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10

벗겨진 가면
  무림대회의 예선전이 끝났다.
  예선전을 통과한 이들이라고는 진정한 실력자들뿐! 그리고 실력자라 할 이들에는 거대세가의 사람들과 거대문파의 사람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몇몇 중소문파의 뛰어난 후기지수들도 여럿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남궁성휘가 자신의 형인 남궁휘안 옆에 떡 하니 붙어서 웃으며 말했다.
  “형, 올해에는 형이 꼭 우승할 거야.”
  “쩝, 그건 나도 불가능하다.”
  “왜? 흑마룡이나 혈천룡을 꺽고 우승해버려!”
  “하하하,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성휘의 말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가능하기는 했다. 그렇게 휘안이 농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을 때 휘안의 사촌인 모용린이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휘안 오라버니.”
  “소화, 오랜만이네.”
  그녀와 함께 한 사내가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하! 넌 어째 이심대 초반으로 보이냐? 부럽다!”
  휘안의 사촌이자 휘안과 동갑이며 모용세가의 소가주인 모용한이었다.
  “한,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유현의 말에 모용한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때 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은빛 가면에 거대한 도를 등에 매고 있는 여인, 바로 유현이었다.
  “왔냐?”
  선수대기실로 들어오는 유현을 보며 손을 흔드는 휘안을 보며 유현이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난 첫 번째 상대 때문에 짜증나 미치겠는데, 넌 좋겠다?”
  “응? 네 첫 번째 상대가 누군데?”
  “사무연이라는 사람이래.‘
  그 옆에서 유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에?”
  “흑마룡 사무연이 대전상대?”
  “엄청 운 없다, 저 소저.”
  유한의 말과 동시에 대기실이 떠들썩해지 시작했다.
  “아, 진짜 짜증나네.”
  그런 유현을 보며 소현이 말했다.
  “당신이라도 천마교의 소교주는 힘든가 보지?”
  소현의 말에 유현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몰라.”
  “그것보다 화린이가 당신을 찾고 있던데.”
  그 말에 유현이 표정을 굳히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시끄럽다.”
  유현의 차가운 어조에 움찔하는 소현. 그런 소현을 곁눈으로 본 유현이 코웃음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유현은 그날 후로 화린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화린은 열심히 유현을 찾고 있었지만 그런 화린을 유현이 알게 모르게 피했다.
  물론 유현이 마음먹고 피한 것이기에 화린은 유현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유현이 밖으로 나가자 유한과 휘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황실 비무대회 본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이가 사자후를 터트리며 말했다. 사회자의 사자후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본선이라고 하나 워낙 큰 대회이기 때문에 128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본선진출자였다. 그리고 본선부터는 황제 역시 관전하러 비무장에 나왔다. 그렇기에 황제의 근처에는 동창과 금의위 무사들로 넘쳐흘렀다.
  “첫 비무의 대전자들을 설명하겠습니다, 무림 천마교의 소교주이며 마천룡이라는 명호를 가지고 있는 사무연!”
  “와아아아아아! 사무연 힘내라!”
  “멋진 검술을 보여줘!”
  사무연의 엄청난 검술실력 덕분에 사무연을 응원하는 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버렸다.
  “그리고! 가녀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대도가 무기인! 황태자 전하의 추천을 받은 은빛 가면의 의문의 무인! 현유하!
  유현의 자신의 이름을 반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좀 여성스러운 이름이 되어버려 유현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무연 역시 첫 상대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
  유현이 히죽 웃으며 무연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무연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런 무연을 보며 고개를 저은 유현이 도를 뽑으며 말했다.
  “나랑 대화를 할 생각이 없나보네? 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런 유현을 보며 무연이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현을 생각나게 하는 여인. 그런 여인의 목소리와 유현의 목소리가 혼동되어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무연이 소마검을 뽑았다.
  -이번에는 소마검?
  ‘좀 닥쳐라.’
  또 분지르자고 할 것 같아 미리 선수를 치는 유현이었다.
  아무튼 유현이 소마검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자신의 애검이었던 소마검이 이제는 무연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보는 기분은 꽤나 묘했다.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닌 기분을 애써 씹어 삼키며 유현은 천마도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와 함께 은빛 빙기의 도기가 천마도를 감사 안았다. 동시에 무연의 소마검에서도 검은빛 마기의 검기가 흘러나와 소마검을 에워쌌다.
  처음부터 기를 사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웅성거리던 관중들이 잠시 후 환호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무연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유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의문의 고수라는 점과 여성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여성 중에 도를 이용하는 무림인은 잘 없다. 있다고 해봐야 하북팽가의 여인들이겠지만 그녀들 역시 저렇게 엄청나게 큰 대도는 사용하지 않는다.
  힘이 센 남성 무인도 휘두르기 힘들어 보이는 저런 무식한 크기의 대도를 가녀린 체구의 그녀가 어떻게 휘두른단 말인가? 또 휘두른다고 하나 공격속도가 느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흑마룡 사무연. 그 출신답게 패도적인 초식을 많이 사용하긴 하나 정교하고 빠른 쾌검이가 변화가 많은 초식도 많이 있다.
  무연은 유현을 바라보며 내심 찝찝함을 느꼈다. 그녀 역시 천마신공의 계승자라면서 상대가 왜 저런 거대한 도를 사용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을 주시하는 무연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무식한 대도를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나 본데, 남 걱정하지 마.”
  쿵!
  유현이 발을 비무장 바닥에 찍었다.
  후웅!
  그리고 들려오는 묵직한 바람소리!
  그와 함께 무연은 경악하며 뒤쪽으로 검을 휘둘러야 했다.
  콰앙!
  “크윽!”
  어느새 자신의 뒤쪽으로 와서 그 거대한 도를 휘두른 유현과 그런 유현을 보며 경악하는 무연. 그것은 무연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저런 대도를 들고 저렇게 빠르게 움직인단 말인가?
  쾅!
  다시 한 번 격돌하는 유현의 천마도와 무연의 소마검.
  힘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 중 당연하게도 밀리는 것은 무연이었다. 자신을 계속해서 밀어 붙이는 유현의 어마어마한 괴력에 얼굴을 찡그린 무연은 이를 악물고 그대로 천마환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천마백환검.”
  그러자 늘어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환검.
  그것은 유현이 자주 사용하는 천마환검이었다. 물론 자주 사용하는 만큼 그것들의 막을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유현은 히죽 웃었다.
  유현의 근처에 반투명한 은빛 막이 생김과 동시에 그 반투명한 은빛 막과 백 개의 환검이 부딪혔다. 바로 기를 이용한 도막이었다. 그 도막을 보며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막은 화경의 경지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무연의 환검 공격이 끝났다. 그와 동시에 유현의 천마도에 흐르던 도기가 더욱 강력한 기운을 뿌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듯 감싸 안고 있었던 도기와는 다르게 반듯하게 유형화된 기운.
  그것은 바로 도의 강기, 도강이었다.
  경기 초반에 강기가 나타나자 관중들이 환호했으며 무연 역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검에 자신의 기운을 더욱 주입했다. 그리고 무연의 검에서도 마기의 검강이 완성되었다.
  다시 격돌하는 두 사람의 도와 검은 그 소리부터가 도기와 검기의 격돌음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비무장을 초토화시켜갔다.
  유현은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어 몸통박치기를 하는 무연 때문에 신음성을 흘렸다.
  “크윽.”
  “그 가면... 불편해 보이는데 벗겨주지.”
  무연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유현의 아름다운 은빛 가면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그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지금의 상태로는 검을 휘두르기 힘들었다. 보통 검 크기의 도라면 모를까 천마도 같은 대도를 휘두르기 위한 간격은 장창의 간격과 비슷하다.
  그리고 지금은 무연이 유현을 향해 몸통박치기를 했다면 천마도의 간격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는 뜻!
  유현은 도를 휘두를 수 없고 무연은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승리는 무연의 것! 하지만 이것은 보통의 무림인이었을때의 이야기이지 유현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유현에게 있어는 지금도 자신의 간격이다.
  쾅!
  들려오는 폭음과 함께 무연이 주르륵 밀려났다. 그리고 그런 무연을 보며 히죽 웃은 유현이 거대한 천마도를 한 손으로 휘둘렀다.
  쾅!
  무연이 그대로 밀려나갔다. 그러면서도 무연의 얼굴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이 비무를 바라보고 있는 다른 무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유현의 오른손에 맺혀 있는 은빛 강기. 세인들이 말하는 권강과 천마도에 맺혀 있는 도강. 강기를 두 개. 그것도 도강과 권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화경의 경지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물론 이것은 현경의 경지에 든다면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은빛 가면의 여인은 현경의 고수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유현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연을 향해 그대로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탄도강이 무연에게 날아갔다. 그 탄도강을 보며 무연 역시 탄검강을 시전했다.
  탄도강과 탄검강이 부딪혔으며, 유현과 무연도 다시 부딪혔다. 하지만 현저하게 밀리는 것은 무연이었다. 바로 도강과 권강을 함께 사용하는 유현 때문이었다.
  간격이 멀어지면 도가 날아왔으며 가까워지면 주먹이 날아왔다. 보통 어중이떠중이들이 사용하는 수법이지만 유현이 사용하니 그 격이 달라졌다.
  퍼억!
  “쿨럭!”
  아무튼 어느 순간 유현의 주먹이 무연의 배를 가격했고, 유현이 빙긋 웃으며 주춤하여 빈틈이 생긴 무연의 가슴에 발을 내려찍었다.
  퍼억!
  “커억!”
  무연이 그대로 신음성을 흘렸고, 어느새 유현의 도가 무연의 목 언저리에 놓여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비무의 결과는 유현의 승리였다.
  “내가 이겼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무연이 자신의 목에 있는 도를 치우며 무표정한 얼굴로 비무장에서 내려왔다.
  이미 결론은 난 것이었다. 우승후보로 떠올랐던 무연의 패배. 하지만 상대 역시 엄청난 실력의 고수라는 것이 알려졌기에 그 누구도 무연을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고수가 현경의 고수인지 아닌지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무대회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 유현이었지만 정작 유현은 그런 것들과의 상관없다는 듯 다음 비무를 기다렸다. 유현은 비무대회에서 따로 신경 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현, 은월, 화린의 비무였다.
  그 세 명에게 이 비무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할 시에는 특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미리 협박을 해둔 유현. 그렇기에 그 세 사람을 죽을힘을 다해 비무에 임하고 있었다.
  화린의 표정은 많이 어두운 상태였다.
  비무에 대한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유현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화린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유현이었다.
  화린의 비무는 가장 마지막 경기인 64번째 경기였다.
  세 사람에게 으름장을 놓은 유현이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이 비무대회에서 그들을 이길 실력자는 휘안, 무연, 시현 그리고 사인이란 인간 빼고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혈교 측의 사인이란 놈을 볼 때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유현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사인이란 놈만 보면 기분이 뒤숭숭하며 뭔가 기분이 더러워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런 인간이 화린의 비무 상대라는 것에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유현이었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유현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비무를 했던 두 사람, 사무연이라는 인간과 현유하라는 인간이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그들을 처음 보는데도 말이다.
  특히 현유하라는 여자는 계속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상한 느낌에 얼굴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져머린 사인. 그렇게 사인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 흘러 드디어 사인과 화린의 차례가 돌아왔다.
  화린의 긴장감은 대단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가 이겼다. 유현, 월린, 소현, 은월 모두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화린은 문득 유현 생각에 얼굴이 흐려졌다.
며칠 동안 자신을 피하는 유현, 그때 일이 잘못이었던가?
  아무튼 그렇게 침울한 표정을 지은 화린이 한숨을 푹 쉬고 비무대회에 올라갔다.
  “에... 화린이라고 합니다.”
  이미 사회자의 소개가 모두 끝난 상태지만 화린의 예의상 사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지만 사인은 그런 화린의 인사를 무시했다.
  ‘쳇, 무시하는거야, 뭐야.’
  사인의 예의에 어긋난 태도에 화린이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선잔을 뽑았다.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는 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인 역시 검을 뽑았다.
  “시작!”
  사회자의 말과 함께 화린이 사인에게 달려들었다.
  챙!
  사인의 검과 화린의 검이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리고 화린 특유의 괴력에 사인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 계속되는 비무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화린이었다.
  “흐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숨이 격해지는 것 역시 화린이었다.
  ‘뭐, 뭐야?’
  도대체가 상대를 제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우위를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것 역시 그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상대가 사용하는 검로였다.
  어째서인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인의 검로는 자신이 아는 그 누군가와 사인을 겹쳐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바로 유현이었다. 그 어떤 초식을 사용해 봐도 자신이 아는 모든 경로에서 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상대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음에 멍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지루하군, 끝내지.”
  상대의 낭랑한 목소리가 화린의 귓가에 들렸다.
  푸욱!
  그리고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화린은 상대가 자신의 배에 검을 꽂았다는 것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관중들의 비명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커억! 쿨럭!”
  화린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크게 부릅뜬 눈으로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배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의원! 의원 불러!”
  여기저기가 소란스러워 졌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으킨 사인은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혈교 측에서는 그런 사인의 행동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무심한 표정으로 화린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순간 흠칫 했다. 그리고 그대로 뒤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후우우우우웅! 쾅!
  어느새 자신의 뒤를 접하고 자신을 날려버린 이는 거대한 도를 든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은빛 가면의 여인이었다. 갑작스럽고도 엄청난 공격에 얼굴에 약간의 피해만 입힌 사인.
  털썩!
  사인 역시 비무장을 굴렀다.
  툭!
  그리고 사인의 공격에 의해 공중을 날랐던 유현의 은빛 가면도 떨어졌다. 하지만 유현은 그것은 신경 쓰지 않고 배를 부여 잡은 채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리는 자신의 동생에게 달려갔다.
  “화린아? 화린아! 괜찮아?”
  유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화린을 불렀다. 자신이 또다시 불안해졌다는 것을 느낄 틈도 없이 말이다.
  “젠장! 리커버리!”
  유현이 치료마법을 사용했다. 그와 함께 화린의 상처가 점점 사라져갔다.
  어느새 유현의 주위로 몰려든 은월과 소현. 그리고 화린의 가족들도 그런 화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유현의 손에서 터져 나온 빛이 화린을 치료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그들이었다.
  그저 화린의 혈색이 좋아지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치료받은 화린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 이거... 꽤 소란스러워지겠군.”
  언제 비무장으로 올라왔는지 휘안이 한숨을 푹 쉬며 유현의 은빛 가면을 주우며 말했다.
  분명히 사인이란 녀석의 강기에 당했는데 멀쩡한 것을 보니 역시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가면이라고 생각한 휘안이 화린의 곁에 붙어 있는 유현을 바라보았다.
  “어, 언니... 얼굴.......”
  화린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던 유현의 얼굴. 그런 유현의 얼굴을 봤으면서도 화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도 아름다워 선녀의 얼굴 같은 유현의 얼굴. 자신과 정 반대의 날카롭고 차가운 분위기의 얼굴. 그러나... 자신과 쌍둥이 같이 똑같은 얼굴.
  “이 멍청아,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꿈인가? 내 얼굴이랑 똑같은 얼굴이야.”
  “뭐?”
  “언니 얼굴... 내 얼굴이랑 똑같아.”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대로 굳어버렸다. 유현 역시 그제야 어느새 자신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여기 네 가면이다, 하유현.”
  그런 유현을 보며 휘안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젠장! 이리 내놔!”
  유현이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말했다.
  덥석!
  그러나 화린에 먼저 휘안이 건넨 은빛 가면을 낚아채 잡으며 유현을 불렀다.
  “언니!”
  화린은 벌떡 일어나 가면을 뒤에 감추었다. 아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머리가 팽 도는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자식아, 내 가면 안 내놔?”
  유현이 버럭 소리쳤다.
  “내 얼굴 똑바로 봐봐!”
  하지만 화린 역시 만만치 않게 소리치며 말했다.
  “제기랄!”
  유현이 거칠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7권에 계속>
    외전-기다림
  “흐에에엥~ 엄마가 때렸어!”
  “시끄러워!”
  콩! 
  “으아아아아앙!”
  아름다운 은발의 여인은 자신의 레어가 떠나가라 울고 있는 흑발에 흑안을 가진 다섯 살 남짓의 어린아이를 보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해도 애가 이렇게 순할 수는 없었다. 어찌나 순한지 도대체가 그 성질 더러운 블랙일족이 맞는지 의심을 가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올해로 100살이 된 블랙일족의 남자아이, 해츨링 에어라스, 그런데 도대체가 이 아이는 100년 전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에이라나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애가 좀 맞았다고 질질 짜기나 하고! 네 누나 반만 닮아봐라!”
  “히끅!”
  에랴나니스의 말에 딸꾹질을 한 에이라스.
  에이라스는 에랴나니스의 두 번째 아이였다. 이번에는 아버지인 카랴만의 종족을 이어받아 블랙일족으로 태어난 에이라스.
  그런 에이라스는 정말 블랙일족의 남자아이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순진하고 착했다. 물론 은근히 정이 많은 에이라나처럼 정도 많은 에이라스였다.
  에랴나니스가 빽 소리치자 입을 다문 에이라스, 하지만 계속해서 딸꾹질을 하던 에어라스가 다시 울먹였다.
  “으아아악! 그만 좀 울어!”
  에이라나와 에랴나니스는 둘 다 성격이 더러웠다. 그렇기에 에랴나니스와 여러 번 충돌이 있었고, 에랴나니스 역시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며 바락바락 대드는 에이라나를 키우는 맛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에이라스는 정 반대였다. 조금만 자신이 화를 내도 바로 울먹거리니 이건 뭐 답답해서 소리 한 번 제대로 지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 녀석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느끼면 바로 울어버릴 만큼 마음이 약했다.
  “캬악!”
  그런 자신의 아들을 보며 화병 터질 것만 같은 에랴나니스였다. 이런 여리디 여린 심성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탕탕 치던 에랴나니스는 갑자기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려야만 했다.
  “에이라나도 괴롭히더니, 에이라스 역시 그렇게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겠니?”
  바로 레냐나스였다. 갑자기 레냐나스의 등장에 에이라스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후 레랴나스에게 달려들었다.
  “할머니!”
  “오냐! 내 손자, 엄마가 괴롭히니 얼마나 무서웠니?”
  레냐나스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에이라스를 안아 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 광경을 본 에랴나니스는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애가 툭 하면 우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걱정되어서 그런 거예요.”
  에랴나니스의 말에 레랴나스가 말했다.
  “하긴, 에이라스가 순하기는 하지.”
  “순한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에이라스는 에랴나니스의 손에서도 저 성격이 더러워지지 않고 바른 것을 보면 대단하기는 했다.
  에랴나니스의 말에 레랴나스가 말했다.
  “성격이 이런 걸 어떻게 하겠니?”
  “하아. 에이라나를 키울 때는 말은 안 들었어도 답답하지는 않았는데 에이라스는 정말 답답해요.”
  에이라스는 에랴나니스에게서 나온 ‘에이라나’라는 이름에 울먹임을 멈추고 잠자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는 엄마, 아빠,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귀가 닳도록 자주 들었다.
  누나는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자신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엄마에게 대들었다고 한다. 그런 에이라나는 에이라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다.
  또 가끔씩 놀러오는 리얀과 레니스의 말에 의하면 아주 강한 드래곤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로 강하냐면 500살이면서 1,500살급의 윔급 드래곤만큼 강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드래곤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 말들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에이라스인지라 생명부지의 누나의 존재는 언제나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에에라스는 몇 번이나 엄마인 에랴나니스에게 물었었다.
  ‘엄마, 누나는 어디 있어요?’
  에이라스의 순진한 물음에 에랴나니스는 쓸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누나는 지금 리샨 대륙엔 없단다. 아주 멀리 떠났지.’
  에이라스는 늘 당당하던 자신의 어머니가 그 말을 하면서도 진한 슬픔에 잠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리샨 대륙에 없다면.......
  ‘혹시, 죽었어요?’
  물론... 그 말 한마디를 했다가 에이라스는 밤새도록 영혼이 떠나가도록 에랴나니스에게 죽도록 얻어터졌다.
  ‘그딴 개소리 다시 한 번만 하면 다음에는 절벽에서 떨어뜨릴 줄 알아!’
  그 말에 에이라스는 에이라나가 죽었다는 소리를 다시 할 수 없었다.
  에이라스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자신들의 대화를 듣는다는 것을 자각한 에랴나니스와 레랴나스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누나의 이야기를 할 때면 울던 것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는 에이라스가 너무도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오~ 에이라스! 아빠 왔다!”
  카랴만이 활짝 웃으며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에이라스를 안아 들었다.
  “아빠!”
  그런 카랴만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는 에이라스. 카랴만은 웃으면서 에이라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은 에이라나의 레어를 청소하러 갈 건데 가지 않겠니?”
  “에? 누나의 레어를 청소하러 가요?”
  그 말에 카랴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치울 것은 없겠지만, 100년 동안 방치했으니 한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구나.”
  그 말에 에이라스가 말했다.
  “갈래요!”
  에이라스의 반응에 가랴만이 활짝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잠시 후 에랴나니스도 온다고 하니까, 미리 가 있자. 워프!”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랴만과 에이라스였다.
  에이라스가 에이라나의 레어에 와서 처음 본 것은 거대한 초상화였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듯 세 명의 인물이 초상화에 나와 있었다.
  모두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함을 간직한 초상화 속의 사람들.
  그중 한 명은 여자였다. 은발에 은안을 가진 여인. 허리에는 두 개의 아름다운 검을, 등에는 거대한 도를 차고 있다. 그 여인은 너무도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아름다운 검을 한 자루 차고 있는 흑발에 흑안의 남자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짙은 남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
  그림 속 여인은 당당한 표정으로 오만한 눈으로 자신을, 아니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흑발의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로. 하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여인 옆에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짙은 남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한참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던 에이라스가 카랴만에게 물었다.
  “누구에요?”
  에이라스의 물음에 카랴만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 은발의 여인이 네 누나인 에이라나이고 흑발의 남자와 남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네 눈의 친구들이다.”
  물론 그중 안영은 친구라기보다는 수하였지만.
  카라먄의 말에 에이라스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저 두 명 역시 드래곤이겠네요?”
  “아니, 인간이란다.”
  카랴만의 말에 에이라스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이세계의 사람들이지.”
  그 말에 에이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세계요?”
  “그래, 중원이란 곳에서 왔다더구나.”
  그 말에 에이라스가 중얼거렸다.
  “중원......?”
  “그래.”
  “에, 설마 누나도?”
  그래, 그 중원이란 곳에 일이 있어 갔단다.“
  “다른 세계에요?”
  에이라스가 멍한 눈으로 계속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런 에이라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준 카랴만이 말했다.
  “저기 차원이동 마법진이 있단다.”
  카랴만이 레어 안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에이라스는 여느 때와 달리 냉큼 카랴만을 따라깆 않고 계속 그림 속이 에이라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활짝 웃은 에이라스가 그림 속 에이라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전 에이라스라고 해요, 전 누나를 처음 봤어요. 누나는 참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제가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화사하게 웃어 보인 에이라스가 잠시 뒤 다시 말했다.
  “어릴 때부터 누나에 대한 이야기는 엄마에게 많이 들었어요, 참 궁금했는데. 헤헤헤.......”
  저도 모르게 몰려오는 그리움에 잠시 목이 메였던 에이라스는 이내 활짝 웃으며 계속 말했다.
  “빠른 시일 내에 중원이란 곳에서 돌아오세요, 전 누나가 너무 보고 싶거든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라스야! 할아버지가 와 계시다, 인사 드려야지?”
  “네!”
  카랴만의 말에 에이라스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에이라스는 자신의 누나가 정말로 보고 싶어졌다. 과연 어떤 드래곤일지 너무도 궁금해진 것이었다.

        무림 드래곤 7 (완결)
    지은이: 예로나
  
    분노
  유현은 자신의 가면을 주지 않는 화린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중에 설명해주지, 일단 가면 내놔.”
  하지만 그런 유현의 말에도 화린은 완강했다.
  “지금 말해줘, 그 얼굴 어떻게 된 거야!”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은 얼굴을 구기더니 그대로 화린의 손에 잡힌 가면을 향해 손을 뻗었고 유현의 손길을 피하려던 화린은 순간 자신의 손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
  화린의 손에서 가면을 빼앗은 휘안은 유현에게 가면을 넘겼고 휘안이 주는 가면을 빨리 쓴 유현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고맙다.”
  그렇게 말한 유현이 자신을 거의 노려보듯 쳐다보는 화린을 보며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 일단 지금은 묻지 마라.”
  그리고 다급하게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의원들을 쳐다보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의원들이 화린에게 묻자, 유현을 노려보고 있던 화린은 그런 그들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에?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 검이 꿰뚫렸던 자신의 배를 보니 옷은 온통 피범벅이었지만 상처는 없었고, 피를 많이 흘려 머리는 멍했지만 상처로 인한 고통은 없었다.
  그에 화린이 유현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관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빛이 번쩍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상처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이윽고 모두의 시선이 유현에게 향한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얼굴을 찡그린 유현이 말했다.
  “젠장, 귀찮은 일이 생기겠군.”
  유현의 말에 어느새 다가온 유한이 말했다.
  “그러기에 왜 치료마법을 사용해?”
  “다급해서 그랬다.”
  그렇게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아무도 신경 쓰지 못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사인이었다.
  유현의 일격을 막으면서 멀리 튕겨져 나갔던 사인. 그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카락에 가려 유현의 얼굴을 본 이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화린과 사인이 다였다.
  그렇게 유현의 얼굴을 본 사인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봐.”
  “사인이 유현을 부르자 유현의 시선이 사인에게 향한다. 그리고... 순간 굳어버렸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휘안도 굳었고 유한도 굳었다. 소현과 은월, 강월, 월화, 월린 화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로 상대의 얼굴이 자신이 아는 얼굴과 너무도 똑같기 때문이었다.
  “화린이?”
  “유현?”
  즉, 상대의 얼굴이 화린, 유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무연은 굳어 있었다. 비무장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시현 역시 굳었다. 현 무림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마교와 혈교의 소교주들을 저렇게 굳게 만들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무튼 그들이 굳은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유현의 강기가 섞인 공격에 두건이 벗겨져나간 사인 때문이었다.
  “유현?”
  무연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어째서 죽은 줄 알았던 유현이 살아 있는가? 그것도 혈교 사람으로 말이다!
  그는 자신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시현에게 다가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유현이가 저기 있는 것이냐?”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리는 무연. 그런 그의 말에도 시현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게, 이게 대체...”
  시현의 중얼거림에 무연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그렇게 외치며 그대로 비무장으로 경공술을 사용했고 그런 무연을 보고 정신을 차린 시현 역시 굳은 표정으로 경공술을 시전했다.
  “넌 누구냐?”
  유현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사인에게 말하자 그런 유현을 보며 사인이 말했다.
  “그럼 넌 누구지?”
  “나는...”
  사인의 되물음에 유현이 답하려고 할 때...
  “누나! 저자는 산 자가 아니야! 죽은 자야!”
  유한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저번에 봤던 혈천강시들! 그것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물론 살아 숨 쉬고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데스나이트는 아니야, 그 강시라는 존재들과 비슷한 느낌이야.”
  마계의 마족이며 그 마족들의 정점에 있는 마황자가 바로 유한이다. 그렇기에 유한이 느낀 것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것의 정체는 바로...!
  “그렇다면 생강시군요.”
  굳은 표정으로 안영이 말하자 유한과 휘안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유현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안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여기서 유현이 폭발한다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유현은 덤덤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유현.
  하지만 그런 유현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세 사람이었다. 이것이 폭풍전야라는 것을 셋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비무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윽고 사인에게 향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사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몇몇 이들은 그 얼굴이 천마교의 전 소교주 하유현의 것이라는 것에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고 이내 비무장은 소란스러워졌다.
  “너, 너는... 강윤이?”
  바로 이때 월화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런 월화의 말에 사인이 물었다.
  “강윤? 당신은 누구지? 날 아나?”
  그렇게 묻는 사인을 보며 월화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여보, 저 아이 강윤이 아닌가요?”
  “맞는 것... 같소.”
  월화의 물음에 강월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의 여동생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는 건가?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유현이 냉소했다.
  “저건 유강윤이 아니야, 이미 혼이 떠나버린 빈껍데기에 불과하지. 혼도 없이 살아 숨 쉬며 생각하는 산송장!”
  유현의 말에 사인이 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살아 있다! 생각한다! 숨 쉰다! 날 시체로 취급하지 마라!”
  “뒈져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돌아다니는 걸 시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나!”
  “그럼 네놈은 무엇이냐!”
  “나는...”
  사인의 말에 유현이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경공술을 이용해 나타난 무연과 시현으로 인해 멈칫해야만 했다.
  “유현아!”
  사인을 부르는 무연의 목소리에 사인이 다시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현?”
  “그래, 하유현! 나의 동생 하유현!”
  무연의 외침에 사인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억이 뒤죽박죽인 거야.”
  그런 사인을 보며 유한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유현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어째서 3년 전 죽은 사람의 시체가 저렇게 생강시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인가!”
  그와 동시에 시현을 노려보자 시현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하니 하유현의 시체를 빼돌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그리고... 저 혈사인은 파멸성의 육체와 강시의 비술로 살아난... 아주 무시무시한 병기가인 것입니다.”
  “감히 누굴 병기 취급하는 것이냐! 저렇게, 저렇게 살아 있잖아...”
  그에 무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멍하니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런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고 엄청난 분노와 함께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던 파천성의 기운도 함께 눈을 떴다.
  “내 혈교 놈들을 모조리 중원 무림에서 씨를 말려버릴 것이야! 감히 나의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생강시로 만들어버리다니!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무연의 이 어마어마한 분노는 바로 옆에 있는 시현에게 향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그런 무연을 보며 시현 역시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무연의 이성은 반은 끊긴 상태였다.
  순간 비무장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현 역시 무연의 파천성의 기운에 대응하며 혈천성을 끌어 올렸던 것이다.
  “젠장! 두 사람, 그만둬!”
  바로 이때,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휘안이 버럭 소리쳤다.
  “사무연! 당신도 그만 해! 지금 가장 분노해야 할 이는 당신이 아니야!”
  그리고 사무연을 향해 차갑게 말을 잇자 멈칫한 무연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휘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무엇을 안다고 나에게 지껄이는 것이냐!”
  그런 무연을 보며 휘안 역시 지지 않고 흥분하며 외쳤다.
  “젠장! 누구는 화가 안 나는 줄 알아! 지금 이곳에서 분노해야 할 이는 나나 당신이 아니야! 바로 하유현이라고!”
  그런 휘안의 말뜻을 무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봐.”
  그때 유현이 사인을 불렀다.
  “왜... 부르는가?”
  “네가 세상에 나온 목적은 무엇이지?”
  “나의 혼을 찾는 것.”
  “찾아서 무엇 하게?”
  혈교의 교주가 말했던 것과 같은 물음. 그 물음에 사인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네 말 대로 난 시체다. 하지만 나에게도 자아가 있다. 살아 숨 쉰다. 난 나의 영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고 나의 영혼을 찾는 이유다.”
  그렇게 말한 사인이 유현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묻겠다. 넌 나의 영혼인가, 아닌가?”
  사인의 말에 유현이 잠시 침묵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난... 너의 영혼이 맞다.”
  “그런가?”
  유현의 대답에 사인이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내 영혼이 이 육체를 떠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
  사인의 말에 유현이 빙긋 웃었다.
  “그것은 좀 있다 말해주지.”
  그의 기세는 변해 있었다. 그런 그가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살후... 일단 네놈부터 죽여주마.”
  그와 동시에 유현이 몸에서 참고 참았던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사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흉포한 기우! 원초적인 파괴 본능!
  지금 유현의 몸을 점령한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유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드래곤 피어! 그 기운이 향하는 곳은 단 한 곳! 하지만 그 기운에 모두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고수들 역시 숨이 턱 막히는 유현의 기운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그 때, 유현이 경공술을 이용해 사라졌다. 그에 현경의 경지에 든 이들의 시선이 갑자기 휙 돌아갔다.
  쾅!
  그와 함께 엄청난 폭음이 비무장을 강타했다.
  그에 현경 이외에 다른 소리도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무장 위에 있던 유현이 한 중년인의 목을 잡고 무시무시한 기세를 뿌리며 서 있었다.
  “끄억! 끄억!”
  유현에게 목이 잡힌 중년인은 괴로운 표정으로 몸부림을 쳤다.
  “워프.”
  그런 중년인을 보며 유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고, 그와 동시에 그는 빛을 뿌리며 사라졌다.
  “이런, 어디로 공간이동 한 거야?”
  갑작스럽게 유현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비무장을 겹쳤던 어마어마한 기운도 사라졌다.
  그에 모두가 털썩 주저앉을 때 휘안, 안영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동좌표 알아냈어!”
  그러자 유한이 소리쳤다.
  “어디야?”
  “일단 모여!”
  유한의 말에 사인이 말했다.
  “나도 따라간다.”
  그런 사인을 보며 멈칫하는 유한. 하지만 이내 사인 역시 워프 범위에 넣었다.
  “워프!”
  이윽고 유한이 워프를 외웠다. 그러자 그들 역시 빛을 뿌리며 사라졌다.
  털썩!
  “쿨럭! 여긴 어디지? 그리고 다, 당신은 누구... 커억!”
  갑작스럽게 주변 환겨이 바뀌자 당황하는 살후.
  그러다 목을 조르며 어마어마한 압력을 가하던 여인의 손길이 없어짐을 느끼며 다급하게 거리를 벌리려던 그는 배에 틀어박히는 여인의 발에 그대로 몇 번 구르고 말았고 그로 인해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정말 보고 싶었다, 살후 장로. 너무 반가워서 죽여 버리고 싶군그래.”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섬뜩하게 말하는 유현의 몸에서 은빛의 기운을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눈앞에 자신이 중원에 온 이유가 있다. 저것을 죽여 버리기 위해 중원에 오지 않았는가.
  “끄윽!”
  살후가 움찔하며 다시 피를 토할 때였다.
  꾸욱!
  유현은 바닥에 엎어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바라보며 그의 머리를 밝고 땅에 비벼댔다. 그로 인해 살후의 얼굴 살은 사정없이 찢겨져 나갔고, 그러자 이번엔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퍼억!
  “끄억!”
  살후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검을 뽑아 들었다.
  눈앞의 여인은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다. 지금 자신의 본능은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다. 안 그러면 죽는다고!
  하지만... 도망칠 수가 없었다. 발바닥이 땅바닥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걱정 마, 걱정 마. 쉽게 죽이진 않을 테니.”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으며 말하는 유현. 그런 유현을 보며 오싹한 느낌이 든 살후였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은빛의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찢어 죽여 버릴 듯한 기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악!”
  그런 유현을 보며 살후가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는 검붉은 검강이 맺혀 있었다.
  꽈악!
  퍼억!
  “끄악!”
  하지만 그런 살후의 공격을 피한 유현이 그의 검을 꽉 잡았다. 그와 함께 손에서 어마어마한 압박을 느낀 살후.
  탁!
  이내 살후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지 시작했다.
  살후의 오른손은 짓눌려 있었다. 또한 어마어마한 압박을 느낀 듯 하얀 것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호오~ 다시는 검 들기 힘들겠는데?”
  유현이 그런 살후의 손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평소의 유현과는 달랐다. 천마신공이 잔인한 무공이긴 했다. 하지만 유현 자체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유현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왜, 왜 나한테 이러느냐!”
  살후가 악을 쓰듯 말했다.
  자신은 저런 괴물에게 원한 살 말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이러는가!
  자신을 보며 악을 쓰듯 외치는 살후. 그런 그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그럼 네놈은 왜 나한테 그랬냐?”
  “내, 내가 당신에게 무슨...”
  그런 유현을 보며 살후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화사하게 웃은 유현.
  “왜 날 죽였냐고, 이 개새끼야!”
  유현이 버럭 소리쳤다.
  “쿨럭!”
  그런 유현의 사자후에 살후는 속이 뒤집히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몸을 꼬며 고통스러워했다.
  “끄으으으으...”
  그런 살후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을 느낀 유현이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휘안, 유한, 안영, 사인이 있었다.
  사인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에 놀란 듯했다.
  그런 사인을 보며 쓰게 웃는 유현이었다.
  자신의 시체로 만든 저 불쌍한 존재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의 손으로 부서뜨려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유현은 문득 살후가 꿈틀거리자 그의 몸을 발로 차버렸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자신을 죽게 만들었던 장본인 중 하나를 처리 하는 게 우선이었다.
  “누나.”
  그런 유현을 보며 유한이 움찔했다.
  지금 유현은 드래곤의 기운을 모두 개방한 상태였다.
  반은 이성으로, 반은 본능으로 움직이는 상태.
  즉, 어린 드래곤들은 모든 기운을 개방하면 반쯤 본능에 휩쓸리는 성향이 있었다.
  유현은 성룡이라고 하지만 아직 50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드래곤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유현이라고 해도 그 성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드래곤의 본능은 난폭하고 잔인하다. 그런 드래곤의 본능에 반쯤 휘둘리고 있는 유현이니 평소의 유현일 리 없었다.
  물론 대륙전쟁 중에도 몇 번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유현은 잔인하게 적들을 베곤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해지고 강해진 유현. 하지만... 그런 유현의 모습이 싫은 유한이었다.
  유한의 부름에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지금 바쁘다.”
  그런 유현을 보며 사인이 말했다.
  “저건...?”
  “아아... 이 자식 알고 있나? 하긴, 혈교에서 다시 부활했으니 이 자식도 알고 있겠군.”
  유현의 말에 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살후가 유현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단 말인가?
  자신과는 상관없지만 이전부터 왠지 마음에 안 들었던 살후. 언제 마음먹고 칼질 좀 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유현이 먼저 죽이고 있자 뭔가 분한 기분이 들었다.
  “사, 사인 님... 제, 제발... 사, 살려주십시오. 다, 당신은 충분히 이, 이들을... 커억!”
  이때 살후가 사인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주절거리는 그의 가슴을 유현이 발로 차버렸다. 내공이 실려 있지는 않지만 숨을 못 쉴 정도의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커억! 끄으으윽...”
  “누가 네놈 보고 말하라고 했지?”
  그런 살후를 보며 유현이 비웃으며 말했다.
  “더 발악해봐.”
  그리고 시작된 구타는 이미 죽은 사인도 굳게 만들 정도로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꺼어어어억... 사, 살려...줘...”
  “호오~ 살고 싶어? 기다려, 죽고 싶게 만들어줄게.”
  이미 사람의 형체로도 볼 수 없는 살후를 보며 유현이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그전에 너도 왜 내가 너한테 원한이 있는지 알아야겠지?”
  그렇게 말한 유현은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사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유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다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며 그것은 바로 유현의 눈.
  사람의 눈이 아닌 흉포한 드래곤의 눈. 바로 드래곤 아이 상태였다.
  유현은 살후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보게 만들었다.
  “커억!”
  그런 유현의 얼굴을 보며 살후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도 경악성을 내뱉었다. 사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기에.
  “내 이름은 에이라나. 그리고 또 다른 이름은 하유현. 이 세계의 강시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드래곤으로 환생하여 네놈들을 죽이기 위해 돌아왔다.”
  그렇게 말한 유현이 살후의 머리를 놓아버렸다.
  퍽!
  그리고 쓰러지려는 그의 배를 발로 차버렸다.
  “쿨럭!”
  그로 인해 살후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런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런 살후를 향해 유현은 방긋 웃어 보이고는 유한을 보며 말했다.
  “유한.”
  “어? 왜 불러?”
  멍하니 유현을 바라보던 유한은 갑작스러운 그의 부름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유현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떤 모습이든 무슨 상관이랴.
  “사람이 산 채로 언데드화 되어버리면 고통스럽다고 했던가?”
  “응, 산 존재가 산 채로 언데드로 변하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지. 그런 왜? 설마...”
  왜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식으로 묻던 유한이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 인간을... 언데드로 만들어 달라고?”
  “어.”
  “하지만 언데드로 변한다면 고통도 느끼지 못할 텐데? 혹시 그럼 데스나이트로 만들어달라는 거야?”
  마황자인 유한에게 있어 사람을 언데드화시키는 것은 쉬웠다. 마음만 먹으면 데스나이트로도 만들 수 있었다.
  어쨌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상급 언데드인 데스나이트로 만들어달라는 것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유한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아니, 구울이나 이런 것들.”
  “그런 저급한 놈들로?”
  “괜찮아, 언데드화가 되는 고통만으로도 충분해. 보낼 때는 신성마법 한 번 쓰면 끝이야.”
  “...”
  유현의 말에 유한이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신성마법은 언제 익혔어?”
  그리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는 유한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로드가 언제 또 네놈에게 노려질지 모르니까 9클래스 신성마법을 익히는 것을 허락했어.”
  그 말에 유한의 얼굴이 더욱더 구겨졌다.
  신성마법은 말 그대로 신성력이 깃들어 있는 마법이다 .그리고 보통 신성마법은 고위신관들이 천족들의 힘을 빌려와 사용하는 것이었다.
  즉, 이것은 마족들에게 마력과 마기를 빌려와 사용하는 흑마법과 똑같은 원리였다. 물론 드래곤이 사용하는 흑마법이나 신성마법은 스스로 자신들의 마나를 신성력, 혹은 마기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흑마법이나 신성마법은 드래곤 사회에서 7클래스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예외로 블랙 드래곤의 경우 자신의 능력이 되는 대로 익힐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블랙일족의 마나의 성향이 마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성마법, 흑마법이 7클래스 이상 허락되지 않는 이유는 그 이상 서클을 익힌다면 자칫 잘못하다 마나의 성향이 그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이션트급 드래곤이 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해츨링, 성룡, 윔급 드래곤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은 마나 자체를 잃을 수도 있었다.
  즉, 마족이나 천족화 되어버린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흑마법이나 신성마법을 에이션트급 이하의 드래곤들이 9클래스까지 익히는 것은 엄금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현의 경우 이야기가 달랐다. 유현은 마기와 빙기의 마나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또한 블랙 드래곤화까지 가능했기에 신성력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 로드는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아무튼 백발의 신성력을 풍기는 유현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던 근처 드래곤들의 기대에는 부흥하지 못했다.
  마법을 사용할 때 일부분의 마나는 신성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지만 드래곤 하트의 모든 마나는 신성력으로 전활시킬 수 없었다.
  어쨌든 신성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더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편리해졌다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물론 마족을 사용할 때는 유리하겠지만 유현이 마족과 싸울 일은 거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신성마법을 익혔던 유현은 지금까지 별 쓸모없었떤 신성마법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려고 했다.
  “쳇! 신성마법 따위.”
  유현의 말에 유한이 얼굴을 찡그렸다. 유혀닝 신성마법을 익힌게 마음에 안 드는 유한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투덜거리던 유한이 살후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유현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기에. 그리고 이윽고 눈을 살짝 감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유한의 몸에 꼭꼭 숨겨져 있떤 무시무시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순수한 마기!
  마족들의 다음 황제인 유한의 기운.
  그 무시무시한 기운에 유현과 휘안, 안영은 자신도 모르게 움찍했다. 반면 사인의 몸에서는 그런 유한의 기운에 반응하여 또 하나의 원초적인 파괴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기운에 유한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으며 장난치듯 사인의 기운을 눌러버렸다.
  “크윽.”
  그에 사인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유한이 자신의 기운에 도전한 건방진 사인을 한번 바라본 다음 살후를 바라보았다.
  살후는 유한의 마기에 벌벌 떨고 있었다. 저런 무시무시한 기운은 처음 느껴보는 그였다.
  “끄아아아아악!”
  그러다 결국 유한의 마기에 비명을 지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런 살후를 보며 얼굴을 찡그린 유한이 그대로 그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끄억!”
  유한의 손을 타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기운이 살후에게로 흘러들어갔다. 만약 살후가 현경의 고수만 되었더라도 저 기운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살후는 현경을 직전에 둔 화경의 절정이기는 하나 현경의 고수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대로 살후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살이 썩는 고통을 느끼던 그는 점점 자신의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더 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네, 네놈들은... 인간도 아니... 끄악!”
  그런 살후를 보며 유한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난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야. 그리고 누나 역시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고.”
  하지만 그런 유한의 말은 살후의 비명에 묻히고 말았다.
  아무튼 그렇게 살이 썩은 산송장이 된 살후를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던 유현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샤이닝 파이어.”
  그와 동시에 좀비가 되어버린 살후의 몸을 감싸 안는 하얀 불꽃. 그것은 순식간에 살후를 태워버렸다.
  이윽고 재가 되어버린 살후의 사체를 바라보던 유현이 말했다.
  “돌아가자.”
  유현의 말과 동시에 밝은 빛이 터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졌을 때 그곳에 남은 것은 오로지 하얀 재뿐이었다.
  그 재는 바람에 실려 그대로 흩어져갔다.
    천마교로
  황실 비무대회는 본선 마지막 비무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렸다.
  본선에서 살초가 나와 한 소녀가 죽을 뻔했다.
  그런데 은빛 가면의 신비의 여인이 나타나 그녀를 치료해주었는데 그 소녀를 그렇게 만든 이는 4년 전 죽었던 천마교의 소교주였다.
  이렇듯 온갖 소문이 강호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소문의 주인공이 똘똘 뭉쳐 있는 곳은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 흘렀다.
  사인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소현, 은월, 화린, 월린은 그런 사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화린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월린의 눈빛에는 혼란스러움과 적의가, 소현과 은월의 눈빛에는 명백한 적의가 흘렀다. 그리고 유강월과 월화는 묵묵히 안영과 휘안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기류가 흐르는 곳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중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은발과 백금발.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바로 유현과 유한이었다.
  유현은 혈사인의 옆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고 유한은 유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가면 벗어봐.”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 그런 화린의 말을 들으며 유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직 올 사람이 몇 명 더 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몇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바로 혈겁 살혈, 흑마룡 사무연, 혈천용 혈시현, 검제 모용태현, 검왕 남궁태 그리고 검마 마광천과 악권수조 아해안이었다. 즉, 정사마의 고위인사들이 모두 모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은 들어오는 순간 사인을 보며 흠칫해야 했다. 아무리 봐도 천마교의 소교주 하유현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우리를 여기 부른 이유가 무엇이오?”
  검제가 의아한 듯 자신들을 부른 유현을 보며 물었다.
  “다 알릴 생각이냐?”
  그리고 살혈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런 살혈을 보며 유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 녀석의 정체는 저로써도 생각 못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저 녀석이 제 얼굴을 봤거든요.”
  유현의 말에 살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 해도...”
  “그리고 전 어차피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해요. 그러니 얼굴이 알려진다 해도 상관없어요.”
  그 말에 살혈이 조금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둘의 대화를 이해하는 이는 몇 없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무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안영이 웃으며 말했다.
  “뭐, 이렇다는 거죠.”
  그러고는 가면을 벗자 모두의 시선이 안영에게 향했다.
  안영을 보며 무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오랜만입니다, 무연 님. 아니 이제는 소교주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안영의 얼굴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즉, 천마교에서는 안영의 얼굴을 아는 이가 많지만 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그 말에 무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악안영?”
  그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봤기 때문이다.
  안영은 자신을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짓는 그들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마뇌 악안영이라고 합니다.”
  “마뇌!”
  “분명 죽었다고 들었거늘!”
  “이야~ 이거, 저 정도로 놀라서야 쓰겠습니까?”
  안영은 다시 한 번 빙긋 웃어주며 말하곤 유현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유현에게 향했다.
  “내 소개를 할까? 내 이름은 에이라나.”
  유현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나라는 이름은 들어본 저깅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 현재 이름이지. 그리고 전생의 이름은...”
  그에 다시 입을 연 유현을 보며 모두들 또 한 번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가면을 벗는 그녀의 행동을 주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서히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유현이라고 한다. 천마교의 전 소교주지.”
  그 말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다가 이내 형사인과 그를 번갈아보았다.
  “이, 이게 도대체...”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렇듯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들을 보며 살혈이 입을 열며 자리에 앉았다.
  “정신들 좀 챙기지.”
  그런 살혈을 보며 무연이 말했다.
  “살혈 장로님! 저 여자는 누굽니까”
  “방금 그의 입으로 스스로 말하지 않았나? 유현이라고”
  “유현은 죽었습니다.”
  “다시 환생한 거야.”
  이 때 무연의 말에 휘안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만약 환생했다 해도 아직 네 살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다 큰 여인이 되어 있을 수 있죠?”
  그러자 혈시현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시현을 보며 이번에는 유한이 말했다.
  “흠...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건 내가 설명하지.”
  하지만 이번엔 유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작된 유현의 이야기.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방 안에 있는 이들은 몇몇을 제외하고 모두 멍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그 이상한 대륙에 있다 왔단 말이오?”
  이윽고 검제가 멍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런 검제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그래.”
  “그 말을 우리보고 믿으란 소리요?”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안 믿어도 되니깐. 다만 이것만 알아두라고. 난 하유현이 환생한 몸이며 오대장로들을 죽이러 다시 중원에 왔어, 그러니 내가 뭘 하든 신경 꺼! 어차피 오대장로들 모조리 잡아 죽이고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갈 테니깐. 그건 사파측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거침없는 유현의 말.
  잠시 침묵하던 검제는 살혈을 보며 말했다.
  “천마교의 장로 살겁 살후 장로는 하유현의 환생을 믿으시오?”
  “당연히 믿고 있소, 천마신공을 모두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검술은 분명 유현의 것이었소.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소.”
  그 말에 검제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좋소, 당신이 무엇을 하든 무림에 피해만 입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이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겠소.”
  검제의 말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검마도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요.”
  그런 검제와 검마의 말에 유현이 잠시 놀란 눈빛을 했다. 설마하니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 했던 것이다.
  “대신 질문 하나만 하겠소.”
  “뭔데?”
  “내가 무림맹주로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나의 손자 남궁휘안 때문이오. 휘안은 내가 당신이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당신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소. 당신고 휘안의 관계가 궁금하오.”
  그 말에 유현이 휘안을 바라보자 휘안은 어깨를 으쓱했는데, 아무래도 외할아버지가 자신과 유현을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였다.
  “저 녀석과 난 함께 전쟁터를 헤쳐 나온 친구 사이다.”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쟁터?”
  그에 나머지 이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행방불명된 3년간 저 역시 유현과 안영이 환생한 리샨 대륙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휘안의 파격적인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대륙에 전쟁이 일어난 상황이라 같이 전쟁터에 달려들었지.”
  “아무튼 그 이야기는 나중에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휘안이 검제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검제.
  이번에는 검마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당신은 궁금한 것 없나?”
  “없다. 난 아해안의 말을 믿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해안은 적어도 유현의 사파와 적이 되는 일은 없다고 검마에게 말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말은 더 이상 없다.”
  그에 유현은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그대의 나이는 어떻게 되나?”
  이때 검마가 궁긍하다는 듯 물었다.
  “507세.”
  유현의 말에 모두가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57세도 아니고 507세라는 말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현의 나이는 507세가 맞았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기준으로 있을 수 없는 나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일단 정파와 사파와 적대시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들도 자신을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유현.
  물론 약속이란 것은 깨질 수도 있다지만 그에 어느 정도 안심하는 유현이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을 적대시한다면 앞으로의 일에 상당히 지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두를 돌려보내고 멍하니 달을 구경하는 유현.
  늦은 밤이었기에 그런 유현의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인이 있었다.
  옆에서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사인. 그런 사인을 보며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게 부탁이냐?”
  “그래.”
  유현은 사인에게 자신이 전생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두 말해주었다. 그러자 자신의 말을 모두 들은 사인의 말이 있었다.
  ‘부탁이 있다. 난 어차피 영혼도 없는 빈껍데기. 날 부서뜨려다오.’
  “내가 살아봤자 뭐 하겠는가?”
  그 말에 망설이는 유현을 보며 사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보는 사인의 웃음. 그에 유현이 씁쓸한 표정으로 은아를 뽑았다.
  “너와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군. 넌 이루로 싶은 목적 같은 게 있지 않냐? 다시 생각해봐라.”
  “목적이라면 이루었다. 바로 나의 영혼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그러니 세상에 미련은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사인은 정말 소멸할 생각이었다.
  냉철하며 결단력 있는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존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목적을 이루고 사라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할 이는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하여 유현에게 자신을 소멸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마침내 유현은 사인을 바라보며 검을 들었다. 그리고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은빛 기운이 넘실거리던 은아에 또 하나의 가운이 흘러나왔다.
  바로 칠흑 같은 마기.
  이윽고 마기와 빙기는 꽈배기처럼 꼬여 신비로운 검강을 만들어냈다.
  그런 유현의 검을 보며 빙긋 웃은 사인.
  그에게 다가간 유현이 그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사인의 몸이 점점 얼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잠시 후, 완벽하게 얼음이 된 사인을 보며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보, 죽어서도 웃고 있잖아?”
  사인은 자신을 소멸시켜달라고 했다. 자신은 이미 한 번 죽은 존재이니 말이다.
  하지만 유현은 사인을 죽였다고 표현했다.
  자기 스스로 사인을 산송장이라고 말했었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즉, 자신은 그런 살아 숨 쉬며 생각하는 존재를 죽은 것이다.
  죽어버린 사인을 보며 유현이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었다.
  다음 날, 아침.
  유현의 방에 우르르 몰려든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은월, 소현, 화린 3인방이었다.
  그에 아침에 명상을 하고 있던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냐?”
  “가면 쓰지 마!”
  그 말에 화린이 유현이 쓰고 있는 가면에 손을 가져가자 유현이 손을 피하며 말했다.
  “뭐야, 아침부터?”
  “언니의 정체에 대해 설명 하나도 안 해줬잖아!"
  "뭔 소리야, 어제 다 해줬잖아.“
  유현의 말에 화린이 가슴을 탁탁 치며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
  “언니, 언니가 내 친언니야?”
  그 말에 유현이 픽 웃으며 말했다.
  “너랑 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
  “그게 아니라! 언니의 전생에서 내 친언니였냐고!”
  “으으... 전생에서 난 남자였어!”
  화린의 말에 유현이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움찔하던 화린은 이내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여자잖아!”
  그 말에 유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휴우... 그래, 전생에선 너랑 나랑 피 섞인 남매였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그렇게 말한 유현은 어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한 사인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순간 자신의 품으로 돌진해오는 화린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뭐, 뭐야! 왜 이래?”
  하지만 유현이 당황하든 말든 화린은 신경 쓰지 않고 유현의 품에 안길 뿐이었다. 그리고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너무해.”
  “뭐가 너무하냐?”
  그런 화린을 보며 한숨을 푹 쉰 유현이 물었다.
  “왜 여태껏 아무 말 안 했어?”
  그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유현이 입을 열었다.
  “말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야.”
  그렇게 말한 유현이 화린을 떼어내며 말을 이었다.
  “난 네 부모님에게 그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때문에 만약 너라는 녀석이 없었다며 너희 부모님은 벌써 내 손에 죽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잖아?”
  “지금은 없지. 하지만 너희 부모님께 좋은 감정이 있진 않아.”
  그 말에 화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은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는 화린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잘 들어라, 화린아. 나란 존재를 정말 친언니처럼 생각하고 행동해봤자 나중에 너만 힘들어진다.”
  “...왜?”
  “너와 난 살아가는 세계가 달라. 난 언젠가 중원 무림을 떠나야 해, 나의 가족이 있는 곳, 나의 고향으로. 그러니 나와 가까워져봤자 너만 슬퍼질 뿐이야. 내 말 알아듣겠지?”
  그 말에 화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넌 너의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
  그 말에 화린이 굳어버렸다.
  “시, 싫어!”
  “휴우... 내가 이제부터 갈 곳은 천마교야. 나랑 같이 움직여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
  그렇게 말한 유현은 은월과 소현을 보며 말했다.
  “그건 너희 둘도 마찬가지야.”
  그 말에 은월과 소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싫다.”
  “당신의 정체를 이미 사부님은 알고 있어. 지금 돌아가 봤자 신나게 얻어터질 뿐이야.”
  “난 언니를 쭉! 계속 따라다닐 거라고!”
  “내가 한 말 못 들었냐? 난 나중에 돌아간다니깐. 너만 힘들어져!”
  “그건 그때 가서 슬퍼하면 되는 거야! 지금은 언니랑 같이 있고 싶어.”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는 유현.
  바로 이때 유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어때, 같이 가자.”
  유한의 말과 함께 휘안도 말했다.
  “뭐 어떠냐, 나도 가는데. 화린이 말이 틀리진 않았지, 그건 그때 가서 슬퍼해도 되는 일이다. 어차피 지금 슬퍼하나 나중에 슬퍼하나 그게 그거잖아?”
  “넌 왜 가? 검제와 검왕이 허락하던?”
  “내기를 했거든.”
  “내기?”
  “어, 할아버지들을 꺾으면 보내달라고.”
  “그래서, 꺾었다?”
  그 말에 휘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안 보내주신다는데 어쩔 수 있냐?”
  “왠지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유현 자신은 모르겠으나 휘안 역시 실력을 보였다.
  “이렇게 된 거 신나게 무림 한번 휘저어보자고!"
  이때 뒤이어 힘차게 말하는 유한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휘안이 막 나가는 것도 골 아프다. 그러니 제발 막 나가는 소리 좀 하지마라.”
  그 말에 유한이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은월, 소현, 화린 역시 천마교로 같이 가기로 결정이 나버렸다.
  그렇게 갈 인원이 정해지자 유현은 비무대회에서 기권해버렸다. 그리고 비무대회가 끝날 때까지 잠적해버렸다.
  물론 그 장소를 유한과 휘안, 안영은 알고 있었지만 그밖에 다른 이들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화린은 유현이 떠나버린 건 아닌지 불안해했으며 그런 화린을 달래준다고 유한은 골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무연 역시 유현에게 궁금증을 풀기도 전에 유현이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지자 유현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유현과 함께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강월과 월화였다.
  잠시 볼일이 있다며 사라진 두 사람 때문에 월린 역시 걱정하기 시작했고 화린은 유현과 부모님 걱정에 더욱 심란해져버렸다.
  한편 다른 이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현은 그저 산속 어느 동굴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면까지 벗은 유현의 얼굴은 심각했다. 유현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살후를 죽였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사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기에 심란한 생태였다.
  그것이 사인의 부탁이기는 했으나 계속해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화린들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특히 화린이는 자신의 가족들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소현도 마찬가지였다.
  늘 자신의 곁에 있던 소현을 생각하며 유현은 한숨이 절로 나왔고, 이 녀석을 떼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계속해서 들었다.
  자신을 이성이라 생각했다면 옛날 옛적에 떼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자신을 그저 편안한 사람 대하듯 했다. 늘 자신 곁에만 있는 소현을 보며 느낀 점은 그것이었다.
  늘 툴툴거렸지만 자신의 옆에서 마치 유현이 부모님인 듯 행동하는 그 행동을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푹 나오는 유현이었다.
  아무튼 이곳에 온 목표가 있는 만큼 나머지 장로들도 죽이고 떠날 생각인 유현이었다.
  일행과 잠시 떨어져 있는 이유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고 말이다.
  아무튼 한숨을 푹 쉰 유현은 다시 명상에 들어갔다.
  비무대회의 우승은 휘안이 차지했다. 유현이 기권해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휘안은 잠시 여행을 간다는 말을 동생들에게 전하고 그대로 일행과 함께 천마교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휘안이 천마교로 가는 것 자체가 비밀이며 그저 여행을 한다고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상태였기에 그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유현이는 어디 있지?”
  휘안이 오자마자 유현의 행방을 묻는 무연을 보며 휘안은 유현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몰라, 대회 끝나고 온다고 했으니 좀 있으면 올 거야.”
  그런 무연의 말에 대답한 것은 휘안이 아니라 유한이었는데 유한은 조금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유한을 보며 무연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저 녀석 이름이 왜 하유한이지?”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유한이었다.
  “누나의 전생과 비슷한 이름을 내가 지었다.”
  그 말에 무연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다. 당신이 내가 이름을 어떻게 짓든 무슨 상관이야?”
  이것이 유한과 무연의 신경전의 시작이었다.
  “뭐야?”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이상기류에 유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어둡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모이기로 한 곳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어두운 것을 느낀 유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왔습니까?”
  그런 유현을 보며 안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야, 분위기가 왜 이래?”
  “유한 님과 무연 님이 신경전을 벌이고 계시거든요.”
  "신경전?“
  그 말에 유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 꽤 심각합니다.”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심각해봤자 얼마나 심각하겠냐?”
  그렇게 말한 유현이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유현은 말 그대로 어이없음을 느껴야 했다.
  서로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보는 유한과 무연. 그런 그들에게서는 살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휘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뭐야, 이건?”
  하지만 살기는 유현의 목소리와 함께 뚝 끊겼다.
  방 안에는 휘안, 유한, 무연, 안영만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뿌려대는 살기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그 방을 떠나버렸다.
  즉, 그 살기에 버틸 수 있는 이들만 남았는데, 그들이 바로 살기를 뿌리는 당사자들과 휘안과 안영이었다.
  아무튼 무연은 못마땅한 눈으로 계속 유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유한은 그런 무연을 싹 무시하고 활짝 웃으며 유현에게 다가갔다.
  “누나!”
  방금 전까지 날카로운 눈으로 무연에게 살기를 뿌렸다고 생각 할 수 없는 모습.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무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넌 평소에 잘 내뿜지도 않는 기세를 뿜어대냐?”
  유현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유한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 인간 마음에 안 들어.”
  그 말에 무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도 유한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유한을 보며 유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죽이면 화낼 거지?”
  그러다 유한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얼굴을 굳혔고, 동시에 무연의 진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구나.”
  “난 마음에 안 드는 걸 가만히 내버려둘 정도로 착하지 못하거든. 누나만 아니었음 당신은 벌써 내 속에 죽었어.”
  무연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피어오름에도 불구하고 유한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유한을 보며 얼굴을 사정없이 구긴 무연. 그리고 막 손으로 검을 가져가는 그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무연 형, 그만 해.”
  그 말에 움찔하는 무연.
  “유한, 너도 그만 해.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
  “쳇! 저 인간 마음에 안 들어.”
  “나랑 평생 상종도 안 하고 살 거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그 말에 유한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유한을 뒤로하며 유현이 무연을 보며 말했다.
  “형도 그만 해.”
  그 말에 묘한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던 무연이 그의 가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가면은 벗겼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던 유현은 순간 무연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네가... 정말 유현이가 맞는 건가? 유현이는 죽었는데... 정말 환생한 게 맞나? 믿기지가 않는군.”
  그 말에 유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안영과 같은 말을 하는구나. 난 죽었지만 다시 살아 돌아왔어. 내 존재를 부정해도 난 할 말은 없어, 난 더 이상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세계의 존재니깐. 하지만 나보고 가족이라고 말했던 건 내가 아니라 형이야.”
  그 말에 무연이 침묵하다 이내 유현을 안았다. 그 행동에 유한이 반발하려고 했지만 그런 그를 휘안과 안영이 말렸다.
  “보고... 싶었다.”
  무연의 울음기 섞인 말에 유현이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무연은 한참 동안 유현을 안고 놔주지 않았다. 그에 유현은 그를 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떨어지는 게 어때?”
  “흐음... 정말 여자잖아?”
  그러다 다음에 이어진 무연의 목소리와 행동에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퍽!
  “커억!”
  유현의 주먹이 무연의 배에 틀어박히자 무연이 배를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죽고 싶어?”
  이윽고 유현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야, 왜 그래?”
  그런 유현을 보며 휘안이 좀 당황하며 말했다. 감동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무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다음에 유현이 살기를 뿌려대는 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 변태 새끼가 누나의 몸을 더듬었어!”
  그러나 무연의 행동을 모두 보았던 유한은 으르렁거리며 무연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몸에서는 진득한 마기까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런 유한은 신경 쓰지 않고 그가 한 말에만 신경이 가 있었다.
  ‘저 변태 새끼가 누나의 몸을 더듬었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난 유현이 정말로 여자가 되었는지 확인해봤을 뿐이야.”
  하지만 무연은 예전의 그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현의 살기를 유발하는 행동이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작은 소동이 일어났지만 유현이 사용한 마법으로 인해 그 방이 폭발하며 소동은 끝이 났다.
  물론 무연이 신나게 유현에게 얻어터져 눈에 멍을 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저런 소동이 있은 후 정말로 출발할 때가 다가왔다.
  짐을 모두 챙기고 신강의 십만대산으로 떠나갈 준비를 끝낸 유현에게 두 사람이 다가왔다. 하지만 썩 반가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유현을 보며 월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 들었던 그의 충격적인 말 때문이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자신이 옛날에 버렸던 아들의 환생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월화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강월이 입을 열었다.
  “화린이를 잘 부탁하오. 이 말을 전하러 왔소.”
  그 말에 유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딴 말 할 거면 꺼져.”
  그리고 다시 갈 준비를 하는 유현을 보며 월화가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 말에 월화의 말에 유현이 월화를 돌아보았다.
  “내게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유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월화가 나직이 말했다.
  “그냥 모든 것이 미안해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월화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당신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깐. 처음에는 그저 당신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화린 때문에 그것도 물 건너가 버렸으니 당신들에게 이젠 아무런 감정이 없어.”
  “..."
  그 말에 월화가 고개를 숙이자 유현이 말을 이었다.
  “뭐, 당신들이 날 버려서 혈사 아저씨도 만나고 무연 형과 안영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 그리고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났고. 이런 점에서는 감사해.”
  그 말에 월화는 가슴속에서 슬픔이 치밀어 올라 눈물이 흘러 나왔다. 버려줘서 고맙다니.
  “아, 그리고 화린이는 걱정 말고. 그럼 이제 당신들과는 다시는 볼 일 없을 거야. 그럼 이만.”
  눈물을 흘리는 월화를 보며 유현은 무감정하게 말하고는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두고 사라졌다.
  그런 유현의 뒷모습에 월화는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왜 버렸는가. 너무도 사랑했던 아들을 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다시 아들을 찾아 나섰던 자신의 어리석음. 그때 왜 아들을 버렸는지 후회가 들 뿐이었다.
  그런 아들이 천마교의 소교주가 되었으며 죽어 환생해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수많은 저주의 말을 한다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하는 말은 버려줘서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너무도 슬픈 월화였다.
  그것은 강월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평생 이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남들에게 동정조차 살 수 없는 몸들이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다만 무연이 계속해서 유현에게 집적대는 것과, 그로 인한 유현의 폭발과 유한의 살기가 문제라고 할까?
  유현이 계속해서 폭발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너무도 많이 폭발하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현의 살기는 정말 대책이 없었다.
  유한은 마계의 마황자다. 때문에 힘으로만 따진다면 유현보다 더욱 강한 게 유한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심사가 뒤틀린 상태로 살기를 뿌리니 그것은 가히 가공적인 살기가 외었던 것이다.
  아무튼 유한이 살기를 뿌릴 때면 근처 사람들까지 괴로워하니 참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몇몇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일행은 아무 탈 없이 신강의 십만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도 오랜만이구나.”
  “그렇군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유현과 안영이 십만대산을 보며 말했다. 안영은 수십 년 만에 십만대산을 보는 것이었고 유현은 수백 년 만에 십만대산을 보는 것이었다.
  이렇듯 시간은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그리운 곳이었던 것만은 같았다.
  그렇게 십만대산을 바라보던 유현의 머릿속으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이곳에 그 사람이 있어.
  바로 천의 목소리였다.
  ‘그 사람? 그게 누군데?’
  갑작스러운 천의 말에 유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천마. 천마가 이 십만대산이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천마가?”
  천의 말에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응? 천마라니,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유한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천마라고 하면 천마대제를 말하는 건가?”
  소현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천마교의 시조이신 찬마대제를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유현 님, 갑작스럽게 왜 그분을 거론하신 겁니까?”
  안영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유현이 말했다.
  “천이 말하기를, 천마가 십만대산 가장 끝 봉오리인 천마봉에 있다는데?”
  십만대산에서 가장 높은 곳을 천마교인들은 천마봉이라 칭하는데, 천마교에서도 성지로 통하는 곳으로 자그마한 호수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호수 가운데에는 천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아무튼 그 말에 소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대제라고 하면 1,000년 전 사람이잖아?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고? 그리고 천이 누군데?”
  그 의견은 안영과 휘안, 유한을 제외한 모두가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천 님이 말씀하셨다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때 소현의 물음과는 거리가 먼 안영의 말이 나오자 유현, 유한, 휘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네 사람을 보며 나머지 일행은 어이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십만대산에 도착한 일행은 십만대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십만대산 깊숙한 곳에 천마교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천마교 안으로 들어가려면 비밀 문을 지나야 하는데 그 비밀 문은 총 다섯 개였다.
  그런데 그 비밀 문마다 수많은 진법과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 외부인들은 감히 천마교 안으로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비밀 문의 장소는 늘 바뀌었고 그곳에 이용되는 진법이나 기관도 늘 바뀌었다. 그렇기에 천마교는 1,000년의 역사를 유지하며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아무튼 비밀 문을 찾은 그들은 조심스럽게 이동하며 천마교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진법이나 기관이 발동된다고 해도 안영이 있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천마교에 도착했다.
    다시 만난 천마
  천마교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바로 외부인이 천마교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행 전부가 소마각에 있는 손님방에서 생활한다는 것에 또 모두들 경악했다.
  소마각은 컸다. 거기다 그곳에 손님방 몇 개를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많은 천마교인들이 그들의 정체에 궁금증을 표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마각 안에서만 생활했기에 천마교인들은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어느 방 안. 그곳에 은발을 가진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진 듯, 죽은 듯이 잠만 자던 여인의 얼굴이 순간 꿈틀한다.
  “유현아~ 오라비가 왔다, 이 오라비와 뜨거운 밤을 보내자꾸나.”
  아직 깊은 밤이었다. 그런 깊은 밤에 여인의 방에 흑발에 잘생긴 한 미남자가 침입했다.
  퍼억!
  하지만 남자는 여인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뭔가에 부딪혔다.
  “끄악! 이게 뭐야?”
  바로 투명한 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눈을 크게 떴을 것이다. 이상한 투명한 벽이 남자의 덮침(?)에서 여자를 보호(?)하다니, 놀라운 수법이었다. 물론 이것은 중원 무림의 수법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남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여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 좀 자자! 왜 계속 못 자게 방해질이야!”
  바로 유현이었다. 그리고 유현을 덮친 남자는 무연이었고 말이다.
  유현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무연이 말했다.
  “내가 옛날부터 말했지? 네가 여자가 되면 꼭 나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개소리 하지 말고 제발 좀 꺼져!”
  그러자 유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듯 한반중에 큰 소란이 일어나자 모두가 잠에서 깼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가장 먼저 일어난 소현이 부스스한 눈으로 유현의 방에 들어오며 말했다.
  “잠 좀 자자.”
  그 뒤로 휘안과 유한, 은월, 화린이 들어왔다.
  “천마교에 와서 좀 잠잠하다 싶더니 뭐야?”
  천마교에 들어오고 이틀이 지나는 동안 무연은 좀 잠잠하게 생활했다.
  그런데 오늘밤 결국 무연이 유현의 방에 몰래 침입(?)한 것이었다. 아니, 몰래가 아니라 당당하게 소리치며 들어왔다.
  아무튼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무연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당신, 정신 나갔어? 왜 싫다는 사람한테 계속 집적거려?”
  유한이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무연이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방금 전까지 장난기 넘치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다시 시작되는 두 사람의 기세 싸움.
  “왜 남의 방에 와서 지랄이야? 둘 다 안 꺼지면 오늘 소마각 무너지는 꼴을 봐야 할 거야.”
  으르렁거리는 유현을 보며 휘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자, 남이 잠자는 거 방해하지 말고 나가자.”
  그렇게 말한 휘안은 두 사람을 끌고 나갔다. 때문에 방 안에는 유현과 소현, 은월, 화린만이 남은 상태였다.
  “너희들도 자러 가라.”
  그에 유현이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헤헤... 나 여기서 자면 안 돼?”
  그러자 화린이 웃으며 말했다.
  화린 역시 가면을 벗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에 처음에 화린의 얼굴을 보고 놀란 무연이었다. 하지만 휘안의 설명을 듣고 지금은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화린을 대하고 있었다.
  무연에게 있어 하유현의 친동생인 그녀에게는 좋은 감정이 별로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유현을 보렸다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화린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린은 그들의 딸이었기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튼 화린의 모습에 유현이 한숨을 쉬었다.
  강월과 월화를 만난 순간부터 화린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였다. 물론 그 거리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예전만큼 회복되지는 못했다.
  유현이 뜸을 들이고 있자 이윽고 화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 말 없는 것은 긍정이지?”
  “어? 야야야!”
  그렇게 말한 화린이 웃으며 유현의 침대에 드러눕자 한숨을 푹 쉰 유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소현과 은월에게 말했다.
  “너희도 그만 자라.”
  그러고는 방문을 닫으며 화린을 보며 말했다.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왜 남의 침대에 기어 들어오냐?”
  “헤헤헤... 뭐 어때? 내가 언제 허락 맞고 언니 침대에 기어 들어갔나?”
  그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난 후라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그런 그가 화린을 돌아보자 화린 역시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 자냐?”
  유현의 말에 화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잠이 안 오네. 언니 이야기해줘, 그럼 잠이 올 것 같아.”
  “들을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 들으려고 하냐?”
  “에이~ 궁금하잖아?”
  유현은 자신 계속해서 조르는 화린을 보며 피식 웃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 해줄게. 무슨 이야기부터 해줄까?”
  “에... 그러니까... 언니의 가족?”
  물어볼 것을 생각하던 화린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유현에게 말하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가족이라... 누구 이야기부터 해줄까?”
  “언니의 엄마.”
  “우리 엄마라... 우리 엄마는 말이야.”
  그때부터 유현의 말이 시작되었고 화린은 그런 유현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럼 언니의 엄마는 언니보다 더 강해? 훨씬?”
  그렇게 한참 동안 유현의 말을 듣고 있던 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자신이 아는 유현은 무지무지하게 강하다. 그런 유현보다 더 강한 이가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 그러니깐 어릴 때 맞고 자랐지.”
  ‘500년 동안 참 많이도 맞았지.’
  뒷말은 삼키는 유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유현의 말을 화린은 눈을 반짝이며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러다 어느덧 유현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화린은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현은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천마교의 소교주 하유현이었을 때 쓰던 방.
  처음, 즉 다시 돌아왔을 때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던 방이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생각해보면 실버일족의 성룡 에이라나로서는 이곳에 처음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너무 빠져들었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유현이었다. 그저 전생의 일일 뿐인데...
  생각해보면 중원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이었다. 즉, 일이 끝나면 떠나야 할 곳이 중원이었다.
  그러헥 생각하던 유현은 문득 중원에 있는 이들이 생각났다.
  혈사, 무연, 휘안, 안영... 그리고 너무도 친해져버린 은월, 소현, 화린. 이들은 자신과 같이 리샨으로 갈 수 없다.
  휘안의 고향은 중원 무림이다. 그리고 안영은 환생하기는 했으나 자신과는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다. 때문에 그들은 같이 리샨으로 가는 것보다 중원에 남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때문에 이들고 언젠가는 이별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슬플지도...’
  유현은 쓰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자신과는 살아가는 세계와 시간이 다르다.
  ‘너무 지쳤어... 돌아간다면 수면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인간들에게는 긴 시간이고 드래곤들에게는 짧은 시간이다. 아니, 성룡이 된 다음의 일. 그 일이 벌어질 동안의 시간은 어쩌면 인간들에게도 짧았을지 모른다.
  그 짧은 시간동안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한 번도 쉬지 않은 유현.
  왠지 몸이 피곤해지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유현은 만약 돌아간다면 수면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다음 날, 천마전에 천마교 장로들이 모여들었다.
  마뇌는 물론이고 장로들과 원로원의 태상장로들과 태상교주까지 얼굴을 비추었는데, 교주 사혈사가 소집한 것이었다.
  “교주는 왜 잘 쉬고 있는 늙은이들을 소집하시오?”
  살혈의 아버지가 되는 살천 태상장로가 교주를 보며 못마땅한 눈으로 말하자, 살혀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버지, 이걸 보십시오.”
  “엥? 뭐냐, 그 낡아빠진 검은? 왜 그런 걸 나한테 보여줘? 설마 그것을 보여주려고 나를 부른 건 아니겠지, 건방진 아들?”
  “맞습니다.”
  그 말에 살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저런 칼을 보여주려고 자신들을 불렀다는 말인가!
  “뭐얏! 날 무시하는 거냐? 동삼 처먹고 어려졌다고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뭐야!”
  동삼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 것일까?
  “그렇게 좋은 건 아비를 줘야지, 지가 처먹고! 저런 불효자식!”
  그 말에 살혈이 한숨을 푹 쉬었다. 늙을수록 인자해져야 하는 것인데 늙을수록 속만 좁아지는 저 인간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제가 이런 효능이 있는 줄 알고 먹었겠습니까? 아무튼 제발 이 검을 보십시오.”
  “이런 썩을 놈, 이 아비를 무시하는 거냐? 아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켜서 감히 교를 배신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그 말에 살혈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리고 시작된 두 부자의 기세 싸움. 하지만 이내 그 기세 싸움을 끝낸 것은 한 소녀였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그만들 싸우셔요.”
  화린 또래의 소녀의 말에 두 사람이 멈칫했다.
  “네놈, 귀여운 증손녀 때문에 오늘 산 줄 알아라.”
  이름 살예린, 나이 19살. 천마교 오대장로 살혈의 손자로 다음 장로가 될 여인이었다. 성격이 당차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이 문제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살예린은 살혈과 살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내 살혈은 살천을 보며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그에게 낡은 검을 내밀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에잉~ 그 낡은 칼이 뭐기에 계속 보라 마라야!”
  하지만 예린 덕분에 거절하지는 않고 그 검을 잡았다.
  그리고... 검면에 적힌 글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검은 바로 살강의 애검인 마천검이었다!
  “뒤를 한번 보세요.”
  그러다 살혈의 말을 검의 반대 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마천검을 바라보던 살천이 말했다.
  “누구냐?”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누구냐, 이 검을 들고 온 사람이?”
  “곧 있으면 올 겁니다.”
  살혈의 대답에 살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마천검을 바라보았다.
  “이거... 확실하냐?”
  “아마도 확실할 겁니다.”
  그 말에 살천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도 황당해...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거냐?”
  “그 녀석을 본다면 확실하다는 확신이 드실 겁니다.”
  그 말에 살천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마천검을 쳐다보았다.
  “그 검이 도대체 어떻기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오?”
  이때 마천도 귀사의 후예이자 살혈과 같은 대의 장로인 현천도제 귀비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마천도의 후예라 도를 사용하는 그의 명호 뒤에 도제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도의 고수였는데, 도제 팽가위도 그의 도법 앞에서는 힘겹다 말할 정도로 그의 도법은 대단했다.
  아무튼 귀비환의 말에 살혈이 대답했다.
  “우리 살가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서.”
  살혈의 말에 귀비환이 살혈을 보며 물었다.
  “음... 도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그렇게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교주 사혈사만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때 예린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살천에게 말했다.
  “증조할아버지, 그 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러세요?”
  그러자 살혈이 말했다.
  “예린이 역시 살가의 사람이고 다음 대 장로입니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살천이 예린이에게 검을 내밀자 검을 조심그럽게 받은 예린은 검을 살펴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살천과 같은 반응이었다.
  “이게 대체...”
  “처음에 나도 그것을 보고 많이 황당했단다.”
  예린을 보며 살혈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살가의 세 사람의 반응을 본 나머지 이들의 얼굴에 더욱더 호기심이 흘러나왔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던 태상장로 살천이 당황한 것도 그렇고, 살가에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에도 호기심이 갔다.
  아무튼 모두가 그렇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회의장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중 두 사람은 눈에 확 띄는 은발과 백금발을 가지고 있는 색목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들은 천마교의 소교주 무연이었다.
  그런 무연을 보며 예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예린은 무연을 사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들어온 무연이 혈사를 보며 말했다.
  “제가 늦은 건가요?”
  “조금 늦었구나.”
  그러자 무연을 보며 혈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귀비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보다 소교주, 소교주 말고 다른 세 사람은 누굽니까? 보아하니 이번에 소교주께서 데려오신 교의 손님 같은데.”
  현천도제 귀비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무연의 뒤를 따라오는 세 명에게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무연을 따라 들어온 이는 유현, 유한, 안영이었다. 유한은 무연과 유현이 같이 있는 것이 배얄이 꼬여 따라온 것이다.
  그에 처음에는 무연이 반대했다. 교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서 외부인이 끼어든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무연의 반대는 유현에 의해 결국 허락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녀석들도 따라오려고 했다(은월, 소현, 화린). 하지만 와 봤자 좋을 게 하나 없기에 휘안에게 세 사람을 부탁하고 온 유현이었다. 현경 급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이라 그들을 데려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이 한때 천마교를 이끌어갔던 사람들이다. 즉, 하나하나 은연중 마기까지 풍겨대기에 와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유한은 마황자다. 그런 그가 이런 마기에 눈 하나 까딱할 리 없었다. 오히려 들어서자마자 풍겨지는 마기에 휘파람을 한번 불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강력한 마기가 느껴지니 오히려 기분이 좋은 유한이었다.
  아무튼 현천도제의 말에 안영과 유현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현재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라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여~ 이거 원로원 분들 오랜만입니다. 장로님들도 마찬가지고요. 교주님, 그동안 아무 일 없었습니까?”
  태연하게 자신을 알고 있다는 듯 반갑게 웃으며 말하는 안영의 태도에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일었다. 저런 이는 자신들은 물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장로들에게 인사하던 안영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바로 전생의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재 자신이 죽고 난 뒤 다시 마뇌의 자리에 오른 악만소였다.
  악만소는 안영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만소를 향해 안영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날 아냐?”
  안영의 말에 악만소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안영이 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알지요, 왜 모르겠습니까?”
  악만소는 왠지 그 말투가 자신의 아들과 겹쳐 보이는 것에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난 너 같은 놈을 모른다.”
  악만소의 말에 안영이 슬프다는 듯 말했다.
  “이런, 슬프군요. 당신은 절 알아봐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안영이 빙그레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도 저의 정체를 알아보시는 분이 없군요. 이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 더욱더 의문이 생겨났다.
  이때 유현이 시간을 질질 끄는 안영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닥치고 가면 벗어.”
  그 말에 안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정말 슬프군요.”
  그러고는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얼굴.
  그에 모두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가면 뒤에 드러난 얼굴은 자신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
  “말도 안 돼.”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안영을 바라보자, 안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뇌 악안영이 장로님들과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런 안영을 보며 악만소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안영이라는 증거를 대보아라.”
  그 말에 안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떤 증거를 대보일까요?”
  “악안영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겠다.”
  “좋습니다, 어디 한번 질문을 해보십시오.”
  너무도 당당한 안영을 보며 악만소가 몇 개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질문에 안영이 하나하나 대답했다.
  “음... 그게 아니죠, 그때 아버지가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몇 개의 유도질문에도 안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모든 질문을 끝낸 악만소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안영이 맞구나.”
  “후후후, 왜 의심을 하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악만소의 말과 함께 회의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죽은 줄 알았던 마뇌 악안영이 살아 있다니! 분명히 시체를 보았거늘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궁금증은 악만소 역시 마찬가인 듯 의아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내 분명 네가 죽은 것을 보았거늘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냐?”
  그런 악만소를 보며 안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설명하자면 복잡하죠, 그러니 음, 환생했다고 알아두십시오.”
  그 말에 악만소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죽고 몇 년이 되었다고 그렇게 다 큰 어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느냐.”
  “이곳과 시간의 흐름이 다른 곳에서 태어났거든요.”
  “시간의 흐름이 다른 곳?”
  “그렇죠.”
  마법이 존재하고 인간 외에 다른 이종족이 존재하는 세상. 몬스터가 있으며 드래곤이 있고 신이 다스리는 세상, 리샨 대륙. 그곳은 바로 안영이 태어난 곳이었다.
  아무튼 안영의 말에 악만소가 얼굴을 찡그리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예린은 무연의 뒤에 있는 유현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린은 처음 보는 여자가 사모하는 남자 뒤에 서 있는 것이 싫었다.
  그 여자를 바라보는 무연의 표정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자신에게 대하는 사무적인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그렇게 예린은 무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낀 살천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소교주의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그 말에 안영으로 인해 혼란스럽게 변했던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유현에게 향했다.
  그 시선에 유현이 안영에게 턱짓을 했다. 안영이 설명하라는 소리였다.
  그런 유현을 보며 안영이 웃으며 말했다.
  “에... 그러니깐 저분은...”
  “마뇌도 환생해서 돌아왔으니 설마하니 전 소교주 하유현도 환생해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때 마천장 참성의 후예이자 자신의 손자에게 장로 자리를 물려준 참하만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농담이 바로 정답이었다.
  “얼래? 전 예측도 하지 못하시더니 유현 님은 아시는군요.”
  안영의 말에 다시 한 번 회의장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유현에게 향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유현이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장로들 그리고 혈사 아저씨.”
  그렇게 말하는 유현의 얼굴을 보며 모두가 경악했다.
  침묵이 감도는 회의장.
  “혈교 측에서 유현 전 소교주의 시신으로 강시를 만들었다던데, 혹 그 강시는 아닌지?”
  “사인이라면 제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마혈권 한마성의 말에 유현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한마성은 입을 다물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전 소교주 유현이라면 저 아름다운 얼굴에서 얼마나 심한 욕설과 막말이 나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한마성이었다. 자신이 가장 많이 당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유현의 말에 회의장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회의장의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혈사가 웃으며 말했다.
  “자, 일단 유현에 대한 것은 나중에 확인하도록 하고, 일단 그가 우리 천마교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물건을 가져왔다고 하니 한번 봅시다.”
  그 말에 태상교주 사마련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 여아가 정말 전 소교주 하유현이 맞는가?”
  “가르치치도 않은 천마신공을 모두 익히고 있으며 얼굴도 그렇고 말투도 보면 유현이 확실합니다. 이미 확인했으니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에 혈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자 슬쩍 얼굴을 찌푸린 사마련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에 유현 역시 사마련을 바라보자 사마련은 유현의 눈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흠칫했다.
  흉포하고 잔인한 기운.
  금방이라고 저 눈 속에서 튀어나와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은 기운에 사마련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유현의 맑은 눈에 가려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자신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끼며 사마련이 말했다.
  “정말 괴물이로군.”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유현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런 사마련의 시선을 느끼며 유현 역시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사마련의 시선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사마련의 시선을 무시한 유현은 역시나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는 혈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혈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 전해줄 물건이 무엇이냐?”
  “혈사 아저씨도 살혈 아저씨가 들고 있는 검을 보셨죠?”
  “그래.”
  “그럼 그 검이 어떤 검인지도 아시겠군요?”
  “천마교 초대 장로 중 한 사람인 살강의 마천검이더구나.”
  그 말에 마천검을 바라보던 살가의 사람들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1,000년 전 천마대체의 심복이었던 살강의 검이라니!
  이윽고 모두의 시선이 혈사가 들고 있는 마천검으로 향했다. 그러다 다시 유현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유현이 말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1,000년 전 천마대제와 함께 행방불명되었던 이들이오! 그런 그분들의 유품을 어째서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이오?”
  이때 태상장로 참사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참사를 보며 유현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유한이 끼어들었다.
  “그들의 유품을 누나가 가지고 있는 이유는 누나가 그들을 직접 만났기 때문이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유한에게 향했다.
  “어디서 거짓말이냐! 1,000년 전 사람이 어떻게 살아 있다는 것이냐!”
  “정확히 말하자면 데스나이트가 된 그들을 만났지만.”
  “뭐? 데스 뭐?”
  그러다 뒤에 이어진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한이 막 데스나이트에 대해 설명하려고 할 때 안영이 유한을 말렸다.
  “유한 님, 중원에서는 강시라는 개념은 있어도 데스나이트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때문에 말 잘못 꺼냈다가는 장로님들의 분노만 살 것입니다.”
  그 말에 유한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런 유한을 바라보던 유현이 장롣르에게 말했다.
  “뭐, 살혈 아저씨는 내 말을 믿고 저 검을 마천검 살강의 검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이공간을 열어 창, 도, 권갑, 장갑을 꺼내 장로들에게 남겼다.
  그것들은 바로 초대 장로들의 무구였는데, 중원에서는 1,000년이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9,000년을 버텨온 물건들이었다.
  그 무구들은 영구화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나, 하나같이 마천검처럼 낡아 있었다.
  아무튼 자신이 건네준 무구들을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장로들을 바라보던 유현은 문득 자신과 인사하던 초대 장로들이 생각났다.
  중원에 돌아가지 못하고 슬픈 표정을 짓던 그들.
  하지만 천마라도 중원에 돌아간 것을 기뻐하던 그들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씁쓸해지는유현이었다.
  유현이 건네준 무구를 오랫동안 잡고 생각과 고민을 거듭하던 그들은 결국 그 무구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것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천마교에 남아 있는 온갖 자료들을 총동원하여 알아낸 초대 장로들이 사용했던 무구들의 모습과 유현이 건네준 무구들의 모습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1,000년이라는 세월 만에 자신들의 품으로 돌아온 그들의 무구를 보며 장로들은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은 이윽고 회의장에 모여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현과 유한, 안영은 소마각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무연 역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혈사에게 잡혀 외의에 참석했다. 물론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말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악!
  유현이 천마각으로 돌아오자마자 정체 모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비명소리에 유현에게 다가오던 휘안과 은월, 소현, 화린이 흠칫했다. 물론 휘안 역시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면 유현은 그 비명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곤 자신의 손등을 보며 말했다.
  “왜 갑자기 소리 지르고 난리야?”
  그의 손등에 있는 검붉은 문신이 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자 은월, 소현, 화린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아까부터 그 기운이 점점 커지고 있단 말이야!
  유현의 말에 천이 칭얼거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구만.”
  그런 천을 보며 유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건 주인이 아직 어려서 그래, 옆에 있는 마황자 꼬마를 봐.
  천의 말에 유한을 돌아보던 유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한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었던 것이다.
  “야, 괜찮냐?”
  “괜찮아, 그런데... 우웩!”
  그렇게 괜찮다고 대답하던 유한이 갑자기 토악질을 했고 이윽고 유한의 입에서 나온 것은 피였다.
  “뭐냐, 이거?”
  유현이 그런 유한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정말 저번에 보았던 천마는 영혼의 조각이었던 거야. 무슨 이런 괴물같은...”
  그러자 유한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자신의 아버지인 마황보다 더 무시무시한 기운이 아닌가.
  저번에 봤을 때는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정도였던 천마의 기운이 조금 전부터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천마교 전체가 서서히 천마의 기운에 잠식당하며 그대로 자신을 압박하는 게 아닌가?
  물론 그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낀 것은 자신과 천마도의 천이 전부인 듯했지만 분명히 천마의 기운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튼 유한은 빠르게 자신의기운을 끌어올려 천마의 기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한이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가 유현이 물었다.
  “괜찮아졌냐?”
  “휴우... 괜찮아졌어.”
  유현의 물음에 유한이 한숨을 푹 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매일 이런 기운에 한 번씩 잠식당하는 것 같은데?”
  그런 유한의 말에 천이 대답했다.
  -맞아, 천마가 자신의 기운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의 기운을 조금 밖으로 내뿜었었거든. 에이션트급 드래곤 이상만 느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은밀하고도 무시무시한 기운이었지. 물론 리샨 대륙이었다면 신들에 의해 금방 사라졌겠지만 이곳은 중원이다 보니 그 기운을 억제할 존재가...
  그렇게 주절주절 떠들던 천이 순간 말을 멈칫했다.
  그것은 유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로 천마에 기운에 버금가는 기운이 천마의 기운과 만나더니 그대로 중화되어버렸던 것이다. 마치 이전에 한 번씩 발광하던 자신의 아버지인 마황의 기운이 마신의 기운에 중화되듯 말이다.
  그 기운을 느끼며 유현이 물었다.
  “중원이란 곳에 괴물이 이렇게 많았나?”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유한을 보며 유현이 물었다.
  “뭔 소리야?”
  “아니, 천마와 맞먹는 괴물이 중원에 존재했어?”
  그 말에 휘안이 대답했다.
  “달마 한안선사가 있었지. 그런데 그건 왜?”
  “그냥, 괴물이 많다 싶어서.”
  그 말에 나머지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큰 그렇게 속을 다스린 유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쨌든 천마를 보러 갈 거야?”
  그 말에 다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은월, 소현, 화린이었다. 자신들이 아는 한 천마는 1,000년 전 사람이었던 것이다.
  “갸야지, 이 녀석도 가자고 방방 뛰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유현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손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방금 그 목소리 뭐였어?”
  그러자 화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령.”
  그런 화린의 말에 유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화린은 그런 유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그런 게 있어.”
  “하아... 지루한 회의.”
  무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소마각 안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자신이 왜 저런 지루한 회의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무연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소마각의 유현의 방으로 찾아 들어간 무연은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탁자에 있는 쪽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읽어보았다.
  [형, 나 천마봉에 좀 갔다 올게]
  그리고 쪽지를 다 읽은 후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빠르게 경공술을 이용해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으아~ 뭔 산길이 이렇게 험해?”
  화린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럼 쉬운 줄 알았냐?”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현재 천마봉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일곱 사람, 바로 유현 일행이었다.
  천마를 만나기 위해 천마봉에 올라가는 유현 일행. 물론 은월, 소현, 화린은 그런 유현을 따라 이유도 모른 채 같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왜 천마봉에 가는 건데?”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다가 소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유현이 대답했다.
  “만날 사람이 있거든.”
  “그게 누구야?”
  “가보면 알아.”
  그 말에 소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마봉에 사람이 산다고? 이 높은 곳에? 어이가 없는 소현이었다.
  아무튼 소현이 어이없어하든 말든 유현 일행은 빠른 속도로 천마봉을 향해 올라갔다.
  천마봉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호수에 비치는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유현과 안영은 그 호수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이들은 아니었기에 감탄하며 호수를 쳐다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
  화린이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마교 내에서 가장 풍경이 멋진 곳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 어때?”
  그러고는 천에게 말하자 천이 몸을 형성화시켰다.
  갑작스러운 천의 등장.
  그에 은월, 소현, 화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은 그런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밤하늘이 비치는 아름다운 호숫가로 다가갔다.
  호수에는 달이 비치고 있었다.
  -이 호수 안이야. 이 호수 안에 천마가 있어.
  이윽고 천의 말에 유현이 호수를 노려보았다. 반면 은월들은 천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호수 안에 천마가 있다니?
  하지만 그런 그들과는 상관없이 어느새 유현은 호수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 위를 달릴 수 있다는 수상비의 수법이었다.
  아무튼 호수 가운데까지 온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달이 두 개?”
  그런데 호수에 비치는 달이 두 개였다.
  하얀 달과 파란 달.
  그 두 달을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갑자기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물 위에 큰 파문이 생긴 것이다.
  “뭐야?”
  그 파문에 유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호수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유현의 수상비의 수법이 풀림과 동시에 그대로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풍덩!
  “엇!”
  그런 유현을 보며 당황한 유한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호수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휘안 역시 마찬가지였고 안영 역시 뛰어들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윽, 이게 뭐야?”
  안영은 자신을 방해하는 결계를 보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안영의 힘으로는 절대자가 만든 그 결계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절대자의 영역으로 초대된 이는 딱 세 사람뿐이었다.
  유현, 유한, 휘안.
  “끄응...”
  유현이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성을 흘렸다.
  -주인, 괜찮아?
  -정신이 들었구나!
  그와 동시에 천과 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어디야?”
  그런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흑아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여긴 천마가 만든 공간이다.
  -이익! 그건 애가 말하려고 했는데!
  그런 흑아를 보며 천이 으르렁거렸지만 유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천마가 만든 공간이라고?”
  그리곤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만 이곳에 떨어진 거야?”
  그 말에 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 다른 녀석들도 같이 왔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
  그 말에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주위를 둘러보자.”
  이윽고 그는 아무것도 없는 산길을 한참 동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저 멀리서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보았기 때문인데, 한 사람은 청발에 청안을 가진 아름다운 미남자, 나머지 한 사람은 흰 수염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스님처럼 보이는 노승이었다.
  그들을 보며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멈췄다.
  이곳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거기다 그 사람들은 지금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러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허! 한 수만 물러달라니까 그러네.”
  “안 되오.”
  “거 젊은 사람이 참.”
  “나도 나이는 당신만큼 먹은 사람이오.”
  그렇게 조금의 양보도 없이 바둑판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던 그들은 문득 유현의 기운을 느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유현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어~ 설마하니 이곳에서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러고는 노승이 감탄하며 유현을 보며 말하자 청발의 미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저 여아는 인간이 맞는 거요?”
  그 말에 노승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잘 모르겠구먼.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냥 좀 난폭한 기운을 가진 사람 아닌가?”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군. 파멸성이나 천살성의 기운일 수도 있겠지.”
  그들은 유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인간의 기운이 아닌 드래곤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드래곤이란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특이한 기운을 가진 인간이라고만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유현은 그들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긴, 이곳에 있는 것부터가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당신들 누구야?”
  이윽고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런 유현을 보며 청발의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디서 어린 여아가 우리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냐?”
  “남이 반말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런 청발의 남자를 보며 유현이 코웃음을 쳤다.
  “당돌한 여아구나.”
  유현의 말에 노승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 그렇다면 천마가 널 이 공간으로 끌어들였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반면 청발의 남자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야 천마의 무공까지 익히고 있군.”
  노승의 말에 청발의 남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마의 전인인가? 그렇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는군.”
  그렇게 중얼거린 청발의 남자가 유현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색이 정말 뛰어나군.”
  남자의 말에 유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재 유현은 가면을 쓰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세상에 드러나 있었다.
  아무튼 그런 남자를 보며 노승이 말했다.
  “어허, 나이를 1,000살이나 먹고 아직도 여자를 생각하나?”
  “그거야 내 마음이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유현은 그들이 천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무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노승의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달마대사 한안선사?”
  유현에 말에 노승, 아니 달마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노부를 알고 있나?”
  “당신은 당신의 명성이 얼마나 큰지 개념이 안 잡혀?”
  자신의 이름을 알 줄 몰랐다는 달마의 태도에 유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달마 옆의 청년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인간은 누구야?”
  “허허, 청월이라 불리는 사람이라네.”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유현이 문득 중얼거렸다.
  “청월광월검?”
  그 말에 청월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무공을 알고 있나?”
  “익히고 있는 녀석도 알고 있는 걸?”
  그 말에 달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청월 자네, 무공을 속세에 남겼었나?"
  그 말에 청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본을 하나 중원 무림에 놔두고 온 것으로 기억하오만 그것을 익힌 녀석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 어쨌든 비기가 다 빠진 사본이라고 하나 최대 비기인 월광의 초식가지 수록되어 있으니 그것을 익히면 능히 전하를 호령할 정도는 될 것이오.”
  “쯧, 천마는 천마신공은 남겼어도 천마도검법은 남기지 않았거늘 자네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남겼나?”
  그 말에 청월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비기는 다 빠져 있다고 말했소.”
  그 말에 유현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휘안이 익히고 있는 청월광월검이 반쪽이라는 소리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묘한 표정을 짓던 유현은 달마를 보며 입을 열러고 했다. 하지만 달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호~ 신기한 존재들이군.”
  바로 은아, 흑아, 천이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이 세계는 정령이란 것이 없기에 달마는 순수한 기운의 집약체인 그들에게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즉, 은아는 순수한 빙기의 집약체이고 흑아와 천은 수수한 마기의 집약체였다.
  아무튼 그런 달마를 보며 은아가 움찔하며 유현의 뒤로 숨었고 흑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들의 감각은 유현보다 더 뛰어났다. 정령이라 그런지 기운 감지에 있어서는 유현보다 더 뛰어난 그들이었는데, 그들은 달마와 청월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너무도 잘 느껴졌던 것이다.
  또한 신기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하지만 은아와 흑아는 아직 500년도 채 되지 않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아기나 마찬가지인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 능력이 성룡급의 드래곤에 비견될 만큼 어마어마하기는 했으나 약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달마와 청월의 기운은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운에도 멀쩡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천이었다.
  천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뭐야? 저 녀석이 달마? 천마가 말하던 땡중?
  천의 말에 달마와 청월의 시선이 천에게로 향할 때 청월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천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군.”
  잠재되어 있는 기운도 기운이었지만 그 기운이 천마의 기운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청월과 달마였따. 그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천을 바라보자 천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날 만든 사람이 천마와 리샨 대륙의 무신과 마신인 걸? 그러니 천마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거야.
  그 말에 두 사람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천마가 자신들에게 해주었던 신비의 대륙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두고 온 천진난만한 자신의 친구와 오대장로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혹 당신이 천이오?”
  -날 알아?
  달마의 말에 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천마아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 그의 말대로 정말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구려.”
  “그런 잡다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천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줬으면 하는데.”
  이때 유현이 달마를 보며 말했다.
  “흐음, 참 급한 여야로군. 좋아, 천마에게로 안내할까?”
  그에 달마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달마의 말에 대답한 건 청월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는 걸? 천마가 직접 마중 나온 것 같은데?”
  그 말에 함께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구나, 천.”
  그에 유현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흑발을 뒤꿈치까지 길게 기르고 적안을 가진 중성적인 얼굴의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 안 되는 아름다운 얼굴의 그 사내는 천을 보며 생긋 웃고 있었다.
  그 사내를 보며 천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천을 한번 힐끔 바라본 유현이 천마를 바라보니,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중성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놈은 중성적이고 어떤 놈은 여성스럽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유현을 보며 천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 나의 전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라니 영광인 걸?”
  그런 천마를 보며 유현이 또다시 얼굴을 찌푸리며 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천마가 맞아? 내가 보았던 천마와 많이 다른데?”
  그 말에 천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흐응? 날 본 적이 있다고? 난 너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는데? 봤다면 잊어버릴 리 없고 말이야.”
  청월보다 더욱 여자를 밝히는 것 같은 천마를 보며 유현이 얼굴을 또 한 번 찌푸렸다.
  느껴지는 기운은 천마의 기운이 확실한데 이전에 자신의 몸에 들어왔던 천마와는 확실하게 달랐다.
  그때의 천마는 인자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노인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눈앞의 천마는 완전히 그저 청년의 이미지였다.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그 모습에 유현은 정말 그때 보았던 찬마와 지금 보는 천마가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갔다. 아무튼 유현은 천마를 향해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천에게 심어두었던 영혼의 조각.”
  그 말에 천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튀어나올 정도로 위험한 상황까지 갔었나?”
  그러고는 유현을 자세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이내 천마의 눈이 반짝인다.
  “넌 인간이 아니구나?”
  그렇게 말한 천마가 순식간에 유현에게 다가가자 그 모습에 굳어버린 유현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천마의 기세에 눌린 것이다.
  천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유현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마의 손이 향한 곳은 유현의 왼쪽 가슴이었다.
  바로 드래곤의 힘의 원천 드래곤의 모든 마나가 모인 곳이자 드래곤의 생명인 곳, 드래곤 하트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드래곤 하트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나를 느끼며 천마는 유현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쯧, 대낮부터 여자를 희롱하다니.”
  그런 천마의 모습에 청월이 혀를 차며 말하자 천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넌 입 닥치고 있어.”
  그러고는 유현의 왼쪽 가슴에서 손을 뗀 다음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유현을 쳐다보았다.
  그런 천마를 바라보며 유현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자 천마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불쾌했다면 미안해. 그건 그렇고... 이것 참, 난 중원의 존재가 차원이동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니 알아차리지 못했군.”
  천에게 신경 쓰고 있다 보니 유현의 기운을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유현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드래곤 하트의 기운이 아닌 단전의 기운이었다.
  그렇기에 전혀 유현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천마는 유현을 만나 후에도 특이한 기운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것이 드래곤의 기운이라는 것은 이제야 알아차렸고,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가 드래곤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천마가 유현을 보며 계속 말으 이었다.
  “머리색을 보아하니 실버일족인가? 이름이 뭐지?”
  “하유현.”
  그 말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난 리샨 대륙에서의 이름을 물었다.”
  실버일족의 에이라나.“
  “으음, 에이라나라... 아무튼 반갑다, 내가 바로 천마다. 그런데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네가 천마도의 주인이 되었을까? 천마도의 주인이 되려면 분명 천마신공을 익혀야 하는데 말이야. 심법, 검법, 권각법 모두 말이야.”
  천마가 리샨 대륙에 남긴 천마도검법을 익히려면 기존에 있던 천마신공을 모두 익혀야 했다. 하지만 천마는 리샨 대륙에 천마도검법만 남겨두었지 나머지 천마신공들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실버 드래곤은 천마도검법을 익힌 것도 모자라 천마도의 주인이 되었고, 그것이 의아한 천마였다.
  “그건 내가 전생에 중원 무림에 살았으니깐 그렇지.”
  그 말에 천마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더없이 희귀한 경우군.”
  그렇게 중얼거린 천마가 더욱 자세히 유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단전에 모여 있는 내공이 드래곤 하트에 저장되어 있는 마나와 맞먹을 정도의 양이란 것에 흥미가 동했다. 또한 드래곤 하트와 단전이 서로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에도 놀랐다.
  아무튼  참 재미있는 존재를 만났다고 생각한 천마였다.
  “그러고 보니 청월 자식의 후인과 마계의 마족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 천마가 생각났다는 듯 말하자 청월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의 후인인 아이가 이곳에 와 있다고?”
  “그래, 일단 네놈의 무공을 익힌 흔적이 있어서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흐음, 그래?”
  “뭐, 사실 녀석이 내 후인과 같이 있다는 점과 리샨 대륙의 마법을 익힌 흔적이 있어서 끌어들이긴 했지만.”
  천마도 처음에는 유현을 드래곤이라 생각하지 않고 리샨 대륙의 마법을 익힌 존재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무튼 천마의 말에 유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녀석들은 지금 어디 있지?”
  “흐음... 어른 공경을 모르는 녀석이군.”
  천마가 유현의 말투에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말투에 불만 있어?”
  하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지.”
  그 말에 청월과 달마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평소의 천마였다면 유현은 절대 무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대로였다면 ‘건방지다, 나이도 어린놈이 감히 반말을!’ 이러면서 바로 상대를 반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 분명한 자가 천마였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후인이라도 상관없다는 것이 천마의 지론이었다.
  그는 싸가지가 없으면 무조건 패서 고쳐줘야 한다고 일을 벌일(?) 때마다 말하곤 했고, 그렇게 천마에게 당한 이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속세와 연을 끊었다고 해도 그들도 가끔씩 심심해질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그들은 속세로 한 번씩 내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 번씩 사고를 치는 천마였다.
  아무튼 그런 천마가 유현의 말투에 불만이 없다고 하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정말 천마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갓 성룡이 된 녀석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성룡이 되려면 500살은 먹어야 하니.”
  유현의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확인해본 바, 유현이 갓 성룡이 된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천마였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는 데 불필요한 저질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상대가 적어도 500살은 먹었으니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불쾌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달마와 청월은 유현이 500살이라는 말에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때 빙긋 웃고 있던 천마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은아와 흑아를 바라보았다.
  “호오~ 신기?”
  자신이 보기에는 이것들도 천과 마찬가지로 신기의 정령들이었다. 그렇게 감탄하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에서 드래곤으로 환생한 것도 모자라 세 개의 신기의 주인이라...”
  그러고는 유현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괜찮을까요?”
  화린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안영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 결계는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어두운 표정의 안영은 손가락을 물어뜯었는데, 그것은 안영이 심히 당황할 때마나 나오는 버릇이었다. 이 버릇이 나올 일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유현과 유한, 휘안이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간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젠장!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냐고!”
  이때 소현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런 소현과 함께 은월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쳐보았다.
  쾅!
  그리고 이내 손에 권강이 맺히기 시작한 은월이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은월의 권강과 부딪힌 투명한 벽은 너무나 멀쩡해 은월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은월을 향해 안영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 결계는 유현 님도 어쩌지 못한 결계입니다, 은월 님이 깨실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그 말에 은월의 얼굴이 더욱더 험악해졌지만 그런 은월을 무시한 안영은 한숨을 쉬며 그저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결계 때문에 호수 근처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에 안영이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장로들이었다.
  “장로님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그에 안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하자 살혈 장로가 되물었다.
  “그런 자네는 왜 여기 있나?”
  그 말에 안영이 대답하려고 할 때.
  “얀영, 유현이는 어디 있지?”
  무연이 안영 앞에 서며 말했다.
  “무연 님도 오셨군요.”
  “유현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장로들은 천마봉으로 가기로 회의를 했었다. 그때 무연은 빠진다고 했지만 유현이 적어놓은 쪽지를 보고 바로 장로들과 같이 가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마봉으로 올라와 보니 유현은 없고 안영과 은월, 소현, 화린만 있자 무연이 안영에게 물은 것이다.
  안영은 유현을 찾는 무연을 보며 말했다.
  “유현 님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그럼 어디 갔지? 분명 쪽지에는 천마봉으로 간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 말에 안영이 천마봉에 있는 호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계십니다.”
  안영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무연은 그곳이 호수라는 것을 알고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저 호수 어디에 유현이 있다는 거냐?”
  설마하니 유현이 호수에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무연이었다.
  그런 무연을 보며 유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호수 안에 계십니다.”
  그 말에 무연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이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말은 유현이 저 호수에 빠졌다는 거냐?”
  “정확히 말하면 끌려 들어가셨습니다.”
  “누가 유현이를 끌고 들어가!”
  그에 무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런 일에서 농담을 할 안영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이내 씩씩거리며 호수로 다가갔다.
  하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무연.
  쿵!
  “으윽! 뭐야?”
  무연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벽을 한번 만져본 후 안영을 보며 말했다.
  “이게 뭐지?”
  그런 무연을 보며 안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계입니다.”
  “결계?”
  “아무래도 유현 님과 유한 님, 휘안 님을 데려가신 분은 저희가 자신의 영역에 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나 봅니다.”
  그 말에 무연이 말했다.
  “누구냐, 유현을 데려갔다는 그 존재가?”
  “흐음, 이것을 말하면 절 미친놈 취급할지도 모르는데요? 전 미친놈 취급당하기 싫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대답해!”
  그 말에 한숨을 푹 쉰 안영이 말했다.
  “휴우... 바로 천마대제입니다. 천마대제께서 유현 님을 직접 데려가신 듯합니다.
  그 말에 뮤연은 물론 장로들까지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유한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유한의 눈앞에는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 한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를 향해 유한 역시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윽고 그 존재가 유한을 향해 다가온다.
  그런 그녀를 보고 유한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에게 한 번도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 준 적 없었던 그녀가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준 것에 많이 놀란 유한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처음에는 기쁜 유한이었지만 잠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저런 환한 미소를 지어줄 리 없었다.
  아무튼 자신에게 다가온 그녀를 보며 유한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유현 누나가 아니야.”
  그 말에 그 존재가 잠시 볼을 긁적인다.
  “안 넘어오는구나.”
  “환영 따위에 넘어갈 위인이 아니거든.”
  “흐음, 하지만 환영이라고 해도 날 벨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 유현의 환상이 유한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댄다.
  그런 유현의 환상을 보며 유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이러지 마.”
  그런 유한의 말에 유현의 환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여기에 빠진 존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 뿐.”
  “환영진 따위는 파괴하면 그만이야.”
  순간 유한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뻗어 나온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마기는 지금 유한이 빠진 공간을 파괴하겠다는 듯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유한은 당혹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자신의 마기가 전혀 그 공간에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위적인 공간이 아닌 원래부터 존재하는 공간에도 영향을 주는 자신의 마기가 한낱 만들어진 공간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에 유한은 충격을 먹었다. 그러다 곧 이 공간을 만든 이가 천마라는 것에 생각이 닿은 유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휘익!
  그런 유한을 향해 생긋 웃어준 유현의 환상이 검을 내질렀다.
  스각!
  그 검은 유한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으며 살을 살짝 베어버렸다.
  그로 인해 유한의 옷이 피에 물들었고, 붉은 피로 물든 옷을 바라보던 유한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유현을 보며 유한은 괴리감을 느꼈다.
  “누나는 나에게 그런 미소를 짓지 않아.”
  유한의 표정은 점점 무표정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런 유한의 모습에도 유현의 환상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푸욱!
  바로 그 때 유현의 환상의 검이 유한의 어깨를 꿰뚫었다.
  “난 분명 네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지. 하지만... 넌 날 공격하지 못해.”
  그에 유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짜라는 것은 알고 있다.
  똑같은 기운을 가졌으며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모습을 했다 해도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자신에게 그런 환한 미소를 지어줄 리 없다는 것을.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 한쪽이 쓰라렸다. 지금 자신의 몸을 도배하고 있는 상처보다 이 아픔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은 유한은 순식간에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피했다.
  저번에 보았던 하유현의 환상과는 다르다. 그때는 유현의 전생 모습, 즉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진짜 유현, 즉 실버 드래곤 에이라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할 수가 없다.
  그런 자신을 보며 유한이 피식 웃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겨우 ‘사랑’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의 몸에 칼을 꽂는 이를 어떻게 하지 못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사랑하는 이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짜라는 것을 아는 존재에게까지!
  유한이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다시 자신을 벨 준비를 하는 유현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공격할 수 없는 상대.
  정말 최악의 상대였다.
  유한의 몸에는 이런저런 상처가 많이 생겼다. 환상의 공격에 본능적으로 반격하다가 멈칫하는 바람에 그대로 반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제압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제압하면 그대로 죽을 각오로 그 제압을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에이션트급 대래곤과 맞먹는 힘을 가진 마황자를 성룡의 힘을 가진 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나뒀다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풀어준 유한이었다. 유현이야말로 유한에게 있어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이다.
  유한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목을 노리는 검을 피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치하던 두 존재.
  -유한!
  그러다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부름에 유한이 멈칫했다. 그리고 환청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야, 너 어디 있어? 이봐, 정말 여기 유한이 있는 거야?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유한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런, 이곳으로 왔나 보녜? 그렇다면 넌 적이 아니군.”
  그리고 그것이 빙긋 웃는다.
  “젠장, 남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그에 유한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상대가 더 이상 자신을 공격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유한을 보며 유현의 환상이 웃었다.
  “나에게 주어진 명은 이곳에 빠진 존재를 말살하는 것! 그런 꼴 당하기 싫었으면 이곳으로 오지 말았어야지.”
  뻔뻔한 그 말에 유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유한을 보며 유현의 환상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다 이내 유한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내가 미안하긴 하군.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도록 하지.”
  “무슨? 우웁!”
  유현의 환상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던 유한은 갑작스러운 유현의 환상의 행동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커억!”
  “내 공격을 모조리 냉정한 눈으로 피하던 녀석 맞아? 하하하하하하!”
  유현의 환상이 유한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유한의 얼굴은 완전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런 유한을 보며 방긋 웃은 유현의 환상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상한 공간이 깨어짐과 동시에 다른 공간이 튀어나왔다.
  그에 유한이 주위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방금 전 자신에게 기습 입맞춤을 했던 환상과 똑같은,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인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자신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진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유한은 방금 전에 했던 입맞춤에 슬쩍 입술을 쓸어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유현을 불렀다.
  “누나.”
  환상은 어디까지나 환상.
  그 입맞춤이 좋기는 했지만 현실까지 그러진 못했다.
  유현은 자신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유한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흐릇한 안개가 걷힌 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유한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자 얼굴이 살짝 굳었다.
  “뭐냐, 그 상처는?”
  유현의 말에 유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거? 별거 아냐.”
  “상처가 꽤 심각한데?”
  보통 인간이라면 죽을 정도의 상처였다.
  “날 걱정해주는 거야?”
  “그 입 닥치고, 환상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마황이라도 만났어?”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상대를 만났지. 하지만 괜찮아, 그만한 대가를 받았으니 말이야.”
  그 말에 유현이 고래를 갸웃했다. 하지만 유한은 그저 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호오? 이거 그냥 고위 마족인줄 알았는데 마황자가 아닌가.”
  그렇게 웃던 유한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아름다운 사내를.
  그 사내를 향해 유한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
  그에 사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날 아나?”
  그에 유한은 좀 떨떠름한 표정으로 유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천마와는 좀 많이 다른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 유한의 시선을 느끼며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봤던 천마랑 동일인물이 맞아.”
  그 말에 유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천마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넌 마황 에브로스카의 아들인가?”
  천마의 말에 유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되십니다.”
  “호오? 그렇다면 에브로스카는 벌써 죽었겠군그래? 참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는데.”
  전대 마황을 마음에 드는 녀석이라는 둥 하는 천마.
  만약 마황에게 절대 충성심을 보이는 보통 마족들이었다면 당장 천마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마왕과 다르게 마황은 마신이 내리는 고귀한 자리다. 대대로 핏줄로 이어지는 그 마황의 권좌는 여태껏 그 핏줄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마황족의 핏줄은 순수 그 자체였고 때문에 여러 번 물갈이가 된 마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아무튼 마계가 시작되면서 함께해온 긴 역사를 가진 마황족들은 많은 마족에게 충성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황이라고 해도 천마에게 있어서는 마은에 드는 놈, 안 드는 놈으로 나뉠 뿐이었다.
  그 결과 마은에 안 드는 놈이었던 천마에게 까불던 천황은 천마대전 당시 천마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이로써 그 천황을 마지막으로 천황족의 대는 끊겨버렸다.
  그것 때문에 천신이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발광을 했을 정도였다. 아니, 아직도 제대로 된 천황이 나오지 않을 정도닌 천신의 고생은 상당한 것이었고, 그런 천신을 보며 마신이 낄낄거리며 즐거워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이렇듯 천황도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하고 천마의 손에 죽었다. 그렇기에 유한은 이런 천마의 말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천마의 뒤에 보이는 두 사람의 보던 유한이 순간 흠칫했다. 그 두 사람 역시 천마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황당한 세상이네.”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무리 끝없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하나 설마하니 저런 괴물들이 때로 모여 있는 세계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유한이었다.
  그런 유한의 말에 달마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이 역시 인간이 아닌 것 같군. 신기해.”
  달마의 말에 이번엔 청월이 말했다.
  “강력한 마기를 가지고 있군. 천마가 말했던 마족 같은데?”
  그런 그들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마계의 마황자 레이텐티에스 루틴 오퍼테크니스라고 합니다.”
  그 말에 달마가 유한의 본명을 발음해보았다.
  “레, 뭐? 흐음. 중원의 이름은 없느냐?”
  “유한이라고 부르십시오.”
  “헐... 그래, 그럼 유한이라고 부르지. 그렇데 마황자라고?”
  “천마교에 있어 소교주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마계라는 곳 자체가 커다란 천마교라고 생각하면 되거든.”
  달마의 물음에 천마가 대답하자 청월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자존?”
  “그렇지, 중원보다 더욱 큰 세계가 하나의 강자존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런 곳은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나?”
  “글쎄... 내가 알기로는 마계의 역사는 수백만 년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 잘 돌아간다는 소리군.”
  청월이 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교도 강자존의 법칙으로 1,000년 동안 잘 돌아가고 있다.
  강자존은 강자에게 절대 복종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은 곳이었다.
  한 번 굴복한 상대에게 죽기 살기로 덤비는 것이 아니라 죽을만큼 수련을 쌓은 다음 다시 도전하는 것이 마계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마교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를 쓰러트리기까지는 절대 복종.
  그것이 강자존을 가지고 있는 마계나 천마교를 지탱해주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따진다면 정말 천마교는 마계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나의 소마계라고 보면 되니 말이다.
  천마가 마계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일지도 몰랐다. 같은 마기를 사용한다고 하나, 만약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면 마황 역시 천마에게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마황과 천황의 결정적인 차이가, 마황은 천마를 인정하고 존중했지만 천황은 천마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천황은 천마와 꾸준히 대립했으며 나중에는 천마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만약 천황이 천마를 마황을, 아니 최소 마왕을 대하는 것만큼 대했어도 그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족과 천족의 사고방식이 달랐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족이나 천족이나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똑같았다.
  다만 마족의 경우, 강한 인간은 자신들의 강자존에 따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천족은 달랐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했다.
  아무튼 천마전쟁 당시 마계는 천마를 인정했고 하나의 절대자로 대우를 해주었다. 반면 천계는 천마를 비웃고 그를 얕잡아보았다.
  그러니 아무리 천마가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는 하나... 마계로 손이 들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결과.
  그로 인해 천황이 사망했다.
  물론 그 후 천족들은 천계로 후퇴했으며 마족들이 리샨 대륙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 당시 힘이 약했다고는 하나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드래곤들이 들고 일어났다.
  또한 천마도 신들의 부탁으로 드래곤들 쪽에 손을 들어주자 마족들은 할 수 없이 마계로 돌아갔다. 마왕을 셋이나 잃었기에 드래곤들과 싸우는 것은 무리가 따랐다. 그리고 드래곤들 측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그 무시무시한 천마였으니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손에 마왕 셋의 목숨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을 마족들은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중간계를 노리고 시작된 천마전쟁은 그렇게 승자 없이 무승부로 끝이 났다. 피해 규모로 본다면 천계 측의 패배였지만 결과만 보면 승자는 없었다.
  아무튼 강자존을 철저하게 따르는 마계는 역시 강자존을 따르는 천마교 출신의 천마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만약 이곳에 마족인 유한이 아니라 천족인 다른 이가 있었다면 바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천마는 오랜만에 마족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자신과 친분이 있는 마황 녀석의 손자를 봤으니 더더욱.
  “그나저나 휘안이 녀석은 어디있어?”
  그때 유현이 천마에게 묻자 천마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이런, 청월 녀석의 후인을 잊고 있었군.”
  그 말에 유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휘안 형도 있어?”
  “어, 같이 들어온 듯하다.”
  다른 녀석들은?“
  “여기 안 들어온 듯해.”
  “그래?”
  유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유한이 유현 옆에 서자 유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치료마법이라도 쓰지 그러냐.”
  유한의 온몸은 베이고 찔려 피로 도배되어 있었다. 때문에 피가 멈춘 듯 보였지만 아직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었다.
  “흐음? 리커버리, 클린.”
  순간 유현의 말에 유한이 마법을 사용하자 유한의 몸이 빛나며 상처가 사라지고 옷이 깨끗하게 변했다. 물론 군데군데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것은 그대로였다.
  그런 유한을 보며 달마와 청월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절대자들이 이런 기본적이 마법에 신기해하다니.”
  그에 유한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유현이 말했다.
  “이 세계에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거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유현 역시 왠지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야, 정신 차려.”
  유현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휘안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휘안은 움찔 몸을 떨더니 부스스 눈을 뜨기 시작했다.
  “괜찮냐?”
  “아,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말한 휘안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그런 휘안을 도와주는 이가 있었다. 바로 청월이었다.
  “누구?”
  휘안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청발에 청안을 가진 사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나의 후인도 제법이군.”
  하지만 이내 그의 말에 그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당신이... 청월?”
  그 말에 청월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단다, 내가 청월이다.”
  그런 청월을 보며 휘안이 뭐라 말하려 할 때, 뒤에서 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폼 잡고 앉았군.”
  그에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한 아름다운 미남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시비냐?”
  그런 천마를 보며 청월이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천마 역시 지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내 마음이다.”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한 말싸움이었다.
  “저 두 사람, 원래 저런가요?”
  그 모습에 유한이 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늘 있는 일상이지.”
  그렇게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천마와 청월은 그대로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달마가 두 사람을 말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몸싸움에서 오만 화려한 공격이 나오는 것을 보며 세 사람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벼운 몸싸움(사실 하나하나 유현이 맞았다면 위험했을 공격)을 끝낸 천마와 청월은 씩씩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유치한 두 사람을 달래는 것은 역시 달마였다.
  아무튼 그렇게 약간의 소란이 있은 후 청월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달마는 차를 대접하겠다고 숲속에 유현, 유한, 휘안을 데려갔다. 물론 천마도 같이 말이다.
  숲속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밑동을 탁자 삼아 달마가 그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유현의 무릎 위에는 어느새 고양이로 변한 은아가 골골거리고 있었고, 흑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 앞에 있는 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천은 멍한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흐음, 1,000년 만인가? 정말 반가워.”
  그런 천을 향해 천마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천이 볼을 부풀렸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은 천마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화난 거야?”
  천마의 말에 결국 천이 폭발했다.
  “이익! 1,000년?”
  버럭 소리를 지른 천은 유현이나 유한, 휘안도 움찔한 기세를 풍기기 시작했다.
  평소의 천이라면 유현과 비슷한 기세를 뿌리는 것이 한계였겠지만 지금 천의 앞에는 유현 말고 또 다른 주인이 있었다.
  바로 천마. 그런 천마가 옆에 있기에 천은 한층 더 강한 기운을 풍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천마가 그런 천의 모습에도 그저 미소만 짓고 있자, 천이 소리를 질렀다.
  “난 9,000년이란 세월을 보냈단 말이야! 9,000년 동안 외롭게! 천마 넌 장로들에게 나를 맡겨두었으니 그걸로 되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난 아니야! 얼마나 외로웠다고! 그러데 넌 그렇게 헤실헤실 웃으며, 뭐? ‘1,000년 만인가?’ 라고?!”
  흥분할 대로 흥분한 천. 하지만 천마는 여전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고, 그런 천마가 천은 더욱 야속했다.
  천은 천마를 좋아했다. 그냥 평범한 좋아한다는 말로 끝날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존재할 때부터였다.
  어느 순간 기억을 가지며 생각할 수 있는 자아가 함께할 때부터 자신은 천마와 함께 있었다.
  그렇게 자신과 늘 함께하는 천마를 사랑하게 되었던 천은 천마가 중원으로 떠난다고 할 때, 떼를 쓰며 쫓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천마는 그때도 웃으며 자신은 중원에 존재할 존재가 아니라며 자신을 강제적으로 봉인하고 중원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9,000년이란 세월이 지나 천마의 말대로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새로운 주인은 천마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천마보다 더 꼬인 성격이긴 했지만.
  아무튼 천은 새로운 주인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천마를 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과 함께 중원으로 와서 천마를 만났다.
  하지만 천마는 오랜만에 만난 자신을 향해 그저 인사만 할 뿐이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무기, 물건에게 인사하듯.
  눈물이 났다.
  이기적인 사람이란 것은 알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단어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자신은 그저 천마도에 기든 정령일 뿐이고 천마는 그것을 사용하는 자일 뿐이니 말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억울했다.
  천의 얼굴에 맑은 눈물이 맺혔다.
  그런 천을 보며 천마가 난처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하니 저렇게 화가 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 천은 전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함께 수많은 전투를 겪은 전우.
  그런 천의 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받아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천마.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꽤 미안했다.
  아무튼 그런 천을 보며 천마가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주인.”
  그런 천을 달래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유현이었다.
  유현은 자신의 무릎 위에서 뒹구는 은아를 치워버린 다음 천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살며시 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유현의 행동에 천은 유현의 품으로 파고들어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품에 울음을 터트리는 천을 안쓰럽게 바라본 유현이 쓰게 웃으며 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천마를 바라보았다.
  “천은 계속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어. 천이 당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얼마나 밝게 웃었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조금 날이 있는 유현의 말.
  그런 유현의 말에 천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의외로 따뜻한 구석이 있군.”
  그 말에 유현은 천마 한번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유현을 보며 유한과 휘안도 일어나려고 했다.
  “그냥 있어, 천이 진정할 때까지 다른 곳에 가 있을게.”
  그렇게 말한 유현이 흑아와 은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흑아와 은아는 그대로 유현의 허리에 차여 있는 본체로 돌아왔다.
  이윽고 유현은 천을 안은 채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망설이던 유한이 그대로 유현을 따라가 버렸다.
  휘안 역시 그런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아아, 청월 녀석이 너에게 줄 게 있다니 넌 좀 남지 그래?”
  천마에 말 때문에 자리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빙긋 웃던 천마가 유현이 사라진 쪽을 보며 말했다.
  “나중에 애를 낳으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되겠군.”
  만약 유현이 들었다면 노발대발할 소리였다.
  “흑흑흑!”
  천은 유현의 품에 안겨서 계속해서 울었다.
  그런 천의 등을 계속해서 토닥여주던 유현은 문득 자신의 뒤에 따라오는 유한의 기척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있으라고 했잖아?”
  그 말에 유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누나가 걱정돼서.”
  “이곳에서 위험이 될 게 뭐 있냐?”
  유현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유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유한을 바라본 유현이 자신의 품에서 계속해서 우는 천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었고 유한 역시 천을 바라보다가 슬쩍 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좋아했는데... 사랑했었는데... 이루지 못할 사랑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다 천이 유현의 품에서 울면서 말하자 유현이 조용히 말했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울어.”
  “흐아아아아아앙!”
  그 말에 천이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은 계속해서 울었다. 하지만 아무리 서럽게 울어도 9,000년의 서러움이 한 번에 달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천의 몸에서 강력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손도 대지 못할 그런 마기.
  하지만 유현은 묵묵히 천을 안을 뿐이었다.
  결국 그렇게 울다 지쳐버린 천은 유현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에 유현은 근처에 앉아 살며시 천을 자신의 품에 기대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한은 그런 유현의 옆에 앉아 잠들어 있는 천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유현을 힐끔 보았다.
  아름다운 존재.
  차가운 은안에 은발을 가진 그녀는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생각했다. 단순한 유희 상대.
  그런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았을 때 자신은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헤아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더더욱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에는 유현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까지 벌이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유한은 그녀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었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부부 같다?”
  그런 유한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유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너 아직도 날 좋아하냐?”
  “당연하잖아!”
  “넌 마황자잖아? 살아가는 세계가 나랑 다르다구.”
  “그거랑 사랑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난 전생에 남자였어. 때문에 1,500살이 된다면 당장 남자의 몸으로 돌아갈 거야.”
  “괜찮아, 괜찮아. 본질은 여자잖아?”
  묘하게 위험한 말을 하는 유한이었다.
  그런 유한을 보며 한숨을 푹 쉰 유현이 슬쩍 자신의 손에 있는 천의 문장에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천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이곳에서 쉬어, 천.”
  유현이 문장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뭡니까?”
  휘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청월이 건네는 책자를 받으며 말했다.
  “진짜 청월광월검이 수록되어 있는 비서다.”
  “네?”
  그 말이 휘안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네가 익힌 청월광월검은 겉핥기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말에 휘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신공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자신이 익히고 있던 청월광월검이 겉핥기 수준이라니...
  물론 천마도검법에 조금 뒤처지지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무공임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겉핥기라니...
  “연계 같은 뛰어난 초식들을 많지만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초식이 월광을 제외하고는 네게 없다, 진짜 청월광월검에는 천마신공에 뒤지지 않을 타격을 주는 초식들이 많아.”
  “그런데 이런 걸 왜 저에게 주십니까?”
  “그야 네가 내가 남긴 흔적을 찾은 후인이지 않느냐. 그것만으로 네가 이 비서를 받을 자격은 충분히 된단다.”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휘안이 책을 받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책자를 아공간에 넣었다.
  바로 그때, 유현과 유한이 돌아왔다.
  “왔나? 천은 좀 어때?”
  천마가 유현을 보며 나른한 표정으로 말하자 유현이 대답했다.
  “9,000년간 짝사랑해왔어. 이럴 땐 좀 응석을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당신은 그럴 틈도 주지 않았어.”
  유현의 말에는 묘하게 가시가 맺혀 있었다. 하지만 천마는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호? 천이 날 사랑했었나?”
  그에 유현의 눈에 살짝 살기가 맺혔다.
  저자는 천이 듣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저런 말을 한다.
  천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천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천을 사랑해줄 수 없어. 천은 내게 있어 전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응석을 부릴 시간을 주지 않은 것도 나중에 네가 중월을 떠나 다시 리샨으로 돌아간다면 천이 더욱더 힘들까 봐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빨리 끊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덜 주는 것이야.”
  그 말에 유현이 입술을 때물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한에게 했던 말이 아닌가.
  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유현을 보며 천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천을 잘 달래줬으면 해.”
  그렇게 말한 천마가 유현에게서 관심을 돌리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유현은 천마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달마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파멸성의 기운이 느껴지던데... 혹시 아는 것 있나?”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러다 이내 유한과 휘안의 시선이 유현에게 향했다. 파멸성은 유현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 묻지 않았는데... 사인은 어떻게 됐지?”
  그러다 휘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인?”
  “파멸성의 시신으로 만든 생강시.”
  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청월을 보며 유한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유한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천마였다.
  “누구야? 그딴 개 같은 짓거리를 한 놈들이? 천마교인가?”
  천마의 살벌한 말에 유한이 대답했다.
  “혈천교라는 신진 세력 같던데요?”
  “혈천교? 그건 무엇인가?”
  달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휘안이 대답했다.
  “세상을 피로 정화하겠다는 미친놈들이 있어요.”
  “1,000년 정도가 지나니깐 별 미친놈들이 다 나오는구만.”
  그 말에 청월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무튼 그렇게 혈천교에 대해 달마와 청월이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천마가 유현을 불렀다.
  “어이, 그 사인이라는 생강시는 어떻게 됐지?”
  그 말에 천마를 바라보던 유현이 말했다.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냈어.”
  그 말에 천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유한과 휘안의 반응은 좀 달랐다.
  “설마, 죽인 거야?”
  “어, 부탁하더군.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행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설마 죽었을 줄이야...”
  휘안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유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슬쩍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사인을 찔렀던 감촉이 손에 남아 있다.
  남을 죽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이다. 첫 살인 때에도 무감각했던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흐음,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본래 파멸성의 주인은 누구였지? 시체가 되기 전 살아 있을 때 말이야.”
  이때 천마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유현이 나직이 말했다.
  “나다.”
  그에 천마의 시선이 유현에게 향한다.
  “호오? 재미있군. 그래, 자신의 시신을 칼로 찌른 기분이 어떻던?”
  천마의 말에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자 그런 유현을 보고 빙긋 웃어준 천마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설마하니 파멸성의 주인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죽은 이유가 파멸성 때문이란 말인데... 하지만 500년이 지났기에 영혼에서도 파멸성의 향이 지워졌어. 흠... 그렇다면 처음 봤을 때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든 것은 파멸성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였던ㄱ?”
  그렇게 중얼거린 천마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다면 저기 모여 있는 것들도 이해가 되는군. 응? 한 명이 더 늘었군.“
  그 말에 달마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천살, 파천, 천중, 파마. 이렇게 모두 파멸성의 흔적으로 모여든 것인가?”
  그 말에 휘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흐음? 몰랐나?”
  휘안의 말에 청월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자신의 후인이라서 그런지 휘안을 많이 챙기는 청월이었다.
  “파멸의 주위로는 성좌들이 많이 모여들지.”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런 그들을 보며 천마가 말했다.
  “즉, 지금은 내 후인이 파멸성이 아니지만 그 흔적의 틀은 남아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운명에 따라 이 녀석 주위로 성좌의 주인들이 모여든다는 소리지. 현재 천살, 파천, 천중, 파마 이렇게 네 개의 성좌가 모여들었다.
  그 말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기본적으로 성좌라 하면 마의 기운을 품고 있는 천살, 파천, 혈천과 중립의 성좌인 천중, 파멸이 있다. 그리고 성의 기운을 타고난 성좌는 파마, 자미, 좌성이 있다.
  이 팔의 성좌의 주인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즉, 만약 조금이라도 각성한다면 무시무시한 무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팔 성좌였다.
  하지만 역사에서 팔 성좌의 주인이었던 이들은 대부분 팔 성좌의 기운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는데, 그나마 제대로 끌어낸 이라고 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세 사람, 천마와 달마, 청월이었다.
  물론 이들은 성좌의 힘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의 밑거름이 된 것이 성좌의 힘인 것만은 확실했다.
  아무튼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는 듯 유현과 휘안이 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천마가 말했다.
  “뭐, 나야 관심 있는 성좌라고 해봤자 파멸과 천살뿐이지만.”
  자신은 타고난 성좌다. 그러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 저기 있다는 건 너희의 일행이란 소린가?”
  그에 청월이 말했다.
  “예, 일단 그들이 저희의 동료입니다.”
  “장로들이군.”
  이때 천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천마교의 장로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을까?”
  그러다 슬쩍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초대 장로들의 유품을 들로 온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현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천마가 의아한 듯 말했다.
  “응? 너흰 왜 일어나냐?”
  “우리도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된 듯해서 말이야.”
  “에엑! 그건 안 돼!”
  유현의 말에 청월이 버럭 소리쳤다.
  진중한 모습이 사라진 청월을 보며 천마와 달마를 제외한 나머지 유현, 유한, 휘안이 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런 노인네랑 짜증나는 녀석 말고 파릇파릇한 여자가 왔는데! 그냥 가는 건 뭔가 이상해!”
  이상한 말을 하는 청월. 바람둥이 끼가 다분하게 있는 그였다. 즉, 정말로 절대자가 맞는지 의심되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가는 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아무튼 청월을 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현 일행을 뒤로하고 천마가 슬쩍 손을 올렸다.
  “말리지 마라, 천마.”
  “그냥 죽여 버리게.”
  달마조차 이번에는 청월을 외면했다.
  쾅!
  그리고 이어지는 폭음.
  물론 청월 역시 절대자의 반열에 들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천마보도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좀 방어하던 청월은 그대로 몇 대 맞더니 뻗어버렸고 주위가 초토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아무리 인공적인 공간이라고 하나 자연이 이렇게 망가지는 건 좀 그렇군.”
  그에 달마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청월에 대한 걱정 따윈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청월을 신나게 밟던 천마가 그를 밟는 것을 멈추고 유현을 보며 말했다.
  “흐음, 벌써 가려는 건가? 좀 더 여기 있지 그래?”
  “여기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
  계속 있어봤자 천만 아플 뿐이었다.
  “그리고 난 바깥 세상에서 할 일이 있어, 그곳에 일을 끝낸 다음 리샨으로 돌아가 긴 수면에 들고 싶어.”
  그 말에 유한의 표정이 조금 굳었는데, 아마도 긴 수면이란 말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유현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휘안 역시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무튼 그런 유현을 보며 천마가 말했다.
  “아쉽군.”
  그러고는 유현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밖으로 보내주지, 일어서라.”
  그와 함께 천마 앞에 문이 나타났는데, 문이 열리자 바깥은 환한 달빛이 비추고 있는 밤이었다.
  “가지.”
  이윽고 천마가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자 유현과 유한, 휘안도 그곳으로 걸어갔다.
  “이봐.”
  그때 청월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휘안을 불러 휘안이 멈칫했다.
  “즐거웠어, 무공은 모두 익히고 그곳을 태우도록 해. 그리고 말이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지.”
  잠시 말을 멈춘 청월이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런 휘안을 향해 청월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흐음, 즐거웠나 보군.”
  그에 청월을 보며 달마가 웃으며 말하자 청월이 대답했다.
  “나의 후인이라오. 그러니 만나서 즐거운 게 당연하지. 허허. 아무튼 아무런 성좌도 타고 나지 않고 저렇게 강하다니, 새로운 절대자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소.”
  “뭐, 먼 훗날의 이야기 아닌가?”
  청월의 말에 달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천마, 달마, 청월 모두 절대자가 된 이후에도 끝없이 달려왔다.
  생사경의 경지를 뛰어넘고 계속 달려 선경의 경지에 이르고 그 경지마저도 넘어버렸다.
  그에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자신들을 보며 삶을 뒤돌아보고는 후회가 많았던 세 사람.
  특히 청월과 달마는 더욱 그랬다.
  천마는 이 세계에 갔다 오면서 신비한 경험을 많이 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아니었다. 오로지 중원이라는 틀 안에서 신선이 되어서도 수련을 끝없이 했다.
  그에 결국 일생에 후회하는 게 많았고, 청월은 휘안이 자신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중원의 절대자 청월은 자신의 후인을 생각하며 좀 쓰게 웃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도 리샨 대륙이란 곳에나 가볼까?”
  큰일 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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