 흑마룡 사무연이 거론했던 에이라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러고 보니 현 무림 광마가 무림 최고수라 했었다.
  “글쎄, 무공만으로는 백날 붙어도 결론이 안 날걸?”
  무공으로 따지면 두 사람은 호각. 절대 승부가 나지 않는다.
  “뭐, 녀석이 본래 힘을 사용한다면 내가 지겠지만.”
  너무도 쉽게 떨어진 답. 그 말에 모용한과 위사연은 물론 소현까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런 건 왜 묻지?”
  의아하다는 휘안의 말에 소현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구, 궁금해서.”
  그런 소현을 보며 휘안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호오, 너 혹시 내가 그 녀석보다 강하다고 말하면 그 녀석에게 고자질하려고 했냐?”
  그 말에 움찔하는 소현. 그런 소현을 보며 휘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애냐?”
  “이익! 닥쳐!”
  그런 휘안의 말에 소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저 멀리 달려가 버렸다. 그런 소현의 모습을 보며 왠지 소현이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소현은 얼굴을 붉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이런지 알 수 없었다.
  “하아...”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늘 자신을 쥐어 패는 한 여인을 떠올렸다. 은발에 은안을 가진, 이세계의 존재라는 여인. 에이라나.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소현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다르다. 그냥 옆에 있으면 편하다. 자신을 키워준 사부보다 더욱 말이다. 그녀에게서 왠지 모르게 부모님의 향수를 느끼는 소현이었다.
  “왜 그런 막나가는 여자가 내 부모면 좋겠다는 생각할까?”
  소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악! 내가 미쳤지! 왜 그런 미친 생각을 하는 거야!”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치는 소현. 그런 소현의 뒤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구나, 우리 소현이는 그 여인을 이성으로서가 아닌 부모 같은 존재로 생각했었나 보네?”
  익숙한 목소리에 소현이 흠칫했다.
  “사, 사부님!”
  바로 자신의 사부 악권수조 아해안이었다. 소현이 당황하자 아해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조금 씁쓸하네. 나에게조차 부모같이 대하지 않던 소현이가 부모처럼 대하는 존재가 있다니 말이야.”
  그 말에 소현이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소현이 아해안에게 악을 쓰듯 말했다.
  “흐음? 아니야?”
  그 말에 소현이 말했다.
  “그런 난폭한 여자를 부모님처럼 생각할 리 없잖아요.”
  그 말에 잠시 가만히 있던 아해안이 소현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런 아해안을 보며 소현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친아들처럼 대해주는 아해안도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그런 나폭한 여자를 부모님같이 생각한다면... 아해안에게 너무도 미안했던 것이다.
  다시 생각에 잠긴 소현을 보며 아해안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너를 만난 것이 네가 일곱 살 때였던가?”
  그 말에 소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스승님과 만났죠. 고아였던 저를 거두어주셨고요.”
  그런 소현을 보며 아해안이 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참 소심한 아이였어, 작은 실수 하나에도 벌벌 떨면서 내 눈치를 보곤 했지.”
  그 말에 소현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런 너를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단다, 좀 당당해도 되련만...”
  아해안이 싱긋 웃었다.
  “아들처럼 키우고 싶었단다. 내 아들처럼... 그런데 넌 날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못하더구나.”
  “죄송합니다.”
  그 말에 아해안이 빙긋 웃었다.
  “아니다, 네가 왜 사과를 하느냐.”
  아해안이 조금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만 나를 어려워하는 너를 보며 조금 서운할 뿐이었단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어려워하고 말이다.”
  그렇게 쓴 웃음을 짓던 아해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네가 친구를 사귀고, 자연스럽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좋았단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도 생긴 것 같으니 말이다.
  “아해안은 사도문에서 은월과 화린과 함께 지내는 소현의 모습을 떠올리고 빙긋 웃었다. 그러자 소현이 얼굴을 붉혔다.
  “이미 포기했어요, 두 사람이 잘되기를 빌어줘야죠.”
  그 말에 아해안이 까르르 웃었다.
  “우리 소현이 많이 컸네.”
  “그 여자, 에이라나가 부모님 같은 느낌이 든다지만... 그녀는 아직 젊은 여성이잖아요? 아마 제가 그녀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면 전 맞아 죽을 거라고요.”
  소현이 투덜거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아해안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에 의해 두 사람 다 화들짝 놀랐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맞아 죽을 걸?”
  사파 최고수라 불리는 아해안의 기감을 피해 바로 뒤까지 오다니. 뒤에는 한 아름다운 남자가 빙긋 웃고 있었다.
  “깜짝 놀랐잖아!”
  바로 휘안이었다. 그런 휘안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현. 하지만 휘안은 그런 소현의 말을 무시하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오~ 너 에이라나에게 그런 감정이 있었냐? 몰랐네? 쿡쿡쿡! 그런 난폭한 녀석의 어디에서 부모의 향을 느꼈을까?”
  그 말에 소현이 움찔했다.
  “젠장! 내가 어떻게 알아!”
  그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이상할 것도 없지 녀석도 주위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따뜻하니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이 소현에게 말했다.
  “뭐, 에이라나에게 한번 그 감정 털어놔보지 그래?”
  “남 죽는 꼴 보고 싶어?”
  “나이 때문이라면 그렇게 큰 걱정할 필요 없을걸? 녀석, 나이가 500살 넘어가.”
  휘안의 말에 소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 장난쳐?”
  그 말에 휘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중원의 상식으로 녀석을 바라보면 안 돼, 녀석은 중원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휘안이 웃으며 소현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휘안의 뒷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소현이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무림맹과 사황성도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정파와 사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마도와 정사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크고 작은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연에게 겁 없이 시비를 걸었던 청성파의 대제자가 무연에게 거의 반죽음 당하는 사태였다. 만약 휘안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 대제자는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무연에게 시비를 건 쪽은 그쪽이기에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이만 바득바득 가는 실정이었다. 아무튼 청성파의 대제자는 그렇게 이번 싸움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무림인들이 서장에 있는 혈교의 본거지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와 함께 통신구슬에 얼굴이 드러난 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 어디쯤 왔어?”
  레이텐티에스가 휘안에게 물었다.
  [서장에 막 발을 들인 상태.]
  정사마 연합이 출전한 지 벌써 2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정사마 연합은 서장에 발을 들이고도 반응을 하지 않는 혈교 때문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혹시 함정을 파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휘안과 통신을 하던 에이라나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에이라나의 손에는 새 한 마리가 잡혀 있었다. 바로 전서구였다.
  “서장 땅에 들어오니까 슬슬 전서구를 보내는 모양인데?”
  에이라나가 전서구의 다리에 매달린 쪽지를 읽으며 말했다.
  전서구는 먼 거리를 먼 거리의 편지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새였다. 물론 너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서장 땅이라면 달랐다. 충분히 전서구로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혈교 측에 대응을 할 것 같은데?”
  그러고는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드래곤과 마족이라도 날아다니는 새까지 잡자는 못한다. 에이라나가 전서구를 잡을 수 있었던 껏은 전서구 특유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인간이 조련하다 보니 다른 새들과 움직임이 조금 달라진 것이었다.
  [후, 철수하는 게 어때?]
  그에 휘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글쎄, 일단 혈교의 영역에서 벗어나도옥 하자.”
  그 말을 끝으로 에이라나는 휘안과 통신을 끊고 레이텐티에스와 함께 혈교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혈마는 어이없음에 화도 내지 못하고 그냥 헛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금 적들은 자신들의 코앞까지 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혈교는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방금 도착한 전서구를 보고서야 그것을 알았다.
  개방보다 앞서는 정보력을 가진 자신들이, 수많은 무사들이 몰려서 달려오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교주의 방이 열리면서 한 무사가 다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정사마 연합이 본교를 향해 무사들을 모아 진군해 왔다고 합니다! 벌써 신강에 발을 들였다고...”
  “알고 있다.”
  혈마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중원 무림에서 황실을 제외하고 전서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전서구 한 마리의 가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황실이 아니면 수많은 전서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전서구를 직접 키워도 되겠지만 그 역시 가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또한 훈련시킨다고 해도 날아가는 도중에 길을 잃어 다른 곳으로 향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서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 서장에 있는 분타로부터 수많은 전서구들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무사가 보고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분타들이 전멸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혈마가 의문스러운 것은 왜 정사마 연합이 무사를 모은다는 정보가 없었냐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수많은 첩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무림맹, 사황성 고위 인사들 중 혈교의 첩자들은 많았다. 그런 그들이 왜 연락을 하지 못했을까? 사람은 보내지 못하더라도 직접 달려와 알렸을 것이 뻔했다.
  ‘잠깐, 직접?’
  순간 혈마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본교로 들어오는 첩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는...’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자신들이 정사마 연합이 모이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상대는 소수! 얼마 전 혈도단이 전멸당한 적이 있는데 혈도단을 전멸시킨 자일지도 몰랐다.
  혈마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장에 있는 분타들은 자신들의 전력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그들이 전멸했다면 드러난 전력의 삼할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혈시현, 이것을 알고 있었구나.”
  자신의 아들 혈시현이 생각나자 이를 부득 간 혈마. 그는 이것을 알고 교를 빠져나간 것이다.
  “이번 싸움, 힘들겠지만 지지는 않는다.”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무리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가 연합했다고 해도 자신들의 숨겨진 힘은 강하다. 그렇게 냉소하던 혈마는 문득 시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시 살아 돌아와 당신들에게 검을 겨눈 아주 무시무시한 자가 있습니다.’
  왜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찜찜한 기분이 드는 혈마였다.
  정사마 연합은 수많은 혈교 분타를 처리하며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후기지수들은 자신이 세운 공적에 으스대며 자랑하기 바빴다. 젊은 혈기에 그런 것은 당연했다.
  반면 그 누구보다 수많은 공적을 세운 이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바로 휘안, 무연, 은월, 소현이었다.
  화린은 방어만 할 뿐 공격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화린이 죽인 상대는 전무한 상태. 하지만 화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주위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이 마음 여린 화린에게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화린은 은월 옆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은월 옆에는 소현이 뚱한 표정으로 싱글거리고 있는 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혈교 측에서 우리가 쳐들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야.”
  그 말에 소현이 대꾸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아마 정사마 연합에서 무사를 모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을 걸? 당연한 거잖아.”
  소현의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어린애라니까.”
  “뭐얏!”
  “우리가 혈교의 분타들을 공격할 때 녀석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못 봣냐? 분위기 못 느꼈어?”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은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이곳으로 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 당황해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지. 우리가 쓰러트린 것들은 정예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것들이었다고.”
  휘안이 나른한 얼굴로 한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싸움에는 흐름이 있거든, 그 흐름으로 알 수 있지. 이런 대규모 싸움이라면 더더욱. 상대가 본래 실력도 다 끌어내는지, 끌어내지 못하는지 말이야. 그리고 상대가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도 알 수 있지. 강하면 그대로 냅다 튀어야지. 그리고 상대가 자신보다 약해도 함정을 파놓았는지 파놓지 않았는지 알 수 있거든 파놨다면 피하거나 파괴시키고 가야 할지 정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싸움의 흐름을 느끼고 잘 판단해서 움직이면 목숨 달아날 일은 없지.”
  그 말에 소현이 말했다.
  “당신은 그 흐름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소현의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전쟁터에서 선봉에 서서 매일 싸워봐, 감만 좋으면 금방 익혀지니까 말이야.”
  에이라나와 휘안은 늘 앞에서 싸웠다. 수없는 적을 처리하고 수많은 함정도 봤다. 수많은 강자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두 사람보다 강한 자는 없었다.
  위험한 함정도 여러 번 겪었다. 물론 그 함정을 모두 파괴하며 나간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전투의 흐름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그 흐름을 느끼는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키운 두 사람이었다. 전투에 대한 감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에이라나와 휘안이었다.
  “녀석들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었어, 흐름을 읽으면 알 수 있지. 녀석들은 우리가 올 줄 몰랐던 거야.”
  그 말에 소현이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에이라나랑 레이텐티에스가 왜 혈교로 갔다고 생각해?”
  “그거야 권력 다툼에 끼어들려고.”
  그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틀려, 녀석들은 혈교로 들어가는 첩자들을 잡으러 간 거야.”
  “당신의 말은, 두 사람이 첩자들을 모두 잡아서 혈교가 우리가 쳐들어오는지 몰랐다는 소리야?”
  “그래.”
  휘안의 말에 침묵하는 소현. 그러자 은월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가능하지.”
  그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에게 무공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이때 이어진 휘안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세 사람.
  “마법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무한대로 상승하거든.”
  휘안의 알 수 없는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 방에 아홉 사람이 모여 있었다. 바로 혈천교의 교주 혈마와 장로들이었다.
  “정사마가 연합하여 우리 코앞에까지 쳐들어왔다 하오.”
  혈마가 나른한 얼굴로 말했다.
  “소교주가 사할의 세력을 이끌고 교를 빠져나갔고 분타들이 전멸하는 바람에 삼할의 세력을 잃었지, 총 칠할의 세력을 잃은 셈이군.”
  엄청난 타격임이 분명하지만 혈마는 태연했다.
  “숨겨진 힘들을 사용해야겠소, 동의하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건방진 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는지... 쯧, 본때를 보여줘야지.”
  혈마의 입가에 냉소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다른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함정
  커다란 승리를 거둔 정사마 연합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그렇게 거침없이 혈교의 영역으로 쳐들어가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혈교의 분타로 짐작되는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혈교의 분타가 보인다! 가서 정의가 살아 있음을 저 악독한 혈교의 무사들에게 보여주자!”
  무림매의 한 장로가 정파 무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와! 정의는 살아 있다.”
  “무림맹 만세!”
  그런 정파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파와 천마교. 휘안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꼭 저렇게 소리쳐야 할까?”
  그 말에 남궁성휘가 말했다.
  “저런 거 싫어? 좋잖아? 사기도 올리고.”
  “그건 그렇지만, 왠지 쪽팔려서.”
  휘안은 툴툴거리다 눈앞에 보이는 혈교의 분타를 보며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저 성, 불안한데?”
  왠지 안 좋은 기분을 느낀 휘안이었다.
  불안감을 느낀 것은 휘안만이 아니었다.
  “불길하군요.”
  안영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말에 광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말이냐?”
  “저 분타, 아무래도 뭔가 함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안영의 말에 광마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안영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사들에게 되도록 나서지 말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바로 돌격하지 말고 좀 더 살펴보자고 무림맹과 사황성에 말해보십시오. 뭐, 그래봤자 달려들겠지만 적어도 동맹관계인데 그 정도 말은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혈사는 안영이 가장 무서울 때는 바로 저렇게 웃을 때라고 생각했다.
  혈교의 분타를 치기 위해 모두가 회의에 들어갔다.
  휘안 역시 그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정파, 사파 측의 주장은 바로 당장 처 들어가서 쓸어버리자는 것이었다.
  승승장구하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천마교의 주장은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안영 역시 느꼈다고 생각하는 휘안이었다.
  “흥! 중원 단일 최강이라는 천마교 분들이 그렇게 떨어서야! 세상이 비웃을 것이오.”
  한 무림맹의 장로가 말했다. 그 장로의 말에 반응한 것은 성격 급한 현천도제 귀비환이었다.
  “뭐야? 건방진! 무공도 약해빠진 덜떨어진 놈이, 싸움이 일어나면 가장 뒤에서 지켜보는 겁쟁이 놈이 감히 세상이 천마교를 비웃는 말을 입에 올려?”
  그 말에 무림맹 장로도 발끈했다.
  “뭐야! 말 다했소! 누구 보고 무공이 약하다는 것이오! 나는 한평생 무공에만 전념해온 사람이외다!”
  “큭, 그런데 무공 실력이 겨우 그 정도? 장로라는 놈이? 장로라는 칭호를 달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현천도제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 기운에 무림맹의 장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른 이들 역시 얼굴이 굳었다. 그들이 느낀 것은 삼마이제삼왕에 버금가는 기운이었다.
  그 기세에 무림맹 장로가 움찔했다.
  “그만 하시오.”
  검제가 중제에 나섰다. 하지만 현천도제는 듣지 않았다.
  “무인이란 자고로 화끈해야지!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힘이 되지 않더라도 검을 뽑아 달려들어야지! 이래서 내가 저 녀석을 보고 덜떨어졌다고 한 게야. 이렇게 겁이 많으면 생각을 하고 말을 내뱉어야지!”
  현천도제의 말에 무림맹 장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만 하시오.”
  결국 혈사도 중재에 나섰다.
  그제야 혈천도제가 어깨를 으쓱하고 물러섰다. 자신이 평생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물러설 때 물러서는 사람이란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회의가 다시 진행되자 검제 모용태현이 광마 혈사에게 물었다.
  “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우리는 그들의 전력에 삼할을 격파했소. 아마 그들은 그들의 본타에 모든 힘을 집중시키고 있겠지, 함정이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오.”
  그 말에 혈사가 대답했다.
  “그러면 좋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소이까?”
  “그것도 그렇지만...”
  혈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기에 모용태현이 뜸을 들였다. 검마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즈음 휘안이 입을 열었다.
  “저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제야 정찰조를 편성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듯했으나 정파와 사파의 문파들의 문주들이 반발했다. 그들은 공을 세우고 싶었다. 정찰조를 보내서 기다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수는 없소! 적들의 기세가 완전히 꺾였는데, 그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줘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오!”
  흑월문이라는 사파 대문파의 문주가 소리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광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공에 눈이 멀다니 한심함이 치밀어 올랐다.
  정파나 사파 측에서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라고는 소림사의 무승들과 삼마이제삼왕급에 버금가는 고수들 그리고 천뇌라 불리는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천과 사파의 두뇌라 불리는 사뇌라고 하는 이위현뿐이었다. 나머지는 공에 눈이 멀었을 뿐이다. 저런 것들이 구파일방이고 오대세가고 사파의 대문파의 수장들이라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것은 정파나 사파의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결국 그렇게 됐습니까? 그럼 본교는 후방에 선다고 말씀하십시오. 천뇌 제갈천과 사뇌 이위현이 반발하겠지만... 뭐, 협조를 안 해주는데 그들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안영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현천도제 귀비환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악독한 놈이군. 함정인 것을 알고 모두 밀어 넣다니.”
  “그럼 저희가 함정에 들어갈까요?”
  “그건 아니지만...”
  “그것들이 병신 같은 선택을 해서 병신 짓을 한다는데 우리야 좋죠.”
  안영의 말에 현천도제가 아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말투가 유현을 닮아가는 것 같은데...”
  그 말에 안영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제 예상으로는 이번 싸움에 에이라나 님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무연의 눈이 빛났다.
  “정말이냐? 안영?”
  “네.”
  안영의 대답에 무연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무연을 보며 안영은 한숨을 쉬었다. 혈사와 살혈고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천마교는 뭔가 꺼림직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무사들을 뒤편에 세웠다. 그에 천뇌와 사뇌는 당장 반발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저 공을 세울 생각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혈교의 분타를 향해 달려가는 정파와 사파의 무사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뒤따르는 천마교의 무사들.
  정파와 사파의 무사들은 몰랐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명예로운 공이 아닌 무시무시한 함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쳇, 결국 이렇게 되나?”
  휘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천뇌와 사뇌가 그렇게 말하는데도 듣지 않다니, 너무 자만하고 있다. 혈교를 너무 얕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공중에 손을 휘들렀다. 그러자 어느새 휘안의 손에는 가죽에 둘러 쌓인 검집을 가진 검이 들려 있었다.
  우우우웅!
  옅은 검명을 토하는 검을 보며 휘안이 빙긋 미소 지었다. 에이라나가 자신에게 선물한, 에이라나의 드래곤 본으로 만든 검, 월아.
  -주인님
  월아가 휘안에게 말을 걸었다.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아서 미안하다.”
  그 말에 월아가 웃음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괜찮아요.
  그에 휘안이 빙긋 웃었다.
  검집 자체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월아. 손잡이 부분 역시 정교했다. 오랜만에 애검의 손잡이를 쥔 휘안이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데?”
  어쩌면 휘안은 이런 위화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월아를 꺼내셨군요.”
  그때였다. 앞서 달려 나가는 무사들을 바라보는 휘안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안 가?”
  “좀 있다 가려고요.”
  휘안의 뒤에 있는 이는 안영과 무연이었다.
  “뭐지, 그 검은?”
  이때 월아가 품고 있는 빙기를 느낀 무연이 말했다.
  “아아, 친구의 선물.”
  그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난 먼저 가지.”
  그렇게 말한 휘안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그는 이미 저 멀리 달려가고 았었다.
  휘안이 멈춰 선 곳은 망루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당황하는 무사의 목을 베어 넘긴 휘안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다. 무사들이 너무 약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후 휘안은 느꼈다. 죽은 자의 기운을. 이런 기운을 뿌리는 존재라면 중원 무림에서 단 하나!
  “강시?”
  혈교의 자랑, 강시 부대가 그곳에 있었다.
  검제는 너무도 쉽게 쓸려나가는 혈교의 무사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다른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쉽다. 혈교의 분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사용하는 무공들은 모두 혈교의 무공들이었다. 순식간에 혈교 분타가 정리되자 한 무사가 어이없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쉽잖아.”
  분타를 점령한 정파와 사파의 무사들. 그렇게 그들은 더 공을 세울 게 없나 하고 주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분타주조차 없으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맹주, 뭔가 이상하오.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소이다. 마교도의 말처럼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소이다. 그러니 퇴각하는 게 좋을 것 같소.”
  무림에서 최고봉이라 불리는 소림사의 방장 홍현 대사가 말했다. 그는 무공 역시 뛰어나지만 무림에서 연륜 또한 상당한 이였다.
  그 말에 동의한 검제가 말했다.
  “퇴각!”
  다른 문파의 문주들도 이상함을 느꼈기에 퇴각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푹!
  “크악!”
  쓰러져 있던 혈교의 무사의 검이 갑자기 사파 무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무사는 단발마와 함께 사망했다.
  그런 상황은 그 무사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큭! 설마 강시들이었나?”
  그에 검제가 자신의 눈앞의 강시의 목을 베며 말했다.
  설마 강시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사람처럼 행동하는 강시라니! 아무리 약해도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적에게 갑자기 기습을 당한다면, 방심하고 있었다면 위험했다.
  이후로도 수많은 무사들이 다치고 죽어갔다. 그에 그들은 뒤늦게 차근차근 강시들을 처리해나가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는 상당했다.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 모용태현과 남궁태의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금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휘안이 거기 있었다.
  “무엇을 말이냐?”
  “저길 보십시오.”
  휘안이 턱짓을 했다. 건방진 태도였지만 모용태현과 남궁태는 상관하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었다.
  “세상에... 혈천강시?”
  “그것보다 더 무서운 놈인 것 같은데요?”
  남궁태가 무시무시한 숫자의 혈천강시처럼 보이는 것들을 보며 말했다.
  겉은 혈천강시지만 아니다. 더 무서운 놈들이다. 휘안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모두가 혈천강시를 발견했는지 경악했다.
  “천마교 사람들을 불러오게!”
  남궁태가 옆에 있는 무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혈천강시의 공략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은 그 혈천강시를 사용하는 천마교일 것이다.
  “후퇴하면 당한다! 맞서 싸워라!”
  이때 검마가 소리쳤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검강으로도 자르기 힘든 혈천강시가 떼로 몰려오는데 그 누가 돌격하겠는가.
  그에 얼굴을 구긴 검마가 먼저 달려나가려고 했다. 물론 그것은 검마뿐만 아니라 검마급의 고수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먼저 달려가는 이가 있었다.
  “휘안아!”
  남궁현이 그런 휘안을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달려가는 이라고는 휘안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도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휘안은 그런 남궁현의 외침을 무시했다.
  순간 모용태현과 남궁태의 얼굴에 낭패가 어렸다. 그들은 전음으로 의견을 나누고 먼저 달려가자고 말을 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보다 먼저 달려 나가다니... 자신들이라도 저런 수많은 혈천강시를 단신으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내 그들도 휘안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휘안은 그런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웃고 있었다.
  “혈천강시라지만 겨우 저 정도의 숫자에 겁먹어선 안 되지.”
  그는 예전에 막 현경의 경지에 올랐을 때 혈천강시들과 붙은 적이 있었다. 물론 힘들었다. 만약 에이라나나 엘프 검사 로카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은 강하다. 이전과 비슷해 보이는 숫자의 혈천강시 따위에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휘안은 자신의 허리에서 월아가 아닌 보통 강철검을 뽑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혈천강시들에게 날렸다.
  그러자 검에서 검강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마치 생물처럼 움직여 혈천강시 몇 구를 베어버렸다. 바로 심검, 이기어검이었다.
  이어 휘안은 월아를 뽑았다. 드래곤 본으로 만든 휘안의 애검 월아가 중원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검신. 하지만 그 아름다운 검은 곧 무시무시한 검강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월아의 검강에 전방에 있던 혈천강시들이 쓸려나갔고, 휘안은 그대로 혈천강시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하나의 춤이었다.
  월무. 휘안이 청월에게서 받은 무공서로 익힌 비기 중 하나.
  그렇게 춤을 추는 휘안과 쓰러져 나가는 혈천강시들을 보며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름다운 춤이 그 아름다움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자루의 검은 휘안을 수호하듯 휘안의 후방을 지켰고, 한 자루의 아름다운 검은 휘안과 함께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해서 휘안의 손에 쓰러진 혈천강시는 30구.
  단신으로 1100구나 되는 혈천강시 중 30구를 처리한 건 정말 무림에서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거, 검황이다!”
  바로 그때 한 무사가 소리쳤다. 그리고 빠르게 그 말은 퍼져나갔다.
  검의 황제. 검황이라 불리는 칭호.
  지금 새로운 전설을 만드는 한 사내에게 붙은 영광스러운 호칭이었다.
  “이야~ 역시 휘안 공자님은 다르군요.”
  검제와 검왕, 검마가 멍하니 있을 때 안영이 다가와 말했다. 광마와 혈겁, 현천도제 역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저게 가능한가?”
  이때 살혈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가능하니까 저러고 있죠, 정말 새로운 전설을 하나 더 쓰시는 군요, 휘안 님은.”
  그렇게 중얼거린 안영은 문득 휘안이 검무를 멈추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 왜 저래?”
  그러다 무연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 휘안 님의 목숨이 간당간당한데요?”
  태연하게 말하는 안영의 말에 검왕 남궁태가 버럭 소리쳤다.
  “이놈아! 무슨 생각이야! 움직여!”
  하지만 휘안은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혈천강시들의 손톱이 휘안을 꿰뚫으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그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휘안을 공격한 혈천강시 다섯 구가 갈기갈기 찢겨 발겨졌다.
  “이런, 또 하나의 전설이군요.”
  그 모습을 보며 안영이 웃음기 넘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휘안의 등 뒤에 은발에 은빛 가면을 쓴 여인이 한 손에는 백은빛 검신을 가진 검을, 한 손에는 흑빛 검신을 가진 아름다운 검들을 들고 서 있었는데, 두 검은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여~ 안녕.”
  휘안이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난 에이라나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 인사를 받지 않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혈천강시의 머리통을 차버렸다.
  퍼억!
  혈천강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이없게 터져 나가는 머리통. 그것은 에이라나가 발에 상당한 내공을 실었다는 증거였다.
  치익!
  하지만 혈천강시의 피가 묻은 에이라나의 신발이 타드러갔다. 그에 에이라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독이군.”
  혈천강시의 피는 극독이었다.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말했다.
  “아아,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하고 있지.”
  그러나 내용과 다릴 전혀 고생하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튼 휘안은 자신의 의지로 조정하는 강철 검에서 의지를 빼앗았다. 그러자 강철검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하지만 이제 저 검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 든든한 이가 왔으니.
  에이라나도 그것을 보고 히죽 웃었다.
  “자, 전설 하나를 새로 써보자고.”
  에이라나의 말과 함께 에이라나와 휘안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시들에게 달려들었다.
  새로운 전설을 써나가는 두 사람이었다.
  혈천강시 100구를 순식간에 처리한 두 사람.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50구만 해도 대문파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는 전력이다. 그런데 100구를 순식간에 처리했다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에이라나가 은아와 흑아를 검집에 꽂으며 말했다.
  “피해가 큰가 봐?”
  그 말에 휘안이 말했다.
  “고수들은 대부분 무사한데 좀 수준이 낮은 무사들이 많이 죽었어.”
  휘안의 말에 에이라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무림맹과 사황성 무사들의 시체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천마교 무사들의 시체는 없었다.
  이때 천마교 무사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혀를 찬 에이라나가 말했다.
  “왜 무림맹과 사황성의 무사들만 먼저 달려와 죽고 난리야?”
  “휴, 몰라. 묻지 마라.”
  그렇게 천마교의 무사들이 모두 혈교 분타 안으로 들어오자 둘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땅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푹! 푹!
  “키에에에엑!”
  “크와와와!”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에 두 사람을 각각 검황과 검성으로 취하던 이들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한 사람이 소리쳤다.
  “땅속에 강시들이 숨어 있다 조심해라!”
  바로 그때 땅속에서 수많은 강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땅속에서 기어 나온 강시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당황했다.
  강시들은 강했다. 혈천강시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고 날렵했으며 죽을 때 뿌리는 피가 극독이었는데, 죽을 때 추가타를 입히기 휘해 만든 강시 같았다.
  그 독은 고수들에게는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실력이 낮은 무사들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그렇게 커다란 피해를 입고 난 뒤 정사마 연합은 혈교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후의 싸움
  혈마는 혈비대가 전해온 정보에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정사마 연합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한 타격은 아니었다.
  그에 그 이유를 알아보니 단 두 명에 의해 혈천강시 100여구가 전멸 당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하나는 남궁세가의 남궁휘안이었고 하나는 전혀 정보가 없는 은발에 은빛 가면을 쓴 여인이라고 했다.
  아니,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비한 치료술을 가지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무공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단 두 개의 정보만 있었다.
  바로 황실 비무대회에서 한 번 나타난 적이 있는 의문의 여 고수. 그런 여 고수가 자신의 목을 죄여온다.
  그것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혈마는 생각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말이다.
  혈교 분타를 빠져나간 정사마 연합은 그대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친 무사들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에 중독된 이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그 독을 풀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독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한편 휘안은 손가락을 깨물고 괴로워하는 동생 성휘를 바라보았다. 동생은 독강시의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오라버니...”
  옆에서 낭궁휘연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 독은 무림에서 가장 독에 능하다는 정파의 사천당가와 사파의 독사문 그리고 천마교의 천마독혈단들이 달려들어도 어쩔 수 없는 독이었다. 물론 천천히 연구하면 해독제를 만들 수 있겠지만 해독제를 만들 때쯤이면 이들은 다 죽어 있을 것이었다.
  남궁태와 모용태현도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에이라나와 레이텐티에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그런 그들에게 화린이 다가오며 에이라나를 부르자 에이라나는 피식 웃으며 화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언니가 저 독을 치료할 수 없을까? 저번에 그 치료술로 말이야.”
  그 말에 모두가 움찔하며 에이라나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그 치료술이라면 이 독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고개를 저었다.
  “리커버리론 무리야.”
  그 마렝 모두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에이라나의 옆에서 레이텐티에스가 툭 내뱉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큐어 포이즌으로는 가능하지 않아? 마법적 독은 아니니 치료 가능할 텐데?”
  순간 모두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레이텐티에스에게 향했다. 그리고 다시 에이라나에게 향했다.
  그에 에이라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가능하지.”
  “소저, 성휘를 살려주시오!”
  그러자 남궁현이 에이라나에게 말했다.
  아들이 독에 의해 죽어간다. 그런데 독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 당연히 그 사람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남궁현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기각, 만약 내가 당신의 아들을 구해준다면 여기 중독된 모든 이를 구해줘야 해. 그것은 내공을 잡아먹는 일. 힘 빼기 싫어.”
  냉정한 말.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궁성휘를 구해줘야 할 이유가 에이라나에게는 없었다.
  그에 남궁현이 고개를 푹 숙이자 그런 그를 한번 바라본 에이라나가 휘안을 보며 말했다.
  “너 해독포션 없냐?”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 치료포션은 있지만...”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레이텐티에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이텐티에스는 싱긋 웃어 보이며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휘안에게 던졌다.
  “이걸로 형은 나한테 빚 하나 진거야.”
  바로 해독포션이었다.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휘안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고맙다.”
  그리고 해독포션을 성휘에게 먹였다.
  그러자 중독현상을 일으키던 성휘의 몸이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해독포션이 성휘의 몸속에 있는 독기를 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휘안 역시 큐어 포이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것이 꺼려졌는데, 이유는 에이라나와 마찬가지였다. 만약 레이텐티에스에게 해독포션이 없었다면 사용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레이텐티에스가 입으로는 빚이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이런 걸 가지고 빚에 넣을 치사한 놈은 아니었다.
  이윽고 성휘의 독기가 제거되자 모두들 또다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 난 이제 더 이상 이 해독물약이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와서 떠들어도 못 줍니다.”
  이때 레이텐티에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다음 날, 성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자신이 독에 당했는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성휘를 보며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독을 어떻게 해독했는지 물어왔다. 하지만 다들그저 휘안이 옛날에 구했던 해독 물약으로 해독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에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기열이 휘안을 찾아와 해독물약에 대해 물었지만 휘안도 아는 지인에게 받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지인은 레이텐티에스였다.
  아무튼 그렇게 해독포션 유리병에 있던 포션의 한 방울을 받아온 당기열은 그것에 연구에 들어갔지만 마법과 연금술로 만든 포션의 성분을 분석해내지는 못했다. 알아낸 거라고는 어떠한 독도 치료할 수 있다는 것뿐.
  아무튼 그 많은 무사들을 다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에 에이라나와 휘안은 독에 중독된 이들이 먹는 물에 큐어 포이즌을 걸어버렸다. 아마 바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해도 독을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환자들의 독이 거의 중화된 것에 모두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죽을 것 같던 중독자들이 거동은 할 수 없지만 목숨에 지장이 없을 정도는 상태가 회복된 것이다.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은 마나가 많이 들지만 어느 정도 중화시키는 것은 그리 큰 마나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독자들에 대한 걱정도 없어지자 본격적으로 재정비를 하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무사들의 재정비를 마친 정사마 연합은 다시 본격적으로 혈교의 본타로 향하기 시작했다.
  혈마가 자신의 앞에 있는 장로들에게 말했다.
  “정사마 연합이 본교를 치기 위해 지금 본교로 오고 있다고 하는군.”
  그 말에 한 장로가 말했다.
  “그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그럼 각 장로. 혈화단, 혈검단, 사혈대를 데리고 그들을 기습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그 말에 각기혈이 말했다.
  “존명.”
  세 개의 무력단체는 혈천교의 숨겨진 힘들.
  지금까지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이렇듯 본격적으로 혈천교와 정사마 연합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검황 남궁시주, 검성께서는 어디 계시는지요?”
  홍현 대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휘안에게 물었다.
  아?부터 검성이라 불리는 여인이 보이지 않는다.
  홍현 대사가 보기에는 검황이라 불리는 휘안보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검성이라 불리는 그 여인이 더 대단해 보였다.
  “아마도 자신의 동생에게 잡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동생이 있습니까?”
  “네.”
  휘안의 말대로 에이라나는 화린에게 붙잡혀 있었다.
  “우리를 버리고 가다니, 너무했어.”
  화린은 에이라나에게 계속 따지는 중이었는데, 에이라나는 그런 화린의 말을 들으며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
  소현 역시 에이라나에게 불만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며 은월을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현이 자신에게 뚱한 표정을 짓자 에이라나가 다가가 소현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
  “뭐냐! 그 뚱한 표정은!”
  “으악! 뭐야!”
  소현이 갑작스럽게 목을 조르는 에이라나의 행동에 기겁하며 버둥거리자 그의 목을 놓아준 에이라나가 말했다.
  “너희 둘 계속 그렇게 뚱한 표정 지을래?”
  그렇게 조금 으르렁거리는 에이라나의 행동에 둘이 바로 꼬리를 말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옆에 있던 레이텐티에스가 말했다.
  “꼭 엄마에게 혼나는 애들 같군.”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발끈한 것은 소현이었다.
  “누, 누가 엄마 같다는 거야!”
  악을 쓰는 듯한 소현을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지? 설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냐?”
  “으윽!”
  날카로운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움찔하는 소현. 그를 보며 화린과 은월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소현은 화들짝 놀라며 에이라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반응으로 에이라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들킨다면 자신은 최소한 반죽음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반응은 담담할 뿐이었다.
  “허, 젊은 여인에게 그런 생각을 품다니, 처 맞을 놈이군!”
  “아, 아니라니깐!”
  이때 레이텐티에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소현이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그런 소현을 구해준 것은 에이라나였다.
  “인간으로 치면 내가 젊은 건 아니지. 그런데 내 어디가 엄마 같다는 거냐? 너도 참 취향 특이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에이라나의 뒷모습을 보며 네 사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에이라나의 휘안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실력의 무사들.
  현경의 고수들만 네 명은 있는 듯 했다.
  그에 에이라나는 어느새 휘안 옆에 서 있었다.
  “야, 느꼈냐?”
  “어.”
  에이라나의 말에 간단하게 휘안이 대답하자 에이라나는 간단하게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생겨나는 수많은 얼음 화살.
  갑작스럽게 생성된 얼음 화살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진격이 멈칫했다.
  그러다 잠시 후 에이라나가 그대로 손을 내리자 얼음 화살 다발들이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윽고 1,00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수의 혈포 무사들이 튀어나와 정사마 연합에 달려들었다.
  “크악!”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선두에 있는 이들이 쓰러져 나갔다.
  “적습이다!”
  이때 한 무사가 소리치며 검을 뽑아 들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허무하게 목이 베일 뿐이었다.
  “천마대, 비마대, 귀문단 돌격.”
  그러자 이번엔 광마가 소리쳤다. 그러자 천마교 삼대 무력단체들이 기습을 들어온 혈교 무사들에게 달려들었는데, 혈사와 살혈, 귀비환 그리고 마창 참귀가 선두에 나섰다.
  그리고 시작되는 전투.
  무림맹과 사파에서도 부랴부랴 무사들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교 1,000명의 무사들은 각각 세 개의 부대로 나뉘어 완벽한 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에 보통 무사들은 그들의 검압을 못 이겨 그대로 목이 달아났다.
  “제법인데?”
  그런 그들을 보며 히죽 웃은 에이라나의 손에 커다란 화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대로 혈화단 가운데 떨어져 폭발했다.
  꽝!
  그로 인해 뭉쳐 있던 무사들이 입은 피해는 상당했다.
  또한 혈천교 무사들은 물론이고 정사마 무사들도 당황했다.
  “월 오브 파이어!”
  이때 안영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혈천교의 무사들을 보며 빙긋 웃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안영의 앞을 막은 불의 장벽.
  “크악!”
  그에 달려오면 이들이 그대로 타버리자 에이라나가 은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왼손의 검으로는 적을 베었으며 오른손으로는 마법을 사용해 적을 날려버렸다. 반면 안영은 제자리에서 그저 마법만 사용할 뿐이었다.
  그에 처음 보는 공격 방식에 혈천교 무사들이 당혹한 표정을 짓자 그것을 바라보던 각기혈이 소리쳤다.
  “후퇴하라!”
  그 말에 혈천교 무사들이 일사정렬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가만히 놔둘 위인은 여기에 없었다.
  “그리스.”
  안영이 방긋 웃으며 마법을 외웠다. 그러자 혈천교 무사들의 선두에 있던 이들이 넘어졌다.
  “헬 파이어.”
  그러자 이번에는 당혹해하는 이들을 향해 에이라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9서클 지옥의 업화를 소환했다. 그에 무시무시한 열기가 주변을 잠식했다.
  쾅!
  헬 파이어가 그대로 혈천교 무사들을 덮쳤고, 그 상황에서 각기혈과 무사 100명이 그대로 잿더미로 변했다.
  이렇듯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피했겠지만 마법을 잘 모르는 그들이었기에 헬 파이어에 그대로 직격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에이라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혈천교 무사들은 그대로 굳었다가 순식간에 후퇴했다.
  덤덤한 이는 휘안, 안영, 레이텐티에스가 전부였다.
  혈마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혈화단 400, 혈검단, 혈사대를 각각 300씩 보냈다.
  그리고 상대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힌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필요 이상의 타격을 입었다. 현경의 고수 둘을 잃었고 둘은 큰 부상을 입었다.
  1,000명 중에서 살아 돌아온 이는 900.
  그중 100이 싸우지 못한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동상과 화상을 입은 환자가 다수였다.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동상과 화상을 입었단 말인가!
  혈검단의 단주가 말하길, 은발의 은빛 가면을 가진 여인이 얼음 화살과 화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던진 불덩이로 인해 각기혈 장로와 100명의 무사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혈천교 수뇌부들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위험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공격을 자주 사용할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런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중압감을 느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무공.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공격.
  혈마는 갑자기 은발의 은빛 가면을 가진 이가 두렵게 느껴졌다.
  “언니, 대답해!”
  싸움이 끝난 뒤 화린이 에이라나의 목에 매달리며 말하자 피식 웃은 에이라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헤헤...”
  그러자 에이라나의 손길이 좋은지 화린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번에는 자신을 괴물 보듯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피식 웃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힘을 선보인 에이라나였기에 그들의 표정이 이런 건 당연했다.
  “그런 어이없는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이때 소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에이라나가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주위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는 에이라나였다. 어차피 자신은 이제 인간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있을 때 무연이 다가와 에이라나에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여~ 내 동생은 능력도 대단한 걸?”
  그 말에 에이라나가 쓰게 웃었다. 조금만 지나면 이제 자신과 무연은 헤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끄악!”
  바로 그때, 그런 에이라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라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던 무연이 비명을 질렀다. 바로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무연의 손을 꼬집은 것인데, 그것은 바로 레이텐티에스였다.
  “왜 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난리야! 변태!”
  그렇게 말하며 레이텐티에스가 차가운 눈으로 무연을 노려보자 무연이 으르렁거렸다.
  “죽고 싶냐?”
  그런 무연의 협박에 레이텐티에스가 코웃음을 치자 그런 레이텐티에스를 향해 검을 뽑을 기세인 무연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자자, 둘 다 그만 하라고.”
  만약 휘안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벌써 사단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라 에이라나는 생각했다.
  그 일이 있은 뒤 혈교의 기습은 없었는데, 그것은 정사마 연합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 습격에 의해 자신들은 그들의 세배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혈천교 최정예들인 듯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꼭 한 사람씩 죽여 나갔다. 때문에 만약 천마교의 정예 무사들이 일부를 막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혈천교는 에이라나의 마법을 경계하는 듯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정사마 연합은 순조롭게 혈천교의 본거지를 향해 진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함정과 진법을 파회하며 앞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사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진법 전문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기에 아주 큰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혈천교의 본거지가 어렴풋이 보이는 곳까지 올 수 있었다.
  그에 만은 이들이 곧 혈천교를 친다는 것에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개중엔 좀 더 많은 적을 베어 더 큰 명성을 얻겠다는 이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이들 또한 있었다. 바로 에이라나와 휘안 그리고 몇몇 수뇌부들이었다.
  주위에서 신나게 자신이 세운 공을 자랑하는 이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녀석들 본거지에서 결판을 낼 모양인데?”
  그 말에 휘안도 슬쩍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불안한데...”
  본거지 안에는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물론 자신들은 상관없지만 지인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그런 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부분은 곧 있으면 혈교 본거지에 들어가는 거셍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두 사람은 고개를 젓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야, 아무래도 우리 전문업을 해야겠지?”
  한숨을 쉬던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에이라나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귀찮은데 말이야.”
  “귀찮아도 어쩔 수 없잖아?”
  “그렇지,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신의 뒤에 와 있는 안영을 불렀다.
  “안영.”
  에이라나의 부름에 안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른 분들께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마워. 정확하게 두 시진(4시간) 후에 쳐들어오라고 해.”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숲속으로 향했고, 휘안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한번 저었다. 그리고 에이라나를 따라가려고 할 때.
  “조심하십시오.”
  뒤에서 안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휘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실력 모르냐?”
  그러고는 휘안 역시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누나랑 형은 어디 갔어?”
  이때 안영의 뒤에서 레이텐티에스가 나타났다.
  “네.”
  “걱정 돼?”
  “당연하죠, 리샨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니 말입니다.”
  확실히 혈천교의 리샨의 기사나 병사들과 그 격이 달랐다. 때문에 조금 쓰게 웃으며 말하는 안영을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두 사람은 강하니깐.”
  그러고는 레이텐티에스 역시 두 사람이 사라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왜 따라가십니까?”
  “만약이란 게 있잖아.”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안영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싸움이 끝나면... 작별인가?”
  안영은 쓰게 웃었다.
  이 싸움이 끝나면 에이라나와 작별이다.
  따라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은 인간이고 그녀는 드래곤이다.
  때문에 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봤자 그녀에게 짐만 될 뿐.
  “제가 인간이 아닌 다른 이종족으로 환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누구에게 묻는지 알 수 없는 질문이 안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란히 걷고 있는 에이라나와 휘안.
  그들의 눈에는 두려운 따윈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걷고 있을 때 암기가 날아왔다.
  그에 휘안은 간단하게 손을 저어 그 암기들을 모두 막고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내 생성된 빛의 화살들이 그대로 암기가 날아간 곳으로 날아갔다.
  퍽퍽퍽!
  순간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 위에서 검은 복면의 무사들이 떨어졌다. 바로 두 사람에게 암기를 던진 무사들이었다.
  하지만 두 살마은 그런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걸러갈 뿐이었는데, 그렇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싸늘한 시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사마 연합의 수뇌부들이 모여 회의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수많은 작전들이 나왔으며 그 작전은 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다.
  천뇌, 사뇌, 마뇌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전들은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는 법. 그들의 작전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회의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늘 보이던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중 한 사람은 화려한 은발에 은빛 가면을 쓰고 있는 검상이란 칭호를 가진 여성이었다.
  얼마 전 일으킨 무시무시한 일로 화검성이라 불리는 여인. 일전에 일으킨 불꽃은 모든 이들을 떨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바로 검황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휘안.
  두 사람 다 젊었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혈천강시 100구를 단 두 명이서 처치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늘 회의에 참석하던 두 사람이 빠지자 모두가 의아해했다.
  “에이라와 휘안을 어디 갔지?”
  무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안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분은 혈교로 향했습니다.”
  그 말에 회의장에 침묵이 찾아왔다.
  “지금 뭐라 했소?”
  이때 천뇌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안영이 또박또박 말했다.
  “두 분이 혈교로 쳐들어간다고 말했습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너! 그 녀석들이 혈교라 가는 거 봤지!”
  그에 무연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렸어야지!”
  그에 무연이 안영에게 다가가 멱살을 쥐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도 안영은 덤덤할 뿐이었다.
  “제가 말린다고 안 가실 분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다른 사람에게라도 알렸어야지!”
  “두 분은 강합니다. 그러니 소교주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거라 봅니다. 전 두 분을 믿습니다.”
  “이익!”
  태연한 표정으로 안영이 대답하자 울컥한 무연이었지만 안영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소교주님은 믿지 못하시나 보군요.”
  그리고 다시 입을 연 안영을 보며 무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다 이내 멱살 쥔 손을 떼어내곤 자리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때 모용태현이 입을 열었다.
  “왜 내 손자와 손자의 친구가 사지로 들어가는 것을 구경만 했소?”
  그 말에 안영이 대답했다.
  “말했잖습니까? 두 분을 믿는다고.”
  “아무리 믿는다고 하나 위험한 건 사실이지 않는가?”
  “두 분은 이전에도 이런 무모한 짓을 많이 했죠, 그곳은 혼란의 시기라 늘 전쟁이 터졌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편이 위험에 처하면 두 분은 적지에 쳐들어가 적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죠.”
  이렇듯 안영이 리샨 대륙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었다.
  “혈교는 무서운 적입니다. 그에 두 분은 본 연합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혈교를 난장판으로 만들러 간 것뿐입니다. 그리고 적을 혼란스럽게 만들 터이니 두 시진 뒤에 오라더군요.”
  그 말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의 뜻은...
  “뭐, 이번에는 작전 회의 같은 거 필요 없을 겁니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날 것이니 말입니다. 결정하십시오, 두 시진 뒤에 혈교로 갈 분은 지금 당장 무사들에게 전투 준비를 시키고 가지 않을 분들은 남으십시오. 뭐, 천마교는 당연히 가겠지요?”
  한 번의 공격으로 혈교를 괴멸시키겠다는 소리였다.
  그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지만 그런 그들을 무시하며 안영은 비긋 웃으며 광마 사혈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광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 녀석이 갔다는데 우리가 안 갈 수는 없지.”
  뒤이어 현천도제가 호탕하게 말했다.
  “답답한 소모전 따윈 때려치우자고!”
  그렇게 천마교가 나서자 도제 팽가위 역시 호탕하게 말했다.
  “이보게 태현, 어떻게 할 건가? 난 천마교의 장로 현천도제의 말에 동감한다네. 적지가 눈앞체 있는데 답답한 소모전이라니!”
  홍현 대사 역시 불호를 외우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미타불, 맹주. 저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선택하십시오.”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모용태현이 제갈천을 바라보았다. 그러가 한숨을 쉰 제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우리 역시 혈천교로 가겠소.”
  그렇게 되자 남은 것은 사황성뿐이었다.
  “우리 역시 답답한 소모전은 사양이오. 뭣하면 당장에 쳐들어 가는 것도 괜찮겠지.”
  하지만 이내 검마가 웃으며 말했다.
  이로써 회의가 끝이 났다. 그리고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는 그대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정사마 연합이 전투 준비에 들어가자 혈천교의 귀에 그 이야기가 바로 들어갔다.
  “뭐라? 전투 준비?”
  “예! 당장에라도 밀고 들어올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말에 혈마가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소모전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총 전력으로 녀석들을 막는다! 놈들에게 혈천교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그 말에 장로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을 받듭니다!”
  그와 함께 혈천교도 전투태세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장로들을 보며 혈마는 생각했다.
  여기는 자신들의 앞마당!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
  아무리 상대측에 무시무시한 고수들이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유리한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이다.
  바로 그때!
  콰가가가가가강!
  그의 귀에 들려온 갑작스러운 폭음.
  그에 혈마는 당황했다. 바로 그 무시무시한 고수들이 각각 혈혈단신으로 혈천교의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을 치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촤악!
  피가 튄다.
  세상을 피로 정화한다는 혈천교의 무사는 자신의 피로 땅 바닥을 적시고 그대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런 혈천교 무사의 시신을 넘은 에이라나가 달려드는 상대에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촤악!
  역시 피가 튀며 무사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그런 무사를 뒤로하며 새로운 무사를 베어가는 에이라나. 그런 에이라나의 모습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사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자 에이라나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약이라도 처먹인 모양이군.”
  두려움을 없애는 약이라도 먹은 듯 무사들은 계속해서 에이라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무감정한 눈으로 베어가는 에이라나.
  이렇듯 에이라나 한 사람으로 인해 동쪽 지역은 초토화되고 있었다.
  퍽!
  한편 휘안은 회전하며 혈천교의 무사의 머리를 가격하고 있었다. 그러자 터저버리는 무사의 머리통.
  그 순간 뒤에서 달려오는 무사의 기척을 느낀 휘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간단하게 휘둘렀다.
  그에 엄청난 광풍이 몰려와 무사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무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약이라도 먹었나?”
  그런 그들을 보며 중얼거린 휘안이 아름다운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 검무에 집단이 쓸려나가듯 쓸려나가는 혈천교의 무사들.
  그렇게 휘안 한 사람으로 인해 서쪽 지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급보입니다! 서쪽과 동쪽 지역에 나타난 의문의 고수들이 무사들을 베어 넘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검황과 화검성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에 혈마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단 둘이서 이곳으로 쳐들어왔을 줄이야!
  “오만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들의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생각했다.
  무사들이 달려가 봤자 그대로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이럴 때는 소수의 최고수들을 보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혈마가 이윽고 장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위 장로, 한열 장로, 산호 장로는 화검성을 막아주시오. 그리고 가혈 장로와 선마휘 장로, 모위연 장로는 검황을 막아주시오.”
  모두 다 현경급 고수.
  이 정도 전력이면 혈천강시 100구에 해당하는 전력.
  버티는 것은 가능할 것이었다.
  일단 힘을 뺀 다음 다른 무사들로 공격한다.
  혈마의 계획은 이러했다.
  하지만 참 얄궂게도 에이라나에게 간 세 장로는 바로 천마교를 배신한, 에이라나를 죽였던 천마교의 전 장로들이었다.
  신나게 검을 휘두르던 에이라나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고수의 기운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현경의 고수 셋! 하지만 익숙한 기운이다.
  혈천교 내에서 자신이 익숙한 기운이라면...
  순간 에이라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큭큭큭, 드디어 오셨구만. 500년 동안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의 오른손에 있던 흑아가 품고 있던 기운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는데, 차가운 빙기를 품고 있던 그것은 어느새 마기를 품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섬뜩한 마기.
  또한 은아는 더 없이 차가운 빙기를 품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의 머리색이 은발에서 흑발로 변해갔다.
  은발과 흑바리 섞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 에이라나. 그리고 가면 속의 왼쪽 눈은 마기를 품은 섬뜩한 흑안으로 변했는데, 그것은 바로 에이라나의 최대 전투태세였다.
  “와라! 500년 한의 사슬을 끊어주마!”
  그 순간 에이라나의 입에서 드래곤 피어가 섞인 외침이 흘러나오자 그 외침에 공포를 모르던 무사들이 공포에 떨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편 휘안은 강력한 기운에 주춤했다. 그리고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현경의 고수가 셋, 꽤 까다로운 상대다.
  하지만 그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청월이 주었던 무공서에 있던 전투법. 바로 자신의 내공을 최대로 청월의 무공에 접합하게 만드는 방법.
  그러자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휘안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청월의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과 같은 색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그 순간 휘안은 빙긋 웃었다.
  “와라.”
  에이라나가 눈앞에 세 명의 장로가 보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한 것은 탄검강 다발을 날려주는 것이었다.
  은빛 검강과 흑빛 검강이 그대로 세 장론느 덮치자 그것을 보며 경악한 세 장로가 그 탄검강을 피했다.
  콰가가가가강!
  그에 세 장로가 달려오던 장소가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여~ 반가워.”
  이윽고 에이라나가 그런 그들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뿌리고 있는 기운은 무시무시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세 장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하니 이런 괴물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직접 기어 와주다니 감격스러운 걸? 그래, 두 녀석 따라갈 준비는 됐나?”
  잠시 후 에이라나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잇자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세 장로가 굳었다.
  “정체가 뭐냐?”
  그러다 참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빙긋 웃으며 자신의 가면을 벗자 에이라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세 장로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세 장로를 보며 에이라나는 빙긋 웃으며 다시 가면을 썼다.
  “이제 알겠지? 그렇다면 죽어라.”
  그러고는 차갑게 말하며 그대로 참성에게 달려들었다.
  쾅!
  이내 참성의 창과 에이라나의 은아가 격돌했고 참성 장로가 주르륵 뒤로 밀려갔다.
  손에서 느껴지는 압력과 자신의 창을 밀어내는 에이라나의 검을 보고 참성은 생각했다.
  ‘죽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때 한열 장로가 자신의 주먹으로 에이라나를 위협했다. 그에 에이라나는 입맛을 다시며 참성 장로의 공격에서 힘을 빼고 한열 장로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순간 에이라나의 뒤에서 산호 장로가 손바닥을 뻗어왔다.
  그에 에이라나는 한열 장로의 공격을 그대로 흘려 산호 장로에게 흘려보냈다.
  그것을 보고 굳은 한열 장로와 산호 장로가 공격에 힘을 뺏다.
  퍽퍽!
  그런 그들의 머리를 발로 가격하는 에이라나.
  “크윽!”
  에이라나의 공격에 신음성을 흘리며 날아가는 두 장로.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 누구도 죽이지 못했다. 바로 자신을 찔러 들어오는 참성 장로의 창 때문이었다.
  에이라는 폴짝 뛰어 그 창을 피하고는 참성 장로의 창 위에 앉았다.
  그 가벼운 몸놀림에 그대로 굳어버린 참성. 설마 이렇게 가볍게 자신의 공격을 피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순간 참성 장로의 목을 향해 에이라나가 검을 내질렀고, 참성 장로는 그것을 피해내며 그대로 창을 휘둘렀다.
  그로 인해 에이라나가 휘청 중심을 잃고 창에서 떨어졌다.
  바로 그때 그런 에이라나를 향해 언제 달려왔는지 한열 장로와 산호 장로가 권과 장을 내질렀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몸을 회전하여 그 공격을 피하는 바람에 권과 장은 허무하게 허공만을 갈랐다.
  그 모습을 보며 세 장로는 빠르게 에이라나에게서 떨어지며 공격을 준비했다.
  “이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교를 배신한 거지?”
  이때 에이라나가 의아한 듯 질문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러자 한참 동안 대답을 기다리던 에이라나가 말했다.
  “대답이 없는 건가? 뭐, 이제 그런 건 별 상관없지. 쓰잘머리 없는 것을 물어봐서 미안하다... 죽어라.”
  그러고는 그대로 은아와 흑아를 세 장로들에게 던졌다.
  그것을 보며 당황한 세 장로가 은아와 흑아를 피하며 에이라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손에는 이미 거대한 도가 들려 있었다. 바로 천마도였다.
  에이라나는 자신이 아는 검로를 이용하여 천마도를 휘둘렀다.
  바로 천마신공의 비기, 천마.
  그와 함께 날아가던 은아와 흑아가 멈추더니 스스로 천마의 초식 검로를 따라 장로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가강!
  어마어마한 검강 다발이 세 장로를 덮치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자 후, 세 장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끝난 거다.”
  에이라나가 씁쓸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 무사들을 베지도 않았다.
  그렇게 에이라나는 복수를 끝냄과 동시에 혈천교에 대한 적의가 가셨다.
  복수의 끝 맛은... 씁쓸했다.
  에이라나는 쓰게 웃으며 은아와 흑아를 회수했다.
  천마도 역시 정신 공간에 넣으며 서쪽을 보며 다시 중얼거리곤 기지개를 켰다.
  “저기도 끝난 것인가... 이제 이 중원의 볼일이 끝났으니 난 방관자인가?”
  더 이상 중원 일에 관섭하여 혈천교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힘빼기에 불과했다.
  문득 이곳에 오기 전, 어미니 에랴나니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 에이라나였다.
  ‘무리는 하지 마라. 그리고 복수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 깊숙이 파고들지 마렴. 나는 불안하단다, 에이라나야. 네가 이 세계에서의 운명이 아닌 그 세계의 운명에 사로잡혀... 영원히 널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엄마는 불안해.’
  “녀석들, 위험한 일은 안 했으면 좋겠군.”
  그리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세 명의 얼굴이 생각나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무연 형도 조심하라고.”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는 돌 위에 걸터앉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은발과 흑발이 섞여 있던 머리카락도 다시 은발로 돌아와 있었다.
  휘안이 마지막 장로를 베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에이라나는 진작 싸움을 끝낸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합류할까 생각하던 휘안이 멈칫했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에이라나의 마나가 멈춘 것이다.
  마치 쉬겠다는 듯한 느낌을 받은 휘안은 에이라나가 나머지 배신자 장로마저 베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의 청발과 청안 역시 흑발과 흑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윽고 쓰게 웃은 휘안은 그대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는 방관자로 돌아섰다.
  이제 자신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두 시진이 지나가 정사마 연합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진격하던 그들은 혈천교의 서쪽 지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무사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고 목책은 불에 타고 있었다. 또한 그 한가운데에는 휘안이 자신들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휘안을 향해 모용태현이 다가가 꾸짖었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느냐!”
  그러자 휘안이 그런 모용태현을 보며 휘안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무튼 이 지역은 대충 정리되었습니다. 혈천교의 장로들도 셋이나 처리했고요.”
  그 말에 모용태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놀라든 말든 무연은 휘안에게 물었다.
  “에이라나는!”
  그런 무연을 보며 휘안이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은 저쪽을 처리하고 있을 거야. 일종의 교란 작전이지. 혈천교의 입구는 두 개인데 그 두 개의 입구의 거리가 상당히 멀지. 어느 쪽으로 들어올지 녀석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또 도망치는 적을 처리하기 위해 양쪽에서 공격에 들어갔어.”
  그렇게 말한 휘안이 쓰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 짤막하게 말했다.
  “뭐, 녀석은 이제 방관만 하려는 생각 같지만.”
  그 말에 주위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지켜보려는 것인가.
  “휘안 공자님, 설마?”
  이때 안영이 멍하니 휘안에게 묻자 보며 휘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아, 녀석의 복수는 끝났어. 세 장로를 베어버린 것 같더군. 이제 녀석은 우리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는 거야.”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휘안. 안영도 쓰게 웃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니야, 이야기는 혈마를 벤 뒤에 하자고.”
  휘안의 말에 수뇌부들이 동의했고 그대로 혈교 공략에 들어갔다.
  휘안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강력한 고수들이 그의 손에 쓸려나간 것이다.
  한편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는 각각 힘을 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한쪽은 잔당 처리를, 한쪽은 남은 세력을 처리하기로 했는데 비교적 수준이 떨어지는 무사들이 잔당 처리에 들어갔다.
  화린, 소현, 은월 역시 휘안의 권유에 따라 좀 더 안전한 잔당 처리에 들어갔다.
  아무튼 그렇게 다 이길 듯한 기세를 가지고 파죽지세처럼 혈천교 내부를 공격하던 정사마 연합.
  하지만 혈마가 나타남과 동시에 밀리는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여섯 장로가 모두 죽었다고?”
  “예. 그리고 정사마 연합이 혈천각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장로의 말에 혈마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다 이내 눈을 감았다.
  설마하니 여섯 장로가 순식간에 당할 줄이야... 자신이 그들의 힘을 과소평가 한 것인가?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하지만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보고를 올리던 장로의 희망적인 말에 혈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검성이 서쪽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바위에 걸터앉아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눈앞에 무사가 지나가도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합니다.”
  “뭣? 갑자기 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기회입니다.”
  “좋다!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다.”
  화검성이 빠졌다.
  이길 수는 없겠지만! 막을 수는 있다.
  혈마의 눈에 다시 투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긴다.’에서 ‘막는다.’로 생각을 고친 순간 자신은 패배라는 것을 말이다.
  혈천각에 도착한 정사마 연합은 꾸역뚜역 밀려나오는 혈천강시와 수많은 고수들을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혈천강시의 수가 300 가까이 되었고  화경의 고수 100명에 현경의 고수 10명! 그리고 일류 무사 500명, 이류 무사 1,000명!
  이것이 혈천교의 전력이었다.
  그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환영한다. 본교의 중심에 온 것을.”
  바로 그때, 그런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나타난 한 노인.
  모두가 그가 혈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을 피로 정화하겠다는 미친 늙은이로군.”
  이때 혈마를 보며 광마가 혀를 차며 말하자 혈마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십만대산에 틀어박혀 사는 노망난 늙은이가 네놈인가?”
  이윽고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네놈의 목은 꼭 베고 만다.”
  광마가 으르렁거리며 마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혈마 역시 사이한 기운을 뿌리며 광마를 노려보았다.
  “공격!”
  그 순간 혈마의 말과 동시에 혈천교의 강시들과 무사들이 그대로 정사마 연합을 향해 달려들었고, 정사마 연합 역시 그대로 혈천교 무리들에게 달려들었다.
  양으로는 당연히 정사마 연합이 앞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질이었다.
  그렇게 혈천교와 정사마 연합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편 혈천교 연합과 정사마 연합이 싸우고 있을 때, 잔당 처리를 맡은 무사들 역시 위험에 처해 있었다.
  “크윽! 이 많은 강시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소현이 주먹으로 강시의 머리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또한 은월은 권과 각을 이용해 차근차근 강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화린 역시 침착하게 검으로 상대를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잔당 처리를 맡은 나머지 전력은 몇 개의 조를 짜 잔당 처리에 나섰다. 하지만 가장 처음 맞닥뜨린 것은 바로 강시였다. 그것도 잔당 처리를 하는 인원의 두 배에 해당하는.
  구파일방, 사파의 다섯 기둥 급의 대 문파들은 모조리 혈천각으로 향했다. 그로 인해 남은 이들은 이류, 삼류 무사들. 물론 천마교의 고수들도 남아 있었다.
  그것에 힘입어 강시들을 어느 정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퍽!
  “후우...”
  이윽고 눈앞의 강시를 처리한 소현이 숨을 돌렸다. 그리고 더 이상 강시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순간!
  쾅!
  갑자기 화경급의 천마교 무사가 그대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것을 보고 모두가 얼굴이 굳었다.
  나타난 강시는 고작 50명. 하지만 그 강시의 이름을 듣는다면 고작이 아니었다.
  혈천강시.
  사상 최강 최악의 강시라는 혈천강시가 50이었다.
  “젠장!”
  이때 은월이 악에 받친 듯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혈천강시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무사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상대가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강시라면 지치지 않는다.
  그리고 검기로는 뚫을 수 없는 몸을 가졌다면 이런 무사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적이었다.
  이때 소현이 입을 꽉 깨물다가 이내 말했다.
  “동쪽 지역과 여기가 머나?”
  그런 소현을 보며 은월이 말했다.
  “그렇게 멀지는 않아.”
  “그럼 그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에이라나가 있었다.
  은월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소현과 화린이 경공술을 이용해 달려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강시들 때문에 이내 굳어버렸다. 다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보통 강시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에 소현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내가 녀석들을 막지.”
  “뭣? 미쳤어?”
  그 말에 화린이 펄쩍 뛰며 말했다.
  하지만 소현은 그런 화린과 은월을 바라보았다.
  퍽!
  그렇게 흔들리던 은월은 화린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리고 쓰러지는 화린을 안으며 말했다.
  “차라리 내가 남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소현보다 은월이 강하다.
  하지만 소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에는 내가 적합한 것 같다. 난 천살성이거든.”
  순간 소현의 기세가 변하며 눈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자각하는 순간 천살성을 깨운느 방법을 알아낸 소현.
  소현은 천살성의 기운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혈천강시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은월이 이를 꽉 물고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공을 펼쳐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에이라나가 흠칫했다.
  드래곤 피어에 육박하는 가공할 만한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느껴지는 이 기운은...
  “소현?”
  바로 소현의 기운이었다.
  에이라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운이 느껴진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은월을 볼 수 있었다.
  “소현은 어떠헥 된 거지?”
  에이라나가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은월이 대답했다.
  “혈천강시가 50구 나타났는데 주위의 화경급 고수라고는 나랑 소현밖에 없어서 소현이 혈천강시를 막는 동안 내가 당신을 데리러 온 거야.”
  자신의 무력함에 얼굴을 구기며 말하는 은월을 보며 에이라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은월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화린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기하고 자신이 희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병신 새끼 죽으면 가만 안 둔다!”
  에이라나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쿵!
  “크억!”
  나무에 부딪힌 소현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크아아악!”
  하지만 잠시 후 분노한 듯 다시 혈천강시들에게 달려들었다.
  현재 소현의 몸은 완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 신비할 정도로.
  그런 소현이 뿌리고 있는 가공할 만한 천살성의 기운은 혈천강시들도 떨게 만들 정도였다.
  퍼억!
  소현의 주먹이 혈천강시의 머리를 날린다. 하지만 다음에 날아오는 혈천강시의 손톱이 그대로 소현의 배를 관통했다.
  “쿨럭!”
  그에 소혀니 멈칫한다. 그리고... 축 늘어졌다.
  쿵!
  그런 소현을 던져버린 혈천강시.
  50구였던 혈천강시는 이제 20구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소현은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자신은 모든 내공을 소모했다. 그리고 방금 전 공격으로 단전까지 파괴된 상태.
  진원진기를 끌어 올리고 싶었지만 천살성을 해방함과 동시에 해방된 기운이 진원진기였다.
  소현은 생명을 불살랐던 것이다.
  점점 광기로 물들었던 소현의 눈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멍하는 자신을 죽이려는 혈천강시를 보며 쓰게 웃는다. 후회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며시 눈을 감을 때.
  “뒈지면 넌 내손에 두 번 뒈질 줄 알아라!”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빙의 폭풍이 혈천강시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대로 혈천강시들을 얼려버렸다.
  그 모습에 소현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엄...마?”
  그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한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여인은 소현을 안은 다음 중얼거렸다.
  “리커버리.”
  그와 동시에 소현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는 소현의 몸을 살펴보면서 꺼져가는 생명력을 느끼며 굳었다.
  ‘이 자식, 천살의 기운을 것도 모자라 진원진기까지 사용했나?’
  소현은 생명의 원천인 기운을 사용한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상처가 치료되어도 죽는다.
  잠시 소현을 보며 갈등하던 에이라나는 살며시 자신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것을 보고 기겁한 것은 레이텐티에스였다.
  “안 돼!”
  그런 그가 에이라나를 방해했다.
  “뭐냐?”
  “누나 미쳤어? 드래곤 하트를 이 녀석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거지? 그럼 누나 수명은 줄어!”
  “만 년 사는데 천 년 정도야 잃어도 별 상관없다.”
  드래곤 하트를 나눠주려고 하다니! 미친 짓이었다!
  “고작 인간을 구한다고 드래곤 하트를 나눠준다고 하면 모두가 미쳤다고 할 거야! 이 인간은 어차피 중원의 인간이잖아! 그리고 드래곤 하트가 인식된 인간은 드래곤 하트의 주인인 드래곤의 남은 수명만큼 살게 돼! 이 인간은 혼자서 9,000년의 세월을 더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에 레이텐티에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에이라나가 순간 멈칫했다.
  혼자서 9,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산다.
  그렇다는 것은... 친구가 죽고 소중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이 아이가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동생을 생명과 바꿔 구해준 소현.
  그리고... 에이라나도 소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건 뒤에 가서 생각할래.”
  이윽고 생각을 굳힌 듯 에이라나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빛과 함께 가슴에서 손을 끄집어냈는데 그런 에이라나의 손에는 자그마한 은빛 구슬이 있었다.
  “안 돼!”
  그것을 보고 절규하는 레이텐티에스.
  하지만 에이라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드래곤 하트를 인식해줘도 잃었던 내공을 찾지는 못한다.
  그렇게 생각한 에이라나가 취한 행동은 자신의 단전을 허물어트려 그 기운을 모두 이 작은 드래곤 하트에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그 순간 400년 동안 에이라나와 함께 해온 단전이 붕괴되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레이텐티에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작 인간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누나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에이라나는 그렇게 소현의 심장에 드래곤 하트를 올리고 그것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소현이 점점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빙긋 웃은 에이라나.
  잠시 뒤, 소현이 눈을 떴다.
  그 눈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눈을 뜬 것을 확인한 에이라나는 소현을 안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숨 자라. 자고 난 뒤 신나게 두들겨 패주마.”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은 오한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누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때 레이텐티에스가 버럭 소리를 쳤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에이라는 1,000년의 수명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레이텐티에스는 에이라나와 함께해야 할 귀중한 1,000년의 시간을 잃은 것이다.
  그렇게 레이텐티에스는 한참 동안이나 에이라나에게 온갖 소리르 질렀고 에이라나는 듣기만 했다. 그러다 마침내 레이텐티에스를 냅다 발로 차버렸다.
  결국 레이텐티에스는 조용해지고 말이다.
    모두 안녕히, 그리고...
  정사마혈대전.
  정사마 연합과 혈천교의 싸움.
  이 싸움에서 혈천교는 멸망했버렸다. 아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혀니 혈천교의 비밀 장소에서 숨어서 혈천문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시현은 원래부터 자신의 교의 사상인 피의 교리가 마은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피의 교리를 없애고 혈천교를 혈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상에 혈천문이 나올 때가 된다면 아마다 천마교 같은 곳이 하나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은발의 아름다운 존재가 침대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그러다 잠시 후 살며시 눈을 뜬 존재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은발에 은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살아 있자 소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에이라나의 행동 때문에 소현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퍽!
  “꾸엑!”
  에이라나가 자신을 발로 냅다 차버렸기 때문이다.
  “무, 무슨 짓이야! 난 환자라고!”
  소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런 소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지랄 염병하고 앉았네. 치료마법으로 모두 치료했건만 무슨 개소리야?”
  그 말에 소현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 쪽에서 느껴지는 방대하고 방대한 기운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은 진원진기를 모두 사용해 생명의 기운이 더 이상 없었다. 그런데 심장 쪽에서 이전 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어마어마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이 기운을 다룰 수 있을지조차 의심되는 기운이.
  “그건 내 단전에 있던 기운이다, 그리고 네 심장에 내 심장의 일부분을 인식했다.”
  그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소현을 향해 에이라나가 작은 사발 하나를 넘겼는데, 사발에는 은빛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마셔,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어지럽지? 네 몸속에 돌고 있는 피와 내가 인식한 내 심장이 만드는 피 때문에 네 몸 상태는 지금 말이 아닐 거야.”
  “고, 고마워.”
  에이라나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아무튼 은빛 액체를 마시자 몸이 한결 좋아지는 것을 느낀 소현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무슨 약이야? 이런 약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 말에 에이라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 피를 가공한 거야.”
  “푸왁!”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이 에이라나의 피를 입에서 뿜었다.
  그와 함께 에이라나의 응징이 날아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우리 세계에서 드래곤의 피라고 하면 한 방울도 부르는게 돈이야! 그런 걸 함무로 내뱉어? 죽고 싶지?”
  “끄악!”
  그러고는 소현을 마구 패기 시작했다.
  소현이 잠들기 전에 마구 패준다는 것을 실천하는 에이라나였다.
  소현이 깨어났다는 소리에 악권수조 아해안과 화린, 은월이 사도문이 소현의 방으로 들어왔다.
  혈천교와 마지막 접전을 벌인 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한 소현의 모습을 아해안이 보고 싶다고 했지만 에이라나가 만나지 못하게 했다. 대신 며칠 동안 소현을 돌봐준 것은 에이라나였다.
  그에 왜 보지 못하게 하냐고 아해안 따졌지만 에이라나는 만나면 소현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소현은 드래곤 하트를 꿀꺽했다.
  그것도 500살 성룡의 마력을 가진 드래곤 하트를.
  보통 인간이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기에 에이라나가 옆에서 그 깅눙르 잠재워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이기에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 기운을 모두 소현의 기운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 에이라나였다.
  만약 누가 있어서 실패라도 한다면 드래곤 하트가 폭주해 기껏 살려두었던 소현은 죽었을 것이다. 때문에 에이라나 혼자 소현의 곁을 지켰고 말이다.
  아무튼 실버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모두 흡수한 소현의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은 에이라나와 같은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에 세 사람 모두 경악해야 했다.
  “왜 그러세요?”
  그렇게 자신을 보며 경악하는 아해안을 보며 소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아해안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소현.
  그런 소현을 보며 은월이 굳은 표정으로 방 한쪽에 있는 거울을 소현 앞에 들이밀었다.
  “으악! 이게 뭐야! 내 머리색깔이 왜 이래!”
  그 순간 소현은 경악해야 했다.
  “그러니깐, 당신의 심장 일부를 내가 흡수하면서 내 기운이 빙기로 변해 내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 이렇게 변했다고?”
  소현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현이 또 한 번 물었다.
  “그런 일이 가능해?”
  “가능하니깐 네놈이 살아 있는 게 아니냐.”
  그에 에이라나가 이번에는 소현의 머리를 발로 차며 말했다.
  “우씨! 아까부터 왜 때려!”
  “네놈 덕분에 난 내 수명의 10분의 1을 잃었다. 그리고 내 단전의 기운이 고스란히 네놈 게 되고 단전이 붕괴되어 새로 만들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니 네놈은 좀 맞아야 해!”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이 말 할을 잃었다.
  수명을 잃은 것도 모자라 단전까지 잃었단다.
  그에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날 살릴 이유가 없잖아...”
  그런 소현을 보며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기껏 살려놨더니 하는 소리가 그거냐? 화린을 구해줬고 또 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깐 널 살려준 거야.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해.”
  그리고 이내 침묵하는 소현을 보며 폭탄발언을 했다.
  “너, 내 아들이 되어라.”
  그 말에 소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내가 왜 당신의 아들이 되어야 해!”
  “그야 넌 내 심장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으니깐. 네 몸에 흐르는 피는 내 피나 마찬가지다.”
  “윽!”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네가 마은에 들었고 말이야.”
  “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잖아!”
  “너도 따라와.”
  “이익! 사부님을 놔두고 가라고! 절대 그렇게 못해!”
  그러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에 반발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런 소현의 반응은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슬쩍 아해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해안이 씁쓸하게 웃고는 말했다.
  “잠깐 자리를 비켜줬으면 하는데.”
  아해안의 말에 화린과 은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두 사람을 에이라나가 끌고 나갔다.
  그렇게 세 사람이 사라지자 방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돌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소현으로 인해 금세 사라졌다.
  “사부님, 저 인간 말 듣지 마요.”
  소현이 아해안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해안은 그런 소현을 보고 쓰게 웃을 뿐이었고, 그런 아해안의 모습에 소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사부님! 저더러 저 여자를 따라가라 하실 건 아니죠?”
  “가라.”
  소현의 말에 아해안이 딱 잘라 말했다.
  그 말에 소현이 굳었다.
  “네 몸속에 흐르는 피는 그 사람의 피고 네 생명을 유지해준 것 또한 그 사람이 아니더냐? 그리고 네 심장은 그 사람의 것이지. 그자는 너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단다. 그런 그녀를 난 막을 수 없단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에 너에게 더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에요!”
  아해안의 말에 소현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아해안은 빙긋 웃으며 소현을 바라보았다.
  “좋은 말 할 때 가라.”
  “사, 사부님. 저는 못 갑니다. 전 사도문을 이끌어야 할 소문주라고요.”
  “너 없어도 사도문은 잘 돌아간다.”
  “사부님!”
  소현이 또 한 번 버력 소리쳤다. 그런 소현을 보며 아해안은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네놈이 언제부터 나의 말을 거절했지?”
  “사, 사부님.”
  그런 아해안을 보며 소현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쾅!
  “으악!”
  그 순간 아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하나를 소현에게 던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소현에게 던지기 시작하는 아해안. 소현이 잘못을 하면 한 번씩 일으키는 발작이었다.
  아무튼 그런 아해안을 피해 소현이 방 밖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방 밖으로 나가니 화린과 은월이 도망쳐 나오는 소현을 보며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뭘 그리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아해안이 온갖 잡다한 것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에 두 사람은 소현과 함께 도망쳤다.
  아해안이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씩씩거렸다.
  “솔직하지 못하군.”
  그런 아해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헤어지기 싫으면 그냥 데리고 살아도 되는데 말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아해안이 쓰게 웃었다.
  “저 아이는 이미 9,000년이라는 수명을 가지게 되었잖아? 그렇다면 나와 함께 있어봤자 나중에 괴로워지기만 할 뿐. 그러니 저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수명을 가진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할거야.”
  그 말에 에이라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남의 아들 빼앗는 기분이네.”
  그 말에 아해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난 저 아이에게 부모의 향을 느끼게 하지 못하지만 당신은 저 아이에게 부모의 향을 느끼게 할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한 아해안이 소현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아해안의 뒷모습을 보며 에이라나가 쓴 웃음을 지었다.
  아해안에게 쫓겨난 소현과 화린 은월은 사도문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특히 소현의 얼굴은 침울 그 자체였다.
  그런 세 사람의 앞에 에이라나가 나타났다.
  “언니.”
  그러자 화린이 에이라나를 불렀다. 그리고 화린의 말과 함께 소현이 독기 어린 눈으로 에이라나를 바라보았다.
  “다 당신 때문이야! 사부님께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소현의 말에 에이라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단지 네 수명에 대해 말해줬을 뿐이야. 따라와라, 지금 이곳을 떠난다.”
  “난 안 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에 소현이 에이라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소현의 눈은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에이라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런 눈을 하고 있으면 곤란했다.
  데려가 봤자 평생 중원을 그리워할 뿐일 테니.
  하지만 그렇다 해도 놔두고 간다면... 이 아이는 평생 괴로움 속에서 살아갈 것이었다.
  “너희 둘 자리 좀 비켜줘, 잠시 이야기 좀 하게.”
  이윽고 에이라나가 소현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런 에이라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소현은 그녀의 말에 흠칫했다.
  “난 말이야, 널 처음 봤을 때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너랑 내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도 전생에 이런 외모 때문에 오해를 많이 샀거든. 그렇게 너랑 생활하면서 다음에 느낀 것은 동질감이었다. 너 역시 고야였다면 나 역시 고야였다. 파멸설이란 이유만으로 버려졌었지. 그렇게 버려진 뒤 혈사 아저씨에게 거두어졌지만 혈사 아저씨도 부모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죽은 내가 다시 환생해 만난 내 엄마를 보며 난 생각했어, 이 사람은 내 염마라고, 웃기지? 그 다정했던 혈사 아저씨에게서도 부모의 향을 느낄 수 없었지. 심지어 화린의 부모에게서도 말이야. 그런 내가 내 엄마를 처음 봤을 때 내 엄마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어. 그리고 기뻤다? 내게도 부모님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소현은 자신도 모르게 에이라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에이라나의 말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흠칫했다.
  자신도 에이라나를 처음 봤을 때 부모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기뻤던 것 같다.
  이내 소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난 사부님을...”
  그 말에 에이라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9,000년.”
  그리고 뜬금없는 에이라나의 말.
  그에 소현이 흠칫했다.
  “네 수명은 9,000년이 늘어났다.”
  “무슨...”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줄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둬라. 넌 앞으로 9,00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야 한다, 네 스스은 그것이 싫은 것이다. 지인들이 죽어가는데 너만 영원히 젊을을 유지하며 9,000년을 살아간다... 그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지, 넌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네 스스은 생각한 거야. 너랑 비슷한 수명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을 이은 후 자리를 떴다.
  “네가 중원에 남든, 날 따라가든 그것은 너의 자유다. 난 앞으로 한 시간 후에 떠난다.”
  그런 에이라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현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역시 안 오려나?”
  에이라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것인가?
  인간에게 9,000년이라는 시간을 주다니, 생각해보면 너무 가혹한 짓이었다. 그냥 차라리 죽게 내버려뒀으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도...
  하긴, 어떻게 정이 든 중원을 떠난단 말인가, 자신도 아직 중원을 잊고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쉽네.”
  그래도 자신을 따라 와주실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소현에게 각별한 정이 든 에이라나였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에이라나가 이윽고 사도문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에이라나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바로 소현과 화린, 은월이었다.
  그에 에이라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 다, 당신을 따라갈래.”
  이때 소현이 말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부님에게도 이미 말했어, 당신을 따라 당신의 세계로 간다고.”
  그런 소현을 보며 에이라나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멋 부리지 마라.”
  “당신이 날 끌어들였으니 멋 좀 부린다고 뭐라 하지 마!”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자 그런 소현에게 에이라나가 다가갔다.
  그에 흠칫하는 소현.
  “언제까지 당신이라고 할 거냐? 날 따라가겠다는 것은 날 부모로 인정했다는 소리가 아니냐?”
  하지만 에이라나의 말에 이내 멍한 표정이 되는 소현.
  “그리고 내 앞에서는 굳이 강한 척할 필요 없어. 슬픈 만큼 울어라.”
  그리고 다시 이어진 에이라나의 말에 소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가 나서 일그러진 게 아니었다.
  “나, 나...”
  순간 소현의 얼굴에 맑은 눈물이 고였다.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에이라나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에 에이라나가 쓴 웃음을 지으며 소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소현의 울음소리는... 다시는 자신의 사부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더 슬프게 퍼져 나갔다.
  아해안은 저 멀리서 들리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자신도 눈물을 흘렸다.
  사도문의 정문과 그리 멀지 않은 곳.
  소현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해안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다 하지 않고 평소에 입에 대지 않는 술을 마시며 중얼거렸다.
  “행복하렴, 소현아.”
  그 자그마한 소리에는 아주 진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에이라나는 어디 간 거야!”
  무연이 안영의 멱살의 잡고 짤짤 흔들며 말했다.
  혈천교와 싸움이 끝난 후 에이라나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켁켁!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저분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러자 안영이 차를 마시고 있는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말했다.
  “야 이 자식아! 에이라나 어디 갔어! 불어!”
  그에 흥분한 무연이 이번에는 레이텐티에스에게 소리쳤고, 그런 무연을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말했다.
  “지금 천마봉으로 올라가고 있을 거야.”
  그 말에 안영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이때 레이텐티에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간다, 리샨으로.”
  그리고 짧은 말을 남기고는 워프를 사용했다.
  그에 무연 역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작별 인사 정도는 해야겠죠.”
  그런 무연을 잡고 안영 역시 워프했다.
  무연은 갑자기 터지는 빛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바로 천마봉에 있는 호수의 수면에서 빛나고 있느 ㄴ이상한 무리의 원진이었다.
  아름다운 원진 가운데는 에이라나의 천마도가 있었다.
  그리고 아내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레이텐티에스를 발견한 무연은 레이텐티에스가 시선을 보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사도문의 소문주라는 녀석이 에이라나에게 안겨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무연은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에이라나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에이라나의 머리색과 소현의 머리색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에이라나가 무연을 보고 쓰게 웃었다.
  “되도록이면 안 왔으면 했는데.”
  무연과 작별할 것을 생각하니 부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에이라나였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무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했다.
  “뭐냐, 저건.”
  짐작하고 있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애써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무연의 말에 에이라나가 쓰게 웃었다.
  “차원이동 마법진, 리샨으로 돌아가기 위한.”
  그 말에 무연이 굳었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려고 할 때 에이라나가 말을 이었다.
  “형, 나는 가야 해. 중원에 남을 수 없어.”
  그렇게 완강한 에이라나를 보며 무연이 입술을 깨물고는 이내 말했다.
  “너랑 난 가족이잖아, 약속했잖아.”
  그런 무연의 눈이 흔들렸다.
  “그 약속을 한 유현은 이미 죽었어. 난 에이라나야.”
  “너랑 그 녀석이랑 동일인물이잖아!”
  “아니, 장로들이 베면서 난 이제 내가 된 거야. 유현이라는 존재는... 이제 없어.”
  그 말에 무연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왜 에이라나가 유현이 아닌 에이라나라 부르라 한 것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럼 나도 그 리샨이란 곳으로 가겠어.”
  무연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곳은 형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형이 있어야 할 곳은 중원 무림이야.”
  소현만이 예외였다. 왜냐하면 소현의 피는 이제 중원의 것이 아닌 리샨 대륙의 존재인 에이라나의 것이기에.
  그 말에 무역이 버럭 소리 지르려고 할 때.
  “가시는 겁니까?”
  안영이 씁쓸하게 웃으며 에이라나에게 말을 걸었다.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슬펐다.
  그런 안영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안영, 즐거웠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안영의 말에 무연이 소리쳤다.
  “젠장!”
  안영은 미리 준바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라나와의 이별을.
  자신은 에이라나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그럴 권리가 없으며 힘도 없다.
  그렇게 무연이 부르르 떨고 있을 때.
  “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휘안이었다.
  휘안의 얼굴은 태연했다. 마치 내일 다시 만날 거라는 듯한 표정.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소현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너도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 해야지.”
  그 말에 소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린과 은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에이라나는 휘안에게 다가갔다.
  “가냐?”
  그러자 휘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간다.”
  “잘 가라.”
  화사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네는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주먹을 내밀었다.
  그 주먹을 휘안이 웃으며 마주쳤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말나자.”
  그리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꼭 다시 만날 것이라는 의지가 강하게 깃든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쓰게 웃었다.
  “그래, 다시 만나자.”
  저 녀석과는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한 에이라나가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천마가 있었다.
  “네가 중원에 있는 동안 리샨은 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쩝, 맞아 죽겠군.”
  천마의 말에 에이라나는 에랴나니스를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차원의 시간을 넘으면서 드래곤 하트는 성장할 것이다. 순식간에 성장하면 몸에 무리가 가겠지만 너라면 어떻게든 잘 처리하겠지.”
  하지만 이윽고 이어진 천마의 태평한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었다. 그런 에이라나의 곁에는 어느새 레이텐티에스와 소현이 다가와 있었다.
  “이 녀석 결국 가는 거야?”
  이때 레이텐티에스가 소현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내 아들이다.”
  그리고 이어진 에이라나의 폭탄발언. 그로 인해 순식간에 이별의 분위기, 씁쓸한 분위기기 날아갔다.
  그리고...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레이텐티에스가 소현에게 다가갔다.
  “내가 니 애비다.”
  퍽!
  그 순간 레이텐티에스는 에이라나에게 맞았다.
  이윽고 세 사람은 물 위의 천마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천마가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천마를 보고 한숨을 쉰 에이라나가 자신의 손바닥에 상처를 냈다. 그리고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순간 마법진이 빛이 난다.
  “모두 잘 있어.”
  그러자 에이라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에이라나 일행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무연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그런 무연을 보며 천마가 말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그리고 그녀는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 넌 그녀가 행복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살아야 할 게야.”
  그렇게 말한 천마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빛나는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렇게 에이라나 일행이 중원 무림을 떠났다.
      에필로그
  번쩍!
  “우왁! 뭐야! 하늘이잖아!”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세 사람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천마는 좌표를 제대로 잡아줄 것이지.”
  혀를 한 번 찬 에이라나가 소현을 안아 들고 플라이 마법을 사용했다.
  레이텐티에스 역시 마법을 사용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에이라나는 자신의 힘이 갑작스럽게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드래곤 하트에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천마의 말이 사실이었나?”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말했다.
  “돌아왔네.”
  “응.”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 이내 레이텐티에스가 멈칫하더니 난감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계에서 귀환 명령이 떨어졌어.”
  “500년 동안 연락 없이 사라지니깐 그렇지. 아마 마계는 발칵 뒤집혔을걸?”
  그에 에이라나가 혀를 차며 말하자 레이텐티에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마계에 갔다 올게.”
  “잘 가라.”
  에이라나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빙긋 웃으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형 어디 간 거야?”
  그러자 소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향에 간 거야. 나는 몰라도 저 녀석은 말도 없이 중원에 간 거였거든.”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일단 너한테는 용언과 마법 그리고 대륙 공용어를 가르쳐야 겠다. 그리고 단전을 회복하고 수면기에나 들어갈까?”
  그러고는 땅으로 내려와 소현을 내려주며 하늘에서 보았던 가까운 도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소현은 처음 보는 환경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소현과 에이라나의 복장은 중원식 복장이었기에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둘 다 엄청 아름다운 얼굴이었기에 더더욱 눈길을 끌었고.
  “여기가 어디쯤이지? 일단 레어로 돌아갈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소현이 말했다.
  “엄마, 이곳은 기의 분포 량이 풍부하네?”
  조금 어색하지만 소현은 에이라나를 엄마라 칭했다.
  아무튼 소현의 호칭에 에이라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일단 여관부터 잡자, 이 세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 해줄 테니 말이야.”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는 제일 고급스러운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에서 방을 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소현에게 용언과 대륙 공용어를 마법으로 주입시켜주는 것이었는데, 엄청난 양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소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대륙을 조금 여행하다가 내 집으로 가자.”
  “엄마는 이곳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났다고 했잖아? 그런데 엄마 집이 그대로 있을까?”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잘 지키고 있을 걸? 그리고 어떤 간 큰 놈이 내 집을 건드려? 그보다 일단 식사부터 하자.”
  그러고는 소현을 데리고 1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라스는 눈앞에 있는 레니스와 리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기요, 왜 따라오셨어요?”
  “우리 많이 심심해.”
  그러다 태연하게 대답하는 리얀의 못브에 다시 한숨을 쉬었다.
  레니스와 리얀뿐만 아니라 라스를 따라온 이는 한 명 더 있었는데, 라이탄이라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10대 후반의 모습을 한 이들이 대륙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을 보며 많은 위험이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정체를 안다면 감히 그런 소리를 못 할 것이다.
  “여기, 이곳에 가장 잘하는 것 좀 가져다줘.”
  그대 그들의 옆 테이블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그들이 고개를 돌리니 한 여인이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여인과 똑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10대 후반의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분 안 가는 아이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아이 역시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차림을 어디선가 본 듯하여 레니스와 리얀은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그때.
  “여~”
  잠시 밖에 나갔던 라이탄이 돌아왔고, 이것으로 파티 인원 넷이 다 모였다. 이 파티는 검사 셋과 마법사 하나라는 대중적인 파티 조합이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라면 모두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흑발에 흑안을 가진, 이 파티에서 가장 어려 보인느 검사 소년과 똑같은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가진 마법사 소녀, 그리고 녹발과 녹안 그리고 적발과 적안을 가진 검사 소년.
  참 보기 힘든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렇게 네 사람이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리얀이 입을 열었다.
  “라스가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니, 세월 참 빠르다.”
  그 말에 레니스가 말했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라스 네 누나 검술이 참 대단했어.”
  “이미 어린아이 때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이길 정도였지.”
  “저도 그 이야기는 부모님에게 들었어요.”
  남들이 들었다면 터무니없다고 할 소리였다. 이제는 대륙에 전설이라 불리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이기는 어린아이라니.
  아무튼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이상한 옷차림에 은발의 여인이 움찔했다. 그리고 그런 여인을 보며 그녀 앞에 있는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쩝, 어릴 때 네 언니에게 고백했다가 친구로 지내자는 소리를 들었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레니스라는 소년이 말을 계속했고, 그 말에 리얀이라는 소녀가 펄쩍 뛰었다.
  “뭣! 이 변태! 죽고 싶냐!”
  “뭔 개소리야!”
  리얀의 말에 레니스가 버럭 소리쳤다.
  “하하하, 차였단 말이지? 그럼 그 녀석 누구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혹시 나한테?”
  그러자 녹발의 소년이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라이탄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었다.
  왜냐? 당사자가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후웅!
  퍽!
  “끄악!”
  바로 그때 녹발의 소년 라이타은 갑작스럽게 뒤에서 날아온 테이블에 맞아 자신들의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지랄 염병하고 앉았네.”
  그리고 이윽고 소년의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게속 이어졌다.
  “라이탄, 죽고 싶어 환장했지? 장난으로라도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말이야.”
  바로 은발의 여인, 에이라나의 말이었다.
  히죽 웃으며 갑작스럽게 등장한 에이라나를 보며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커억! 에, 에이라나!”
  “언제 돌아왔어?”
  그러다 레니스와 리얀이 여전히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전.”
  리얀의 말에 에이라나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라이탄을 한 번 밟고 지나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블랙일족의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야? 처음 보는 앤데?”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리얀과 레니스가 동시에 말했다.
  “네 친동생.”
  이번에는 에이라나가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에이라나의 출연으로 일행은 가까운 숲으로 향했다.
  그에 영문을 모르는 소현은 본능적으로 네 존재를 보며 움츠러들었고, 그런 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에이라나였다.
  아무튼 가까운 숲으로 오자마자 그들을 반긴 것은...
  “딸이다!”
  퍽!
  “크악!”
  에랴나니스였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에이라나의 가족들이 총출동한 상태였다.
  “돌아왔구나!”
  “먼저 연락을 주지 그랬느냐!”
  “내 손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오랜만이다.”
  카랴만, 엘라카넌, 레랴나스, 라칸. 이들 역시 에랴나니스에게 맞고 저 멀리 떨어져나간 에이라나에게 다가갔다.
  “모두 오랜만이에요.”
  그들을 향해 에이라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년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빨리 안 오면 엉덩이 때려준다고 했지!”
  그러자 에랴나니스가 에이라나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
  “난 그곳에서 몇 년 밖에 안 있었다고!”
  “여기는 500년이나 흘렀어!”
  퍽!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에랴나니스를 발로 차버린느 엘라카넌. 그와 동시에 에랴나니스와 엘라카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신나게 깨지는 건 에랴나니스였고 말이다.
  이때 카랴만은 에이라스를 데리고 에이라나 앞에 섰다.
  “에이라나, 네 동생이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하자 에이라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동생이라니, 좀 황당하긴 했어요.”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에이라스를 보며 말했다.
  “너 몇 살이냐?”
  “오, 오 백살이요.”
  그러자 에이라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런 에이라스를 보며 잠시 침묵하던 에이라나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얘,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에이라스가 좀 소심해.”
  “소심함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떻게 엄마랑 살면서 이렇게 소심한 성격을 유지할 수가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던 에이라나가 빙긋 웃으며 에이라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에 움찔한 에이라스였지만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에이라스를 보며 피식 웃은 에이라나가 말했다.
  “저도 소개해줄 아이가 있어요.”
  그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소현을 데리고 왔다.
  그런 소현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실버일족의 머리카락 색을 한 이 인간 소년에게 관심이 가는 드래곤들이었다. 물론 에랴나니스와 엘라카넌은 아직도 신나게 싸우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들 앞에 선 소현이 당혹한 표정을 짓자 에이라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아들이랍니다.”
  침묵. 모두가 침묵했다. 신나게 싸우던 에랴나니스와 엘라카넌도 굳었다.
  하지만 잠시 후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던 카랴만이 귀를 파며 말했다.
  “뭐라고?”
  “제 아들이라고요.”
  그 말에 다시 침묵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잠시 후.
  “끄아아아아아악!”
  드래곤들이 전부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왜 공포에 질렸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결국 소현에게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에이라나의 계획은 물 건너갔다. 바로 이제 막 돌아왔는데 어딜 돌아다니냐고 소리치는 에랴나니스 때문이었다. 아무튼 소현을 데리고 자신의 레어에 도착한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중원에서 몇 년이었지만 왠지 엄청 오랜 세월 만에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에이라나였다.
  차원을 넘나드는 건 자신에게 있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몸은 그 순식간 동안 500년이란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에이라나가 레어를 보며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오랜만에 본 레어를 보며 에이라나가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때 소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여기가 엄마 집?”
  그리고 그와 함께.
  “꺅! 내 손녀 진짜 귀엽다!”
  “으악!”
  어디서 나타났는지 에랴나니스가 소현을 껴안으며 소리쳤고, 그에 소현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소현에게 용언과 대륙 공용어를 주입하면서 대륙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주입시켰기에 이미 소현은 드래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소현이 당혹한 표정을 짓든 말든 에랴나니스는 꺅갹거릴 뿐이었다.
  “엄마, 애 괴롭히지 마.”
  “쳇, 괴롭히는 거 아닌데.”
  하지만 이내 에이라나의 말에 볼을 부풀리며 소현을 놓아주었다.
  아무튼 처음에 소현의 정체를 들었을 때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이라나의 가족은 소현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잠시 후 소현이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머리를 긁적이자 그런 모습을 보며 빙긋 웃은 에이라나가 말했다.
  “엄마, 나 한 1년 뒤에 수면기에 들어갈까 해.”
  갑작스러운 에이라나의 말에 에랴나니스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왜? 500년 동안이나 이 엄마와 떨어졌었잖아? 그러니 이제 엄마와 놀아줘야지!”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에랴나니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쉬고, 싶거든.”
  에이라나의 말에 에랴나니스가 침묵했다. 그러다 잠시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갑자기 에랴나니스의 품에 안겼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에랴나니스는 잠시 후 자신의 귀에 들리는 말과 함께 따뜻하게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에이라나.”
  [무림 드래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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